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출간될 제 책 [을의 민주주의]의 "서문"을 올립니다. 


그동안 번역서를 여러 권 내고, 편저서라든, 공저서도 여러 권 냈지만, 제 단독저서로는 이 책이 처음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을의 민주주의 1권] [을의 민주주의 2권] 이렇게 책을 낼까 생각했는데 


1권과 2권을 분리해서 각각 독자적인 구성과 제목을 가진 책으로 내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을의 민주주의]로 책을 내고, 


다른 원고들은 조금 더 작업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내년에 다른 제목으로 책을 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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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민주주의 서문

 

1

 

지난 해 가을과 겨울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의 열기에 힘입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18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5.18 광주 정신과 촛불혁명의 기반 위에서 탄생했다고 선언하면서 국민주권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이후 촉발된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로 인해 한반도가 살얼음판 같은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온 국민의 관심은 북한의 통치자와 미국의 통치자가 주고받는 살벌한 말의 전쟁에 쏠려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수동성의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우리 자신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상황,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자체가 타자에 의해 압도적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를 규정하는 이러한 외재적 조건은 내재적 조건과도 연결되어 있다. 지난 촛불혁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더욱 예측할 수 없고 불안한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수구세력과 언론이 촛불혁명 이후 급격하게 위축된 보수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이번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군사적 대결의 양상으로 몰고 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현재 당면한 위기 상황을 우리가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내부의 민주적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길임을 말해준다. 그것은 우리가 을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구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6개월 간 문재인 정부는 참신하고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사 실패와 정책의 혼란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는 이러한 다소 불안한 행보는 국민주권이라는 말이 지닌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국민이라는 말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편으로는 독재 정권에 순응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수동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이라는 말과 더불어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의 주체로 호명되어 왔다. 독재자들이나 야당의 정치지도자들 모두가 국민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나 2016년의 촛불집회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가사로 한 노래 헌법 제1가 널리 사랑을 받은 것도 국민이라는 말이 갖는 저항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하지만 우리가 국민이라는 말이 지닌 이러한 저항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성격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담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이라는 말에 담긴 동질성은 실제 국민을 구성하는 계급적, 성적, 지역적 차이와 대립을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및 사회화가 산출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10 : 90’, ‘1 : 99’ 같은 숫자로 표현되어 왔다. 이 숫자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극소수의 부자들이 점점 더 많은 부를 차지함에 따라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줄어드는 몫을 둘러싸고 더욱 치열하고 가혹한 경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에서 늘 피해자 내지 패배자의 위치를 강요당하는 것은 성적경제적사회적 약소자들이다. 또한 국민이라는 말의 전체성에는 다양한 개인들 및 소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차별이 식별되고 정정될 여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말이 정상성의 기준이 될 때 그것에 미달하는 사람들은 배제와 차별, 무시의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이라는 말에서, 그리고 국민주권이라는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들을 정치적으로 재현하고 대표할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이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을의 민주주의를 이제 사고하고 실험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촛불혁명이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신기원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2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을의 민주주의에 관한 화두를 제기해보려고 한다. 내가 말하는 을의 민주주의가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해서는 3부에 수록된 글들에서 충분히 논의했으므로, 여기에서는 왜 내가 을의 민주주의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제시해보겠다.


최근 몇 년 동안 갑과 을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담론으로 부상했다.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임금복지안정성지위 면에서 심각한 차별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장애인 혐오, 다문화 혐오 등 각종 혐오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소수자, 약소자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의 피해자인 영세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 및 알바생들, 교수의 횡포에 시달리는 많은 대학원생들, 서울 중심의 나라에서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 되는 지방 주민들 ...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문방송 및 SNS의 주요 주제가 되어 왔고, 여전히 그렇다. 최근 며칠 사이에도 의사 교수의 횡포에 시달린 수련의들의 이야기, 제빵 프랜차이즈의 제빵기사와 가맹점주 이야기,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이야기, 현장 실습 도중 사망한 고등학생에 관한 이야기 등이 신문방송의 사회면 주요 기사로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면, 각종 혐오와 폭력, 갑질과 무시의 대상이 되는 을들이 사실 대다수 국민 또는 시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들 대부분은 을의 지위 때로는 을의 을의 지위에 놓여 있다. 때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을이기도 하고, 정규직이지만 여성으로서의 을이기도 하며, 또는 정규직이지만 여러 종류의 경쟁과 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정규직으로서의 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일용직 노동에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이주노동자 내지 불법체류자로서 또는 성적 소수자로서 가중된 을의 지위에 놓여 있는 을 중의 을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을의 상황에 있는 이들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협력하여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을로부터도 갑질과 무시의 대상이 되는 을의 을이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갑질을 구조화하고 확산시키는 사회구조 및 권력 관계를 개혁하도록 공동으로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며, 사실 많은 지식인, 활동가, 시민들이, 때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에서, 또 여성 및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맞서, 장애인들의 인권과 지위 향상을 위해, 그리고 그밖에 다른 분야, 다른 싸움의 장에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값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을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 무시와 배제가 지속되고 있다면, 그러한 노력에 더하여 과연 우리 사회의 어떤 구조와 제도, 문화와 관행들로 인해 이러한 갑질의 행태가 지속되는지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혹시 이러한 갑과 을의 관계는 일시적인 현상이거나 특정한 분야 및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하거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 문화의 핵심과 연결된 근본적인 쟁점이 아닐까? 특히 노동자 해방을 부르짖는 민주 노조 내에서도 끊임없이 여성 차별과 성추행의 문제가 제기된다면, 진보적 지식인들마저도 자신들의 제자인 대학원생에 대해 일상적으로 갑질을 행한다면, 반정부 투쟁을 위해 여성 폭력이나 혐오 같이 사소한 문제는 덮어두도록 강요된다면, 더욱이 여성의 평등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 동성애에 대한 배제나 주변화를 조건으로 한다면, 우리는 해방을 말하고 진보를 주장하고 평등과 자유를 내세우지만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해방, 진보, 평등과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과 주변화, 침묵과 배제를 늘 전제한 것,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구속을 전제한 해방, 반동을 조건으로 한 진보, 누군가의 불평등과 억압을 수반하는 평등과 자유인 것은 아닌가?


