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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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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을 처음 발견한 곳은 학과 실습실에서 굴러다니는 A4용지였다. 노란 잠수함이 나오는 단편이었다. 누군가에게 복사를 부탁해 한 부를 집으로 들고 와서 읽지도 않고 그냥 두었다. 아주 나중에 여기서도 저기서도 김중혁 이야기를 하니까, 아차 싶어서 읽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왠지 책으로 계속 만나게 될 것 같다. 소설이 아니면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타입같아 보였다고 할까. 그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김중혁은 그림도 그리고, 라디오도 진행하고, 소설이 아닌 다른 글들도 쓰고 하지만 여전히 소설가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소설이 아닌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타입이었지만, 그의 모든 활동은 결국 소설로 연결되고 있으니, 어린 나이에 섣불리 든 생각, 아니지, 직감이 어느 정도 맞았던 것이라 하고 싶다. 그러니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는 김중혁에게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호감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 중에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인물들은 언제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건 그들의 리듬이었다. 정작 나 자신을 음악적이라거나, 음악을 애호한다거나, 표현할 수는 없어도 그런 사람들은 참 좋아한다, 감히 음악이 정말 좋아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게 노래>는 '김중혁 산문'이라고, 책 표지에 소박하게 소개되어 있다. 본격 음악 에세이, 소설가의 사운드 트랙, 같은 그럴 듯한 문구가 보였다면 이 책의 사랑스러움은 10%쯤 감소했을 것이다. 어쩐지 상상이 된다. 책 표지에 뭐라고 쓰죠? 고민하는 작가와 이런 저런 마케팅적인 단어를 나열하는 출판 마케터, 오랜 시간 고민하다 지쳐서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걸 뭐라고 해야 되겠어요, '산문'이잖아, 살짝 투덜거리는 작가의 모습 같은 것.(어쩌면 너무도 계산적으로 '산문'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낸 영민함 같은 것) '산문'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김중혁이 그린 일러스트가 함께하면서 이 책은 더더욱 사적인 무엇이 되어버린다. 이 산문을 한 줄 한 줄 읽고 있으려니 이 작가는, 남녀가 모인 어느 무리 속에서 유독 나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이성 같다고나 할까. 물론 나는 그 이성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편안하고 친밀한 매력이 계속될수록, 다른 이성들의 핸섬한 외모나 모델 같은 비율보다 그의 소박한 정서에 더 끌린다고 해야할까. 여튼 그렇다.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쩜 이렇게 재미있고 섬세한지 감탄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스타일이야말로 헤어날 수 없는 마성의 존재,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게 노래>는 살짝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지난 명절 때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노래를 넣어드리다가

어떤 가수들을 좋아하는지 여쭈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류계영(몰라요),

박진석(박진영과 양현석을 합한 이름인가요),

강진(지역이 아니라 가수 이름인 거죠?).

그 후에도 모르는 가수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현철이나 송대관이나 태진아는 안 좋아해요?" "난 별로야."

어머니가 쿨하게 대답하셨다.

아, 이런 트로트 인디 정신을 보았나.

나의 인디 음악 사랑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로군.

(24쪽)

 

 

 

써니힐은 해괴함을 숙성시키더니

결국 다음 앨범에서 <나쁜 남자>라는

불세출의 걸작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90쪽)

 

 

결정적으로 김중혁의 글, 아니지, 김중혁이란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작가로서의 '무게감'이 없기 때문이다. 에세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그의 어깨에 힘을 뺀 것일 수도 있지만, 에세이라고 해서 모두 이렇게 쓰는 건 아니니까. 내 멋대로이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평소에 힘을 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힘을 빼야 할 순간에 힘을 뺄 수 있다. 늘 자신감을 얻기 위해 난 멋져, 대단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이해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칫 폐가 될 수 있는 과도한 자신감을 지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그저 삶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힘을 빼는 연습을 하는 사람, 멋지지 않나. 김중혁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런 사람이 생각난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편안하다. 그저 음악이 듣고 싶다.

 

 

나는 소설가가 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래도 명색이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니)

문장이야 틀리지 않게 쓸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도 얕고

관계에 대한 통찰력도 부족한 내가 제대로 된 소설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도 그 의문은 여전하고,

좋은 소설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위로가 있으며

(예술이 위로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위로를 위해

여러 명의 예술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94쪽)

 

 

 

이런 소박한 글들이 그의 노력에서 빗어진 결과물이라고 믿고 싶다. 소설가로서 에세이스트로서 충분한 경력이 있는 그가, 전혀 멋내지 않고 쓰는 문장에 가슴이 찡하다. 음악도 좋고. 멀지 않게 느껴지는 책, 이게 무슨 말이지 싶다면 읽어보면 좋겠다. 참 따듯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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