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중국은 완전히 미쳤다”

문혁을 둘러싼 중국 지식인 논쟁1- 쉬유위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 인터뷰…“끝내 공개적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면 일본 역사왜곡 비판할 자격 없어”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쉬유위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과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1947년 쓰촨성 청두에서 태어난 쉬 연구원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66년 문혁의 발발과 함께 조반파(造反派)로 문혁에 참가했다. 이후 그는 3년여에 걸쳐 농촌 하방생활을 했으며, 1979년까지 6년여 동안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1982년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생 과정을 졸업한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방문학자를 거친 뒤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

류사오치를 타도하려면 군중운동이 필요했다

문혁 당시 홍위병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홍위병으로 활동했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조반파’라고 해야 정확하다. 문혁이 시작됐을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출신 성분이 나쁜 흑오류(黑五類·지주·부자·반혁명 분자·범죄자·우파 분자)였기 때문에, 문혁 초기에는 홍위병이 될 자격이 없었다. 나중에 마오쩌둥은 이런 노선을 바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조반파 활동은 자원해서 참여한 것인가.


=당시 모든 학생들이 문혁에 참가하기를 원했지만 나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나쁜 출신 성분으로 분류돼 오랫동안 혁명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마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했다. 때문에 문혁에 참가해 마오에 대한 애정과 충성 그리고 그 누구보다 혁명을 원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마오의 말처럼 ‘인민들 속에서’ 사상이 단련된다는 느낌이 들었나. =농촌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노동이 너무 고되고 힘들 뿐 아니라 때로는 먹을 식량조차 없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문혁 전에 우리가 받았던 교육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중국의 사회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도라는 것이었다. 하방생활은 나에게 그동안 받았던 교육과는 완전히 상반된 현실에 대한 충격이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사건은 린뱌오가 소련으로 도망을 가려고 하다가 몽골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린뱌오는 마오 주석이 직접 선택한 후계자이자, 마오사상의 붉은 깃발을 가장 높이 치켜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반당활동을 벌이다가 결국에는 마오에 의해 죽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하방생활을 하면서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지하에서 ‘미국의 소리’라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그 방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것을 알았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은 원시사회의 노동과 똑같았는데, 미국의 우주선은 이미 달에 도착해 있었다. 당시 받은 사상적 충격은 엄청났다. 문혁은 왜 일어나게 됐다고 보나.

=지금으로선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과 서양 학자들 중에는 문혁을 마오가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 실현과 중국을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일으켰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관점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마오가 문혁을 일으킨 가장 주요한 원인은 권력투쟁이다. 사실상 마오가 타도하려는 사람은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류사오치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류사오치 뒤에는 그를 지지하는 수천수만 명의 공산당 간부가 있었다. 마오는 그들까지도 타도하고 싶어했다. 마오가 문혁을 발발한 이유는 전통적인 당내 투쟁 방식으로는 그 목적을 실현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반드시 군중운동, 천하대란(天下大亂)의 국면을 만들어야만 했다.

마오를 그리워한다? 신좌파의 착각! 문혁 시기에는 아래로부터의 비판과 언론출판의 자유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민주적’이지 않았나? =마오는 군중에게 발언권을 주었고 대자보를 붙이게 하여 관료들을 비판할 수 있게 했다. 조직을 만들어도 되고, 신문을 출판해도 되며, 어떤 말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마오가 사람들을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대민주’는 류사오치를 타도하기 위해 준 것이었다. 당시 중앙정부 공안부가 내놓은 ‘공안 6조’라는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아주 정확하게 명시돼 있다.


△ ‘30 대 70?’ 쉬여우위 연구원은 마오가 권력투쟁을 위해 천하대란의 국면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문혁은 ‘광기의 시대’다.

