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학교의 경쟁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크세노크라테스는 25년 동안 아카데미아의 수장으로서 플라톤 철학의 기본 방향을 거스르지 않으며 충직한 유산 관리인 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는 곧 비판 정신이 생명인 철학적 창조력의 고갈을 뜻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뤼케이온에서 철학 연구의 새로운길을 열었다. 그의 관심은 이성의 눈으로 파악하는 수학 법칙의 세계가 아니라 감각을 통해 확인하는 운동과 변화의 세계였다.
. - P185

사람은 ‘필요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삶을 얻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구한 이론학은 이런 인간 본성의 표현이다. 특히 그의 이론학에서는 자연physis 에 대한연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자연 세계 전체 · 생명 ·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고, 천문학 · 기상학 · 물리학 ·화학·생물학· 심리학 등을 학문으로 정립했으며, 이 모든 학문을 위한 수단으로서 논리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의 연구에서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은 아카데미아에서 중시한 기하학이나 수학뿐이다. 그에게 자연에 대한 얇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 인식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학문이었다.
- P191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중에도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많다. 특히 윤리학 · 가정학 · 정치학 분야 저술이 그런데, 그는 이를 한데 묶어 "인간적인 것에 대한 철학"(니코마코스 윤리학』 X 9)이라고 불렀다. 이 철학의 질문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잘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인간을 잘 살게 하는 정치는 어떤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런 실천철학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것이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과제였다.
- P224

인간은 지성의 능력 덕분에 자연의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섰지만,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추락의 위험성을 항상 안고 산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정치와 윤리는 인간의 삶에서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아쉬울 것 없는 사치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최악의 상태로 추락하지 않고 지성적 존재로서 잘 사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정치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해 각각 개인과 국가 공동체의 수준에서 어떻게인간이 잘 살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 P235

가치의 기준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주관적 즐거움을 행복의수단으로 내세우는 행복론은 사회적 불행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위험한 이론이 될 수 있다.
- P238

이 즐거움은 자기기만이나 자기 파괴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 능력을 올바르게 실현하는 데서 오는 자기실현의 즐거움이다. 결국 습성의 탁월성이란 우리가 ‘인간으로서 타고난 능력을잘 실현해서 잘 살게 하는 내면의 에토스고, 이 에토스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얻어진 행동의 습관적 성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은 것은 욕망이 내 주인이 되는 것이아니라 내가 욕망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 P248

나는 돌산을 지나면서 ‘레스보스의 납 자‘가 공정함의 은유일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철학과 실천적 지혜의 모든 것을담은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실천적 지혜는 레스보스의 납 자처럼유연하다. 그것은 탁월성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개별적 상황에서 적용하는 지혜다. 곧은 잣대를 놓지 않으면서 울퉁불퉁한 현실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실천적 지혜가 있는 자‘의 삶이다.
- P252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정치학과 윤리학은 하나의 연장선위에 있다. 윤리학이 개인적 수준의 행복을 다룬다면, 정치학은 국가 수준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사람도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한 개인의 행목은 이 공동체를 띠나시 실현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이런 근본 전세히에 국기의 기원이니 구조, 다양한 정체와 동치술, 시민 교육 같은 문제를 다룬다. 물론 그 가운데 핵심은 정체에 관한 논의다.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국가의 질료 라면,
그것들을 결합시켜 통일체를 만드는 정체는 국가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건축자재들이 일정한 형상에 따라 조직되어 집이 만들어지듯,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도 정체에 따라 국가를 이룬다. 그럼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 내는 정체는 어떤 것일까?
- P259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체론에도 플라톤의 영향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의 정치학 연구는 과거에 존재했고 당대에 존재하는 수많은정체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스승의 연구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의 논리가아니라 경험적 관찰과 이에 바탕을 둔 이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연구는 그가 생명체를 연구할 때와 똑같은 태도와 방법을 취한다. 그는 생물학에서 개별 종을 관찰해서 그것들의 신체적,
기능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동물을 다양한 단위로 분류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개별 정체를 관찰하고 그것의 특징을 분석했으며 유형을 분류했다. 플라톤이 처음 착안한 여섯 가지 정체분류는 이렇게 해서 더 확고한 기반을 얻는다.
- P260

목표를 올바로 세우라! 하지만 현실적 조건을 무시하지 말고 그 안에서 목표를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숙고하고 이를 실천하라! 동물이 아닌 인간에게는숙고와 선택을 통해 주어진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이것이 도시국가의 황혼기를 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담아낸 미네르바의 지혜고, "인간적인 것에 관한 철학"의 핵심이며,
그로부터 2400년 뒤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사람다운 삶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 P277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눈을 연다는뜻이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배운다는 의미다. 수많은 이론들에 현혹되는 우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관찰하고 또 관찰하라!‘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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