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선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아무리 걸어도 도통 지치지 않는다.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코는 그 도시 고유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각 도시 특유의 습기와 공기는 피부에 와닿는 감촉으로 내게 말을 건다. 보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상의 자극이 필요할 때는 그 도시의 예술이 가장 좋은 친구가 돼준다. 어느 도시는 그 도시만의 예술을 품고 있고, 예술은 도시를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해준다. 예술을 품은 도시의 매력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며, 여행하며 읽는 책은 그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끌어준다. - P5
여행과 예술탐닉은 서로의 동반자이다.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이 말했듯이사람들이 현실감각을 얻으면 꿈을 잃는다. 여행은 현실감각으로비추어보면 미친 짓이다. 현실감각에 의존한다면, 여행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실감각을 얻은 대가로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이상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보지 않으며, 오로지 일을 만들어내기만 한다. 유능해지기 위해서는 굶주리거나 꿈을 꾸어선 안 되고, 스테이크를 먹고 움직여야 한다. 4 여행의 이미지를 이처럼 선명하게 잘 보여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는 것", 나는 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발가락 사이로 보았던 하늘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여행에서 인류의 보편언어인 예술을 만났고, 그 보편언어를 내가태어나고 자란 한국어라는 모국어로 옮겨놓는 번역자이다. - P31
감을 도구를 사용해 다듬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 그 행동을 우리가 노동이라 부른다면 네안데르탈인도 호모 사피엔스도 노동했다. 그들은 모두 노동하는 인간 즉 호모 파베르다. 그런데 여기 지금 우리가 있는 쇼베는 호모 파베르의 작업 현장이 아니다. 쇼베는 먹을것을 저장하는 저장고가 아니다. 주술적 목적이든장식적 목적이든 상관없이, 쇼베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생존이라는 틀을 벗어난 행동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는 "생존에 목적을 둔 세계에 대한 항의 여부에 달려 있다. 쇼베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무엇을 통해 구별되는지를증명하는 행위가 탄생한 공간이다. 쇼베의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의 예술 인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르지 않다. - P73
예술을 통해 지금 현재의 한계에서 벗어나기를 상상하고, 경제적 유용성이라는 좁은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인류의 보편언어로 의사소통하면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여행을 시작하는 첫 장소는 당연 쇼베여야 한다. 쇼베에서 우리는 인류 보편언어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운다. 쇼베에서 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인간‘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만났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섬이 아니다.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와 기원전 3만 7천년의 호모 사피엔스는 ‘예술-인간‘ 이라는 공통점으로 이곳 쇼베에서 인사를 나눈다. - P74
모든 아름다운 것은 쇠락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영원성이 아니라 쇠락에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무한한 존재가 아니기에 세상을 창조할 수 없다. 대신 인간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술은 신의 몫이 아니라 인간의 몫인 것이다. - P116
피렌체의 ‘논-피니토‘는 돈으로 후원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돈을 필요로 하는 현실 속 예술가의 입장으로 예술을 보아달라는 메시지다. 그런데피렌체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으로 후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피렌체를 해석한다. - P175
그는 지금 껍질을 깨려 한다. 잘츠부르크를 벗어나는 것은 신하 예술가의 지위를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빈에서 그는 신하 예술가 이외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예술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문득 느꼈을 때 보통 사람보다 기민하게 반응한다. 빈에서 모차르트는 궁정 밖의 사람들, 즉 관객을 발견했다. - P203
황제는 미래를 보지않았다. 황제에게 미래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불편한 것일뿐이었다. 한 사람이 68년 동안 황제였다. 68년의 시간은 그의 감각과 동시대인의 감각 사이의 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충분히 넉넉한 과거를 만끽했고 현재에서도 어떤 부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굳이 미래에 기대를 걸 필요가 없다. 도무지 링슈트라에서는 미래가 느껴지지 않는다. 고딕 스타일로 설계된 시청사, 고대 그리스 스타일을 모방하여 온갖 조각상으로 치장된 제국의 사당은 건축양식으로만 보자면 고전적인 건물처럼 보인다. - P226
랑슈트라세와 빈 대학 그리고 빈의 세련된 모든 외양은 황제의 확장이다. 그 황제는 하수도가 없다고 시침떼고 있다. 프로이트는 프란츠 요제프1세에게서, 그리고 확장된 황제의 링슈트라세에서 거시적 아버지‘를 느낀다. 그는 그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하는 오이디푸스의 충동을 물려받는다. 모차르트가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대담한 행위를 프로이트는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츠바이크는 가장 함축적으로, 하지만 가장 정교하게 프로이트적 충동을 이런 문장으로 표현했다. "모른 체하지 말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돌아가지 말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눈 돌리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외투를입히지 말고 벗기라는 것이다. 27 그 요구에 제일 먼저 답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 P233
탐미는 탐욕보다는 교양적 행동으로 보이나, 모든 탐미가 탐욕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탐욕은 때로 생존을 위한 인간 본성이라고 정당화될 수도 있지만, 이유없는 탐미는 탐욕보다 때로는 더 위선적이고 속물적이다. 크라우스는 그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술이 신분을 표시하는 도구로 전락한 빈의 탐미주의에서 위선을 느낀 것이다. 침을 뱉고 돌아서거나 위선적인 세계와 담을 쌓고 살 수도 있었지만 크라우스는 예술가이자 작가로서 이 도시의 감추어진 위선을 문장으로 폭로한다. 그의 무기는 논쟁과 풍자다. 예술이 과잉 인정되거나 과대 포장될 경우 예술은 본연의 해방적 힘에서 멀어진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탐미적 광풍이빈을 휩쓸 때 예술가의 목표는 형식적 완성이 된다. - P243
장인도 신하도 아닌 자율적인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모차르트의 꿈은 이렇게 한참 후 빈에서 다른 예술가에 의해 이뤄졌다. 아버지로부터 분리되고 싶었던 그의 열정, 자율적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충동, 그의 이른 죽음으로 완성하지 못했던 그 기획을쇤베르크가 완성했다. 비록 빈은 여전히 그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차르트가 부활한다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완수했다고 쇤베르크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모차르트를 발견하기 위해 빈에 왔지만, 빈을 떠날 때는 쇤베르크와 함께 떠난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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