따라서 나는 갑과 을의 문제를 특수한 사회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주변적인 문제로 이해하거나 갑질’, ‘을의 눈물같은 담론을 왜곡된 담론 내지 을질하는담론이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좀 더 보편적인 쟁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해방운동, 급진적인 변혁운동이 존재해왔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을로서의 을의 해방, 1부에서 다룬 시인 김남주의 표현을 빌리면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이/아직까지 한번도 맛보지 못한/자유에 이르지는 못했다. 보편적인 해방과 근본적인 사회 변혁,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내세웠지만, 그것은 때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전도되는 것이었거나 민족해방의 투사가 새로운 독재자로 역전되는 것이었으며, 모든 국민의 승리가 우리 편의 승리로 축소되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그러한 해방 투쟁들이 갑과 을의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거나 간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해방의 정치, 또는 진보 정치는 갑과 을의 관계를 자신의 중심 과제로 삼아야 할 텐데, 이러한 과제는 단순히 보편적인 정치를 넘어서는 보편적이면서 독특한,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정치(이 책 5장의 보론 개인-보편적이면서 독특한참조)만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새로운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정치에 대한 혁명적 개조를 요구하는 것이다.

 

3

 

1부에는 세 편의 글을 수록했다. 1980년대의 대표적인 민중시인 김남주, 우리 시대의 비극 세월호 참사, 그리고 포퓰리즘을 다룬 이 세 편의 글은 별로 연관성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내 생각에는 뚜렷한 주제 상의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민중의 분할이라는 문제, ‘과소 주체로서의 민중, 이질적이고 갈등적인 을들의 집합으로서의 민중이라는 문제다.


이제는 진보 지식인들조차도 거의 읽지 않는 김남주의 시들을 읽어보면,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민중 해방에 대한 뜨거운 열망의 한 편에 민중에 대한 배신감, 진보 정치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진정한 해방의 정치에 대한 갈구만큼이나 깊은 그 정치의 불가능성에 대한 비극적 자각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민중은 근본적인 해방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며, 진보 정치 역시 민중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통찰에서 나오는 자각이었다.


