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니체가 그리는 마지막 인간은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마지막 인간이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고말하면서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현대인은 행복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창 미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꿈을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거의예외 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의 낱말로 귀결된다. 행복, 행복하게 사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차라투스트라는 마지막 인간의 삶이라고 조롱한 것일까?
- P193

이런 철학은 연구실에 앉아 책 속으로 파고든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니체의 실존적 실험 철학은 오직 자신과의 대화로서만가능하다. 니체는 당시의 철학과 관계를 끊는다.
진리에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서양 철학은 근본적으로삶에 적대적인 도덕 철학이었다. 이성은 우리의 이면인 감정과 본능을 죽이고, 도덕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봉쇄한다.
- P211

니체는 이 등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우리의 내면은 이성과 욕망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지의 상호 투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가 이미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 역시 또 다른 의지일지도 모른다. 진리에의 의지도 결국 권력에의 의지다. 우리 내면을권력에의 의지가 활동하는 공간으로 보면 우리는 삶을 훨씬 더 역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P248

도덕적 평가 자체를 재평가하려면, 우리는 도덕의 계보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의 기원은 본래 ‘거리두기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다. 고귀하고 강하고,
높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저급한 사람, 비속한 사람, 천민적인 사람에게 갖는 우월의 감정이 바로 도덕의 기원이다. 왜냐하면 거리두기의 파토스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가치의 이름을 정하는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P267

무엇인가를 금욕한다는 것은 목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금욕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로 고통스러워 한다. 우리는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 우리가 고통의 의미나 목적을 알수만 있다면, 우리는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으려 들지도 모른다. 지상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병든 몸을 이끌고 숲과 도시를 방랑한 니체는 어쩌면현대의 고행자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금욕주의는 바로 우리의 삶이다.  - P274

니체가 심리학적으로 해부한 진리에의 의지는 기만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나 자신까지도 기만하고 싶지 않다는 정신을 기독교적믿음에 철저하게 적용하면, 아무런 전제가 없는 신앙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는 진리가 삶에 유용하다고 전제한다.
니체는 여기서 강력한 의심을 표명한다. "삶이 가상 위에 서 있는것으로 보인다면, 다시 말해 삶이 오류, 기만, 위장, 현혹, 자기기만에 기초하고 있다면"(『즐거운 학문), 우리가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 신은 일상적 삶을 허위의 세계로 폄하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참된 세계로 평가하지만, 기독교가하나의 허구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신과 진리의 관계를 재평가해야 한다.
- P295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교의 진짜 역사에 대해 말해보겠다. ‘그리스도교‘라는 말 자체가 벌써 오해이며, 근본적으로는 오직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었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복음‘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다. (…) 신앙‘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에서 그리스도교인의 표지를 찾는 일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교적 실천만이, 즉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가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만이 그리스도교적이다.
『안티 크리스트,
- P300

이성의 지배, 인간의 해방, 역사의 발전과 같은 거대 서사에 대한믿음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실험적으로 시도되는 시대, 우리는 이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 진리에의 의지를 하나의 우화로 폭로하고, 근대 철학의 확고부동한 토대로 여겨온 ‘나는 생각한다‘는근본 명제마저 회의하고, 인간의 본성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는 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니체가 온갖 포스트모더니즘을 빚어내는회전반이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니체를 전환점으로 하여서양 철학은 ‘탈현대로 진입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서양 형이상학의 근원을 회상함으로써 모더니즘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적 태도이며 사상적 운동이다. 서양 허무주의가 문화의 디오니소스적 근원으로부터 소외되어 지나치게 이성을 강조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했다고 최초로 인식한 철학자는 니체다.
- P335

주체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주체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것은 수많은 힘들의 권력 유희다. 그렇다면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본래의 자기가 되는가?" 니체를 광기에 이를 정도의 극단적인 사유로 몰아넣고, 우리를 니체의 마법에 걸리게 만든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이 지속되는 한 니체의 영향은 영원할 것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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