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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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씨는 참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다. 너무 평범해서 아예 존재감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등기사무소에서 일하는 아주 아주 평범한 공무원, 그것도 비정규직 직원이다.
누군가 특별히 여기는 사람도, 주제씨를 특별히 여겨주는 사람도 하나 없는 노총각이다.
사는 곳도 특이하여 이웃하나 없이 등기사무소 옆에 딸려있는 단 하나의 방이 그의 집이다.
작가가 주제씨라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것 조차 희안하다고나 할까?
차라리 그냥 "그"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주제씨의 진짜 이름은 어쩌면 '익명'이 아닐까?

그가 그런 자신의 익명성을 보상받기 위해 하는 유일한 취미는 유명인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일이다.
아! 그게 보상심리인지 어쩐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그가 유명 추기경의 신상서류들을 살짝 빼오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한 여인의 신상서류를 같이 끼워오게 된다.
전혀 유명하지 않은 그녀.
서류를 통해 알수있는건 그녀의 이름과 태어난 날, 주소, 결혼날짜, 이혼날짜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제씨 여기서 운명을 느낀다.
그녀를 찾아야겠다는.....

찾아서 뭘 어쩌겠다고?
아니 그딴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는 무수한 서류더미들 속에서 그녀의 서류가 그에게 왔다는 것이 중요할 뿐....
이제 그녀를 찾는 주제씨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녀를 찾기위한 주제씨의 노력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모하고 아날로그적이며 진부하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모두를 무시하며 어렵고 힘든길만 골라서 가는 주제씨.
하루는 그녀의 흔적과 지금을 추적하기 위해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 침입하기도 하는데, 겨우 그녀의 생활기록부를 추적하기 위해 그가 벌이는 모험은 정말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후에 그가 들킬지도 모를 온갖 상황에 대해 주제씨가 벌이는 머릿속 상상은 지나치게 심각해서 어이가 없을정도...꼭 엄마몰래 엄마주머니를 털어 사탕을 사먹는 아이가 생각하는 변명들 같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이 결코 될것 같지도 않은 주제씨의 노력들이 슬슬 지겨워질 즈음 느닷없이 등기사무소의 소장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한다.
왜인지 모르게 주제씨를 보살펴주는, 그럼으로써 주제씨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하기도 하고..
그리고 느닷없이 등기사무소의 전산화에 반대하며 쌓여있는 서류더미들을 옹호하기도 하고, 산자와 죽은자를 같이 있게 해야 한다는 묘한 말을 남기기도 하는 소장.
아 이쯤되면 주제 사라마구가 하려는 얘기가 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등기사무소로 대변되는 극단의 관료주의사회, 그리고 그속에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엄청난 인간들.
모두 잊혀지고 말 인간들의 이름.
어쩌면 현대 사회의 모든 인간이 그렇게 익명의 존재가 아닌가라는 질문...
주제씨가 결국 찾아냈지만 결국 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녀의 존재의 역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무자비하게 드러냈었고,
눈 뜬자들의 도시에서는 현대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허구성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에서는 거대한 도시속에서 익명화되고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는 원자화된 개인을 부여잡는다.
주제만으로는 정말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책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후편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울따름이다.
저 책들의 순서대로 내 별의 갯수도 줄어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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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7-28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든 이름들'이란 제목으로 읽었는데요... 저런 제목을 달아서 파는 상술이란... ㅎㅎ 원제목이 모든 이름들이더군요. 정말 주제가 무겁죠. ㅋㅋ 오늘 브이 포 벤테타란 영화를 봤는데... 인간이란 것이 뭔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뭐냐...

바람돌이 2008-07-28 23:21   좋아요 0 | URL
읽고나니 역시 원제목인 '모든 이름들'이 더 적당한 것 같군요. 뭐 이런 책은 저런 상술을 써서라도 좀 더 많이 사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ㅎㅎ
인간이 뭔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슬퍼지거나 허무해지지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