이 문제를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하려고 한 사람이 이제는 고인이 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였다. 라클라우는, 우리나라 보수 언론 및 정치가들이 복지 정책이나 진보 정책을 공격할 때 주로 대중영합주의라는 뜻으로 써먹는 용어, 따라서 정쟁의 수사법이 된 이 용어의 깊은 의미를 살려내서, 이를 진보 정치 전체의 중심적인 개념으로 이론화했다. 라클라우가 이해하는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정치가 민주주의이기 위해서는 전제하지 않을 수 없지만(인민주권 내지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한에서) 동시에 현재 민주주의의 지배적인 정치 제도를 구성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그것이 실제로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될 수 있는 한 억제하고 배제하려고 하는 정치의 주체, 곧 인민(people) 내지 민중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의 문제는 어떻게 민주주의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 내지 민중이 자유주의 정치 질서 내로 포함되면서 동시에 배제되는가 또는 내적으로 배제되는가 하는 문제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과소 주체로서의 인민 내지 민중이라는 문제, 따라서 을들의 분할과 갈등이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지난 해 가을과 겨울의 촛불집회와 이른바 태극기집회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 또는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로 표출되고 이른바 미러링메갈리아또는 워마드등과 같은 기표들로 나타나는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 사이의 또는 페미니즘 내부의 격렬한 젠더 전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을들의 분할과 갈등이라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민중은 진보 정치 및 민주주의 정치의 당연한 전제가 아니라 매우 문제적인 쟁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부에 수록된 글들은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여러 쟁점들을 고찰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주체화, 폭력 등이 2부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들이다. 나는 주로 에티엔 발리바르의 개념들과 문제의식을 전유하여 이 쟁점들을 살펴보려고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이론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을 우회할 수 없다. 그의 이론만큼 체계적으로 구성되고 학문적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이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체계적으로 전개된 그의 이론은 지난 몇 년 간 그 자신의 행보를 통해 잘 드러났듯이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더욱이 진보적인민주주의 이론으로 간주되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이론이다. 나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민주주의 이론과의 비교를 통해 이 점을 부각시켜 보려고 했다. 내가 볼 때 발리바르 이론의 강점은 민주주의의 봉기적 성격(또는 해방의 운동으로서 민주주의)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구성적 성격(또는 절차와 제도로서 민주주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최장집의 이론은 민주주의의 봉기적 성격을 포기하거나 최소화한 가운데 절차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만 배타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대중들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또는 그의 제자들이 촛불혁명이 지닌 봉기적 성격을 최소화하면서 그것을 하루빨리 제도 정치(‘적폐 청산에 반대하는 통합의 정치’)의 문제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중들의 해방적 봉기로서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는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오늘날에도 여전히 좌파 정치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의 주요 관심거리다. 특히 대중들의 반역이나 해방운동을 봉쇄하는 것으로 보였던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균열을 드러내고 아랍의 민주화 운동,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의 운동 등을 통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세계 질서와 지역 통치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이 표출되고 있는 만큼 더욱 그렇다. 하지만 봉기 그 자체는 늘 일시적으로 드물게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이러한 해방의 열망의 표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어떻게 이러한 봉기를 절차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내부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무정부주의적 시민성이라는 관념은 여기에서 생겨난다.


무정부주의적 시민성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세계시민적 시민성(cosmopolitan citizenship)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버마스 계열의 학자들이나 영미 권의 세계시민주의 이론가들이 주로 위로부터의 제도화 및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나는 한나 아렌트,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로 이어지는 이론적 흐름 속에서 이러한 위로부터의 세계시민주의와 구별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시민주의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내가 이를 무정부주의적 시민성이라는 좀 더 도발적인, 어떻게 보면 용어모순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려고 한 이유는, 이것이 담고 있는 아포리아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곧 이는 우리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개념이나 제도들로는 온전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며, 따라서 이를 제대로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개념들과 제도들(가령, 국민국가와 여기에 기반을 둔 시민권, 인권, 주권, 대표 등)의 근본적인 해체와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한편 봉기로서의 민주주의는 다중의 정치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그의 미국인 동료인 마이클 하트는 󰡔제국󰡕(2000), 󰡔다중󰡕(2004), 󰡔공통체󰡕(2008) 3부작을 통해 우리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좌파 정치이론 중 하나를 구성했으며, 그 중심에는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다.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 개념은 네그리가 자신의 유명한 저서 󰡔야생의 별종: 스피노자에서 권력과 역량에 관한 시론󰡕(1981)에서 재해석한 스피노자의 물티투도(multitudo)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해석은 여러 모로 혁신적인 것이었으며, 특히 이전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물티투도 개념이 스피노자 정치학 및 형이상학의 핵심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스피노자 연구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 철학 및 물티투도 개념에 대한 그의 해석은 다분히 편향적인 것이며, 이 개념에 기반을 둔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의 정치학 역시 여러 가지 난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계와 난점은, 이들과 더불어 다중 또는 대중들의 봉기적 역량이 민주주의 더 나아가 모든 정치의 토대를 이루고 있음을 믿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더욱 문제적인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정치에 대한 더 정확한 인식과 실천을 위해서도 그들의 관점에 담긴 문제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의 정치학의 중요한 한계 중 하나는 정치적 주체화의 문제를 제대로 사고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푸코가 개념화한 주체화 개념은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어휘 중 하나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충분히 인식되고 있지는 못하다. 주체화 개념이 중요한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이 개념은 예속화(assujettissement/subjection)가 지배 권력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지배 권력이 자신의 지배를 재생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예속화의 메커니즘 내지 기술을 통해 예속적 주체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튀세르와 푸코가 각자 이데올로기 이론과 규율권력 이론을 바탕으로 제시한 예속화 개념은 서양 근현대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주체가 자율적이고 주권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권력의 지배 장치의 효과라는 점을 드러내는 매우 전복적이고 도발적인 개념이다.


