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대역(代役)부인과 볼모


메소포타미아 초기 문명에서 왕들은 자신의 딸들을 신전의 여사제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하게 하였고,

수메르의 북쪽 돗 마리에서 나온 왕실문서모음집에 의햐면 엘리트 여성들에게 경제, 정치적 활동을 크게 허용했음을 알 수 있다. - 계약 체결, 법정 소송 제기, 입양, 재산 매각, 임대, 법적 거래 등


이러한 여성의 '대리'역할은(저자는 이것을 대역(代役)부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번역이 참 적당하지는 않은것 같다) 왕권통치의 초기개념의 일부를 이루며, 국가기구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여서의 지위와 역할 또한 제약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남성 가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인의 권력은 왕의 의지와 변덕에 좌우되었고, 전쟁이나 권력투쟁에서 왕이 패했을 경우 전리품이 되었다. 

결국 양성간의 가부장적 관계의 모체는 국가의 제도화 이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발달 이전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4장 여성노예


노예제는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지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남성들은 이러한 경험을 노예제 이전에 바로 자기 집에서 여성들을 종속시키는 것으로 먼저 체험하였다. 따라서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쟁에서 먼저 노예가 된 것은 여성과 아이들이었으며 남성전쟁포로들이 노예가 된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피정복여성에 대한 강간은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속에 구축된 필수적 관행이었으며, 가부장제와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이다. 노예제에서부터 축첩제도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포로 여성들의 포획자의 가구에 통합시켜서 포획자가 그 여성들의 충성스런 서비스와 그 자손들을 확보하는 사회적 도구가 되었다.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이 노예제를 제도화하는데 개념적 모형을 제공한 것처럼, 가부장적 가족은 구조적 모형을 제공하였다. 노예제는 노예를 열등한 사람으로 고착시키고, 언제나 종속시킬 수 있었던 여성 역시 노예와 비슷한 것처럼 열등하게 보였다. 







여성의 역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친족기반에서 계급기반 사회구조로의 변화이다.  - P101

왕의 부인과 딸이 남편과 아버지를 위해 맡는 ‘대리‘ 역할의 발달을 추.
적하다 보면, 또 다른 문화와 장소 -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의 접경지대인 수메르의 북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던 도시 마리 (Mari)에서나온 증거들을 참고할 수 있다. 기원전 1790~174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왕실문서모음집은 엘리트 여성들에게 경제 · 정치적 활동을크게 허용한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재산을 소유·관리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고,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증인으로 참여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입양, 재산매각, 빚을얻거나 주는 등의 사업과 법적 거래에도 참여하였다. - P119

 마리에서 나온 문서들이 남성과여성 예언자의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마리사회에서 엘리트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지위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 P120

여성의 ‘대리‘ 역할이 왕권통치의 초기개념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은 흥미를 끌며, 국가기구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여성의 지위와 역할 또한제약을 받게 되었다는 나의 분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 P120

지배엘리트들의 왕권찬탈자로서의 이해관계로 인해, 그들이 확립한권력의 형태는 이를 관찰한 어떤 사람이 쉽게 ‘세습적 관료주의‘
(patrimonial bureaucracy)라고 불렀던 형태를 갖게 되었다. 그들의권력이 얼마나 안정적일지 여부는 권력의 중요한 하급지위에 가족구성원들을 얼마나 많이 임명하느냐에 달려있었다.이 초기시대에 그런 가족원들은 매우 종종 여성 - 부인, 첩, 딸들이었는데, 이를테면 이들은 남편/아버지/왕을 섬기는 최상위 신하들이 되었다. ‘대역부인‘ (wife-as-deputy)의 역할은 이렇게 출현하였으며, 이 시기 이후 그런 역할을 맡는 여성들이 계속 등장하게 된다. - P128

여성들은 가장 안전하고 고위층 출신이고 자신감에 차 있을지라도스스로 남성의 보호에 의존하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이것이 사회계약의여성세계이다. 자율을 거부당한 여성들이 보호에 의존하고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투쟁하는. - P130

 양성간의 가부장적 관계의 모체는 경제·정치적 발전이 국가를 충분히 제도화하기 전에, 그리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발달하기훨씬 이전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 P130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 P138

스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 P138

수많은 요인들의 집합이 성적 비대칭과 여성과남성에게 불평등한 비중으로 부과되는 노동분업의 원인이다. 그로부터친족관계는, 결혼에서 여성들이 교환되고 여성은 남성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갖지 않지만 남성은 여성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갖는 사회적 관계들을 구축하였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능력은 가족을 위한 서비스를 위해 교환되거나 획득되는 물건이 되었으며, 따라서 집단으로서 여성은 남성보다 자율성을 덜 갖는 집단으로 생각되었다.  - P139

나는 피정복.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 속에 구축된 필수적 관행이며, 가부장제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순수한 상태속에서 이러한 관계를 볼 수 있는 것은 계급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가부장제 체계가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이다. - P143

거의 천년 동안 ‘노예제‘에 대한 관념은 ‘여성‘이라는 바로 그 정의(definition)에 반영되는 양식으로 현실화되었고 제도화되었다. 이전 시기의 결혼교환에서 자신들의 성적 · 재생산 서비스가 사물화된 여성은공적 사적 영역과의 관계가 남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되면서 그 시대의 막바지를 맞이하였다. 남성은 그 계급위치가 강화되고 재산 및 생산수단과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었다면, 여성의 계급위치는 성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 P166

 집단으로서의 남성에 대한 집단으로서의 여성의 종속은 각 친족집단 내에서 복종, 즉 연장자에 대한 연소자의 복종을 배경으로 해서 일어났다. 순환적이며, 따라서 공평한 개인이 각각 복종과 지배에서 자기차례를 도는―이 형태의 복종은 집단적 복종을 위해 수용 가능한 모형으로 만들어진다. 자기들에게 강요된 새로운 종류의 복종이 동일한 순서가 아니라는 것을 여성들이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공고하게 확립되었음에 틀림없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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