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퍼오기만 해서 넘 미안한데,

정기구독이라도 한번 해줄까 ... -_-;;;

-------------------------------------------------------------------------------

 

대한민국, 이마트에서 길을 잃다

이마트 해고노동자이면서도 카트를 끌고 매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최옥화씨… 인구 15만명당 1개의 대형 할인점 시대, 지역 커뮤니티와 사회적 연대를 파괴

▣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최옥화(42)씨는 노동자다. 그는 또 소비자다.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최씨는 이마트에서 노동하고, 이마트에서 소비한다. 노동자 최씨는 매일 이마트 용인시 수지점 계산대 앞에 하루 7시간씩 서서 일하고, 소비자 최씨는 주말마다 중학교 2학년짜리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이마트 진열대를 돌아다닌다.

노조 결성하게 만든 ‘하얀 장갑 사건’

2004년 12월21일 오전 이마트 수지점에서는 신세계 이마트 노조 창립식이 열렸다. 40대 주부 노동자들은 노조 깃발을 들었다. 그 중심에는 분회장인 최씨가 있었다. 그는 동료 캐셔(계산원) 노동자 23명을 이끌고 민주노총 경기일반노조 수지 이마트 분회를 조직했다.


평범한 주부 최옥화씨가 이마트 노동자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4남매 학원비만 각각 한 달에 35만원씩이에요. 학원비라도 벌려고 나갔지요.”

그가 보여준 2003년 8월 첫 월급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80만원(시간당 3850원)이 좀 넘었다. 하루 7시간 일하는 계약직 파트타임 노동자로 일한 대가다. 최씨는 재빨리 캐셔 일에 적응해갔다. ‘어서 오세요’ ‘봉투 필요하십니까’ ‘상품 다 올리셨습니까’ ‘얼마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로 이어지는 6대 용어를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안면 근육도 키웠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있는 스피드 채점도 좋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근무시간 중에 슈퍼바이저(SV)가 갑자기 빈 카운터로 불러요. 그 다음 초시계를 들고 속도 측정을 하지요. 20개의 물건을 갖다놓고 얼마나 빨리 바코드 센싱을 하는지 시험을 보는 겁니다.”

손이 빨라야 한다. 성적은 A·B·C등급으로 나눠 매겨지고, 각각 3만·2만·1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20대의 젊은 슈퍼바이저가 갑자기 불러 치르는 시험은 40대 아주머니에게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래도 “007 작전처럼 손님으로 위장해 계산대에 들어와 검사하는 것”보다 낫다.

그의 계산은 정확한 편이다.


그의 손에 하루 1500만원이 오가지만, 과부족되는 날보다 ‘빵내는’ 날이 훨씬 많다. 계산기에 찍힌 금액과 입금액이 다른 과부족 금액이 5천원 이상이면 사유서를 써야 한다. 1만원 이상이면 점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 캐셔들의 과부족 통계는 게시판에 붙여 공개된다.

최씨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하얀 장갑 사건’이었다. 캐셔 노동자는 장갑을 껴서는 안 되고 맨손으로만 일해야 한다. 장갑을 끼면 소비자가 보기에 좋지 않고 때가 타 더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씨의 손은 상품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태그를 떼느라 갈라지고, 잔돈을 내주느라 돈독이 올랐다. 회사 쪽은 장갑을 끼고 근무하는 최씨를 나무랐다. 이 문제를 가지고 최씨가 민주노총을 찾아갔고, 결국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거의 한 달 동안 일하지 못하고 점장과 서울에서 내려온 본사 간부들과 면담만 했어요. 간혹 일할 때는 가장 힘든 소량 계산대에만 보냈고요.”

2004년 12월21일 노조 창립 뒤, 무노조 경영을 굳건히 지켜온 ‘범삼성가’의 대응은 집요하고 공격적이었다. 노조원 23명 가운데 19명이 떨어져나갔고, 1명은 해고됐고, 3명이 남았다. 노조원과 갈등을 빚던 이마트 수지점장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인사위원회는 최씨 등 3명에게 세 달 정직을 통보했다. 이후 회사 복귀 명령과 근무, 다시 해고와 복직 투쟁이 이어졌다. 이마트 수지점은 지난해 7월5일 이들을 복직시켰다. 그리고 놀랍게도 복직 닷새 만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장을 보러 가도 보안요원들이 따라다녀

이마트 최초의 노조 설립 사건은 2000년 미국 월마트 노조 사건과 닮아 있다. 그때 월마트는 잭슨빌 점포 정육부 노동자 10명이 노조를 설립하자, 아예 부서를 해체하고 노조원들을 타 근무지로 전보 발령했다. 이마트와 월마트는 노동자의 희생을 대가로 한 소비자 지상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좀더 싼 가격과 티끌조차 없는 제왕적 편의를 위해서 비정규직은 ‘무결점 서비스’ 노동을 한다. 고객이 부당한 요구를 해도 화내면 안 된다.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불려가 이유를 막론하고 잔소리를 듣거나 사유서를 써야 한다.


