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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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의 부인인 연제태후의 이야기에서 화랑의 이야기, 김춘추, 향가 혜성가의 이야기, 원효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인것 같으면서도 같은 줄기로 이어지고 있다.
고대의 신라는 그야말로 소백산맥 아래에 치우쳐 있는 작디 작은 소국에 불과했다.
일찍부터 중국과 대결하거나 교류하며 국제성을 키워왔던 고구려나 백제와는 다른 것.
고신라의 예술품들을 보면서 흔히 고졸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건 어떤면에서는 촌스럽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신라가 외부로 눈을 돌리고 확장을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 - 불교로 대표되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시기에 그것에 대한 고대신라인들의 태도를 작가 심윤경은 너무나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흔히 왕은 신 또는 신적존재이다.
신적 존재 또는 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왕권을 더 강화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 왕의 신적역량 또는 무당적 역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때는 바로 왕권을 겨냥하는 칼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왕들은 끊임없이 신비한 탄생설화나 신적인 예지 능력같은걸 보여주어야 했고 이것은 소설속에서 신국이라는 이름과 성골출신 왕들의 신체적 거대함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삼국유사에서는 왕의 신체적 특징이 아주 거대했다는 기록은 지증왕과 진평왕대에 나올뿐 나머지 왕들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지증왕은 내물왕 이후 고구려의 끊임없는 간섭을 받고있던 신라가 드디어 외부로 눈을 돌리며 확장을 시도하기 시작하는 시기의 왕이며, 진평왕은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왕실이 왕실의 부처가계화를 시도하며 왕족에 성골개념을 만들어낸 이다.(이것은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며 성골과 진골의 구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일치된 학설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견해중 하나이다.)
이 두왕의 기록에서 작가 심윤경씨의 신국 신라 이야기는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신국 신라는 거대한 신체를 가진 성골 왕- 즉 신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이며, 신들의 교합제에 의해 풍요를 가져오는 나라.
이런 설정만으로 본다면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이것을 당시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신라 각계 각층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면 의외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아진다.
고대의 전통신앙에 대항해 새롭게 합리성으로 무장해 밀려오는 중국문화를 걱정하는 연제태후
혼인을 앞두고 열린 연회에서 세상의 변화를 직감하고 거기에 대항하거나 합류하거나 하는 귀족들.
진골 최초의 왕이 된 김춘추가 가지는 성골에 대한 열등감이 대식과 그로 인한 파멸로 이어진다든가...
신라 전통의 신앙이 혜성을 물리쳤음에도 이미 시대와 왕은 불교의 편을 들어주어 고대신라의 퇴장을 씁쓸하게 보여주는 혜성가 이야기
신분의 차이를 무릅쓰고 야밤도주를 통해 뜻을 이룬 김서현과 만명부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김유신. 자신의 사랑을 위해 그토록 정열적이었던 만명부인이 아들의 천관녀와의 사랑에 대해서는 그토록 엄격했던 이율배반을 문화의 충돌과 변화로 풀어가는 천관사 이야기.(난 천관사 이야기는 원효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김유신 집안의 이야기로 읽었다)

고대사회는 워낙에 기본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사실상 그 시대를 실증적으로 복원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틈새가 이야기가 만들어질 공간을 더없이 넓게 펼쳐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것을 흥미로우면서도 나름 공감이 가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한줄 내지 두줄의 자료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재창조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창조의 힘을 만끽할 수 있는 영역일테니...
일전에 비슷한 시기를 소설화한 <미설>이란 작품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주제를 다루지만 공감의 힘에 있어서 <미설>과 <서라벌 사람들>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이것이 이야기꾼의 힘이 아닐까?
발표하는 책마다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꾼 심윤경씨.
다음 작품은 어떤것이 될지 벌써 기다리는 즐거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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