둘째, 이렇게 되면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급진 정치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 일반의 토대를 이루는 해방의 주체(프롤레타리아든 민중이든 민족이든 아니면 여성이든 간에)라는 가정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근대 정치 질서 내에 존재하는 주체는 정의상 지배 권력의 근간을 이루는 예속적 주체화의 메커니즘에 의해 생산된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와 푸코가 각자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다, 권력의 바깥은 없다고 말할 때 염두에 둔 것이 이것이다. 알튀세르와 푸코는 이른바 복지국가 내지 사회국가(또는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면 국민사회국가’)가 정착된 20세기 후반 서구 사회의 구조적제도적 조건을 이론화하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가 말해주듯 사회국가에서 개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국가와의 관계 바깥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는 계급 중립적이고 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국가이기 이전에 지배 계급 내지 지배 권력의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강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은 지배 계급 내지 권력의 이해관계를 강제하는 국가를 통해 탄생하고 살아가며 국가 안에서 사망하는 것이다.


셋째, 알튀세르와 푸코에 대해 기능주의 내지 허무주의라는 비판들이 제기되었지만, 내가 볼 때 이것이 해방의 정치 내지 급진 정치의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봉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급진 정치의 현실적 조건들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려 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곧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내지 규율권력(및 생명권력)의 작동이 오늘날 정치적사회적 관계의 보편적 조건이 되었다면, 이러한 조건 속에서 급진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따라서 예속화가 권력의 지배 메커니즘의 중심으로 이해되면, 급진 정치의 핵심 과제는 어떻게 이러한 예속적 주체화의 질서를 깨뜨리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이는 해방의 주체, 정치의 주체를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지 않고, 생산과 재생산 및 전화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 주체화의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로 삼고 있는 동시대의 철학자들이 바로 랑시에르와 발리바르이며, 나는 푸코와의 관계 속에서 이들의 작업을 비교, 고찰하고 싶었다. 이들 이외에도 주체화의 문제를 중시하는 여러 이론가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볼 때 랑시에르와 발리바르의 작업은 (급진) 민주주의의 새로운 개념화와 실천을 위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히 숙고해 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주체화를 그 가능성의 조건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시에 그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문제와 함께(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ism)의 관점에서) 사고하게 되면, 폭력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대의 폭력의 문제는 지배 계급 내지 권력의 폭력(또는 국가 폭력)과 이에 맞서는 피지배 집단의 대항 폭력의 관점만으로는 충분히 해명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많은 철학자이론가들이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터 벤야민이나 한나 아렌트 또는 자크 데리다의 저작을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들과 비교할 때 폭력의 문제에 관한 발리바르의 독창성은 내가 볼 때 극단적 폭력과 시민다움의 관점에서 폭력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극단적 폭력은 단순히 폭력의 규모나 강도 또는 잔인성이 극심한 폭력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내가 글에서 상세하게 밝히려고 했지만, 이 개념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나 푸코의 권력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체화의 ()가능성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극한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극단적 폭력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에서 또는 대규모 종교 분쟁이나 민족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일회용 상품처럼 취급하는 곳에서, 초월적 주체(이것이 하느님이든 민족이든 아니면 나라 경제이든 국가 안보등이든 간에)의 이름으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나타나는 폭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반()폭력의 정치로서 시민다움의 정치는 국가의 문명화와 봉기의 문명화, 따라서 정치 그 자체의 문명화를 요구하는 정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시민다움이라고 번역한 프랑스어의 시빌리테(civilité)나 영어의 시빌리티(civility)는 일상적인 용법에서는 그 자체로는 정치에 포함되지 않은 일상적인 예절이나 공공 도덕을 가리키는데, 발리바르가 마키아벨리의 시민적 삶”(vivere civile)으로서 치빌리타(civilità) 개념을 염두에 두고 시민다움의 정치를 극단적 폭력에 맞서는 정치로 제시한 것은 폭력의 문제가 시민들의 삶을 문명화하는 문제, 곧 갑과 을의 관계를 문명화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시민들의 삶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는 그 일상적 삶에 내재해 있는 극단적 폭력(‘갑질’)의 문제, 곧 시민적 주체성을 잠식하는 폭력의 문제를 주요 과제로 다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시민다움은 반폭력의 정치이자 윤리이며, 시민적 삶의 기술의 문제다.

 

4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내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이하 민연으로 약칭)의 인문한국(HK)연구단에 재직하는 기간(2008.2~2017.8) 동안 발표한 글들 중 일부를 선별한 것이다. 이 주제와 관련된 기존에 발표한 다른 글들 그리고 현재 작업 중에 있는 몇몇 글은 '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또 다른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민연에 근무하게 된 것은 여러 모로 나의 지적 작업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한국에 대해서, ‘한국학에 대해서 새로 눈을 뜨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민연 동료들의 작업과 토론 덕분이다. 만약 민연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준거에 대한 고민 없이 추상적인 보편성 위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편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한 철학들, 나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유럽 및 영미 철학자들의 문제가 사실은 철저하게 그들의 준거에 기반을 둔 그들의 철학이고 그들의 문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들 덕분이다. 따라서 나를 포함하여 한국에서 철학하는 이들이 일차적으로 숙고해야 하는 것은 그들과 나의 존재론적 괴리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그들을 우리의 맥락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변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우리의 기반 위에서 어떻게 보편성()을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역시 그들 덕분이다.


