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 작가 커트 보니거트
제 5도살장을 읽은 이후 하나씩 하나씩 이 작가의 책을 찾아 읽고 있다. 2007년에 타계했으니 더 이상 새로운 신작이 나오길 기다릴수도 없고 그냥 하나씩 아껴가며 책을 사 모으고 읽고 있는 중이다.

˝언중유골˝ -말속에 뼈가 있다는 말로 평범해 보이는 말에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고 흔히 쓰이는데 이 말의 형식을 살짝 빌려 커트 보네것의 작품은 ˝언중유머, 유머유골˝이라며 말도 안되는 조어를 만들어본다.

이 책의 서문에서 커트 보네것은

<만일 내가 독일에서태어났다면 나 역시 나치당원이 되어 유대인과 집시와 폴란드인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눈더미 밖으로 장화만 삐죽 나온 시체들을 내버려두고 나 자신은 따뜻한방에서 고결한 배를 두드렸을 것이다. 세상은 그런 거니까. -12페이지>라고 하며 그의 시니컬한 독설을 시작한다.

아주 평범한 문장속에 유머를 담고, 유머속에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인간의 적나라함을 블랙코미디처럼 보여주는 커트 보니것.이제 미국인이면서 독일에서 자랐고, 스스로 나치의 방송선전대원이 되었으면서 우연히 미국의 첩자가 될 기회를 얻었던 남자 하워드 W.캠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워드 캠벨을 통해 보여지는 나치당원들은

˝그들도 그냥 사람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비로소 그들이 참으로 벌레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그들이 정말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65쪽)라고 말해지고 있다.

어떤 한 인간의 공적인 얼굴과 사적인 얼굴이 완벽하게 다를 때 인간은 더 잔인해질 수 있다. 공적이다라는 것이 그의 악행을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죄의식 자체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므로... 그리고 그들은 좋은 아버지 어머니 친절한 이웃 교양있는 지식인의 세계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국가의 이름으로 애국이라는 구호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정당화되는지.... 그 아래에서 인간은 마음껏 잔인해진다.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을뿐이다라는 수많은 전쟁범죄자들이 이렇게 태어난다.

주인공 하워드 W.켐벨2세의 삶 역시 아이러니다. 이쯤에서 진짜 궁금해진다. 그는 나치의 선전선동 최전선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나치당원으로서의 삶이 본질이었을까? 아니면 나치당원이라는 껍데기로 위장한 미국의 첩보원으로서의 정체성이 본모습이었을까?
또 하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상관없이 그의 행동들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그를 어느 자리에 두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일까? 의문을 여러면에서 던질 수 있지만 사실 답은 너무 간단하다. 그 모든 면이 캠벨이라는 것. 서문에서 커트 보네것은 죽으면 그만이라고 얘기한다. 살아서 사랑하자고... 캠벨은 결국 자신이 사랑하며 살아남기에 가장 쉽고 가능성이 많은 길을 선택했을 뿐이고 거기에 도덕적 판단은 별 의미가 없다. 고뇌는 죽음과 고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리 그저 순응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상황이 그가 어떤 생각을 했든 무엇을 했든 결국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건 나치 선전당원으로서의 그의 모습이다. 왜냐고? 너무 열심히 했고 너무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그 자신은 미국의 스파이임이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자신을 위장했다고 얘기하지만 그가 스파이로서 한 행동보다 나치 선전대원으로서 한 행동이 더 많은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면? 어떤 인간을 하나의 편으로 균일한 존재라고 보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캠벨의 삶이 웅변한다. 그에게 이중스파이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철저한 나치당원으로 살지 않을수도 있었을까?
이곳에 나오는 인간들은 누구도 심각하게 존재론적 고민을 하지 않는듯 보이지만 그들의 선택은 자신과 주변의 삶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했던 하워드 캠벨 씨 같은 사람의 아내를 위해 죽는다면, 나에겐 영광이오.˝
그는 이렇게 말한 뒤 그 자리에 퓩 쓰러졌다.
우리는 그를 살려내려고 애썼지만, 그는 추하게 입을 벌린 채 완전히 숨을 놓았다.˝ -124쪽

한 나치주의자는 스스로 너무도 명예롭게 고귀하게 죽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죽음은 하찮고 어이없고 추할뿐이다.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블랙코미디의 한장면일 뿐인게 그가 죽음에 이른 이유는 너무 늙은 몸을 이끌고 계단을 두번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계단을 한번만 올라갔으면 안죽었을것을.....그의 죽음이 그렇듯 그의 삶도 아마도 별볼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 나라가 올바른 길로 들어서려면 먼저 몇몇 놈들의 목이 떨어져야 하오라는 무시무시한 전체주의적 발언의 뒤에는 그 자신은 절대로 목이 떨어져야 하는 대상이 될리 없다는 오만이 있고, 타인의 희생에 대해서는 무감한 이기심이 있는 것이다.

흔히 극우보수세력만이 이런 전체주의적 발상을 한다고 생각하는듯한데 내가 보기에는 그도 사실은 아니다. 자칭 진보를 자처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게 보일때마다 상대를 물어뜯기를 주저하지 않는 각종 ~빠들의 모습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극우나 극좌가 통한다는 말은 타인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통한다고 생각한다. (아 나는 왜 커트 보네것처럼 얘기하지 못하고 이렇게 설교나 늘어놓고 있는것일까?)

나에게는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커트 보네것의 글을 더 읽을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럼 죽기전에 한번쯤은 커트 보네것처럼 ˝언중유머 유머유골˝같은 시니컬하면서도 멋지고 의미심장한 한마디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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