△ 최옥화씨는 이마트의 노동자이자 소비자이다. 그는 “이마트에서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았다”고 말한다.

6월7일 해고노동자 최씨는 기자와 함께 롯데마트 수지점에 쇼핑을 하러 갔다. 그는 “지난해 롯데마트가 생겨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정직을 당했던 직장인 이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그때마다 장을 보는 최씨 뒤로 무전기를 든 보안요원들이 따라다녔다. “이마트에서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마트를 다녔다.

최씨는 신도시에 사는 전형적인 ‘마트형 인간’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형 할인점에 가서 15만원어치 장을 봐온다. 여느 신도시의 주부처럼 식품에서부터 옷, 생활용품까지 모두 할인점에서 해결한다. 할인점에 갈 때는 자가용을 이용한다. 롯데마트는 집에서 2.5km 떨어져 있다.


한 번 갈 때마다 0.5ℓ의 휘발유를 소비한다. 그가 사는 아파트 앞 2층짜리 상가는 부동산 가게로 가득 차 있다. 근처엔 재래시장은 물론 변변한 슈퍼조차 없다. 할인점이 지구환경에도 안 좋고 과잉 소비를 유도하는 걸 알지만, 일상의 쳇바퀴를 바지런히 굴려야 하는 그로선 할인점 외의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롯데마트에 들어서자 ‘매일매일 최저가’라는 광고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대형 할인점의 최저가 신기원은 노동비용을 통제한 데 힘입었다. 롯데쇼핑(롯데마트·백화점)에 고용돼 일하는 노동자는 1만6246명. 신세계는 1만1782명(이마트·백화점)이고, 홈플러스는 1만800명이다. 매장에 입점한 업체가 고용하는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수는 더욱 많아진다. 대형 할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70~80%가 비정규직이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이 3~5월 대형 할인점 일자리 공고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각 업체에서 제시한 한 달 임금은 대부분 60만~100만원 수준으로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 24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최씨는 롯데마트 2층에 전시된 분홍색 꽃무늬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4만5천원”이라는 말에 넥타이를 놓고 몇 번 뒤돌아보더니 1층으로 내려갔다. 최씨는 “보이지 않으면 안 사도 되는 건데…” 하면서 물건을 쉴 새 없이 집어들었다. 진라면 5입, 삼양라면 5입, CJ 물만두, 핫도그, 흙대파… 15분 만에 23개 품목으로 쇼핑카트가 메워졌다. 롯데카드로 10만1294원을 결제하니 505포인트가 적립됐다. 집에 오자마자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은 비닐봉투 속에 묻혀 있는 요구르트를 꺼내 먹었다.

그는 지난 5·31 지방선거 때 민주노동당 용인시의원 후보로 나갔다. ‘이마트 아줌마’가 큼지막하게 박힌 선거 홍보물에는 “아파트 건설로 재미를 본 업자들이 난개발로 만들어놓은 수지를 바꾸겠다”는 공약이 쓰여 있다. 최씨는 “시의원에 당선됐다면, 대형 할인점 규제 조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마트 아줌마를 지지해준 표는 1882표. 6.2%의 지지율이었다. 여태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가 없는 곳에서 혼자 선거운동을 벌인 것치곤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때

“묶음 단위로 구매해 남은 양은 쓰레기로 발생합니다. 일시 다량 구매로 그만큼 경제적 지출이 많습니다. 할인점으로 가는 길은 교통 혼잡, 대기오염, 에너지 낭비를 발생시킵니다.”


△ 경기 시회물류센터에서 상품 적재를 기다리는 차량들. 전국에서 구입된 상품은 물류센터에 모였다가 다시 전국으로 흩어진다.

친환경소비자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가 1990년대 후반에 펴낸 캠페인 구호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단체는 할인점 출입을 줄이자는 운동을 폈다. 그러나 운동은 지속되지 못했다. 김진희 녹색소비자연대 실장은 “갈수록 편리함을 추구하며 할인점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한국을 점령한 대형 할인점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할 단계”라고 주장했다.

대형 할인점이 이 땅에 처음 들어온 지 13년, 경북 경산에는 6월15일 317번째 마트가 문을 열었다. 어느새 한국은 이마트의 나라가 됐다. 이마트 체제가 확산시킨 소비자 지상주의의 화살은 언젠가 소비자 자신을 겨냥할지도 모른다. 윤리적 소비는 과연 달성 불가능한 습관일까. 대형마트 해고노동자이자 대형마트 소비자인 최옥화씨는 그 물음을 가슴에 품고 마트를 다닌다.


“신세계가 2억1천만원 준다고 했다”

금품 제공 폭로한 이마트 노조간부, 삼성가의 전통인가

대형 할인점에 노조는 적이다. 노조가 결성되면 최저 판매가를 지탱해주는 저임금을 잡아둘 수 없고, 노동쟁의로 매장 이미지가 타격받는다고 생각한다. 할인점 운영의 전형을 보여준 월마트가 1962년 설립 뒤 40년 이상 노조 설립을 막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최옥화 경기일반노조 신세계 이마트 분회장은 6월7일 인터뷰에서 “신세계 쪽이 지난해 1월 노조를 탈퇴하고 사표를 쓰는 대가로 2억1천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해 1월11일 삼성전자 직원 홍두하(43)씨가 폭로한 이래 두 번째 나온 범삼성가의 ‘금품 제공’ 주장이다.

