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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문득 돌아보니 친구가 몇 없다. 아니면 친구에 대한 정의가 너무 엄격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다른 데는 허술하면서 친구에 대한 잣대만큼은 완벽주의인 걸까. 이런 경우-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고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보통 책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이란 단순히 활자의 모음이 아니다. 어떤 문장은 불현듯 나타나 오래도록 표현하지 못한 마음의 응어리를 적확하게 표현한다. 그런 책을 만나면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신기한 건 그런 사랑을 해본 사람은, 자신과 닮은 경험을 한 사람을 금방 알아차린다는 점이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쓴, 아마도 인생의 많은 시간을 책에 할애했을 저자는 그런 사람들의 기록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 친구가 별로 없고 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또 하나의 친구가 생긴 것이다. 



청춘은 같은 방식으로 되는 걸까



  책이 진행되는 형식은 특별할 것이 없다. 헌책에서 발견한 메모가 있고 저자의 주석이 붙는다. 어떤 책인지 밝히고, 될 수 있으면 책의 제목, 저자, 출판사, 출간년도를 표시한다. 누군가는 시를 베끼고, 처지를 적고, 편지를 쓰고, 고백을 하고, 철학적 의견을 털어놓는다. 70년대부터 90년대 대학시절을 보냈을 이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 역시 대학 다닐 때 책 앞 장 여백에 감상 젖은 말들을 써놓곤 했다. 심지어 빌린 책에 낙서를 끄적여 반납한 적도 있었다. 청춘은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걸까. 책을 펼칠 때마다 내가 끼적거렸던 그 낙서들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는데-몇 장는 찢어 버렸다-, 어쩌면 청춘을 청춘답게 지나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 들떴다. 그러다 문득 마음을 한 동안 쥐고 놓지 않았던 문장을 만났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에 대답할 수 없어서(43)

_대답 대신 한 권의 책을 사다



  이 메모만이 책에서 유일하게 도서 미상으로 표시되어 있다. 어떤 책인지는 알 수 없고 오직 메모만 남았다. 책에 게재될 수 없는 탈락조건에도 실린 까닭은 '메모의 내용이 눈부셔서'였다. 이 말만큼 딱 맞는 말도 없었다. 정말 한 동안 책을 붙잡고 생각하게 됐다. 그 대답을 구구절절 옮겨놓지 않는 태도가 아름다웠다. 수려한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소박한 말로 자신을 절반쯤 숨기는 사람. 이 조용하고 단순한 문장에 숙연해졌다. 정말이지 요즘 나는 자신을 드러내려 아등바등일 뿐, 숨기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지금과 다른 건 그 시절을 살았던 청춘들은 저마다의 존재에 대해서 더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것이다. 자격증 개수나 토익점수보다 자신과 사회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언제나 먼저였다.(133)



  사실 이 책은 말하자면 자의식에 대한 편집에 다름 아닐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설령 몇 줄의 메모일지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짧은 글들은 요즘 볼 수 있는 SNS의 자의식 과잉과 사뭇 다르다. 저자의 선별이 훌륭했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또 책이라는 전제조건이 있기에 더 견고한 의식을 발견하게 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이것들이 모두 지나간 것들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일 수 있다. 그 중 어떤 근거라도 이 기록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콕 와닿는 동일한 결과를 낸다. 결국 그 훌륭한 책들도 누구 인생의 배경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조용하다. 한편으로 배경이 된 그 책들에 감사하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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