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 17돌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학계평가 회의적

1987년 6월 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를 그 적자로 여긴다. 얼마전 청와대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진 것이 상징적 예다. 이제 ‘6월 정신’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과제는 노무현 시대를 통해 그 결실을 맺은 걸까.

학계의 평가는 회의적이다. 김상곤 교수(한신대)는 그 이유를 현 정부에게 주어진 과제의 성격에서 찾는다. 김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10일 개최한 6월항쟁 17주년 토론회 발제문에서 “지금까지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게 오늘의 민주주의 과제라고 짚었다. 그것은 “경제적 민주화와 경제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연관지어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방안”이다.

그 핵심은 이른바 ‘87년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것이다. 박영호 <동향과 전망> 편집위원회 소장은 최근호 머릿말에서 “상업적 이익이 유일한 선택이자 생활방식인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도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새로운 ‘적대적 상대’는 군사독재가 아니라 세계화다. 그것은 기왕의 민주적 성과마저도 위협한다. 세계화는 “불평등 문제를 사회보장국가를 통해 해결”하는 일국적인 개량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병폐에 대한 ‘최소한의 해답’인 사회보장체제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한국에서 이제 민주주의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학계의 냉정한 평가다. 윤상철 교수(한신대)는 “노무현 정부는 경제·사회복지·대외정책 등에서 이전 정부에 비해 오히려 퇴조하는 양상을 보여줬다”고 꼬집는다. 윤 교수는 지난 8일 한신대 사회과학연구소 심포지엄에서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사회적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정책적 계획을 갖고 있지 못했고, 이때문에 사회적 민주화에 대해 대응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안을 정치적 쟁점화하는 전략으로 이동했다”고 비판했다.

조현연 교수“사상적 결손과 정체성 빈곤의 한계”
박영호 소장 “사회보장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해”
윤상철 교수“경제·대외정책 오히려 전보다 퇴조”

이런 전략의 문제는 현 정부가 자리한 ‘시대적 좌표’에서 비롯된다. 민주화 이행은 일반적으로 ‘자유화기-이행기-공고화기-심화기’ 등의 단계를 거치는데, “김대중 정권 후반기부터 정치적 민주화의 단계를 벗어나 경제적·사회적 자원의 재분배구조를 변화시키는 민주적 심화기가 시작됐다”는 게 윤 교수의 판단이다. 민주적 심화기의 한가운데 서있는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는 민주화 이행기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현연 교수(성공회대)는 이를 ‘영양실조에 걸린 민주주의’라 부른다. 조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 토론회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민주적 공고화가 아니라 오히려 탈민주주의 추세 속에서 급격히 퇴락하고 있다”고 짚고, 노무현 정부의 “사상적 결손과 정체성 빈곤의 한계”를 그 이유로 들었다.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청와대에서 부르는 오늘, 역설적이게도 한국 민주주의는 시련 앞에 섰다. 진보 학술진영은 “사회적 정의와 민주주의를 세계화·사유화·상업화를 위해 폐기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화·사유화·상업화의 내용을 변경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섰다”(박영호)고 단언한다.

학계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 새로운 민주주의 과제를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4-06-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보면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들인데, 이런 지적들이 참신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
노무현 정부의 "도덕적 자부심", 그에 근거한 당당한 화법을 보면 아연할 때가 많다. 무슨 근거로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balmas 2004-06-1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는 분들께