당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 수원공장 세탁기 개발실에서 근무하던 홍씨에게 노조 탈퇴와 사직을 조건으로 2억5천만원을 건넨 지급 확인서와 홍씨의 통장 사본을 공개했다. 홍씨는 이 자리에서 “2004년 9월 삼성전자의 한 차장이 노조를 탈퇴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최옥화씨 등 3명이 금품 제안을 받은 것도 이즈음이다. 그는 “밤 9시쯤 수지점 남자 탈의실에서 신세계 본사의 한 과장이 내려와 ‘월급이라 생각하고 1~10월까지 1천만원씩 1억원을 주고, 이와 함께 2억원도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신세계 과장은 “일단 부산비치호텔로 가자” “좋은 일자리를 알아봐줄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고 최씨는 증언했다. 이 제안을 듣고 최씨는 황당해하며 “그럼 50억원을 주라. 어려운 사람이라도 도와주게”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최씨가 되레 금품을 요구했다는 말이 나와 항의했다고 최씨는 말했다.

얼마 뒤 삼성전자 홍두하씨 폭로사건이 언론에 터졌다. 신세계 쪽에서는 더 이상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흔들린 최씨는 추석 즈음 신세계 과장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났다고 털어놨다. “돈을 받고 나가겠다고 했어요. 다른 할인점에서도 취직이 안 될 테고…. 내가 사람들을 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총대를 메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다행히 그는 다음날 바로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취소했다. 민주노총에서 희생자구제기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취재진은 신세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홍보실을 통해 이야기하라”며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했다. 신세계 홍보실 관계자는 “최씨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일개 과장이 그런 제안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현재 최씨 등 3명은 신세계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최씨 등에 대한 계약 해지는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이미 정직 3달을 받아 취업 규칙상 해직 사유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린필드 캠페인을 아는가

25년 동안 경제적·환경적 이유로 대형마트와 싸워온 시민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그를 “월마트 제1의 적”이라고 일컬었다. 알 노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그린필드에서 월마트를 막아낸 전설적 인물로 통한다. 대형 할인점에 대항하는 지역사회 운동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어떻게 월마트 반대운동에 뛰어들게 됐나.

=올해 14년째다. 내 고향인 매사추세츠주의 그린필드에 월마트가 지점을 내려 했던 1993년이다. 월마트는 공장용지를 상업용지로 바꿔 건설 공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월마트가 창출한 일자리만큼 고용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민 투표가 이뤄졌다. 주민들은 용도 변경에 반대하는 쪽을 선택했고, 월마트는 물러났다. 그린필드 캠페인은 세계적인 이야기가 됐다. 나는 그 캠페인을 주도한 사람이다.

미국에서 월마트 반대운동의 역사는 얼마나 됐나.

=지난 25년 동안 시민들은 대형마트에 싸워왔다. 경제적·환경적 이유가 있었다. 대형 할인점은 소도시와 마을의 고유한 지역색을 사라지게 했다. 더욱이 경제적인 혁신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단지 수십만 에이커의 땅을 비생산적인 땅으로 바꿔놨을 뿐이다. 월마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도 있다. 월마트 노동자들은 대부분 학생이거나 노인들이어서 조직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물밑에서 월마트 노동자들을 ‘월마트노동자협회’로 조직화하는 움직임이 있다. 월마트는 노조 조직을 위한 어떤 활동도 금지하고, 적발되면 바로 해고한다. 캐나다에서는 노조 조직화를 허락하느니 점포를 폐쇄하기까지 한다.

월마트 반대운동의 성공 가능성은.

=그동안 300곳에서 할인점을 저지시켰다. 월마트는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했다. 독일에서 점포를 줄이고 있다. 이것은 월마트가 모든 곳에서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월마트와치(http://walmartwatch.com)에 가면 월마트와 싸우고 있는 ‘배틀 마트’들이 소개돼 있다. ‘월마트 배틀 플랜(투쟁 계획)’을 보면 월마트와 싸우는 우리의 전략을 알게 될 것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3794 2006-06-2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마트는 알바와 아줌마가 일군기업이죠. 앞으로 이마트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가정의 대부분의 수입이 학원으로 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전혀 생산적이지도 않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지도 않는 학원이 날로 커지는게...쩝

balmas 2006-06-2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이마트를 별로 이용해보지 못해서 잘 몰랐는데,
이마트의 위세가 대단하네요.
학원으로 나가는 수입이 정말 많긴 합니다.
(사실 저도 그 돈으로 공부를 하긴 했지만서도 ... -_-a)

가넷 2006-06-2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이마트를 다녀왔는데.... 이것도 퍼가서 보겠습니다..~^^;

비로그인 2006-06-2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 님도 논술 수업을 하셨나 보네요...