“마오쩌둥과 린뱌오를 공격하거나 혹은 중앙영도소조, 즉 장칭을 공격하는 자는 반혁명 분자이며 신속히 체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유의 ‘대민주’는 가짜다.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마오쩌둥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마오 시절의 평등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지금의 중국인들이 마오를 그리워하고 심지어는 문혁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심리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인민들은 현재 벌어지는 권력의 타락에 염증을 느끼면서 현실을 바꾸고 싶어한다. 그들은 지금 마오가 살아 있어서 다시 한 번 문혁을 일으킨다면 기꺼이 참여해서 이 타락한 현실을 뒤엎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한 가지 원인은 마오에 대한 상업화다. 1990년대 이후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상인들은 일반 서민들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교묘히 이용해 마오를 상업화했다. 마오는 그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상징마크가 되었다. 신좌파들은 이러한 현실을 잘 모르고 중국인들이 정말로 다시 마오를 그리워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덩샤오핑 시절 중국 정부는 마오에 대해 30% 정도의 잘못은 있지만 70%는 여전히 공이 크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 논법은 마오가 스탈린을 평가할 때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소련의 흐루시쵸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면서 스탈린은 악인이고 폭군이라고 비판했다. 마오도 마음속으로는 스탈린을 엄청나게 증오하고 싫어했지만,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탈린이 공산주의의 상징임을 알았다. 때문에 마오는 스탈린을 평가할 때 “단지 30%만 나빴다”고 말했다. 나중에 중국 공산당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마오식 해석 방법을 이용했다. 심지어 덩샤오핑도 나중에 자신을 평가할 때 이 논법을 사용한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마오는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인 면보다 훨씬 많다고 평가한다. 문혁 40주년을 맞은 올해도 여전히 중국 정부는 문혁에 대한 논쟁을 금기시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문혁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과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문혁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과 평가를 꺼려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혁을 파고들면 중국 정치제도의 여러 문제점들이 폭로되기 때문이다. 문혁 기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도대체 누구의 죄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면, 이렇게 묻는 과정에서 결국 그 추궁이 마오에게까지 갈 수밖에 없다. 현재 당국은 (이러한 추궁에서) 마오를 보호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거대한 비극이 중국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치 제도상의 문제 때문이다. (현 정부가) 공개적으로 문혁을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 현재의 정치제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도덕의 타락도 문혁에서 연유문혁이 결과적으로 중국인들에게 남긴 상처는 뭔가.

=첫 번째 상처는 도덕의 상실이다. 중국인들은 예전만 해도 순수했고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오는 문혁을 통해 이 사람들을 기만했다. 중국인들은 이상과 순수함, 진실, 신뢰감 등을 잃어버렸다. 문혁은 모든 아들과 딸들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판하게 했으며, 학생들은 자신의 선생님을 비판하고 그들과 싸워야 했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인성을 잃어버렸다. 서로를 불신하게 됐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도덕의 타락은 사실 문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의 문혁 세대들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신앙도 이상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잃었으며 매일 서로 투쟁하고 싸우는 것에 습관이 들어버렸다. 한마디로 문혁은 ‘광기의 시대, 어리석음의 시대’였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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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5-27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밌겠다. 계속 퍼다주세요. 퍼갑니다~^^

balmas 2006-05-27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죠?
요번 [한겨레 21]은 특집이 풍성하네요. :-)
이런 건 한 권 사줘야지~

waits 2006-05-2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님들이 다 퍼다주셔서...^^;;
그리구 지금 보니 카테고리 몇 개가 늘어났네요.
제가 준비하는 논문;; 주제가 '이주노동자 인권' 관련된 건데... 앞으로 도움 많이 받을께요..^^

balmas 2006-05-27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보기 쉽게 정리하기 쉽게 좀 바꿨답니다. :-)
오, 아주 중요한 주제네요. 기대기대 ...
 

