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돌아본 일본역사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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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기가 차고 넘치지만 유적군들을 중심으로 하는 답사기를 찾으려니 의외로 찾기 힘들다.
번역서도 문화사 쪽은 잘 안보이고....
겨우 찾아낸 책이 이 책이었다.

재기발랄함이나 톡쏘는 유머의 맛 이런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대신에 나름대로의 진중함과 성실한 고민들이 잘 우러나오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사 전공자다.
누구나 직업은 속일 수 없듯이 그의 여행은 끊임없이 일본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비교하고 그 차이와 동질성을 고민한다.
그 고민들이 아직 뚜렷한 결실을 맺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새겨들을 만하다.

히메지 성을 보면서 그는 아름다운 공포라고 했다.
나 역시 책으로만 봐도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는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쌓은 왜성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몇년전 왜성답사를 준비하면서 강의를 몇꼭지 들은게 있었는데 그 때 들은 왜성의 구조는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전쟁을 통해 발달한 성곽과 기본적으로 평화가 훨씬 오래 지속된 지역의 성곽은 이렇게도 다른 것이구나.
단순히 성곽의 튼튼함이나 방어의 효율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성곽은 그 자체로 가미가제 특공대나 태평양전쟁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막무가내식 돌격성, 패전을 맞아 할복으로 죽음을 맞는 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히메지는 대표적인 일본 관광사진으로 흔히 쓰일만큼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그러나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하는걸 상상하는 순간 그대로 전율이 된다.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단숨에 정복되거나 정복하는게 불가능한 수많은 피를 뿌려야만 하는구조 그 자체.
그곳에 아름다운 공포라는 이름은 어쩌면 그리도 딱 들어맞을까 싶다.

흔히 일본인들은 작은 것을 잘 만들고 섬세하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런 일본인의 심성은 땅이 좁은데서 나오지 않았겠나라고 쉽게 얘기들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면에서도 역사학자 답다.
땅의 넓고 좁음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집권체제라는게 거의 성립한 적이 없는 일본의 역사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일본중세와 메이지유신 이전의 역사는 지방 봉건영주격인 다이묘가 통치의 중심단위이다.
방어를 위해 최대한 밀착된 도시구조를 만들고 따라서 당연히 공간을 극단적으로 활용해야만 했던 그들의 기나긴 역사에서 일본의 주요 심성의 근원을 찾아보고자 한다.
땅이 좁아서라는 막연한 대답보다는 훨씬 공감이 가는 고민이다.

이 책의 장점이 이런 것들이다.
문화재 자체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는다.
문화재가 형성된 시대의 역사를 살피고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관련되어있는지,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어떤 것들인지 늘 고민하는 저자의 자세는 참 학자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사 전공자는 아니다 보니 개설서를 넘어서는 설명은 힘들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 역시 일본사 전공할려고 가는건 아니니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어렵지 않게 일본의 역사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잘 짚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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