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20세기는 근대화=문명이라는 등식이 마치 상식인듯 만들어져가던 시대다.
하지만 그 이면이 얼마나 추악한 야만으로 얼룩져 있는지를 여기 이 사람들이 증언한다.

안네 프랑크나 체 게바라 안중근 같은 이처럼 모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도 있고,
갓산 카나파니(팔레스타인의 작가, 언론인)나 잭 시라이(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가한 일본인)라는 이처럼 이곳에서 처음 만난 이도 있다.
기존에 알던 사람이든 모르던 이든 이들의 삶이 증언하는것은 한가지다.
20세기가 인간을 얘기하고 정의를 얘기하는 이를 어떻게 억압하고 죽였나를 그들의 삶과 죽음이 웅변하고 있다는 것.

서경식씨에게 책을 쓴다는 것은 기억한다와 동의어인 것 같다.
그의 소년시대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삶을 기억하고자 한 것도 그렇고,
쁘리모 레비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야만을 그리고 그 반동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야만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도 그렇고....
삶 전체가 경계인일수 밖에 없었던 그의 존재가 어쩌면 예정한 삶이었는지도....

그가 이 책에서 선택한 인물들 중 어떤 이 - 체 게바라나 아옌데같은 - 는 20세기의 인물로 누구나가 꼽을 인물이겠지만 그 외에도 의외이다 싶은 인물들도 많이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일본의 패전후 조선인이면서도 전범으로 사형당해야 했던 조문상 같은 인물.
죽으면서 "천황폐화 만세"와 "조선독립만세"를 같이 외치는 모순을 함께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어디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한 경계인의 삶의 한 단면.
최근에야 그 삶이 조명되고 있는 가네고 후미코 역시 그런 경계에 선 인물이다.
일본인이지만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시절엔 조선에 와서 자신의 동족이 조선인들을 어떻게 학대하는지를 보고 자랐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는 조선인 청년 박열을 사랑했고 그와 사상적 동지가 되었다가 체포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천황의 특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자 그 명령서를 찢으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해버린 그녀의 정체성은 일본인이라 할 수 있을까?

20세기는 민족과 국가의 경계선의 시대였다.
여기가 아니면 저기 이렇게....
하지만 어디에서 경계선에 선 사람들은 넘쳐났고 그들은 그 때문에 고통받았다.
때로는 저항하는 이도 있었고 더 많게는 억압만 받다가 죽어갔다.
경계선은 그 자체가 이미 억압과 고통의 선이었던 것.
그러면 21세기는? 여전히 20세기의 경계들은 더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여기 실린 49인의 증언자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야만의 시대를 끝내는 게 여전히 멀어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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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10-08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살았던 모든 시대는 야만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뭘 읽어도 야만의 냄새는 가득하니까요...
서경식 선생 글을 읽노라면 알싸하게 슬픈 호르몬을 유발시키는 메시지가 톡톡 씹히는 것 같지요. 저도 이 책 신청해 두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07-10-08 11:35   좋아요 0 | URL
모든 시대에 인간의 야만은 있었지만 20세기가 특별한건 아마도 그 야만의 희생양의 숫자가 어떤 시대와도 비교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서경식씨가 마지막에 여기에 이렇게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수많은 난민들과 희생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코끝이 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