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 푸른도서관 27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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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을 사모해 미쳐버렸다는 지귀.
그 지귀가 여왕을 한 번 뵙기 위해 여왕이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탑아래에서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어버린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여왕이 그 광경을 보고 지귀의 가슴에 금팔찌를 뽑아 놓고 가니 이윽고 깨어난 지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급기야 가슴이 타들어가 화신이 디고 만다. 지귀가 불귀신이 되어 온 세상에 떠돌아 다니자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급기야 여왕은 노래로 주문을 만들어 대문에 붙이게 하니 그 후 백성들은 화재를 면하게 되었다.
지귀의 마음속 불길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불귀신으로 변했네
창해밖으로 흘러가
만나지도 친하지도 말지어다.     - 권문해 <대동운부군옥>조선 선조때  - 

 

 

옛 이야기는 때로 현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울때가 많다.
지귀의 설화도 역시 전후맥락을 따지고 들어가자면 어린 청년이 나이 환갑을 바라보는 여왕을 사모하는 마음도 그러하고, 죽은 이후에는 불귀신이 되었다는 것도 그러하며 선덕여왕의 주문이란 것도  지귀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쫒아내는 것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설화의 열려있는 사이 사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란 이 몇줄 안되는 설화를 그의 상상력으로 복원해내는 이가 될테고... 

 

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래서 내게는 각별한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하겠다.
 어떤 식으로 지귀의 마음을 복원시켜내고 있을까?
지귀의 마음이 선덕여왕에게 간 것은 어떤 이유때문이었을까
이런 호기심을 안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책을 읽었건만..... 

 

물론 스토리상으로는 김유신과 법민을 한켠으로 하고 또 다른 한켠으로 김유신측의 라이벌집안의 아들인 가진과의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지귀의 설정은 무난했다.
그 속에서 지귀의 여왕에 대한 감정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고뇌를 단칼에 풀어줄 무한한 신뢰에 다름아니었다는 설정 역시 수긍이 갈말한 전개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단순성 평면성은 이런 상상력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마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찌 이 글 속의 신라인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여왕을 우르러기만 할까?
오직 나라를 위한 충심 하나 이외의 감정은 없는 것일까?
왜 그런 충성은 맹목적이고 무조건 당연시되고 있을까?
인물들이 뱉어내는 말이 모두 한결같으니 각각의 인물들의 입체성은 사라지고 인형들이 줄줄이 늘어서 똑같은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는 형상이니 원.... 

설화를 재구성하는 설정의 참신함은 좋았으나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의 창조와 현실감의 창조에서는 실망스러운 책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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