이렇게 저렇게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고 또 지지하는 분들이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때가 아닌가 합니다.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열린 우리당을 과반수 정당으로 뽑아놓고 할 일 다했다고 돌아누워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안타까워하거나 혼자 술먹으면서 배신감 운운할 때가 아니라, 여러분의 희망, 여러분의 이상을 좀더 굳건하게, 좀더 책임 있게 지켜나갈 때가 아닐까 합니다.
노무현 지지자 여러분은 여러분의 희망과 여러분의 이상을 위해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을 선택한 것이지,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 그 자체를 위해 그들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이상을 좀더 똑바로 알아달라고, 그 이상을 배반하지 말라고 다그치고 요구할 때가 됐습니다.
국가 기밀이 어떻고 국가 안보가 어떻고 시장 원리가 어떻고 등등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겠지만, 때로는 당이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짐짓 제왕의 흉내를 내고, 나라도 화가 나겠다고 제왕의 역성에 아부하는 자들도 나타나겠지만, 여러분은 겁내지 말고 여러분의 이상과 여러분의 요구를 말하세요.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아니라서 대통령의 심중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우리들의 요구는 이렇다고, 우리들의 희망과 이상은 이렇다고 여러분의 요구를 말하세요. 여러분이 자신들의 요구를 말할 때, 여러분의 편에 서서 지원해줄 전문가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길거리에 나서서 대통령을 뽑고 열린 우리당을 과반 정당으로 올려 놓았듯이, 이제 여러분 자신의 희망과 이상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길거리에 나서기 바랍니다. 대통령이 뭐라 하든, 유시민이 뭐라 하든, 열린 우리당이 뭐라 하든, 여러분은 여러분의 요구를, 여러분의 이상을 말하세요.
여러분의 이상과 희망이 옳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들도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변명만 늘어놓는 게 아닙니까? 문제는 그 희망과 이상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아서 해주겠지, 알아서 보살펴 주겠지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여러분의 진실과 이상을 그들의 노름판의 판돈으로 날려버리는 일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이상과 희망을 잊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알려줄 때야 비로소 그들이 여러분을 존중하고 여러분의 이상과 희망을 존중할 것입니다.

가을산 2004-06-12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정치는 '우리 대표를 우리 손으로 뽑는다' 정도를 가까스로 이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지금의 체제로는 아무리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물을 국정 운영자로 뽑아도 그가 변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원인에는 크게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이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전문 관료, 정책 자문그룹, 경제 전문가들, 경제계 리더들에 둘러쌓여버리게 되어 재교육 당하거나, 의지가 있어도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정보의 제공이나 정책의 실행 과정에서 변형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신자유주의 그룹에 완전히 설득당한 것 같습니다. (그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고, 반대로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평가할 사람도 있을겁니다. )

외부적으로는, 미국 부시정부, 다국적기업의 로비, WTO 와 FTA, TRIPS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세력의 압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가장 강한 국가, 가장 강한 기업군, 가장 강한 국제 기구가 이들입니다.

(얼마나 위력이 집요하고 세세한지, 예를 들겠습니다. 2년 전 정부가 글리벡의 약값을 24000원 대에서 17000원 대로 인하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온갖 국제 통상기구에서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결국은 약가 인하를 추진하려고 했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물러나야 했습니다. 약 한가지 때문에. 그러니, 정책 전반에 대한 압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의 대표가 초심을 유지하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개혁적인 정권을 세우는 것 만으로 되지 않고, 이 내외적인 요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정책그룹과 전문가들을 양성해서, 진정한 정책정당이 뿌리를 내려서 설득 당하지 않고 그들의 정책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저력을 키우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외부적인 압력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주체들에 대응할 힘을 조직해야 하는데, 이는 한 국가나 한 나라 국민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을 비롯한 진영에서도 '문제점은 파악했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올 파국적 결과에 대해 알리고, 여론을 형성해서

각자 자기 정부에 그런 문제점에 능동적으로 연대하도록 압력을 넣고,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국제 여론, 국제 기구로 하여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멈추도록 해야 할겁니다.

 

갈길이 까마득하죠?    

이런 내외적인 요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제대로된 지도자를 얻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얼기설기 생각을 얽어보았는데, 뜬구름 잡는 수준인 것 같아 갑갑합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내일 행사가 있지요.

바로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할 것 같습니다.

 


balmas 2004-06-1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역시 대단하시네요.
저의 일국적 관점을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보충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전출처 : 수수께끼 >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에 관한 몇 가지 의문들....(1).