저는 모 논술 학원에(나름대로 좌파인 척 하는) 250여만원을 퍼준 뼈 아픈 기억이 있어서
"논술 학원=도둑놈 집단"이란 판단이 있습죠...
학부모들의 애간장 태우면서 돈을 긁어들이는 기법이
대단하더군요...

물론 발마스 님 같은 분이 하면 갓 학부 졸업한 아르바이트 강사
하고는 차원이 다를 듯 하지만요...

balmas 2006-06-2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 예, 그러셈~
자꾸때리다님/ 꽤 오래 했죠. 한 6-7년 가량?
사실 논술 수업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한계가 많죠.
특히 수능 끝나고 하는 집중 논술 강좌는 더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 그나마 좋은 논술 강의는 그런 것 같아요.
문제 잘 설명해주고, 학생들이 글을 여러 편 직접 써보도록 지도해주고
학생들이 써온 글을 성실하게 첨삭해주고, 이 정도만 해주면
학원 논술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한 거라고 봅니다.
배경지식강좌네 어떻네 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 철학자들에 대한
개론적 지식들을 팔아먹는 강사들이나 학원들은 좀 문제가 있죠. -_-;
 

 

관타나모 고문, 왜 하는지 아시나요?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25〉조직적 가혹행위와 심리전

 

 

  2006-06-23 오후 6:21:23

  2003년 8월 미국 워싱턴의 펜타곤(국방부) 건물에선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미군 특수작전국 고급장교들이 본 영화는 '알제리의 전투'. 1965년 이탈리아 영화감독 길베르토 폰테코르보의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흑백영화다. 펜타곤에서 '알제리 전투'가 상영될 무렵, 이라크 주둔 미군은 게릴라들의 매복공격으로 날마다 사상자를 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던 펜타곤 지휘부가 영화를 본 까닭은 무엇일까.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알제리 사람들이 8년 동안(1954~62년) 벌였던 독립전쟁은 폭탄테러와 살륙으로 얼룩졌다. 알제리 게릴라 조직인 FLN 지도부는 폭탄테러전술로써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과 일반 프랑스 시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죽이려 했다. 그럼으로써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이제 그만 알제리에서 손을 떼자"는 여론을 일으킨다는 전략이었다.
  
  영화 보고 얻은 힌트
  
  FLN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지성들은 "알제리를 독립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 장군은 프랑스군을 알제리에서 철수시켰다.
  
  펜타곤 고급장교들이 '알제리 전투' 영화를 본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들은 이라크 반미 저항세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고 누가 지도자인지 몰라 답답해했다(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군은 이라크 게릴라를 포로로 붙잡으면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야 했다.
  
  그 영화 속에서 프랑스 특수부대는 알제리 도시게릴라들을 붙잡아 물고문, 전기고문, '통닭구이'(사람을 전기구이 통닭처럼 막대기에 묶어 공중에 달아매 놓고 하는 고문) 끝에 게릴라 점조직 정보를 캐내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거기서 펜타곤은 게릴라 조직 분쇄를 위한 힌트를 얻었다.
  
  펜타곤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몇 달 뒤 큰 파문이 터졌다. 이라크 바드다드 서쪽 교외에 자리 잡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몇몇 미군병사들의 잔혹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바깥세상에 알려졌다. 포로학대는 그들로부터 정신적 항복을 받아내, 미군이 바라는 정보를 끄집어내기 위한 심리전에 다름 아니었다.
  
  아부 그라이브와 닮은 꼴
  
  정보를 얻기 위한 수감자 고문이란 측면에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과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는 닮은꼴이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관할하다가 2003년 가을 이라크의 악명 높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 책임자로 옮겨갔던 제프리 밀러 미 육군 소장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미군은 매우 가치 있는 정보들을 거둬 들였다"고 강변했다. 이 대목에서 의문점이 생겨난다. 수감자들은 그냥 순순히 '정보'를 털어놓았을까?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와 마찬가지로 관타나모의 미 경비병들은 수감자들에게 일상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수감자들은 '적성 전투원'으로 분류돼 포로 대우를 못 받았다. 관타나모에 2년 넘게 갇혀 있다가 풀려난 영국 국적의 두 사람(아시프 이크발, 루할 아흐메드)이 2004년5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보낸 편지는 관타나모에서의 폭력이 어느 정도 심각하게, 그리고 자주 벌어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8~9명의 미군병사들이 수용소 건물 안으로 몰려 들어왔을 때, 그 수감자는 바로 우리 곁에 누워 있었다. 당시 그는 복부수술을 해서 배가 성치 않았다. 미군들은 군화발로 그의 배를 발로 차고 목을 짓눌렀다. 그의 얼굴은 마루 바닥에 대인 채 군화발로 짓뭉개졌다. 미 여군 한 명도 폭행에 끼어들어, 그의 성치 않은 배를 발로 찼다."
  