 

이번엔 뛰어나가지 않아요

이주노동자가 본 월드컵…2002년의 뜨거움 뒤엔 단속의 거센 폭풍우가… 함께 환호성을 질렀지만 어느샌가 나는 이 사회에 있어선 안 될 사람

▣ 미노드목탄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스톱크랙다운밴드 멤버


꿈이었을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2002년 월드컵. 하나가 되는 데는 어른과 아이, 여성과 남성, 한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에 아무런 벽이 없었다. 붉은 티셔츠 한 장만 입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다. 아무런 편견도 차별도 없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불법 체류)의 신분도 잊은 채 한국인들과 함께 환호하고 기뻐했다. 참으로 소름 끼치도록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 이상 뜨거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우리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뜨거움은커녕 차고 거센 폭풍우가 몰아닥쳤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매몰차게 변해버린 한국 사회를 향해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멈칫멈칫 손을 뻗어보지만 한국은 응원의 손을 맞잡는 대신 그 손목에 뎅그렁 수갑을 채우고 강제 추방을 명했다.

중국동포 합법화 소식을 들으며

한국 사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나와 같은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특히 미등록 노동자의 존재를 말이다. 그러나 많은 이주노동자, 미등록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지 않은가.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가 만든 물건을 쓰고, 이주노동자가 지은 아파트에 살고, 이주노동자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아니 애써 모른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왔던 우리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눈곱만큼이라도 인정한다면 차마 지금과 같은 매서운 단속과 강제 추방은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광화문 거리를 지나다가 나는 온몸을 쥐고 흔드는 외로움에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 그곳은 한국인들과 함께 즐거운 환호성을 질렀던 곳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샌지 모르게 한국인과 분리되었고, 이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그 거리에서 나는 당장 떠나야 할 사람이었고, 끌려가 강제 추방당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그동안 미등록으로 일해온 재외동포를 합법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난 월드컵 때 나와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던 중국인 김씨 아저씨와 영철씨였다. 한국인들은 그들을 중국동포라고 불렀다. 아, 그분들은 이제 떳떳하게 일하게 되었구나. 이제 두려움에 떨지 않고, 붙잡혀 강제 추방당하지도 않고 열심히 살 수 있겠구나. 축하해드려야겠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든 것은 야속함이었다. 그럼 나는? 그분들보다 더 오래 한국에서 일했고, 그분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해온 나는 어찌되는 것인가? 단지 혈통이 다르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이번에도 이렇게 합법화에서 배제되고 차별당하는구나. 대한민국은 정말 혈통을 벗어나 존중과 화합을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인가!

환호 속에 내가 설 곳은 없다

또다시 월드컵이 다가온다. 벌써부터 “대~한민국”이 울려퍼지고, 온 거리가 들썩인다. 그러나 나는 움츠린 어깨를 펼 수 없다. 이 힘찬 환호 속에 내가 설 곳은 없다. 대한민국에 속해 있으나 그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주노동자, 미등록 노동자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엔 지난번처럼 철없이 뛰어나가 함께 환호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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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5-27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balmas 2006-05-2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예, 그러세요. :-)

비로그인 2006-05-27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도는 우리땅" 티를 입고 다니는 이주노동자를 보면 저는 그 옷이 마치 방탄복이나 보호색 같은 느낌이 들곤합니다. 우리는 "독도 우리 땅 아닌데요-" 그러면서 농담해요.^^;

balmas 2006-05-2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또 그런 재미있고도 씁쓸한 일이 있군요 ... ^^;
 

경향신문

 

[‘외국인法’ 제정] 단일민족 ‘덫’에 뒤늦은 제도정비

 

입력: 2006년 05월 26일 18:03:13

: 2 : 1
 
외국인정책의 공론화는 우리 사회가 숙제로 미뤄왔던 외국인 인권에 대한 본격적 문제제기다. 몇년새 외국인 근로자의 폭발적 유입과 여성결혼이민자 증가 등으로 인한 임금체불, 모성보호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데 대한 정부 차원의 접근인 것이다. 자연히 외국인정책의 밑그림은 인권문제의 ‘글로벌 스탠더드’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배경과 과정=외국인 문제에 대한 종합적·제도적 정비는 한국이 이제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들어섰다는 현실적 고민이 출발점이다. 지난 4월말 현재 82만명(인구의 1.7%)의 외국인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6일 외국인정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사람에 대해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진보”라며 “개방화시대에 여러 문화와 교류하고 통합하는 것은 세계 문명사의 흐름이고 국가 발전전략에도 맞다”고 말했다. 실제 노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이 문제를 고민해 왔다고 한다.

