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뛰어나가지 않아요

이주노동자가 본 월드컵…2002년의 뜨거움 뒤엔 단속의 거센 폭풍우가… 함께 환호성을 질렀지만 어느샌가 나는 이 사회에 있어선 안 될 사람

▣ 미노드목탄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스톱크랙다운밴드 멤버


꿈이었을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2002년 월드컵. 하나가 되는 데는 어른과 아이, 여성과 남성, 한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에 아무런 벽이 없었다. 붉은 티셔츠 한 장만 입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다. 아무런 편견도 차별도 없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불법 체류)의 신분도 잊은 채 한국인들과 함께 환호하고 기뻐했다. 참으로 소름 끼치도록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 이상 뜨거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우리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뜨거움은커녕 차고 거센 폭풍우가 몰아닥쳤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매몰차게 변해버린 한국 사회를 향해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멈칫멈칫 손을 뻗어보지만 한국은 응원의 손을 맞잡는 대신 그 손목에 뎅그렁 수갑을 채우고 강제 추방을 명했다.

중국동포 합법화 소식을 들으며

한국 사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나와 같은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특히 미등록 노동자의 존재를 말이다. 그러나 많은 이주노동자, 미등록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지 않은가.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가 만든 물건을 쓰고, 이주노동자가 지은 아파트에 살고, 이주노동자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아니 애써 모른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왔던 우리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눈곱만큼이라도 인정한다면 차마 지금과 같은 매서운 단속과 강제 추방은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광화문 거리를 지나다가 나는 온몸을 쥐고 흔드는 외로움에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 그곳은 한국인들과 함께 즐거운 환호성을 질렀던 곳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샌지 모르게 한국인과 분리되었고, 이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그 거리에서 나는 당장 떠나야 할 사람이었고, 끌려가 강제 추방당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그동안 미등록으로 일해온 재외동포를 합법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난 월드컵 때 나와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던 중국인 김씨 아저씨와 영철씨였다. 한국인들은 그들을 중국동포라고 불렀다. 아, 그분들은 이제 떳떳하게 일하게 되었구나. 이제 두려움에 떨지 않고, 붙잡혀 강제 추방당하지도 않고 열심히 살 수 있겠구나. 축하해드려야겠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든 것은 야속함이었다. 그럼 나는? 그분들보다 더 오래 한국에서 일했고, 그분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해온 나는 어찌되는 것인가? 단지 혈통이 다르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이번에도 이렇게 합법화에서 배제되고 차별당하는구나. 대한민국은 정말 혈통을 벗어나 존중과 화합을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인가!

환호 속에 내가 설 곳은 없다

또다시 월드컵이 다가온다. 벌써부터 “대~한민국”이 울려퍼지고, 온 거리가 들썩인다. 그러나 나는 움츠린 어깨를 펼 수 없다. 이 힘찬 환호 속에 내가 설 곳은 없다. 대한민국에 속해 있으나 그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주노동자, 미등록 노동자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엔 지난번처럼 철없이 뛰어나가 함께 환호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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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5-27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balmas 2006-05-2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예, 그러세요. :-)

비로그인 2006-05-27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도는 우리땅" 티를 입고 다니는 이주노동자를 보면 저는 그 옷이 마치 방탄복이나 보호색 같은 느낌이 들곤합니다. 우리는 "독도 우리 땅 아닌데요-" 그러면서 농담해요.^^;

balmas 2006-05-2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또 그런 재미있고도 씁쓸한 일이 있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