더욱이 민연의 동료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질적이고 낯선 공부를 하는 나에게 자신들의 관점을 수용하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올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묻고 도움을 청하고 나의 작업에서 무언가 배우려고 했다. 따라서 융합 연구학제 연구니 하는 관료적인 용어를 동원하지 않고서 내게 공동 연구가 어떤 것인지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역시 그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 책에 수록된 여러 글들은 여전히 너무 서구 중심적이고 유럽 중심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너무 추상적인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은 아마 앞으로 내가 이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지켜볼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무관심한 관심이 지난 10년 간 나의 공부를 이끌어온 중요한 동력 중 하나였음을, 깊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밝혀두고 싶다.


아울러 이 책은,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고 초보적이지만, 여기 수록된 여러 글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을 아끼지 않은 다른 동료들과 독자들, 그리고 여러 강의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수강생들과 지인들의 도움의 산물이다. 그들이 이 책에서 그들 각자가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


그린비 출판사의 여러분께는 다시 한 번 큰 빚을 지게 됐다. 여러 권의 번역서와 한 권의 편서를 내면서, 프리즘 총서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그린비 출판사의 친구들에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깊고도 넓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과의 우정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2017년 겨울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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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17-12-0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선생님의 단독저서를 읽게되는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balmas 2017-12-03 11:45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

마야 2017-12-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시중에 아직 안나왔어요~

balmas 2017-12-03 16:18   좋아요 0 | URL
예 책이 서점에 나오려면 1주일 정도 걸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

궁금 2017-12-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근데 8월에 서문 쓰셨던 포퓰리즘 책은 언제 나오나요. 요새 언론에서 자꾸 포퓰리즘이 거론돼서
궁금한데, 읽어보려하니 서점에는 안나와 있네요.^^

balmas 2017-12-05 13:38   좋아요 0 | URL
저도 왜 안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곧 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기를 3달, 11월 초에 인쇄 전 최종 확인한다고 연락하고서 또 한 달 ... 그래서 그냥 나오면 나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권오성 2017-12-06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배움터 권오성입니다. 선배 덕분에 읽었던 구체성의 변증법, 휴머니즘의 부활 등을 잠 못 이루는 밤... 빠르게 잘 수 있는 수면제로 사용하다가 형의 블로그까지 왔네요... 항상 건강하세요. 언제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balmas 2017-12-06 10:27   좋아요 0 | URL
ㅎㅎ 오성아 진짜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니? 여기까지 찾아와줘서 고맙다.^^
물리학도가 여전히 철학책 읽고 있다니 반갑구나. :)
언제 식사나 한번 하자.

모험가 2017-12-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유합니다! 책도 주문했습니다! ^^

balmas 2017-12-20 14:10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잘 지내시죠? 감사합니다.

도요새 2017-12-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여 년 전 선생님 수업 들었던 학생입니다. 선생님 단독저서라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서문은 지금껏 읽어온 선생님의 글들과 조금 다른 차원에서 또한 깊고 감동적이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balmas 2017-12-20 14:15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 비판적으로 잘 읽어주세요.^^
 

웹진 "인-무브"에서 연재 중인 "발리바르 공산주의를 사고하다"에 실린 발리바르 글 번역을 올립니다. 


레닌과 간디를 비교한 글인데, 그리 길지는 않지만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글이 수록된 {폭력과 시민다움: 웰렉도서관 기념강의}는 내년 중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인-무브에 수록된 발리바르의 다른 글들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로 가보세요.


http://en-movement.net/category/%EC%9D%B8-%EB%AC%B4%EB%B8%8C%20Translation/%EB%B0%9C%EB%A6%AC%EB%B0%94%EB%A5%B4%2C%20%EA%B3%B5%EC%82%B0%EC%A3%BC%EC%9D%98%EB%A5%BC%20%EC%82%AC%EA%B3%A0%ED%95%98%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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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과 간디: 이뤄지지 못한 마주침?

[이 강연은 2004102일 파리 10대학(낭테르)에서 열린 제4차 국제 마르크스주의 대회(Congrès Marx International IV)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폭력과 시민다움: 웰렉도서관 기념 강의󰡕(Violence et civilité)에 재수록되었다. 이 책은 2018년에 그린비 출판사에서 완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다.]

 

 

제가 오늘 다뤄보겠다고 제안한 주제(이 주제를 받아준 데 대해 콜로키엄 조직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는 아카데믹한 탐구의 외양을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긴 해도 이 주제가 어떻게 오늘 우리의 토론 대상인 몇 가지 주요한 역사적인식론적정치적 문제들과 교차하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토론을 위한 기초로, 레닌과 간디는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위대한 두 명의 혁명적 실천가-이론가였다는 점을 제기해보려 합니다. 이 두 사람의 유사점과 대조점은 지난 20세기에 혁명적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 역사적 세계를 변혁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는 데서 특권적인 접근 경로를 제시해줍니다. 따라서 이러한 평행성은 또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상속하고 있는 정치의 개념을 특징짓기 위한 특권적인 접근 경로인데,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정치의 개념이 이미 전화되었고 어느 정도까지 여전히 전화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시초의 정식(이러한 공리(axiome)라는 뜻입니다)은 자명하지 않은 온갖 종류의 전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몇은 논의 도중에 다시 제기되어 토론의 대상이 될 것이며, 다른 것들은 여전히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 중 몇 가지만 간략하게 제시해보겠습니다.