  "우리 시대의 굴라그(Gulag)"
  
  쿠바의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는 2002년 1월 문을 연 뒤로, '국제법을 무시한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비난을 들어 온 곳이다. 관타나모 포로들은 변호사 접견은 물론 정당한 재판절차를 박탈당한 채 하릴없는 나날을 보내 왔다. 수감자들은 공정한 재판을 열 것과 수용소 안의 가혹행위들을 문제 삼아 여러 차례 단식투쟁을 벌여 왔으나, 요구는 번번이 묵살됐다.
  

▲ 쿠바군이 관할하는 관타나모의 한 고지에서 내려다 본 문제의 관타나모 미군기지. ⓒ김재명

  국제 인권단체들은 가혹행위, 국제법을 무시한 장기구금 등 인권침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들의 석방을 촉구해 왔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굴라그(Gulag, 옛소련의 정치범들을 수용한 강제노동수용소)라 일컬었다(현재 수용인원은 460명).
  
  이미 알려진 바처럼, 지난 6월10일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안에서 수감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2명, 예멘 국적 1명으로 알려진 자살자들은 재판도 없이 바깥세상과 격리돼 지내는 수감생활에 좌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블레어 "없애야 할 변종"
  
  그곳 포로수용소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안에 있는 격리공간이다. 해군기지의 이름은 '엑스레이 기지'(Camp X-ray). 이 해군기지는 펜타곤의 서류엔 GTMO로도 표기된다. 미군들 사이에선 발음 나는 대로 이 기지를 흔히 '지트모'(Gitmo)로 일컫는다. 현재 기지 안에는 군인 1000명, 관련 미국인 2000명이 머물고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관련 혐의를 받는 포로들을 격리시킨 별도의 삼엄한 수용소의 이름은 '델타 기지'(Camp Delta)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비난이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도 관타나모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2001년 아프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비롯, 미국의 군사적 강공책을 함께 펴 온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 관타나모 수용소를 '없애야 할 변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자살사건을 계기로 유럽국가들과 인권단체들의 수용소 폐지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한층 커가는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관타나모를 폐쇄할 뜻을 전혀 내비치지 않는다. 인권 변호사들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 12월30일 서명함으로써 발효된 '수감자 처리법'을 맹비난한다. 이 법은 관타나모 수감자가 미 연방대법원에 부당한 장기구금을 둘러싼 헌법소원을 내는 것조차 어렵도록 만들었다.
  
  아부 그라이브, 바그람, CIA 비밀수용소…
  
  9.11 테러 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세계 곳곳에 수감시설들을 운용해 왔다. 문제의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쪽 외곽에 자리잡은 바그람 기지(옛소련 군용비행장) 안의 수용소는 쿠바 관타나모와 더불어 미군이 반미 게릴라들을 잡아 가두는 공포의 장소로 꼽힌다. 풀려난 이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그곳들 모두에서 '전쟁범죄' 수준의 가혹행위가 저질러졌다.
  
  이들 말고도 또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폴란드를 비롯해 유럽 몇 나라에서 '비밀수용 시설'을 운영, 논란을 빚어 왔다. 6월초 유럽연합(EU)의 하부기구인 유럽위원회는 한 조사보고서에서 "미국이 테러용의자를 불법적으로 가두는 비난받을만한 네트워크(reprehensible network)를 동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에 걸쳐 만들어 왔다"고 지적했다.
  
  "쿠바군 해군기지로 거듭나야"
  
  지난해 2월 쿠바 관타나모로 가봤을 때, 현지 쿠바 사람들의 반미감정이 높은 데에 새삼 놀랐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남의 나라(쿠바) 땅 한 귀퉁이를 무단으로 차지하고, 전쟁포로들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는 나라…. 당신은 그런 나라가 초강대국인 미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는 주권국가인 쿠바 영토 안에 파고든 사실상의 식민지다. 지난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필리핀과 더불어 쿠바를 빼앗으면서, 관타나모 만 일대는 미 해군기지로 개발됐다. 쿠바 카스트로 정권은 1959년 혁명에 성공한 뒤 줄곧 관타나모를 돌려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못들은 체 하고 있다.
  
  관타나모 현지에서 만난 쿠바 사람들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가 우리 손으로 돌아와, 쿠바 해군기지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미국의 태도로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미군 당국은 올해 연말까지 그곳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제2의 수감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관타나모에서의 전쟁범죄 시비가 사라질 날은 언제쯤일까?
  
  (이 글은 6월23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필자의 칼럼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kimsphoto@hanmail.net
   
 
  김재명/프레시안 기획위원,국제분쟁전문기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6-06-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식 시설을 갖춘 제2의 수감시설은 넓은 자기네 땅에다 짓지
왜 남의 나라 땅을 마음대로 한답니까?
비밀수용시설 실태 무시무시하네요.

balmas 2006-06-2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예요.
저런 끔찍한 고문 시설을 남의 땅에
계속 짓는 걸 보면 미국놈들 참 대단합니다 ...
 

