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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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망명에 성공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 생물학적인 존재, 단독자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내게는 이름과 성별과 나이와 국적만이 남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다른 존재다. 공항에서 비행기표와 여권만 들고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거의 다른 존재가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은 참으로 감미롭다. 그런 점에서 공항은 환각의 극장이며 착각의 궁전이다. 그리하여 공항은 마침내 삶에 대한 절절한 역설이 되는 셈이다. 맞다. 덧없이 반복적으로 스쳐가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 289쪽

 여행 그리고 그 출발점 공항 또는 정류장, 기차역 모두 기대와 설레임의 단어들이다.
그것이 기대와 설레임인것은 결국 내가 아닌 나를 만나는 시작점이기때문이리라....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 - 가족의 틀, 지위, 일상의 지겨움, 나를 아는 것들로부터의 안녕이라는 것.
나라는 존재의 외피를 모두 벗어버린다는 것은 물론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일터,
기대와 설레임의 여행은 결국 돌아올 곳을 준비한 벗어남일테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럼으로써 나를 좀 더 객관화시켜 볼수 있는 것?
아니 그것만은 아닐것 같다.

작가 김연수는 국경이라는걸 가져보지 못한 우리의 비애를 얘기한다.
동, 서, 남으로는 바다뿐인, 그리고 북으로는 결코 갈수없는 휴전선으로 막힌 섬나라 한국.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나와 타인을 같이 바라보며 사고를 확장하거나,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속에 갇힌 세계관을 벗어나는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를 기대할수 없다.
기껏 이곳을 벗어나려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거나
아니면 월북이다.
둘다 이것은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이며 배신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써야 한다.
자유로운 월경이 봉쇄당한 곳.
그래서 늘 우리를 강조하며 우리속에 있을때만이 모든것이 좋아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곳.
이 공간을 탈출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아니 설사 지리적인 이동을 하더라도 늘 김치와 고추장을 싸다니고 우리끼리 우루루 패키지로 몰려다니며 그래도 우리께 제일좋아, 집이 제일 좋아를 연발하고 다닌다면 그건 그저 지리적 이동일뿐이다.

작가는 지리적인 여행속에서 이런 월경의 경험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자 한다.
해방후 일본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부산항 앞의 닥지닥지 붙은 초라한 집들을 바라본 작가의 어렸던 아버지는 평생을 여긴 내가 있을데가 아닌데라는 심정으로 살았단다.
그러면서도 우리속에서 내처질까봐 그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단다.
그분에게 지리적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의 고향은 바다 건너 저편인데....
그런 마음을 억압하는 섬의 비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고 표현해주는 것, 그럼으로써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것의 강고한 압박을 벗어나는 것
그 틀에 갇혀 나와 또다른 나들을 사고하지 못하는 정신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작가 김연수의 여행이리라...
그리고 여행할 권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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