  여주의 남한강을 끼고 신륵사라는 고찰이 있습니다.  이 절을 처음 건립한 시기는 신라의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것을 뒷받침 할만한 유물이나 유적은 물론이고 문헌자료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려 우왕(禑王)2년인 1376년에 나옹(懶翁)선사가 이 절에서 입적하면서 절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조선조에 이르러서는 경기도 광주의 대모산(지금 남한산성의 송파쪽)에 있던 世宗의 묘를 여주로 이장하면서 왕실에서는 신륵사를 원찰(願刹)로 삼고 절 이름도 報恩寺로 바꾸고, 전각이나 건물을 새로 꾸몄습니다. 현재 신륵사 경내에는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많은 유물이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입적한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선사의 부도를 비롯한 유물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다층석탑이 있으며, 강변에는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세운 전탑등 다수의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신륵사의 유물중 다층석탑의 건립연대에 대한 의문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학문에서 형성되는 학파라는 개념은 한 스승 밑에서 배우는 입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탑은 30여년전에 필자의 스승이 조사를 하여 그 조사 결과가 오늘날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탑을 조사하면서 제 스승과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탑의 조성연대를 조선시대로 보고 있지만 저는 건립 시기가 조선시대 이전의 고려말, 또는 그 이전으로 보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탑은 우리 나라에 있는 1300여기의 탑중 20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와는 조선은 억불정책으로 이와 관련이 있거나 또는 기왕에 절간이 세워지면서 탑이 세워져 있었기에 새로운 탑의 건립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륵사 석탑은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가 보는 조형수법과 탑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 그리고 탑에 장식된 문양에 나타나는 조각 형식등에 대한 의문점으로 이 탑에 대한 재 조사를 했던 것입니다.  스승의 조사 결과를 제자가 번복하는 일은 학파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대단한 모험을 하는 일이지만 몇 가지 이 탑이 갖는 의문점을 기준으로 그 의문에 대한 하나 하나의 조사로 이 탑에 접근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신륵사 다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든 탑으로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먼저 탑의 아랫부분인 기단부는 2층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여러 층의 탑신(탑 몸통돌)을 얹은 사각형의 석탑인데 세부 조형을 살펴보면 신라나 고려의 조형수법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기단석에 비룡(飛龍)을 조각하는 경우는 매운 드문 경우로 이것은 신륵사의 창건과 관련된 설화의 내용을 담았는지 모르겠지만 조각 수법이 무척 세련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자칫 무겁게만 보일 수도 있는 탑의 무게를 조각이 덜어주고 있습니다.

 이 탑의 재료는 대리석인데 이 석재는 당시에는 구하기도 힘든 석재인데 왜 대리석으로 조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과연 이 탑이 보여주고 있는 양식으로 판단할 때 이미 알려진 대로 조선시대의 탑인지..아니라면 언제 조성된 탑인지를 정확하게 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탑은 3m에 불과한 비교적 작은 석탑이지만 기단부 부터 탑의 몸돌인 탑신부에 이르기 까지 각 층의 돌은 모두 1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석탑의 각 부재를 1개의 돌로 만들게 된것은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탑을 크게 만들 수 없는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탑은 일반적인 석탑의 전형을 그대로 따랐지만 각 부재에 있어서는 그 세부 감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재료가 대리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단부는 지대석 윗면에 단엽으로 복련문양을 조각하고 그 위에 2층으로 된 기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아랫층 기단 갑석의 윗면과 윗층 기단 갑석 아랫면에도 연화문(蓮花紋)을 장식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용의 문양이나 우측 사진인 기단에 나타난 문양의 조각은 매우 섬세하며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                                                          <신륵사 다층석탑의 상하층 기단>

탑의 몸돌인 탑신부는 현재는 8층 탑신부 까지 남아 있지만, 몇 군데 옥개석의 체감율이 맞지 않아 원래의 정확한 탑이 몇 층이었는지를 추정하기는 쉽지가 않으며 탑의 맨 윗부분인 상륜부는 현재는 철제로 된 찰주(刹柱)만 남아 있고 다른 부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와같이 모든 점을 살펴보면 신륵사 다층석탑은 지대석 윗면에 연꽃문양을 조각하여 화사한 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기단부에 연화문을 장식한 예는 많지만 이 탑 처럼 지대석에 연화문을 장식한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기단부에 있어서는 면석의 각 우주(귀퉁이 돌)에 화문(花紋)을 모각한 것이라든가, 기단 상층 깁석을 기단 하층 갑석의 하반부형(下半部形)으로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무거운 느낌을 줄이고자 하는 점은 이 탑에서 주목할만한 형식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지대석에 용과 구름, 파도 문양을 조각한 수법은 주로 스님의 무덤인 부도(浮屠)에 조각되는 수법인데 특이하게도 이 탑에서는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없던 문양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 (2)편에서는 이 탑이 같는 5가지의 의문점을 제시하고 그 의문점을 하나 하나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릴케 현상 > '안티 국민연금'을 환영하는 자본

[사설2] ‘안티 국민연금’을 환영하는 자본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이 최근 인터넷에 나돌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이래저래 손해만 보는 문제 많은 제도’라는 것인데, 솔깃한 예들을 많이 들어서‘폐지론’마저 불러내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한 결론이 아니다.

