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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김영하에 대한 이미지가 좀 가볍지 않나 싶어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소설이다. 근데 소재 자체가 우리나라 1900년대의 멕시코 이민사인지라 가벼울래야 가벼울수 없는 글이었다. 그러면서도 비슷한 소재가 나오는 아리랑처럼 이상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실제로 그랬음직하게 사람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이 나라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던 그 시절, 이 땅에서도 못살아 멀리 남의 땅까지 갔던 사람들에겐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다들 만만찮은 사연들이리라. 오죽이나 살기 힘든 시대였는가말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는 그 많은 사람의 사연을 구구절절히 다 풀어놓지는 않는다. 독자의 몫이다.
노예선같은 험한 항해를 마치고 그들이 도착한 멕시코 역시 그들의 꿈대로 신천지는 당연히 아니었다. 가혹한 기후조건, 노동조건하에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다. 조선에 남아있느니만 못한 삶을... 그래도 그들은 살아낸다. 물론 조선에 남았더라면 살았을 삶과는 천지차이로 다르다. 그들의 성격만큼 다양한 삶들을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작가는 조심스럽게 이끌어낸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언뜻 등장인물들의 삶이 쉽게 이해 안되는 면이 있다. 가장 극적인건 역시 왕실의 후손인 이종도네 일가다. 아버지인 이종도야 전형적인 조선의 양반으로 산다. 끝까지 선비와 양반의 도를 얘기하면서 무능력하게 시대착오적이게.... 그러나 그외의 가족들 딸 연수는 이정이라는 고아소년과 사랑을 하고 그의 아이를 가지고 그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중인 역관 출신의 악덕 통역관인 권용준의 첩이 되었다가 다시 구한말 제대 군인인 박정훈의 처가되고.... 그녀의 동생 이진우 역시 살길을 찾기 위해 전혀 양반답지 않은 길을 택한다. 권용준에 빌붙어 스페인어를 배우고 그로서 출세의 길을 찾고... 가장 파격적인건 이들의 어머니인 이종도의 아내이다. 연수가 세월이 흐른 후 농장으로갔을 때 어머니는 마야인 감독과 결혼해있다. 조선의 양반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들하고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모습들이 그 때 양반이 어떤 의식의 소유자들인데 이런 타락을.... 차라리 자결을 했으면 했지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성급하지 않을까... 인간의 기존 사고체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건 쉽지는 않지만 한 번 무너지면 그 속력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면 삶에 대한 애착은 말해 무엇하랴? 이들에게 있었던건 살아남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으리라... 일단 그런 생각이 지배하고 나면 기존의 사고방식, 가치관은 쉽게 합리화된다. 그래도 이들의 삶이 더 눈물겨웠다.
소설속의 인물들의 삶이 약간의 거슬리는 비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 예를 들면 이발사를 하다가 멕시코 혁명에 참여하는 박정훈의 경우 - 주인공들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이해되지 못할 변신은 없다.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런것이 아닐까?
이 소설을 미학적으로 문학적으로 분석할 능력은 내게는 없다. 하지만 대담한 생략과 섬세한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독자의 몫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고 그 삶의 중간에 있었을 그들의 육체적 심적 고통들을 헤아릴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단지 살아남는것만이 절대절명의 과제가 되는 그런 때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