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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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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여자 동창과 수다 떨던 중에 유난히 허물없이 지낼 수 있으면서도, 단 둘이 있으면 묘하게 연애하는 느낌을 주는 남자아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각자 이야기하고 보니 그 대상이 같은 사람이었다. '역시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하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긴 채 그 이야기는 어느덧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 동창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들끼리 수군대던 그 묘한 남자아이가 남자 동창들 사이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걔는 여자랑 있을 때만 인간인 척 해." 왜 그 한마디에 이유도 없이 '아!'하는 깨달음이 찾아왔을까.

 

 

그렇게 직관적으로 깨달음이 왔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어릴 적에는 다들 똑같이 순진한 얼굴로 시작했던 여자애들이 화장을 하고 스커트를 입으면서, 좋아하는 남자를 하나씩 찜해서(어쩜 그렇게 공평히 나눴는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연애 작전에 돌입할 때, 나는 남자에 대한 아무런 도전의식도 느끼지 않았고, 남자나 여자나 같은 인간이라며 인류평등적으로 생각했으며, 나의 친구들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치장하고 돈을 쓰는 것이 헛된 소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이런 나야말로 연애가 거의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별 건가, 인연이 되면 만나는 거야, 하는 무위자연 연애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나았던 점이 있다면 결코 남자의 '조건'을 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를 그저 개개의 인격으로 보았고, '남자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관념이 없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난 적도, 나쁜 사람을 만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남자는 인간이기에 앞서, 남자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말하자면, 연애에 목을 매는 여자 친구들이나, 초탈한 척 했던 나나 결국 만나는 것은, 만나고 싶은 것은 '남자'였다는 것.(단순히 말하더라도 일단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특별히 '남자'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 편이 아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하는 책은 '어딘지 간지러운'책이라고 낙인찍는 버릇이 있는지라 이번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성별을 구분 짓는, 그런 류의 책을 읽는 것은 내 생에 처음인 것 같았다.(냉정과 열정 사이를 로쏘와 블루로 나눠 읽었으니 처음은 아닌 건가?) 저자가 심리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몇몇 책을 훑어보면서 확인한 적 있었다. 이 책은 그런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대상이 '남자'이고, 그들에 대한 '심리학'이 주 내용이었다. 아, 사실, 나는 심리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남성 심리학에 대해서는 뭔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있었다. 대학시절에 문학비평 수업 도중 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상징적 개념으로 남근이 등장했다. 두 시간 수업 동안 그 단어는 이 사람 저 사람 입을 통해 약 오십 번 정도 반복되었던 것 같았다. 서슴없이 그 단어를 입에 담는 학생들이 경외스러웠다. 그 동안 내 안면은 홍조를 띈 채, 머릿 속으로는 '이건 학문 용어야'하며 주문을 외웠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시작된 그 상징적 개념은 그 후로, 중요한 거 같긴 한데 아직은 받아들일 수 없는 너무 아카데믹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내 인생의 언덕 너머로 던져버렸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책을 두 손에 부여잡고 그 땐 그랬지, 하며 쓸쓸한 회상에 젖어 들었다.

 

 

다행히 이 책에 그 직접적인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않았던 것 같다. 나왔다 하더라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잠깐이었던 건 틀림없다!) 오히려 이 책은 거부감 없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그렇지만 남성 심리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밋밋한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가독성을 높이는 데 주요인이라는 건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저자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이 생각하는 '남성다운 남성'의 근저를 이루는 심리적 성질을 조목조목 사례와 해설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기도 하다. 만약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던 남자의 밑바닥을 기대했다면,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는 여성들도 때로는 남자들은 왜 다 이 모양이지, 하고 투덜거릴 때 '이 모양'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라고 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을 오직 '남자'에 대한 심리로 보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다. 책에서 심리학을 끌어들인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 대상이 남성이기에 해당되는 이야기라기보다, 자기애가 강한 인간이기에 나타나는 현상들처럼 보였다. 이 책을 통해, 사랑 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여러 심리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거의 자명하다고 느껴질 즈음 여자들 역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착각하고, 남자들 못지 않게 코스매틱이나 패션에 대한 콜렉터를 자처하며, 섹시한 남자 연예인의 몸에 감탄하고, 부모에 대한 영향으로 자기 인생이 결정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건 너무 자연스러운, 그냥 인간의 삶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의 애착관계에서 제대로 분리되지 못한 어른이 자기 정체성 정립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어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한 인간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하게 했다. 특히 어려운 일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이직하는 젊은이들을 심리학적 시선으로 '자기 정체성' 결여로 판단내리는 것은 너무 주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사실 이 책이 종종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면 바로 그 '주관성'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타인에 대해 심리학적 잣대로 이야기하는 부류들이 한편으로는 인기가 좋고, 한편으로는 비판 당하는 것은 인간 개인의 삶이 천차만별, 그만큼 형성된 주관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내가 살아온 삶을, 가치관을, 저것이 사람의 마음에 대한 학문이라고 해서 일률적으로 똑같은 모양으로 줄 세울 수 있는가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오직 '남자'에 대해서만 알고 싶은 여자들은, 어쩌면 남자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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