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열여덟살 때, 나는 일촉즉발인사회에서 자랐고 이곳에서는 신체 폭력이 없는 한, 명백한언어적 모욕이 가해지지 않는 한, 눈앞에서 조롱당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기본 원칙이었으니, 그러니 일어나지 않은 일에 피해를 당했다고 할 수도없었다. 열여덟살 때 나는 개인공간 침해라는 게 뭔지 몰랐다. 불편한 느낌은 있었다. 직감이나 어떤 상황 또는 사람에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직감과 반감이 중요하다는 것은 몰랐고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을 꺼리거나 거부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 P17
이때 이곳에서 폭탄과 총과 죽음과 부상을 포함한 정치적 문제가 불거지면 사람들은 보통 "저쪽 편이 했어" 또는 "우리 편이 했어" 또는 "저쪽 종교가 했어" 또는 "우리 종교가 했어" 또는 "저들이 했어" 또는 "우리가 했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국가 수호자들이 했어‘ 또는 ‘국가 반대자들이 했어‘라는 의미다. - P40
......친구들은 이웃의 말이 말도 안된다고 콧방귀를 뀌는 대신 열을 내며 반박했는데, 그때가 피해망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칼날 위에 선 시대, 원시적인 시대,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시대였다. 여기에서는 누군가와 기분좋게 잡담을 나누고 나서 마음 편하게 즐거운 대화 나눴다. 생각하면서 돌아가다가도 머릿속에서 대화를 다시 돌려보다보면 "이것‘이나 저것‘을 말한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나 ‘저것‘ 이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 P48
여기에서는 놀이에 빠지거나틈을 보였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엄청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을 읽으려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심을 말하지 않는 한편 누가 자기 생각을 읽으려 하면 그 사람에게 가장 위쪽 마음 상태만 드러내고 진짜생각이 무엇인지는 의식의 수풀 안에 감춘다. - P61
화요일에 같이 가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 화요일, 내가 셋째 형부와 같이 저수지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고 난뒤에 해 지는 걸 보러 가기로 했다. 물론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는 않을 거였는데 해넘이가 사람들에게 말해도되는 주제인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보통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안했다. 아무 말도 안하는 게 내가 나를지키는 방식이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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