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파도>라는 책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었다. 나치가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할 때 왜 독일국민들은 가만히 있었을뿐만 아니라 동조하기까지 했는가? 그 많은 사람이 그렇게 비인간적인 행태에 동조하는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것에 대한 실험에 대한 글이었는데 실험 자체는 너무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와 비판받았지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집단에의 소속감을 강화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비이성적 광기로 쉽게 전화해가는가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글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모든 집단이 또는 집단적 행동이 비이성적 광기로 전화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멀리 갈것도없이 우리나라의 촛불시위라는 지극히 이성적이었던 혁명은 어떻게 설명할것인가말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름보다 먼저 들었던 것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해진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였다. 사실 이 단어와 설명을 들었을 때는 감동적일 정도였다. 항상 왜 그 많은 독일인들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극악한 범죄에 동조하고 일익을 담당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해석의 단초를 제기해주는 이 단어는 악의 신화화에 대해서 반대한다. 악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이 악마적 인간에 의해서만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능력을 결여˝한 보통의 인간들이 구조속에서 나는 그저 내 임무를 다했을 뿐이다라는 그 말이 바로 악을 실현하게 한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대로라면 ˝확장된 심성˝의 결여, 내 식대로 말한다면 나의 행동에 대한 반성적 사고 또는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의 결여가 결국 거대하누악의 일부분으로 나를 언제라도 밀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만으로 그토록 거대한 범죄를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답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생각들을 보다 보면 한국의 현재가 아주 소름끼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제법 많다. 그 때는 대부분 돈과 관련될 때이다. 최근의 예로는 부산항에서 러시아 선원들의 코로나 확진이 발생했을 때 왜 그걸 우리나라에서 공짜로 치료해주느냐하는 엄청나게 많은 댓글들, 다른 나라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대한 항의들,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들.... 나 개인의 돈도 아니고 국가 세금으로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도 마치 내 돈인듯 분개하는 사람들의 악의에 찬 말들은 우리가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있나를 되묻게 한다. 독일인들도 그랬다. 세계 대공황 이루 무너진 독일 경제를 히틀러가 강한 독일의 건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연설했을 때 바로 거기에 열광했다. 당시 독일인의 고통이 독일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독일인 내부에 숨어 있는 유대인같은 반독일 세력때문이라고 했을 때 열광하며 히틀러에게 기꺼이 표를 던지고 기꺼이 학살의 대열에 동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수록 커져가는 부에 대한 열망과 확장된 심성의 결여 그리고 개인의 죄를 가려주는 집단주의 이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만날 때 너도 나도 모두가 악의 대열에 발을 담그게 되리라는 섬뜩한 경고가 한나 아렌트에 대한 이 글을 읽는 내내 떠 올랐다.

또한 앞으로 우리의 국가단위에서의 심성과 도덕성을 결정짓는 바로미터는 어쩌면 난민에 대한 대처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도 됐다. 선구적이게도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전체가 난민이 되던 그 순간에 앞으로 난민 문제가 세계의 핵심 문제가 되리라는 것, 이것이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리라는 것을 예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자신의 권리가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할 권리조차도 아예 없는 새로운 완벽한 무권리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리라는 것을 누가 예상했으랴. 하지만 난민문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추방하던 그 태도와 무엇이 다를까?

읽는 동안 계속 착잡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글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런 고민을 던져주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라면 한나 아렌트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고 그러므로 아직도 우리는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젠 어려운 책은 읽기 싫어서 이렇게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요약해서 전해주는 책만 읽는 나의 정신적 게으름을 한탄하는 것도 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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