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션展 - 세상을 뒤흔든 천재들
이명옥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예술의 역할은 흔히 말하듯 얘기한다면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게 어디 고정된 개념이던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게 미의 기준 아니던가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세상을 낯설게 보기 -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엎어 새로운 관점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센세이션展이라는 제목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붙여졌다.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던 예술가들의 삶과 생각 그리고 그들의 예술을 보여주는 것.
오늘날에 와서 보면 평범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것이 당대 사회에서는 충분히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제공했던 것들을 되살펴보자는 것이다.

전시의 첫번째는 역시 페미니즘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미술 역시 일정시기까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시대에 등장한 여성화가라는 것 부터가 센세이션하지 않은가 말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란 그림을 처음 봤을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이 주제의 그림을 그렸지만 누구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만큼 충격적으로 이 주제를 다룬 화가는 없었다.
이 시대 남성화가들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여성적이고 아름답고 가련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런데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속의 유디트는 강인한 팔뚝과 굳건한 의지와 단호함을 한 몸에 지닌 진정한 주체로 태어난다.
여성화가래봤자 정물화같은 소품들밖에 그릴 수 없었던 시대, 남성의 장르로 여겨졌던 역사화를 당당히 그려냈던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화가일 것이다.
그 외에 로댕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카미유 클로델의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라서인지 흥미가 좀 떨어졌다.
하지만 이어진 존 레논의 부인이었던 오노 요코와 주디 시카고의 이야기는 남성들 속에 가려질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당당함을 표현했던 이들이다.
주디 시카고의 작품 <만찬회>는 여기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대담한 발상에 통쾌함조차 느끼게 된다.
삼각형의 긴 테이블에 여성의 성기모양의 접시를 세팅하다니... 그것도 역사상 위대했던 여성들을 모두 끌어내어 그들에게 걸맞는 맞춤형 성기모양이라니...
여성의 성기는 음란하다 내지는 숨겨야 될 무엇이다라는 기존의 성개념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한순간에 전복해버리는 발상 - 유쾌하고 통쾌하다는건 이럴때 하는 말일게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누드화를 그려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고야<옷을 벗은 마하>
거기에서 한술 더 떠 고상한 신의 세계의 표현에서만 가능하던 누드를 현실의 창녀를 소재로 하여 그려낸 마네의 <올랭피아>
세계적인 걸작으로 추앙받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당대에는 얼마나 불경스러운 그림으로 매도당했는지를 쫒아가는 과정들은 저절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진진하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주시오.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소"라는 말로 유명한, 사실주의를 연 쿠르베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자고로 그림이 대작이 될수록 뭔가 위대한 것 - 영웅이나 역사를 그려야 한다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확 깨버리고 일개 시골마을의 장례식 풍경을 엄청난 크기의 화판에 웅장한 역사화의 기법을 그대로 살려 그려낸 쿠르베의 그림은 당대 사람들을 엄청나게 분노시킨다.
작품 <오르낭의 매장>은 그야말로 비천한 사람들을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과 동격에 올려놓은 것처럼 그려냄으로써 당대의 난체하는 인간들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려버린 것.
<안녕하세요 쿠르베씨>에 나오는 쿠르베의 그 오만한 모습은 그 오만함으로 인해 아름답다.

덧붙이기 - 평소 이명옥씨의 책을 보면서 항상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 책만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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