    ‘8대 비밀’의 문제점은 공적 보험에 대한 ‘연대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하면 배우자는 자신의 노령연금과 유족연금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이를 두고 ‘8대 비밀’은 국민연금이 사망자의 보험료 원금을 삼켜버린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사례가 여지껏 3천8백 건 일어났다.
    이 경우 지금처럼 배우자가 한 쪽 연금만 받는 것이 옳다. 유족 연금은 원래 노령연금 수급권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입자가 사망하면 앞날이 막막해지는 유족을 위한 제도로서 지금 20만명이 받고 있다. 사망자가 1년만 가입해도 유족이 혜택을 누린다. 가령 월소득 166만원의 남편이 3년간 매달 보험료 74,700원씩을 내고 사망했다면 유족이 매월 15만원 남짓을 평생 받는다. 사적 보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은 1인 1연금의 사회연대 보험이다. 필요하다면 노령연금에 더해 유족연금 일부를 추가지급하게 보완할 수는 있으나 “낸 만큼은 받아야겠다”는 시장논리와는 금을 그을 일이다. “노령연금을 받으니 유족연금은 양보하겠다”는 연대의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공유될 수 없는가.
    물론 이 글에는 타당한 지적도 있다. 지역가입자 보험료의 형평성 문제다. 국민연금은 소득기준이 멋대로고 권위적으로 걷는다. 실질소득이 없는데도 부과되고 항의하면 깎아준다. 체납했다고 가압류하니 분노할 만하다.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정교화하고 집행을 민주화해야 한다. 이의신청을 쉽게 하고 가입자의 소명을 경청해야 한다.
    반면 ‘의무 가입’은 필수 요건이다. 문제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이 없다는 점이다.

    ‘8대 비밀’로 촉발된 ‘안티 국민연금’은 오히려 부유층과 사적 자본이 환영하고 있다. 부유층은 높은 보험료를 면하고 자본은 ‘사적 연금보험’상품을 팔 수 있으므로. 반면 공적 연금의 재분배 효과를 누려야할 저소득층은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는 개인연금에 억지로 가입하든지 노후 빈곤을 견뎌야 한다.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연금 공공성’ 강화로 이끄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하겠다.

-교육희망 사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산 2004-06-1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연금과 의료보험의 사유화. 자본이 제일 반기는 것이죠.

sunnyside 2004-06-1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 부분이 있었군요. 저도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고는... 저건 아닌데,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올려 주시니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앗, 안녕하세요? 첨 인사 드리는 듯...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 )

balmas 2004-06-1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죠, 자본으로서야 대환영이겠죠. 가을산님이 동의해주시니 퍼온 보람이 있습니다.
sunnyside님 안녕하세요? 도움이 되셨다니 반갑습니다. 앞으로 종종 뵙기를 바라며 ...
 

* 광고하는 김에 하나 더 할게요.

아래 주소로 가시면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란이 나옵니다.

많이 서명하고 많이 동참해 주세요 ~~~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

http://access.jinbo.net/signature_online.htm

 


버스를 타기 위해

 

 

 

 

 

 

 

 

 

 

 

 

 

 


힘겨운 버스타기

 

 

 

 

 

 

 

 

 

 

 

 

 

 


휠체어를 조심해서

 

 

 

 

 

 

 

 

 

 

 

 

 

 


버스를 타고 활짝 웃는 모습

 

 

 

 

 

 

 

 

 

 

 

 

 

 


이중삼중으로 막힌 열린 우리당

 

 

 

 

 

 

 

 

 


열린 우리당으로 행진

 

 

 

 

 

 