 

1

 

제가 사용하는 단어들 각각은 레닌과 간디 모두에게 적용되겠지만, 곧바로 양분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련의 대당들이 정확하게 상응 관계를 이루는 일종의 이원분할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 것입니다. 가령 폭력혁명 대 비폭력혁명, 사회주의 혁명 대 국민적 또는 국민주의적 혁명, 과학적 이데올로기 및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론에 기초를 둔 혁명 대 종교적 이데올로기 내지 종교적 바탕의 윤리에 기초를 둔 혁명 등이 그런 예가 되겠죠. 이러한 대당들이 서로 일관되게 연역되지 않으며, 이것들은 오히려 근대 혁명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유형론을 드러낸다는 점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 대당들은 두 명의 인물로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지속되는 한 가지 논쟁을 형성할 만큼 거대한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이 개인들 또는 그들이 주역이었던 역사적 과정들, 월러스틴 식으로 말하면 다름 아니라 20세기의 두 거대한 반체계운동의 작용이 남긴 막대한 결과 때문인데, 이 두 운동 사이의 간극, 교차, 다소간 완결된 융합 내지 반대로 분기는,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 세기의 거대한 쟁점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이 운동들이 산출한 효과의 양가성 및 이 운동들을 객관적으로 괴롭힌 수많은 역설들 때문인데, 우리는 그 이유를 이해하는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국제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본주의가 범세계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어서 시초의 변혁 양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의 변혁은 사회구성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기초를 둔 볼셰비키 혁명은 일국 사회주의로 귀결되었습니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일국 단위에서, 그 뒤에는 국가들의 블록 단위에서 생산을 조직하고 사회를 정상화하는(normalisation) 모델을 구성하려는 시도로 귀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스탈린이 근본적인 의미에서 레닌의 진실이라는 점인데, 비록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가면서 혁명적 실천이 그 대립물로 전도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역사는 나쁜 방향에 의해전진한 셈입니다. ... 하지만 이 모델이 그 현실 및 전 세계의 대중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그려낸 그것에 관한 이상화된 표상에서 세력 관계 및 정치적 행위의 공간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적어도 그렇게 주장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논리는 전적으로 이 세상을 좌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그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목격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모델은 [그 잠재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과 그 변혁 사이의 긴장을 유지해왔으며, 마르크스주의 전통 내부에서 레닌주의의 반혁명적인 퇴락으로 간주된 것을 정정하고 전도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레닌주의를 변형하거나 아니면 대안을 추구하도록 해준 셈입니다.


