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를 만드는 과정은 이탈리아가 영광스러운 자신의 과거와어떻게 조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소상이 남긴 유산을있는 그대로 내놓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이 남겨준 유산의 정수를예리하게 잡아내 이를 절차탁마해서 새롭게 만들었다. - P143

볼로냐에는 권력자의 시선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인 커피와 대학이모두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비판적이 된다. 그런데 커피를마시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볼로냐는 로마나 나폴리, 교황령의 지배 아래에서 만족하며지내왔던 옆 동네 로마냐와 달리 생태적으로 기존의 질서에반대하는 반골의 기질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라틴어로 자유를뜻하는 ‘리베르다 Alibertas‘를 부르짖어온 것이 볼로냐의 역사였다.
가까운 로마냐에서 세계 최초의 파시즘 국가를 선보인 독재자베니토 무솔리니 Benita Mussolini, 1493~1945가 나온 것과는 매우대조적이다.
- P214

또 볼로냐의 회랑은 볼로냐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볼로냐대학이 시의 승인을 얻고 강의실과 교수에게 급여를 제공받기시작한 것은 13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그전까지 볼로냐 대학은별도의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회랑이 강의실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회랑에는 카페와 음식점의 야외 테이블이 놓여서, 사람들이모여앉아 볼로냐의 맛있는 음식과 자유로운 공기를 즐겼을 것이다.
아이들도 이 회랑에서 뛰어놀았다. ‘볼로냐에서는 아이를잃어버리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는 까닭이다. 볼로냐의 회랑은최고 학부의 강의실이었으며, 볼로냐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상인들의터전이었다.
- P248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말이있다. 역사나 신화에서 이기심으로 인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성이야기는 참 많다. 그러나 결국 그런 성은 신의 노여움을 사거나자신보다 탐욕스러운 이웃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볼로냐는이방인을 위해 성문을 열고 길과 회랑을 만들어 도시를 연결하고, 그회랑을 높은 산으로 이어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빛의 교회를세웠다.
- P253

법학 외에도 볼로냐 대학을 ‘모든 대학의 모교‘로 만든 학문은의학이었다. 볼로냐에 오면 꼭 봐야 하는 기념비적인 건물이 있다.
볼로냐 시립 도서관 아르키진나시오 Archiginnasio 이다.  - P276

이렇듯 볼로냐를 뒷받침해준 것은 휴머니즘(인문주의)였다.
그리스에서 만들어 로마로 이어져 내려온 인간 중심의 사고는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다시 시작된곳은 볼로냐있다. 기기다 볼로냐의 인문주의는 새롭기까지 했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에는 없었던 여성 존중과 노예 해방을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볼로냐는 여성에게 인간이 가진 권리를인정해주었을 뿐 아니라 1257년 세계 최초로 노예 해방 법안을만들어 이를 실현한 곳이기도 하다. 어성과 흑인에 대한 사회적인정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신대륙으로 건너간미국인들도 20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던문제였다. 그런데 볼로냐는 이를 13세기에 이미 시작했던 것이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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