사회화와노동
2006.06.21 |315호

이라크 학살 만행은 미군의 핵심 전술이다
시작부터 학살전쟁이었던 이라크 전쟁


…전쟁이라는 커다란 틀 내에서의 여러 행위들은 그 행위 자체가 다른 효과들을 차례로 낳는다. 하디타 학살처럼 뉴스에 보도되는 직접적인 학살 이외에도 미군의 점령 정책과 각종 보복 수단, 그리고 이라크 내에서의 테러와의 전쟁 그 자체가 간접적인 학살들을 끊임없이 유발하는 것이다. 경제적 제재로 인한 생필품 공급의 어려움, 난민의 발생 및 이 난민들의 인간적 존엄성이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것, 각종 약탈-파괴-폭력 행위들, 종족-지역 간의 갈등 유발, 다양한 방식의 비공식 전투 행위들, 그리고 화학물질로 인한 식수와 토지의 오염 등이 이른바 전투행위의 ‘부수적 효과’로 따라온다. 그러나 오히려 간접적인 학살이 직접적인 학살에 비해 그 규모와 파괴력에서 훨씬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과연 ‘부수적 효과’로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략> 이라크인들은 1991년에 벌어진 전쟁 후 10여 년 간 지속되었던 경제봉쇄로 인해 이미 간접적인 학살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2003년의 전면적인 침공 이후 다양한 측면에서의 학살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 재건을 명분으로 한국의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지만, 자이툰 역시 미군의 학살 전술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쟁 목표 자체가 학살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점령 정책 자체가 학살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이미 미국이 심각하게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로 파병을 했던 국가들이 속속 철군을 결정하고 있고 이미 수많은 군대가 이라크를 떠났다. 2006년 3월 부시 미대통령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09년 1월까지 미군이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 것이라 밝혔다. 참혹한 학살들이 앞으로 적어도 3년이나 더 지속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살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이 진행 중인 테러와의 전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버티고 있는 미군과 영국군 등 점령군들이 즉시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절친한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한국의 자이툰 부대 역시 지금 당장 완전 철수해야 한다. 미국이 벌여놓은 학살 전쟁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음을 보여주는 ‘파병 랭킹 3위’ 기록은 분명 한국인들이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자세히]


6월 19일(월) - 6월 25일(일) 사회진보연대 주요일정

6월 22일(목)
14:00 하반기 비정규 투쟁을 위한 활동가 토론회 (주최: 비정규공투본, 장소: 미정)
19:00 '한미FTA와 노동자의 삶‘ 토론회 (주최; 교수학술공대위, 장소: 민주노총)

6월 23일(금)
09:00 최저임금집회 (장소: 논현동 최임위 앞)

6월 24일(토)
15:00 하디타 학살 규탄! 이란공격 반대!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자이툰부대 철수! 6.24 반전행동 (장소: 마로니에 공원)
19:00 평택전쟁기지 확장 반대 서울 촛불문화제

6월 25일(일)
10:00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세미나 4차 모임
14:00 사회진보연대 평택지킴이 모임
14:00 (또는 15:00) 압둘 사쿠르 석방촉구집회 (주최: 이주노동자연대회의, 장소: 종로1가 삼성타워)





[마틴 쇼] 위험전가 군사주의, 소규모 학살과 전쟁의 역사적 합법성

[임필수]노근리, '군사작전'으로서의 양민학살

사회진보연대
http://www.pssp.org | pssp@jinbo.net
(140-801)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TEL:02-778-4001~2 | FAX:02-778-40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전쟁, 1949년 38선 충돌 통해 형성됐다"

[화제의 책] 정병준의 <한국전쟁>, 25년 만에 '커밍스 아성' 허물다

 

미국 워싱턴 근교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가면 세계적 자료수집가이며 국보급 연구자인 재미 사학자 방선주(73) 박사를 만날 수 있다. 깡마른 체격에 평안도 사투리가 인상적인 노인이다. 평소 방 박사와 같이 문서 속에 파묻혀 정년 없이 연구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소원이었는데 언제나 실현이 가능할지 꿈만 꾸면서 게으름을 탓하고 있다.
  
  방 박사는 한국 현대사의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에 기여하신 어른이다. 이번에 간행된 노작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돌베개 펴냄)을 지은 정병준 목포대 교수도 방 박사의 노고와 인도가 없었다면 아마 이러한 역작을 산출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5년 만에 '커밍스의 아성'을 무너뜨리다
  

▲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한국전쟁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국학자를 들라면 단연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첫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1981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된 <한국전쟁의 기원> 제1권은 국내의 연구자들이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었다. 식민지 시대와 광복 직후의 혁명적 상황을 연결시킨 탁견이나 인용한 자료들의 방대함을 보면서 경탄해 마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70년대에 비밀 해제된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미국 문서뿐만 아니라 북한 노획 문서까지 폭넓게 활용하여 자료에 목말라 있던 1980년대 국내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전범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연구에서도 당연히 허점은 있었다. 사료는 누구보다도 많이 보았다지만 이를 하나의 시각으로 재단하면서 취사선택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1981년의 시점에서 이렇게 훌륭한 저작을 내놓았다는 점에 그 허점들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기에 오랫동안 최고의 권위를 지켰다. 그러다가 1990년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을 역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간행하면서 그의 명성이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병준 교수의 최신 저작에 의해 그의 아성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선언해도 될 듯하다.
  