초점은 이들의 인권과 생활문제 등 법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가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 결과물이 이날 제정키로 한 외국인정책기본법, 즉 ‘재한외국인의 법적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가칭)이다.

정부는 지난 1월부터 학계·시민단체·관계부처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었다. 특히 각 부처로 나뉜 업무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외국인정책위원회’도 발족시켰다. 실무적으로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하되 위원회는 각 부처간 조정역할을 맡게 된다.

◇주요 내용=외국인정책의 기본 대상은 크게 6가지다. ▲외국적 동포 ▲결혼이민자 및 외국인 여성과 자녀 ▲난민 ▲외국인 근로자 ▲불법체류 외국인 ▲한국 국민이다. 앞의 다섯가지 외국인들의 경우 인권과 권익 보호가 초점이고 마지막 ‘국민’의 경우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의식 변화가 정책의 주내용이다.

이 중 핵심은 외국인 근로자와 불법체류 외국인, 여성결혼이민자들이다. 한국이 이제 더이상 인력 수출국이 아닌 인력 수입국으로 들어서면서 필연적인 결과물로 체불 등 인권침해 및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불법체류 외국인의 출국준비 기간을 90일로 늘리고 각 출입국사무소에 ‘인권담당관’을 지정, 인권의식을 강화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악용해 임금을 주지 않거나 전세금을 떼이는 등의 피해가 빈발하면서 몽골 등 주요 인력 수출국들이 정부차원에서 해결을 요청해온 것이기도 하다.

여성결혼이민자나 외국인 여성의 경우 ‘모성보호’가 중심이다. 한국 국적이 없는 경우라도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최저생계비, 의료서비스 제공 등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결혼이 깨질 경우 여성단체 확인서만으로 입증서류를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동포 대책은 전체 재외동포의 80~90%에 이르는 중국동포와 구소련 동포가 핵심이다. 방문취업제를 도입, 이들은 5년 동안 고국을 자유롭게 입출국하면서 취업할 수 있고 최장 3년까지 국내에 체류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재외동포 체류자격 부여의 전단계로 향후 ‘한민족 네트워크’까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거나 교과서를 검토·분석해 지나친 단일민족주의나 인종차별적 요소를 수정키로 한 것은 국민의식 변화를 위한 것이다.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는 ‘혼혈인’ 용어를 국민 공모를 통해 바꾸고 ‘외국인의 날’을 지정하는 것도 우리 안의 ‘관용(톨레랑스)’ 문화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김광호기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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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5-27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요..^^

balmas 2006-05-27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비로그인 2006-05-2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것두요 ㅋㅋ

balmas 2006-05-28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옙~
 
 전출처 : 라주미힌 > [손석춘칼럼] 권력 넘긴 노무현의 독재권력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이다. 대통령에게 과연 권력이 있는가. 묻는 사람도 무장 늘어간다. 기실 그는 오래전에 권위를 잃었다. ‘비판언론’만이 아니다. 노 대통령을 시들방귀로 여기기는 유행이다.

‘개혁’이란 말도 조롱받는다. 대체 집권 종반을 맞기까지 뭘 했는가. 비판이 쏟아진다. 집권세력 일각에선 원인을 헌법에서 찾는다.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권력이 있느냐고 되술래잡는다.

