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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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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고 깨달은 것은, 서른이 됐을 때 누군가는 서른을 믿지만, 누군가는 서른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물 아홉까지 멀쩡하다가 스물 아홉의 12월 31일이 지난 그 시점부터 어리광도 자학도 아닌, 약간의 죄책감을 동반한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우리가 벌써 서른이야'라는 고조된 목소리는 그 이후 우리에게 아무 것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저 새된 목소리로 짧은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 한숨을 쉬는 남자들이 있었고, 바쁜데 무슨 나이 타령이냐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스물 아홉부터 벌써 서른이라고 생각해서,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서른이라고 대답할 만큼, 체념할 대로 체념했다. 긍정적으로 보면 '서른'에 대한 면연력을 기르며, 막상 서른이 왔을 때는 아쉬운 것도 기대한 것도 하나 없는 상태였다. 누가 그랬던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그래, 그건 김광석이었지, 하고 문득 떠올린 순간, 그 서른 두 해의 짧은 삶이 뒤따라 머리 속을 스쳤다. 어쩌면 서른을 만든 것은 그가 아닌가. 이렇게 절실하게 만든 것은 그가 아닌가. '30'이라는 수치를 책임질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짊어져야 하는 서른을 만든 것은 김광석이 아닌가, 기타를 둘러 멘 젊은 그를 보면서 마음이 애잔한 한편, 마흔이 되면 할리 데이비슨을 사서 유럽 아가씨를 뒤에 태우고 달리겠다던, 수많은 메모 속에 '사랑'을 쓰고 금색 펜으로 '사랑'을 쓰면서 사랑을 금색으로 쓰니 사랑이 아닌 듯 하다고 말하던 그가 귀여웠다.

 

 

얼마 전 엄청난 메모광이던 김광석의 메모를 엮은 <미쳐 다 하지 못한>이 출간되었고, 조울증처럼 서른의 혼란과 평온을 격일로 반복하는 내게 그 책은 조용히 찾아왔다. 이 짓푸른(도저히 남색이라 할 수 없고 파랑이라 할 수도 없는) 색 하드커버에 둘러쌓인 메모들은, 유투브에서 찾아본 그의 수줍은 모습을 다시금 생각나게 했고, 특히 밤 중에 스탠드 아래서 페이지를 넘길 때면, 자조를 쏟아내게 하는 지난 날 내 부끄러운 모습이 돌연 떠올라, 함께 부끄러워지고, 그 와중 이상한 용기가 솟아 큭큭 웃게 했다. 그러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김광석의 메모를 당당히 훔쳐보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이 주체할 수 없는 서른을 절대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된다 다짐했다. 김광석은 미처 다 하지 못했지만, 나는 미쳐 다 하지 못한 거야, 또 한 번 키득거리며, 이 촌스러운 생각이 이불 위로 쏟아져 빛나는 것을 나는 막지 않았다.

 

 

나도 서른을 넘어설 무렵 심한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이십 대가 가졌던 기대나 가능성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없어지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허무가 몰려왔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서른은 인생의 전환점이자 처음으로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100)

 

 

어른다운 말도 하지만

 

 

어두운 밤이었나 보다

그냥 어둡기만 하지는 않았다.

무언가 하고 싶었는데

무척이나

그냥 밤은 깊어만 가고 있다

사실 내 속에 웃지도 울지도 못해 하고 있다.

사랑은 이렇듯 쉽게 왔다 쉽게 가고 있지만

남은 꿈들은 어렵게 조금씩 흐른다.

오늘도 혼자였던 나를 돌아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양

촛불 앞에 앉았다.(132)

 

 

'무척이나' 할 때 무언가 하고 싶던 당시 열망이 안타깝게 피어나, 다시 스러진다. 어른 이면에 아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가 외다리로 서 있고, 한 발 더 땅에 붙이기 힘들어 휘청이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코 즐기지 않지만 살아있음을 느끼고, 또 느끼려고 더 버둥거린다. 스무 살에 부정했던 이 흔들리는 삶이, 결국 삶이나 보다, 깨닫는 것도 아니고 체념하는 것도 아닌 채 서른이 되면서 그저 수긍하게 되었다. 깨닫을 시간도 체념할 시간도 없는 생활이 계속 되는 것이, 차리라 안심이 되는 날도 있다.

 

 

'움직임 당신의 움직임 당신이 불쌍해'(142)

 

 

어느 시인의 글귀를 적은 메모에서도, 그는 삶을 원하고, 향기를 원하고, 그것은 여지없이 또 '사랑'이라는 단어로 계속 계속 표현된다. 여느 발라드 가수의 소몰이 사랑 타령이 아니라, 아...하고 있는 사이에 문득 '사랑'이라는 단어를 나직이 읊조린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그 유명한 가사만큼이나, 김광석은 사랑에 아파한다. 딸 서연이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낄 때 괴로워하고, 그래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사랑해야만 하는 자신에 대해 쓴다. 병원에서 출근 전인 의사대신 딸을 받아낸 아빠이니만큼 딸에게 각별할 테고, 이미 사랑에 대해 각별할 대로 각별한 사람이니, 딸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랑보다 깊게 느껴지는 것이 착각은 아니리라.

 

 

내 딸이 태어날 때 처음 본 얼굴은 의사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딸을 직접 받아냈기 때문이다. 의사는 출근 전이었고 간호사는 무슨 준비 하러 간다고 나간 사이에 내가 아이를 받아냈다. 아주 놀라웠다. 아! 사람이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그 놀라운 광경은 괴기영화보다 더했다. 참 신기했다. 사람이 태어난다는 게.

 

놀라가지고 멍청하게 있다가 밖에 나갔는데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도 쉽게 안 보였다. 잘생겼건, 못생겼건, 있는 자건, 없는 자건, 다 그렇게들 태어나는구나. 좀 없는 사람이다 싶으면 슬쩍 무시하고 좀 있는 사람이다 싶으면 괜히 쩔쩔매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다 똑같구나, 모든 사람이 다 똑같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노래가 <자유롭게>이다.(126)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일어나고, 김광석은 아파하면서도 덤덤하게, 단순하게, 또 한편으로는 유쾌하게 해석한다. 의외다. 철학적이지 않지만, 생각이 많고, 진하게 살아내려하지만 격렬하지 않다. 균형이 있고, 사랑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읽고 또 읽어도 지겹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유투브로 김광석을 찾아보면서 노래만큼이나, 풀어놓는 여담이 진실하게 느껴졌다.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기타에 몸을 기댄 채 말하는 모습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가수가 자신이 부른 노래처럼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해서 한 동안 <거리에서>를 부르고 다니지 않았다고 말할 때, 그도 관객도 천진하게 웃었다. 이상한 것은, 그 이후의 일들을 알고 있더라도, 그 순간에는 같이 웃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김광석세대도 아니고, 동시대의 아픔을 알 수 없어서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랑은 사랑이고 아픈 건 아픈 거고 웃는 건 웃는 것, 이렇게 생각하자. 

 

 

 

 

 

내가 의도함으로 뚫려버린 가슴속의 구멍은 그대로 두련다.(49)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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