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교육받을 기회가 적어 전문 지식을 쌓기 힘들 것이고, 그럼 당연히 실업할 위험성도 높다.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실업자의 곤란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실업이 개인의 책임만은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들이더 실업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탓하며,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실업자들이 자신은 다른 실업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상황 탓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남들은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자신과 남들을 구분한다.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집단을 꾸릴 여지가 없어질 것이므로 실업자조직을 만들어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도 자동적으로 사라지고 만다. - P111
공정한 세상 가설 - 세상은 공정하고 정의롭고 안전하기에 나만 제대로 행동하면 공정한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자신도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무섭고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부당한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야 자신은 계속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다음과 같이 여기고 믿는다. 세상에는 정의로운 규칙이 있다. 나쁜 일은 불운의 탓이 아니라 그 개인의 잘못된 행동 탓이다. 세상만사가 뿌린 대로 거두는법이다. - P151
이런 장점들이 있음에도 이 가설은 여러 가지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으면 굳이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다. 사회심리학자 지크 루빈 (Zick Rubin)과 레티티아앤 페플로 (Letitia Anne Peplau)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했다. 57 그 결과에 따르면 세상의 공정함을 믿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는 집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또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사회적 약자의 고단한 상황을 개선해주고 싶은욕망이 적었다. 이들은 자기 불행은 자기 탓이라고 믿음으로써 자신의 세계관을 지키려 애썼다.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 자업자득이라는 믿음은 약자에 대한 공감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 P152
이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기대가 돈과 시간을 요하는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식에게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도덕적 정언 명령 역시 시민 가치의 상징적 표식이다. 그렇게 되면 일하느라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엄마들을 향해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능력은 한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 도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물론 의식 있는 식습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 계급의 우월함을 표현하고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사용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 P181
녹색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한 사람들은 두 가지 목적을 이룬다. 지구를 구하겠다는 개인의 목적과 기업의 매출과 성장, 이 두가지 목적에 기여한다. 공정 제작 스마트폰이나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한 배낭을 구매하는 것은 소비재를 더 집중 소비하면서도 양심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제품 제작의 환경 영향만을 고려할 뿐, 진정한 환경 보호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소비를, 제품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일 테고 나아가 더 지속 가능한 세상을만드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시장 친화적이지 않고기업에 유익하지 않으며 소비 지향적 상류층의 자기 과시에도 별도움이 안 된다. - P184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의 비전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도 함께 가야하지 않을까? ‘무지한 인간들‘을 배제하는 독선적 경계 짓기야말로 1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신중한 식습관은 교육 및 수입과 매우 긴밀한 관련이 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방어의 안전지대에서 걸어나오라고 애걸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자신의 안전지대에서걸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쪽이 더 의미가 있을것이다. 정직한 공동체는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물질적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도덕적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각을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 - P189
요즘엔 세계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등지는 사람들이점점 늘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는 나쁜 인간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다채롭고 열린 민주주의의 기틀은 의견의 자유다. 그 말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도 인권 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항상 관용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용이라고 해서 다른 입장에 동조하라는 것이 아니다. 거슬리더라도 ‘남의 생존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 P226
우파 포퓰리스트들과 많은 에너지 기업들이 그렇게 강력하게 기후 변화를 반박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행동방식과 기존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막대한 부과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진실 공격의 새로운형태와 마주하게 되었다. 진실과 거짓을 정하는 것은 독립된 사실과 의견의 다양성, 이성이 아니다. 정치권력이 진실과 거짓을 가른다. - P234
분명한 것은, 이해를 하려면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상대의 입장과 논리보다 상대의 정치적 신념이 더 중요하다면, 공감이 자기 집단의 구성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상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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