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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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는 온갖 행사들로 시끌벅적했던게 생각난다.
그 최대 이벤트가 타임캡슐이었던가?
600년을 이어오는 수도라.... 만만치 않은 역사의 무게다.
하지만 오늘의 서울은 그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까?
가뭄에 콩나듯이 가는 서울이지만 온통 빌딩과 차도들로만 둘러싸인 궁궐이니 남대문 동대문이니 하는 것들이 600년 역사를 온전히 느끼게 하기는 힘들었다.
현대문명에 짓눌려 박제가 되어버린 과거라고나 할까? 

그래 600년 수도 서울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 책은 지금보다도 훨씬 일찍 아주 옛적에 나와줬어야 했다. 이제야 나온 것이 안타깝고 안타까울뿐....
뭐라고 한 마디로 이 책을 정의하기는 상당히 난감하다.
제목 그대로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그리고 그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들과 삶들, 삶의 조건들 찾아가기 정도? 아니면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 근대가 어떻게 이식되고 뿌리내렸는가? 뭐 이런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까?  

책은 서울이 조선의 도읍이 되던 순간,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찾는데서부터 시작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맥락만을 추적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역사를 쫒아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먼저 생각해봐야할게 결국 도시론이다.
어떤 지역 내지는 국가에서 도시와 농촌은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며 도시는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 그리고 그 역할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가는가하는 물음말이다.
주변의 농촌을 소비함으로써만 성립될 수 있는 도시라는 존재는 그 출발부터 기생성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근대화의 역사는 그러한 기생성을 더욱 더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지방을 배제시키고 소외시키는 과정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서울민국이라고 부르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자조는 이런 맥락에서 발생할 터이다.  

애초에 계획도시로서 질서정연한 정비를 보였던 또는 보이고자 했던 서울이 전란으로 인해 파괴와 전란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구, 그리고 풍수사상의 영향등으로 중구난방의 도시로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그렇지만 전근대의 이러한 변화는 또한 부자와 빈자가 일상적인 연대를 이룰 수 밖에 없는 도시구조를 낳았지만 이러한 연대는 근대를 거치고 난 현대에 이르러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부자와 빈자의 철저한 구별, 비단 부자뿐만이 아니라 아파트값 떨어진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아파트에 임대아파트 짓는걸 반대하는 주민들의 출현은 현대 도시의 비인간화가 어느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하겠다. 이런 연대의식이 사라진 도시는 대립의 현장일뿐 통합의 공간은 아니다. 

임진 병자 양난 이후 서울이라는 도시는 직업화 집단화된 거지들로 몸살을 앓는다. 이전 시대에도 분명 거지는 있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일시적이거나 극히 제한적인 상황이었음과 비교하면 새로운 현상이다. 흔히 우리는 거지를 가난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조선 후기 생산력이 회복되고 오히려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수의 거지가 산출되는 것을 보면서 저자는 거지란 가난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빈부격차의 확대에서 오는 것임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우리 사회에 노숙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과 관련하여 눈여겨볼 대목이다.
17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늘어나는 서울의 유입인구, 특히 지방출신의 지배층으로의 편입을 막기위한 원천적인 봉쇄가 이루어진다. 과거에서 사륙변려체라고 하는 새로운 문체를 요구하게 되고 이것은 서울지배층의 전유물이 되는 것. 이래서는 지방출신은 어디 과거를 통한 한자리 얻기가 가능하기나 하겠나말이다. 다산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말것을 당부하는 논리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일게다. 서울공화국의 탄생은 이 때부터 시작된것이겠다.  

신분제가 해체되고 상인이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하면서 등장하는 언어의 변화, 이른바 깝쇼체라고 하는 서울방언- 요즘은 어서옵쇼, 어디로 모실깝쇼 등등- 의 등장. 전차, 시계와 함께 들어온 자본주의적 시간관념과 생활방식의 추적,  남대문 동대문 시장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시장의 형성과정, 그리고 근대화의 물결속에서 무수히 만들어지는 새로운 언어들의 등장과 유래까지 무궁무진한 읽을거리들을 담고있다. 그리고 그것이 한때의 읽을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 이 책의 가치가 더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서울의 지리를 좀 더 알았다면 아마도 이 책읽기가 더 즐거울수도 있었을터이지만 그렇다고 서울로 이사를 갈수도 가고싶은 생각도 없는건 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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