과연 그러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현행 헌법으로 그의 전임자들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일을 하나씩은 했다. 김대중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내왔다. 노 대통령과 여러모로 닮은꼴인 김영삼 정권조차 ‘하나회’를 숙정하는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더러는 권력기관 민주화를 노 정권의 치적으로 내세운다. 아니다. 권력기관은 물론 관료사회를 개혁해야 마땅한 순간에 손을 놓았을 뿐이다. 아니, 놓쳤다.

정작 문제는 권력을 놓친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정반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노무현의 독재는 시작한다. ‘노무현의 독재’란 말은 결코 형용모순이 아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지금 이 순간 독재자의 길로 뚜벅뚜벅 걷고 있다.

청와대가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대통령은 저 오월의 민주투사들을 기리며 말했다. “생각과 행동이 아직도 반독재 투쟁의 시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과시라도 하듯 까닭까지 밝혔다. 지금은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다. “그것은 무소불위의 독재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란다.

곧추 보기 바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강행되고 있는지를. 대통령의 ‘정치적 감’으로 공화국의 운명을 욜랑욜랑 결정했다. 그뿐인가. 오월의 평택에서 군인이 민간인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추격했다. 그것이 독재가 아니라면 무엇이 독재인가. 오월의 투사를 폭도로 몰아친 그 언론이 살천스레 을러댄다. 피투성이로 얻어맞은 시민을 ‘반미 좌파’란다. 더 ‘엄단’하란다. 심지어 발포하지 않았다고 국방부를 훌닦는 자칭 ‘우익’도 있다.

기막힌 일이되 한국 민주주의의 엄연한 현주소다. 노 대통령은 두 김씨를 거치며 정착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마치 자신의 치적처럼 생색낸다. 게다가 국가운명을 좌우할 결정에 대통령 자신이 절차를 무시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인다. 대안이 있느냐고 되레 눈 홉뜬다. 대안? 호도하지 말기 바란다. 한-미 관계는 지금 상황도 하나의 대안이다. 굳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은 언죽번죽 충고도 했다. “아직도 권력자의 얼굴만 쳐다보는 그 시대의 낡은 사고가 남아 있다면 이제 버려야 한다.” 옳다. 권력자의 얼굴만 쳐다볼 때가 아니다. 권력의 잘못을 바로잡을 때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게 아니다. 노 정권은 시장에 넘긴 권력을 철저히 대변한다. 휘두른다. 시장의 철권, 그것이 노 정권의 본질이다. 신자유주의 독재정권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독재이기에 지자체 선거 참패는 벅벅이 필연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아직도 자신의 정권이 지닌 독재의 성격을 파악 못한 데 있다. 딱한 일이다. 그의 참모들 가운데도 분별이 뚜렷한 사람들은 이미 떠났거나 배제되고 있다. 남은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평택 미군기지로 줄달음치는 독재자 노무현이다.

그래서다. 저무는 오월에, 그 핏빛 깃발 아래 찬찬히 묻는다. 신자유주의 독재권력, 노무현 정권을 어찌 해야 옳은가.

기획위원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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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대학 교양교육의 개선 방향