간디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어느 정도까지는 간디 자신이 지도했던 국민적 혁명의 경우는 분명 역사상 위대한 탈식민화(décolonisation)의 현상들 중 하나, 아마도 가장 위대한 현상으로 귀결되었으며, 이는 동시에 탈식민화의 모델들 중 하나를 구성했습니다(물론 유일한 모델은 아닙니다만). 하지만 알다시피 이 혁명 역시 그 창시자가 그렸던 전망과 본질적인 측면들에서 모순을 빚은 결과를 산출했습니다.[몇몇 논평자들은 종종 상반되는 전제들에 입각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관점을 옹호한 바 있다. 다음 저작들을 참조. Partha Chatterjee, Nationalist Thought and the Colonial World: A Derivative Discours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Minneapolis, 1986, ch. 4, ‘The Moment of Manoeuvre: Gandhi and the Critique of Civil Society’; 빠르타 짯떼르지,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 이광수 옮김, 그린비, 2013 4기동 국면: 간디와 시민사회 비판;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 and Ours: The Global Legacy of History Ideas, Columbia University Press, New York, 2003. 또한 로버트 영,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김택현 옮김, 박종철 출판사, 2005 22인도 2: 간디의 대항근대성참조. 아시스 난디(Ashis Nandy)가 관용에 대한 간디의 강조는 그의 사상 및 행동의 종교적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적인 논평을 제기한 이후 오늘날 논쟁은 간디의 유산과 그의 계승자들(네루)세계시민적 세속주의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로 초점이 바뀌었다. 다음 저작을 참조. Nicholas Dirks, Castes of Mind: Colonialism and the Making of Modern Ind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J, 2001, pp. 298301.] 모셰 루베네의 유명한 정식에 따르면, 소비에트 혁명의 국가주의적이고 치안주의적인 표류에 맞선 레닌의 마지막 투쟁이 존재했던 것처럼,[Moshe Lewin, Le Dernier Combat de Lénine,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1967] 민족적-종교적 토대에 입각한 인도의 분할과 독립의 확립에 맞선 간디의 마지막 투쟁도 존재했으며, 이 투쟁에서 그는 사망했습니다. 독립의 조건을 창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혁명의 방법’, 서양에서는 비폭력내지 비폭력 저항으로 알려진 이 방법은 󰡔힌두 스와라지󰡕가 기약했던 내용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국민주의 정치는 그 대립물, 곧 공동체주의적 폭력으로 진동하여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대륙 인도의 국가들 및 사회들을 뒤엎으려는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1908/9년에 영어와 구자라트어로 처음 출판된 󰡔힌두 스와라지󰡕인도의 자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간디의 독립선언문으로, 여러 가지 이본(異本)으로 그의 동지들의 서문과 함께 출간된 바 있다. 마하트마 K. 간디, 󰡔힌두 스와라지󰡕, 김선근 옮김, 지만지, 2011. 이 저작에 담겨 있는 여러 주제(사티아그라하(satyagraha)시민불복종수동적 저항으로 정의하는 것을 포함하여)는 다른 논문들 및 그의 자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라가반 이예르 엮음, 󰡔비폭력저항과 사회변혁: 마하뜨마 간디의 도덕정치사상󰡕 -, 허우성 옮김, 소명출판사, 2004; 󰡔간디 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함석헌 옮김, 한길사 2002.] 하지만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지만) 간디의 정치 모델이것 역시 장소, 조건, 목표 및 담론에서 수많은 변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본권의 복원이나 획득을 목표로 삼는, 그리고 피지배자들과 지배자들의 권력 사이의 대결을 추구하는 대중운동의 조직 형태로서 보편적 효력을 얻어왔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이는 단지 국민의 독립투쟁이나 소수 민족의 자치 투쟁에 대해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알다시피 또한 무엇보다도 시민권 운동 및 인종 평등 운동에 대해서도 타당합니다. 평화주의는 상이한 원천을 지니고 있고 그 자체로 비폭력의 본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명백히 이러한 유산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레닌과 간디라는 두 인물을 대질시켜 보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러한 대질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정치와 현대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시금석으로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왔으며, 명백히 독립 투쟁 기간 및 그 이후 인도에서 특히 결정적인 문제였고 아주 상세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온갖 종류의 대질 가운데 간디의 전략을 진지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관심을 끄는데, 이는 더욱이 그람시 자신의 놀라운 언급에 기초를 둔 것이었습니다. 그람시는 레닌의 궁극적인 직관이 혁명 투쟁의 무게 중심을 국가권력 장악에서 시민사회 내에서 헤게모니의 구축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고 믿었으며, 이를 간디주의와 위대한 종교개혁 운동 사이의 (시대적 간격을 초월하는) 공통적인 요소와 연결시켰습니다.[Antonio Gramsci, Quaderni del carcere, Edizione critica dell’Istituto Gramsci a cura di Valentino Gerratana, Einaudi, 1975, Vol. I, pp. 1223; Vol. II, p. 748; Vol. III, p. 1775. 그람시는 간디에 대한 두 가지 독해 사이에서 동요한다. 하나는 비폭력을 진지전’(이것은 정치적인 것에 관한 레닌주의적인 개념을 그람시가 확장하고 재정식화한 것이다) 시나리오의 한 전략적 계기로 이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톨스토이주의의 영향을 받은 종교적 유형의 수동혁명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단 이 후자의 독해는 로마제국 시대 원시 기독교 이래로 거대한 대중적인 종교개혁의 정치적 함의를 현재화하고 회고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클로드 마르코비치가 뛰어난 저작에서 정당하게 환기시켰던 것처럼,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대질이 단지 톨스토이와 로맹 롤랑의 제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 같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소묘되었는데, 그는 반제국주의 투쟁에 결집했던 모든 세력을 조사해보려고 했습니다.[Claude Markovits, Gandhi,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2000, p. 42.]


