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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를 움직인 여인들
호사카 유지 지음 / 문학수첩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일단 이 책의 저자 이력이 상당히 독특하다. 일본인이면서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결국 귀화하여 눌러앉은 이다. 내가 알수는 없으나 이런 경력이 그리 흔할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그런 이력만큼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독특하다. 이런 류의 책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지나친 흥미위주로 가면서 한없이 가벼워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일단 치명적인 위험은 피해간 듯하다. 일본의 여성들을 다루면서도 역사적인 배경과 시대상황을 읽어내는데 늘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당시의 여성들을 통해서 일본에서의 여성의 지위의 변천, 부수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역사를 움직여 나가고자 했던 그들의 삶,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상이 변해나가는 모습까지 일본사 개설서로서의 역할까지 꽤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첫번째로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주장은 일본 중세 이전의 역사에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역할을 엄청나게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까지  100만에서 200만에 이르는 인구가 한반도에서 유입되었고 이들은 이 시기 일본 역사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도래인들의 존재나 그들이 일본 문화나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꽤 컸다는 것은 뭐 대부분이 알고있는 얘기지만 이 책에서 얘기되는 영향의 정도나 한반도와 일본의 밀착정도는 기존에 알고있던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가야계 도래인 출신인 천황으로부터 천황을 능가하는 권력을 누리며 일본의 다른 귀족집안과 권력다툼을 벌였던 소가씨 집안. 백제 멸망기에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왕자 풍이 어쩌면 일본 사이메이 천황의 아들인 나카노오에 왕자가 아닐까라는 가설. 그리고 동시에 연결된 것으로 백제계로 추정되는 천황들 등. 그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고대사를 완성하려면 이 두나라의 하나처럼 밀착된 관계를 파헤치지 않고는 반쪽의 역사가 될 정도이다. 일단 이러한 주장들의 진위 여부는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고, 다만 그 주장의 대담성이 참 흥미롭다. 실제로 한일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미묘한 문제인가 말이다. 국내의 학자라면 국수주의자가 아니고서는 이정도까지 논지를 펼치기는 어렵다. 정말 명명백백한 학문적 증거가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그런데 어쩌면 일본 출신 귀화 한국인이라는 그의 존재가 이런 주장도 맘껏 펼칠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대담한 가설이 한일관계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있는 기폭제나 문제제기가 될 수 도 있지만, 반대로 이것이 잘못 작용하면 쓸데없는 민족적 자만심으로 연결될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한일관계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든 상태고 옛날에 우리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줬다는게 무슨 대대손손 길이 이어갈 훈장인것처럼 보는 분위기니... 그런데 이런 태도야 말로 국수주의의 온상이고 또한 한일관계와 역사를 발전적으로 전망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중세 막부시대로 가면 일본의 지배층 여성들의 현실 정치에서의 역할은 고대에 비해서 확실히 줄어든다. 고대의 여성이 독자적인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한 이가 많았다면 중세의 여성들은 이제 누구의 아내 또는 딸로서의 지위가 일차적이게 된다. 뭐 고대라고 해서 그런면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고대에는 누구의 아내 딸이라는 지위에서 출발하지만 귀결은 그 자신의 독자적인 지위의 획득으로 이어졌던 반면 중세 이후가 되면 아내와 딸이라는 지위에 머무는 수준에서 그녀들의 역할이 펼쳐진다는 거다. 헤이시의 난에서 패배한 겐지 가문의 도키와 고젠은 그녀의 미모를 이용하여 겐지가문의 후손 요시쓰네를 결국 헤이시를 무찌르고 겐지가문의 시대를 만드는주역으로 키워낸다.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순신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 곁에 나긋나긋하고 약하디 약한 모습으로 보여졌던 요도기미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다. 그녀는 단순히 토요토미 곁은 꽃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하고자 했던 여성으로 그려진다.

에도 시대로 가면 당시 조선에서 전래되었던 성리학이 사회의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성리학이란 이념은 조선에서나 일본에서나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족쇄였음 역시 흥미롭다. 여성들의 정치계로의 진출이나 역할이 모두 현저히 줄어들어버리니.... 이제 여성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아내와 어머니라는 집안 울타릭 갇혀버리는 것도 두 나라가 어찌나 똑같은지.... 

고대에서 근대까지 역사속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의 삶을 통해서 바라보는 일본사는 꽤나 흥미롭다. 내가 일본사를 좀 더 제대로 알았더라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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