2006년 05월 24일   하병학 가톨릭대 이메일 보내기

하병학/가톨릭대·교양교육


  최근 국내 많은 대학은 교양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대학은 교양교육을 대학의 특성화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는가 하면, 일부 대학은 학부대학, 교양교육원, 교양학부 등을 설립하여 교양교육 전반을 기획·관리·운영함으로써 질높은 교양교육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교양교육 개선의 특징은 영어, IT 외에 기존의 ‘철학개론’, ‘작문’, ‘한국사’ 등과 같이 몇몇 전공학과에서 제공하는 교양교과목을 정비하여 ‘글쓰기와 읽기’, ‘발표와 토론’, ‘분석과 비판의 기초’ 등의 학제적인 교양교과목을 제공함으로써 학문탐구를 위한 기초교육, 다양한 학문들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창의적 사고 교육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대학 교양교육의 개선의 필요성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수능성적 향상만을 목표로 하는 우리 고등학교 교육이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대학 신입생들에게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학문탐구를 하는 성향과 능력을 길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오늘날 학문의 영역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됨으로써 자신의 전공지식만 갖추고 타분야에 대해서는 이해력이 부족한 ‘전문바보(Fachidiot)’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현대에 들어와 정보의 접근성이 용이해져 정보의 독점이 어렵고, 생산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난 데 비해 정보의 효용기간은 짧아져 정보의 획득보다는 정보의 활용과 생산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넷째 미디어, 인터넷 등의 발달과 공동체의 민주적 운영으로 인해 의사소통능력이 지성인에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문경계를 가로지르는 종합적인 사고력과 의사소통능력을 통합적으로 교육하겠다는 교양교육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교양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어 있는지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각 대학의 교육이념과 환경에 따라 교양교육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구체적인 교육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순수학문과 마찬가지로 교양교육이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는 없다. 학교당국의 책임자가 바뀌었을 때도 유지될 수 있는 교양교육의 로드맵이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교양교육은 손이 많이 가는 교육이다. 7~80명을 대상으로 극장식 강의실에서는 좋은 교양교육을 실현할 수 없다. 학생과 교육자가 함께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는 수업공간과 첨삭지도 등의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교육조교, 멘토 등이 제공되어야 한다. 첨언컨대 교육조교제도는 미래 교육자들을 육성하고 대학원 활성화에 기여함을 밝혀둔다. 


  셋째, 학교당국과 전공학과 전임교수들은 기초학문탐구능력 향상을 위한 교양교육이 내실화될 때 전공교육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현재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이 대개 비정년전임교수, 초빙교수, 시간강사라는 계약직 신분이라는 사실은 학교당국의 교양교육에 대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교육경험이 풍부한 전임교수들의 교양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촉구된다.


  넷째, 교양교육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교수는 없다. 따라서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영역에서 교양교육을 위해 제공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교양교육적 자원으로 변형하는 것과 함께 다른 전공의 교양교육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통해 기초적이고도 통합적인 교양교육의 모델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학교당국에서는 이러한 연구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과 함께 교양교육 교수에 대한 연구평가를 자신의 전공학문이 아니라 교양교육 분야에 중점을 둠으로써 교양교육 연구를 촉진해야 한다.


  다섯째, 교육의 질은 교육자의 질에, 교육자의 질은 교육자의 교육열과 교육환경에 의존한다. 학생과 학교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좋은 교육자는 없으며 이러한 의식은 시간강사, 계약직 교수가 갖기 힘들다. 최선을 다 하면 이 대학이 나의 영원한 직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약직 교수에게 열어 놓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1-2년씩 갱신하되 최대 3-6년간이라는 근무조건은 수정되어야 한다. 최대 3년 근무 가능한 대학에 입사할 경우 1년은 적응한다고 질 높은 교양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그 후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교양교육과 무관한 자신의 전공분야만 연구한다면 ‘좋은 교양교육’은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


©2006 Kyosu.net
Updated: 2006-05-2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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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6-05-2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고 가져갈게요. 꾹.

balmas 2006-05-2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세요. :-)

philliee 2006-05-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과 학교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좋은 교육자는 없으며 이러한 의식은 시간강사, 계약직 교수가 갖기 힘들다" 역시 교수놈들 속셈이란..학생들 교육핑계로 자기네들 정년이나 보장 받으려는 수작으로 밖에 안보인다..정년보장된 정규교수중에 책임감 가지고 학생 가르치는 자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교양교육의 부실이 비정규직 교수들의 무책임에도 책임이 있다는 말인지.. 문혁 전후의 중국지식인들과 한국지식인들의 행태를 비교해보게된다.

balmas 2006-05-28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글쎄 말이야, 사실 학생들에 대한 책임의식이야 시간강사나 계약직 교수라고 해서 꼭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