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고 벗는 일조차 혼자서는 불가능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여성들은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상을 자연스레 학습할수밖에 없었으리라.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옷이 우리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부장제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 P21

하지만 남성에게는 ‘남자의 적은 남자‘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마법 거울이 없다는 게 중요하다. 마법 거울은 여자들 사이에만 숨어들어 가부장제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여자끼리 경쟁하라고 부추겨왔다. 그과정에서 여성들은 연대하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재능을 낭비해야 했다. 이제 여성들은벽에 걸린 거울에게 질문하는 걸 그만둬야 할 것이다. ‘여자의적이 여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여자의 적이기 때문이다.
비제 르브링과 라비유 기아르가 몸소 증명하지 않았던가. - P33

호주의 코미디언이자 희귀 유전병 ‘불완전 골형성증‘을않은 장애인 스텔라 영 (Stella Young)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장애인의고군분투가 비장애인들에게 동기부여 휴먼스토리로 소비되는 현상을 ‘감동 포르노‘라고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 일침은 예술가의 그림에도 유효하다. "나의 가난, 내 삶의 비참함, 내몸에 새겨진 고통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그것은 피해자의 대상화이며, 대의를 가장한 관음이며, ‘고통 포르노‘일 뿐이라고 말이다. - P117

이처럼 고갱이나 앵그르 같은 서구 남성들에게 비유럽은 철저히 미개한 곳이었다. 거기에 사는 여성들은 ‘새장 속의새‘ 이거나 유아적이고 원시적인 존재였다. 이런 타자화를 통해유럽 남성들은 자기네 문화의 우월성을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한편으로 그들은 비유럽 문화에 매료됐고 갖고 싶지만 가질 수없는 것에서 느끼는 갈증을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내 투사하기도 했다. 원시를 추구했지만 원시를 열등한 것으로 보고 한편으로는 원시에 매혹되는 서구 남성들의 모습에서, 여성을 혐오하지만 여성 없이 못 살며 여성을 숭배한다고 하면서 착취하는 가부장 남성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 P146

세상은 남편 돈 쓰는 아내에겐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다. 반면 아내의 시간을 가로채는 남편에겐 너무나 관대하다.
아내의 삶과 시간을 많이 착취한 남편일수록 더 성공하게 되기에, 가부장 사회는 아내의 헌신을 더 독려하기도 한다. 가부장제 속 여성의 삶은 ‘뱀과 사다리 게임‘과 같다. 열심히 인생의 사다리를 올라가도 아내가 되는 순간 뱀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갈확률이 높다. 바로 이것이 비혼 여성에게 ‘이기적‘이라고 결코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유다. 어느 누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하겠는가. - P154

붓과 팔레트를 든 젠틸레스키가 캔버스 앞에 서있다.
곧 그녀가 창조한 형상들이 캔버스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여성은 재현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만연했던 시대에 젠틸레스키는 이처럼 자신을 그림 그리는 주체로 표현했다. 그녀는 <자화상>을 통해 세상에 대고 "나는 불쌍한 성폭행 피해자만은 아니다. 나는 화가다!"라고 천명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것입니다" - P188

국감장에서 리얼돌을 직접 가지고 나오고 공적인 자리에서 룸살롱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21세기 한국사회는 19세기 영국, 20세기 중국에서얼마나 나아갔을까. - P231

이러한 사회의 악평과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은 ‘쿠션어‘를 사용한다. 쿠션어란 틀린 내용 하나 없는 얘기를 하는데도 조심스러워하고, 자신의 주장이 단정적으로 들릴까봐 애교와 이모티콘 같은 ‘쿠션‘을이어붙여 문장을 맺는 어법을 말한다. 쿠션어를 쓰면 적어도 드세 보인다‘ ‘싸가지 없다‘는 비난은 받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어법이 오히려 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듣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힘들어 결과적으로 발화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 P239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나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여자가 차렸다! 만일 남자 요리사가 차렸다면 즉각 이름이성경에 남았을 테고, 그는 그리스도교 성인이 되어 길이길이 존경받았을 테니 말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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