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 러브'라는 기계가 있다. 콩을 넣어 두부나 두유를 만드는 기계다. 오래 전에 사둔 것인데 깜빡 잊었다가 어제부터 다시 사용하고 있다.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순수한 두유를 먹고 싶어서다. 20분 만에 물을 데우고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어 내는 '소이 러브'를 정말 '러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뭐. '소이 러브'가 두유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화난 사람이 시끄럽게 구는 것 같아 도무지 '러브'할 수 없지만.  

  어쨌든 불린 콩을 윙이이잉- 갈고 나면 콩비지와 두유가 나온다. 콩비지는 나중에 달걀을 섞어 부쳐 먹으려고 사기 그릇에 따로 담아 두었다. 어쨌든 완성된 두유,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한 두유는 정말 담백하다. 나는 유리그릇에 가득 담아 놓고 뜨거운 두유가 식기를 기다리며 즐거워했다. 내일부터는 왠지 더욱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로 즐거웠다.

  이런 아름다운 두유를 모두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에, 당장 식구들에게 두유를 먹이려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분주한 오빠가 먹지 않는다고 성화를 냈기 때문이다.(화까지 내다니..) 집 안에 그런 오빠 말고 사람이 없어서, 고래고래 안 먹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오빠에게 기어코 두유를 한 컵 줬다. 어쨌든 그렇게 한 컵을 떠넘기고 조금 있으니 엄마가 돌아와서 엄마에게도 한 컵 드렸다. 엄마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셨다. 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잠시 두유 곁에서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 엄마가 두유에 설탕을 엄청 집어넣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엄청난 양의 설탕이 두유 속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해버렸다. 난 정말 이런 순간이 싫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다행인데 봤으니 두고두고 마음이 상할 것이 뻔했다. '소이 러브'가 20분 동안 고생해서 순수한 두유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나는 엄마에게 '엄마랑 나는 가치관이 너무 달라. 난 정말 이런 게 싫어.'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든 말로 퍼부었다. 아무리 퍼부어본들 마음이 좋아지지 않을 것이지만.(듣는 엄마도 마음이 아프실 것이다.) 난 정말 감미료 같은 걸 넣는 게 싫다. 그게 싫어서 순수한 두유를 만든 건데.

  이제 어쩔 수 없다. 하나로 뒤섞인 설탕과 두유를 어떻게 분리하겠는가. 물리학자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시 일반 가정에서 설탕과 두유를 분리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한 것이다. 혹시 카이스트 같은 곳에 가면 분리할 수 있을까? 정말로 카이스트 기숙사에서는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건 정말 만약의 일인데, 만약 카이스트 커플이 두유를 만들다가 갑작스런 싸움으로 기분이 상해 헤어진다면, 한쪽에서는 두유 속에 들어간 설탕은 내가 가져온 것이니 어서 설탕을 분리해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그럼 나머지 한쪽은 실험실로 들어가서 비커나 스포이트 등을 들고 열심히 두유와 설탕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두유와 설탕처럼 그들도 서서히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마는 것이다.

  배불러서 잠도 못잘 정도로 두유를 마신 게 후회된다.(설탕이 어쩌네 저쩌네 해도 결국 배부르게 먹었다, 나란 사람이란..) 역시 순수한(순수에 가까운) 두유라 해도 과음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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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13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이 러브가 기계였던 건가요?!

저는 일전에 메신저에 등록되어있는 남자선배가 메신저 대화명을 꽤 오랜동안 '소이러브'라고 해놨길래, '소이'라는 이름을 가진 걸그룹의 멤버인줄로만 알았어요.

김토끼 2010-04-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사전을 찾아보니까 'soy'는 'soybean'의 줄임인가봐요. 그러니까 이건 '콩'이고..말하자면 '소이러브'는 '콩사랑'쯤 되려나요..^^; 다락방님의 남자선배님은 콩을 엄청 좋아하셨을까요..아니면 다락방님 생각대로 걸그룹의 소이를 좋아하셨을지도ㅎ 설마 기계이름을 아-설마 그럴 리가요.(어쨌든 소이러브가 콩으로 뭔가 만들어주는 기계의 상표인 건 맞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