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한 다스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세기 초 "극동의 조그만 나라 일본이 대국 러시아를 무찔렀다"는 뉴스거리가 구미 열강의 식민 지배로 허덕이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게 그 얼마나 희망과 용기를 주었는지..... 그 당시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백인의 제국주의 약탈과 착취와 차별에 신음하고 있던 세계 곳곳의 유색인종들에게 희망의 별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일본은 스승으로 우러러보고 본받던 선배 구미열강에 못지 않을 잔혹한 제국주의 나라로 표변했고, 아시아의 여러 이웃들은 그 화를 톡톡히 입었을 뿐만 아니라, 원망에 가득찬 증오마저 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멀리 떨어진 터키까지는 일본의 군홧발도 불명예스러운 소문도 미치지 않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본에 대한 동경과 존경의 시선이 가시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35쪽)

우리에게는 본격적인 식민지 역사의 시발점인 러일전쟁이 먼 다른 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석될 수 도 있다니.....
충격이었다.
이 이야기는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가 터키에 갔을때 곳곳에서 '도고(러일전쟁때 러시아 극동함대를 패퇴시킨 일본군인)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환대를 받은 에피소드다.
관념속에서 각 사회가 처한 문화와 환경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일전쟁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너무나도 의외여서 충격적이었다.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는 성장과정부터 이채롭다.
요 앞에 나왔던 <프라하의 소녀시대>라는 책에서 자세히 나왔지만 어린 시절을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덕분에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아이들과 함께 보내었다.
이 시절의 경험은 그녀를 다른 문화와 생각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이고 건강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녀가 평생의 직업으로 택한 동시통역사 역시 그녀의 그런 시각을 강화한 것 같고....
사실 언어란게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만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언어에는 그 나라의 의식과 문화 생각이 모두 녹아있다.
우리 말에 유난히 발달한 높임말은 그 자체가 유교질서와 상화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표상이듯이.....

이런 유별난 경험을 바탕으로 늘어놓는 저자의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가치관이 만나는 지점들의 이야기는 참 신선하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생각이  책의 곳곳에 녹아있다.
아 그래 이런 생각도 있을 수 있구나라는 탄성을 내내 지르게 된다.

때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도 있지만 또 그 다양성으로 인해서 즐거워지기도 한다.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중국 사막지역으로 촬영을 따라갔을때
그 사막의 모래바람속에서 용케 발견한 사슴한마리를 가지고 순식간에 만두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어내던 중국 군인들의 모습은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세상의 온갖 요리를 모두 만들어낸 중국인 외에 과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다른 문화에 대한 공감 또는 다른 생각은 막힌 사회의 숨통을 틔워주는 환기구 같은 역할을 한다.
책 제목의 마녀는 바로 그 소수자로서의 다른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다르다는 것은 항상 마녀사냥의 위험을 안고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바로 그 마녀사냥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꽉 막혀서 내 발등 외에는 도대체가 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숨통을 틔워줄 마녀의 존재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가 학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바로 우리의 숨통을 틔워줄 마녀가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그들과 함께 모두 마녀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마녀가 넘치는 세상 - 주류에 당당히 다른 가치관, 다른 삶의 방식을 얘기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 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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