 

 

 

 


열린 우리당 대표를 만나러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심이 2004-06-1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서명하고 오겠습니다. 당연히 찾아야 할 권리이지요..

balmas 2004-06-1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

조선인 2004-06-1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서명합니다.

balmas 2004-06-10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
다른 분들에게도 많이 알려주세요~~
 
 전출처 : Xoxov > "CD값부터 내려놓으시죠"

 

"CD값부터 내려놓으시죠"
"음반업자들의 폭리관행이 더 문제다." 四四九

냅스터가 네트워크 창설 1년 만에 가입자 수 7천만이라는 수치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 이제 겨우 2-3년 전의 일이다. 냅스터는 2001년에 법정에서 폐쇄 결정을 받은 뒤 한동안 잠수를 타다가 지난달에야 다시 컴백했다. 하지만 이번엔 유료 사이트라는 낯선 얼굴을 하고 온라인 세상에 등장했다.

▲미국의 파일공유 사이트 넵스터     ©네이버

 

냅스터는 쿠울한 이미지로 변신하여 짠~ 하고 등장했지만 지금의 냅스터 네트워크에는 썰렁한 기운만이 흘러 다닐 따름이다. 예전에는 냅스터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냅스터가 없어도 그만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통한 음악의 복제와 전파가 냅스터에 대한 제재를 통해 사라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애당초 드물었다.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지만 냅스터가 유료화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MP3를 또 OGG를 저마다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유롭게 복제하고 공유하면서 잘들 지내고 있다.

사실 이런 말 자체가 너무나도 상투적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이 변화하는 모습은 쾌속정 같기만 하다.


▲'카자미디어'      ©네이버

카자[KaZaa]라고 들어는 봤는지 모르겠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카자[KaZaa] 네트워크는 2003년 5월 현재 P2P를 구현해주는 카자 프로그램이 전 세계적으로 2억3000만회의 다운로드를 넘어섰다고 한다. 2억 3000만회...... 물론 여기에는 버전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중복 다운도 포함되어 있는 숫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지금 이 원고를 쓰는 와중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카자를 통해 파일을 전파하고 있을까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무려 400만 가까운 친구들이 접속되어 있다. 내가 뭘 달라면 군말없이 집어줄 그 친구들.

카자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온라인 네트워크 시대,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이들 회사의 구성이다. 예컨대 법인의 등록은 태평양 남서부의 쪼그만 섬나라인 이름도 귀여운 바누아투(한국말로 하면 ‘우리들의 땅’이란 뜻이다.)에 해 두었고 프로그램의 개발자들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

게다가 서비스 서버는 덴마크에, 회사의 운영은 호주에서 하고 있다. 온라인과 카피레프트에 맞서 쌔가 빠지도록 싸돌아다니면서 시비를 걸고 다니는 미국의 음반 업자 협회[RIAA]는 이들을 두고 하루가 다르게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중이다.

이미 음반의 매출액은 30% 가까이 하락하였으며 만일 재수가 좋아 이들을 법적으로 제압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뜻대로의 해결점에 이르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소리바다가 죽어 없어질 줄 알았더니 소리바다2로 리로디드 되어 재등장했으며 들리는 바에 의하면 소리바다2가 다시 사라지더라도 소리바다3이 또다시 나타나 디지털 혁명을 완성시킨다는 후문이 있다. 썰렁했다면 유감이다. 쩜프.

사실 온라인상의 MP3 공유에 의해 음반 제조 산업은 적잖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2-3년 전에 비해 매출액이 거의 반토막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MP3를 나눔정신 하나로 공유해 오던 우리들이 이에 대해 무슨 책임의식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씩 ‘음반이 안 팔리는 것은 표절 붕어 뷁 땐스뽕 저질 음악 때문이다, MP3를 듣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음반을 더 산다, MP3와 음반 판매와는 관련이 없다’며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 말이 사실일거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그런 말에서는 쓸데없는 도덕적 자책의 잔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MP3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천부인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예 타고난 권리란 말이다. 왜냐구?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음반 업자들한테 돌려받아야 할 빚이 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음반 제조업자들은 그동안 순진한 소비자들을 속여서 부당한 폭리를 취해 왔다. 요즘 공씨디 한 장에 얼마 하는가 말이다. 실제로 테이프와 씨디는 제작비용에서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업자들은 씨디라는 음악 껍데기에 영구성, 뭐 또 잡음 제로, 뭐 또 무슨 음질 해가면서 테이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높은 폭리를 취해 왔다.

