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서 조선 사람은 항상 외교관의 마음가짐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몸을 돌려 이 소요에 느닷없이 끼어든 조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말쑥한 프록코트 차림에 잘 다듬은 카이저수염의 신사. 상해의 교민들에게 "인력거꾼과 품삯을 다투지 말고, 노상에서 취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대사 혹은 공사"와 같은 처신을 당부했다던 청년 독립운동가 여운형 (32) 씨였다. - P28

국내와 북미,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운동가들을 연결하는 중계지점인 이곳에는 미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발행하는 <신한민보>를 비롯해전 세계 한인의 ‘불온 인쇄물들이 배달되어 온다. 국제 정세에 민감한 젊은 운동가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경술년(1910)부터 올해까지 상해로 이주해온 독립운동가는 박은식 (59) 씨 정도를 빼면 열에 아홉이20~30대의 청년층이다. 새로운 세대가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달까.
- P29

기독교청년회(YMCA) 총무 윤치호(54) 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천 명의 조문객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몸을가누지 못하고 엎드린 채 통곡하는 놀라운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고전했다. 윤 씨는 "광무황제의 통치가 어리석음과 실수로 점철된 오랜통치였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광무황제의 승하가 조선의 자결권이 끝내 소멸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토록 울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 P115

일본 유학생들이 8일 동경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는 우리 민족이국권을 빼앗긴 이후 최초로 발표된 독립선언이라는 차원에서 ‘2·8독립선언‘이라 부를 만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대낮에 공개적으로 거사가 이뤄졌다는 것으로도 통쾌한 일이었다. 선언서에서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일제와 ‘영원한 혈전‘을벌인다고 다짐하는 등 청년들의 결연한 투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민중에게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독립될 새로운 국가는 민주주의를 지향할 것이라고 밝혀 왕정복고에 분명히 선을 그은 점에서 과거와 결별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청년들의 정신을 대변한다.
- P146

민중의 고통을 자기 일로 여기며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학생들도있지만, 여전히 공무원이나 교사·변호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어찌 보면 ‘충성스러운 신민‘ 말고는다른 길이 허용되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 P194

기독교 측에서는 독립선언보다 좀 더 온건한 독립청원 방식의 운동을 전개하자고 맞섰다. 이에 최린은 "독립운동이 민족자결주의라는 외부적 정세의 영향하에서 제기된 것인 만큼 민족자결의 의사를명확히 표시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에 청원하는 것은 단지 당사자에대해 의견을 진술하는 것이니 민족자결의 의사를 충분히 표시할 수없다"고 설득하였다....
연대의 물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승훈이 이날 기독교 민족대표들이 체포될 경우를 대비해 가족 생계자금으로 5000원(현재 가치 약 4억원)을 요구했는데 최린의 보고를 받은 손병희가 곧바로 자금을 제공했다. - P202

그는 보성사 사장 이종일 (61)의 지시로 선언서 2000부를 배부받아 전주로 향하는길이다. 자신이 붙잡히면 만사가 허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열차를기다리며 인종익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자꾸만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번에 좌절하면 또 이 뒤를 이어 (다른 인물이) 나올 것이고,
100인을 죽이면 100인이 나올 것이다. 인심은 물이다. 한강이다. 아무리 막더라도 물은 물로서 새어 나와 흐를 것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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