  정병준 교수는 커밍스 교수가 1990년대 중반에 비밀 해제된 구소련 문서를 연구에 반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이전에 간행되었으니 당연한 이런 한계는 커밍스 교수의 연구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소련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큰 공백으로 남았다. 정 교수는 커밍스 교수의 연구에 대해 "미국의 역할과 입장에 대해서는 가설-추정은 물론 심지어는 모자이크까지 동원하여 규명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입장과 역할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북한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구소련 문서는 그간 은폐되어 왔던 김일성의 남침에 대한 스탈린(과 모택동)의 승인과정에 대해 밝혀주고 있다. 물론 구소련 문서는 김일성의 역할을 과장하고 스탈린의 역할을 회피하려 했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소련의 개입 흔적을 다 지울 수는 없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도발을 제어했으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김일성의 전면 남침을 승인하여 최종 결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개입을 철저히 은폐하는 데에 성공했다.
  

  남이 북의 남침을 유도했다?…"사료에 근거 두지 않은 부실한 주장"
  
  정병준 교수는 "남이 북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커밍스 교수의 또 다른 핵심 주장도 반박하고 있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에서 김백일과 백인엽이 '반격'이 아닌 '점령'을 목표로 1950년 6월 24~25일 저녁 해주를 공격했다는 추정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었다. 남한의 정보당국이 늦여름 북의 기습 공격을 인지하고, 국경선을 침범해 북의 기습 공격을 앞당기는 한편 한국군의 신속한 철수를 꾀했다는 것이다. 즉 선제공격으로 북한군을 끌어들인 후 신속하게 군대를 철수하고 미국의 개입을 획득하려 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정병준 교수는 "문서를 통해 보건대 당시 남한은 자신의 공격 의도에 스스로 오도됨으로써 북의 대규모 공격 징후를 무시했다"며 커밍스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남한은 신속하게 철군을 하기는 했지만 선제공격을 가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공격을 유도함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획득할 만큼 명민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정병준 교수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남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결국 정보부서의 수많은 남침 경고를 무시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1949년 1월부터 7월까지 군사력 면에서 북에 비해 우위에 있던 한국군은 38선에서 북을 자주 공격했으며 따라서 그 관성 때문에 북의 남침 징후 역시 무시했다.
  
  정병준 교수는 "커밍스가 핵심적인 주장을 가설, 잘못된 자료 인용, 오독에 기반을 둔 추정에 의지했다"고 평가했다. 커밍스 교수는 그간 남한의 공식 전쟁사를 진실을 왜곡한 엉터리라고 비웃었지만 정작 커밍스 교수의 남침 유도설 역시 그것을 지지할 만한 사료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소련 문서, 선별노획문서 등을 접할 수 없었던 커밍스 교수의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방선주 박사의 기여가 빛을 발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정병준 교수는 미국 문서와 소련 문서는 물론 방 박사에 의해 1990년대 초 발굴된 신노획문서(선별노획문서)까지 포함한 북한노획문서를 다각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해 균형 잡힌 서술과 평가를 기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커밍스 교수의 권위를 일거에 무너뜨리며 "1949년 38선 충돌이 전쟁을 형성했다"는 주장에 이르게 된다. 그럼 1949년 38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 국방군 포로수용소포로병 궐기대회 ⓒNARA

  1949년 38선 충돌이 전쟁을 형성했다
  
  1949년 1월부터 7월까지 병력과 무장력 면에서 앞서 있던 남한은 38선에서 주도적으로 공격했으며 북한은 비교적 소극적으로 응전했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소규모의 병력이 충돌했으며 5월부터 7월까지는 연대급 전투도 발생했다. 1월 15일 시작된 남한의 초기 공격에 대해서 당시 주한미군 정보당국은 당시 방한한 유엔한국위원단과 세계 앞에 북한의 호전적 대응을 노골적으로 유도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미국의 지원을 유지·확대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대규모 북침을 계획했다는 근거는 없다.
  
  1949년 6월 미군이 철수하자 완충지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1949년 7월 남한의 대북 공격설이 유포되었고 북한은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해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소위 7월 공세와 9월 공세라는 대규모 무장 유격전을 전개했다. 이러한 무장유격전은 민중봉기를 유도하는 한편 정부병력을 공비준동지역에 고정배치토록 함으로써 38선 지역의 국군병력이 약화되도록 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었다. 내부 전복을 위한 게릴라였던 것이다.
  1949년 8월 북한이 대한민국과 병력 및 장비 면에서 대등한 수준에 이르자 38선 부근에서 주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급격하게 변화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남한의 북침 가능성과 공격 징후에 대한 소련의 보고는 뚝 끊겼다. 8월 4일 북한은 3개 대대 병력을 동원해 옹진을 공격했으며 대한민국 국군은 옹진에서 궤멸 직전까지 몰렸다.
  