▲    ©네이버

한마디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불공정 거래를 해왔다는 뜻이다. 게다가 예전 가수들의 음반을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씨디로 재발매해서, 또, 만원 얼마, 뭐 이렇게 팔아먹는 것은 폭리중의 폭리였다. 그걸 쥬라기 공원 어쩌구 하면서 무등 태워주던 놈은 또 따로 있다.

 쥬라기 공원 본다고 해서 관객이 부자되는 것도 아니다. 음반 제조업자들은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우선 씨디값부터 반절쯤 후려놓고 다시 시작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세계 5대 메이저 음반사의 하나인 유니버설 레코드가 음반 가격 30% 인하를 전격 단행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에 대해 동정할 것 하나도 없다. 그들을 걱정하기엔 우리 꼴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이 그동안 누려왔던 찬란함은 모두 우리들 덕택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음반 업자들만 해도 2002년 10월, 씨디 가격 담합을 통해 소비자를 기만하고 폭리를 취했다는 이유로 대략 1억 5천만 불에 이르는 돈을 토해내야 했던 것이다. “가격을 인제서야 내리다니, 이 나쁜...”이 더 정상적인 반응이다.

두 번째. 씨디는 사용이 영구적이라는 명목으로 높은 비용을 소비자로부터 징발해서 음반 제조업자들에게 갖다 바치기도 했는데, 일부 오디오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당혹스럽게도 씨디는 이미 수명이 다 했다는 것이다.

음반 업계는 이미 DVD나 SUPER AUDIO CD쪽으로 오디오 표준을 이동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차세대 표준을 위한 하드웨어를 목돈을 들여 구입해야 한다. 게다가 과거의 씨디 플레이어는 ‘순돌이네 집’에서만 취급 가능한 품목이 되고 결국, 씨디롬 자체는 반영구적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의 수명은 그에 비해 훨씬 짧기 때문에 씨디의 수명은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또 우릴 속여서 폭리를 취해 온 셈이다.

세 번째. 소비자들의 딱한 사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비평가들에 따르면 우리들은 이미 MP3와 같은 ‘공짜’ 물건들에 대한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인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온라인 접속 요금에 이미 비용이 간접적으로 다 담겨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인터넷 사용자에 대한 통계 자료를 보면 정보검색, 이메일, 오락(음악), 쇼핑 서비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위의 서비스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상당한 비용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면서 온라인에 접속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음반 제조업자들은 온라인 서비스 회사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빼앗기고는 엉뚱하게도 힘없는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그 부족분을 메우려 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4000억 원대에서 2000억 원대로 음반 제조 산업이 반토막 났다고 울상을 짓는 그들 주머니 속에서는 매출 연 3000억원이라는 벨소리와 컬러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금테 두른 빈 밥그릇은 또다시 소비자를 향해 내밀고 있다.

어쨌든 요즈음 음반 회사들은 다 문 닫는다고 난리도 아니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한참 더 닫아야 한다. 뭔가 통계의 기준에 차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정부 통계에 의하면 등록된 음반 제작사의 숫자는 96년 98개에서 2002년에 이르면 무려 938개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들은 IMF의 여파로 전국의 인민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표절 붕어 뷁 땐스뽕 저질 음악, 거기에 뇌물을 더해서 자신들의 윤택하고 고귀한 삶을 유지했으며 그러한 지난날에 대한 반성도 없이 소비자들의 주머니에 코를 더욱 집요하게 들이대고서 지금도 킁킁거리면서 뭐가 어떻고 또 뭐가 어떻고 하면서 떠들어대고 있다.

아, 싫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음반 제조업자들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우선 그놈의 가증스런 씨디 값부터 절반쯤 후려놓고 말을 걸어올 일이다. 비록 씨디의 목숨마저도 이제는 가물가물 할 테지만 최소한 ‘유종의 미’는 거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영상미디어센터 이메일진 ACT 5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