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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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100년의 역사를 어떻게 표현할까?

격동의 100년? 대학살극의 시대? 이념의 각축장?

20세기를 진지하게 그린 책이든 영화든 어떤 컨텐츠를 보더라도 그 속에서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느낌은

아! 내가 저기 저 시대에 저 장소에 있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그런데 안도감이라니?

이 안도감이란건 역으로 들춰보면 어쩌면 내가 속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전제하는 감정이다.

1980년에 나는 외가가 모두 광주에 있으니 광주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연세대 앞 거리는 내가 다니던 대학 앞 거리로 바뀌어질 수도 있었다 같은.....

역사적 격돌과 그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있는 지역에서는 그것의 희화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설사 블랙코미디로 그려진다 하더라도 그 비극성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운법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웰컴 투 동막골>이 코믹스런 상황을 아무리 연출해도 <황산벌>처럼 그려질 수는 없는 것은

<황산벌>과 달리 <웰컴 투 동막골>은 그 비극성이 현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 내지는 그 인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설이겠다.

20세기 무수하게 저질러진 학살과 대결의 현장에서 자신이 온전히 주인공인적은 없었던 행운을 가진 나라라고나 할까?

 

100세의 생일을 맞은 영감님 알란은 평생을 정치는 싫어! 종교도 싫어! 모든 이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당위는 모두 싫어를 외치며 맘 가는대로 흘러가는대로의 인생을 살아왔다.

이념따윈 없다.

스페인에 친구따라 갔다가 내키진 않지만 공화파를 위해서 다리를 폭파하다가 우연히 적인 프랑코를 구하고,

미국에선 우연히 핵개발의 중심에 서게 되고,

중국에서는 장제스를 도우러 갔다가 오히려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을 구하고.....

이런 뒤죽박죽이라니!

20세기 이념의 시대를 탈이념을 부르짖는  21세기의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고나 할까?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가의 지금 생각으로 20세기의 삶을 재구성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소설은 재밌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면서 낄낄거리고 보게 된다.

하지만 영감님이 유쾌 상쾌하게 질주하는 그 시간과 공간을 무수한 고통으로 난도질당하면서 헤쳐온 역사를 갖는 또 다른 의미의 변방 한국에서 읽을 때 불편함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멀리 지독하게 운이 좋았던 나라에서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나라의 사람들을 굳이 배려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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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볼 생각을 안 했는데~ 리뷰를 보니 한번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안녕하셨지요?
너무 오랜만이라 곁에 있음 부등켜 안고 찐하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예전처럼 알라딘에서 자주 보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14-11-19 00:24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 너무 오랫만이죠.
글을 안 쓰니 서재에도 자주 안들어오게 되더라구요.
작년에 글 쓴걸 보니 딱 1년만.... ㅠ.ㅠ
자꾸 게을러져서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데 뭐 이놈의 게으름이....
자주 놀러갈게요.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