  소련은 평양 주재 슈티코프 대사를 통한 김일성의 8월 12일자 개전 요청에 대해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차원에서 심각하게 검토했다. 9월 2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현 시점에서의 남침을 승낙하지 않으면서 북한 인민군을 강화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에 슈티코프는 10월 4일 김일성-박헌영에게 이런 결정을 통보했으며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북의 전쟁 개시에 대해 검토할 정도로 사안이 구체화되기는 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북한은 1949년 10월 38선 이북에 있는 은파산 탈환에 나서는 등 이 지시에 완전히 복종하지는 않았으나 미-소 양국의 강력한 제어로 인해 더 이상 확전되지 않았으며 1949년 12월부터 1950년 5월까지 중대급 이상이 동원된 충돌은 없었다. 1950년 3월부터 38선 분쟁이 재개되었고 5월 5일부터 6월 16일 사이에 주당 평균 약 14건의 충돌이 있었으나 회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충돌은 없었다.
  
  1950년의 38선 충돌은 대부분 정찰과정에서 일어난 소규모 충돌과 총격전 수준이었다. 따라서 국군은 38선 충돌이 소강 상태에 들어갔던 6·25 직전까지 남한 내부의 게릴라 소탕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에 1949년 5월부터 8월까지 38선 무장 충돌은 실질적으로 '작은 전쟁' 수준까지 고조되었다. 중대급 이상의 38선 충돌이 잠시 주춤하여 전쟁으로 바로 직결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은 소규모의 38선 충돌 지속을 통해 병력 증강, 실전급 훈련, 무장 강화를 이루었으며 웅진 반도에서의 전투 경험을 토대로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이라는 개전 형식을 창출하는 등 핵심적인 전쟁 계획과 전쟁관을 수립했다. 따라서 6월 25일 북한의 공격은 38선 충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 노획된 북한군의 T-34형 탱크 ⓒNARA

  소련의 깊숙한 개입 증명한 부분 백미…한국전쟁 연구의 한 귀결
  
  이 책의 압권은 북한이 전쟁 직후 공개해 선전에 활용했던 '경무대에서 노획한 문서철'과 북한의 공격 명령서 수 종류를 한 곳에 모아놓고 분석하면서 북침이 아닌 소련의 깊숙한 개입을 증명한 부분이다. 소련이 작전 명령을 직접 작성하면서 한국전쟁에 깊숙이 개입한 것을 매우 균형 잡힌 분석으로 만 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한편 정병준 교수는 그간 국내의 다른 한국전쟁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커밍스 교수의 연구 성과를 넘어섰다고 주장해 온 박명림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나남 펴냄)에 대해서 "전통주의에 입각해 결론을 맞추고 사실을 분석했으며, 정보 자료를 다루면서 정보원의 가치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등 자료를 다룬 방법과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김영호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두레 펴냄)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인식하는 데에 사용되어 온 '롤백'이라는 개념을 스탈린의 대한정책-대미정책에 적용한, 설득력 있고 독특한 연구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정병준 교수 본인의 연구에는 약점이 없는가? 자료에 의해 치밀하게 논증되다 보니 이 책에는 허점이 거의 없다. 전통주의나 수정주의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았으니 더 이상 이념 논쟁의 대상이 될 여지도 거의 없어 보인다. 단지 미국 고위 당국자가 남침 정보를 무시한 것이 음모가 아니라 오판이며 결국 북한에 의한 불의의 기습 남침으로 이어져 미국의 '정보의 실패'가 초기대응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부분은 음모설과 마찬가지로 자료적 근거가 확고하지는 않으며 역시 추론에 불과한 측면이 있어 더 세밀한 논증이 필요하다.
  
  정병준 교수는 특정 이론이나 가설, 방법론보다는 자료에 근거해 사실을 규명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이론과 자료에 오도되거나 미혹되지 않고 역사적 진실 규명을 최우선에 둔 것이다. 빛바랜 자료들에서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정 교수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1950년 한국의 비극을 느끼면서 잠 못 이뤘다는 정병준 교수의 노작을 읽으며 이제 독자들이 불면의 밤을 보낼 때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불면의 밤을 통해 역사를 재평가하고 과격한 행동가나 무고한 희생자 모두를 한 곳에 모아 해원해야 한다.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6-2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껏 퍼왔더니 라주미힌님이 먼저 퍼오셨네 ... -_-;

헤르베르트 2006-06-25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열라 재밌을거 같은데 가격이 쉽게 허락하지 않네요. -_-;

로드무비 2006-06-2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우셔라.ㅎㅎ

로드무비 2006-06-2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간다는 말 깜빡했네요.^^

balmas 2006-06-2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르베르트님/ ㅎㅎㅎ 과연 열라 재밌을까요? 좀 지루하지 않을까? ^^;
로드무비님/ ㅋㅋ 감사합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6-22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딱 그 시간에 모임이 있군 ... -_-;

푸하 2006-06-23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임은 반전에 의미있는 모임이 될 꺼에요.^^;

balmas 2006-06-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런데 다른 장소에서 있는 모임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