오늘날 이러한 대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세계화의 맥락에서 증대한 사회적문화적 운동이 지닌 이론적이고 전략적인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것이며, 또한 20세기의 조건과 비교해볼 때 21세기의 정치일정한 전략들이나 조직 형식들에 특별히 얽매이지 않은 가운데 혁명의 이념이 유령적인방식으로 떠돌고 있는는 정치적 공간을 구조화했던 경계들이 말소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재분배되었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경계들, ‘서양동양사이의 문화적-정치적 경계이고, 지배적인 중심부세계와 피지배적인 주변부세계 사이의 경제적이고 지정학적인 경계이기도 하며, 또한 권력들의 위치 설정 및 집단 의식의 구체적 규정과 관련된 국가의 공적 영역과 사적인 사회적 영역 사이의 제도적 경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규정하는 것 또는 어쨌든 그것을 시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반화된 폭력 및 구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폭력 형태들 사이의 순환의 환경 내지 경제 속에 정치가 불가역적인 방식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히 지속적인 방식으로 잠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폭력은 명백히 예방적 반혁명이라는 또는 사회운동들을 무력화하고 억압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타락시키는 객관적 특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중 정치 및 간단히 말하면 민주주의 정치의 이념 자체에 대해 특히 힘겨운 문제들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감안하면, 혁명적인 정치에 관한 퇴색한 이미지를 감안하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대면해야 할 대안적인 전략들의 준거 내지 징표로서 레닌과 간디의 이름이 거론되는 토론들이 이곳저곳에서 재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다음 인터뷰 모음집에서 이점에 관한 성찰을 읽을 수 있다. Moustapha Barghouti, Rester sur la montagne, Éditions la Fabrique, Paris, 2005. 전혀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에 관한 토론은 사파티스타 운동이 치아파스에서 창안한 전략과 관련해서도 적실성을 지니고 있다. Yvon Le Bot, Le Rêve Zapatiste, Éditions du Seuil, Paris, 1997 참조.]


또한 이러한 토론들이 때로는 비교의 항들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내가 보기에 더 분석적인 작업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것이 이점입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행동의 모델을 폭력비폭력같은 추상적인, 거의 형이상학적인 실재들로 귀착시키는 것이 그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정세에서 최근의 전개과정이 산출한 충격적인 효과로 인해) 점점 더 환원과 단순화의 이중적인 계열에 따라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비록 서로 과잉결정하고 서로 배가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는 해도 극히 이질적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들을 전쟁이라는 유일한 모습으로 환원하고, 전쟁 그 자체마저도 사회의 생산력들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자기파괴적이게 되거나 파국을 맞게 되는 최종 단계”, 곧 마침내 자본의 지배가 전도되고 (다시 한 번 더 ...) 자본의 역사적 궤적의 임박한 완수가 표시될 최종 단계로 환원하는 것입니다.[나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제국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서창현 외 옮김, 세종서적, 2008)의 주장을 (아마도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 이 질문을 제기하고 토론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오히려 더 세부적인 검토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2

 

회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의 두 모델 사이의 대질에서 관건이 되는 쟁점을 다루기 전에, 우선 혁명 운동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두 모델을 결합하는 것을 형식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상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두 가지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이 두 가지 특징이 19세기의 유산, 특히 서양 사회에서 국민 독립 및 사회 변혁 같은 혁명들의 유산이라는 점을 사후에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20세기의 극적인 역사를 통해 다듬어져서, 정치 이론이 양쪽 모두에서 정치 개념과 그 국가적 형식화(특히 법적이고 헌정적인 정의(définition)에 입각한) 사이에 존재하는 메울 수 없는 간극으로 지각해온 것으로 결정(結晶)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대중운동의 자리가 구성하는 것인데, 대중운동은 능동적국면에서 수동적국면으로 또는 그 역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유지하면서 공적인 무대에 다수자로서 자율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며, 따라서 제도적인 통제 및 규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특징은 레닌주의(이는 이점에서 노동자운동 및 사회적 민주주의의 계승된 전통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습니다)와 간디주의(이는 이점에서 인도 및 다른 지역에서 전개된 반식민주의 투쟁의 역사를 혁신했습니다)에 공통적입니다.[Eric Hobsbawm,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d, 19141991, Vintage, New York, 1996, pp. 199222.] 이 특징은 자생성과 조직의 결합에 관한 매우 다양한 정식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문제가 되는 사회의 문화적 전통과 대중의 존재조건, 대중동원의 이데올로기적 자원 및 대중운동과 맞서는 기성권력의 성격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중운동은 결코 대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정 반대로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대표를 가능하게 하거나 기존 정치 체제가 대표에 관해 제한적이거나 허구적인 정의를 부여하는 곳에서 대표를 개조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도 대중운동은 대표로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본질은 대표가 아니라는 것, 또는 대표는 그것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리를 곧바로 레닌주의와 간디주의에 공통적인 두 번째 특징, ()법률주의(antinomisme)로 이끌어 가는데, 저는 이 용어를 전통적인 어원적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합법성에 대한, 따라서 합법성의 원천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개인들 및 사회 집단들에 대한 통제 도구를 구성하는 법 규범을 지니고 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대중운동의] 갈등적 관계,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관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부르주아 독재의 전도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것일 수 있는데, 레닌은 주권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정의들을 재활용하여 이러한 독재의 본질은 어떤 사회 계급이 사회 변혁에 관한 자신의 요구를 법을 넘어서설정하는 것이라고 쓴 바 있습니다. 이는 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에게서, 더 멀리는 저항권개념에서 유래한 시민불복종개념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는데, 간디는 국가로 하여금 자신의 헌정 원리와 명백히 모순을 빚는 지점에 도달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이러한 원리를 개혁하도록 강제하는 모든 단계의 전술적 투쟁 일체를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이 개념을 체계화했습니다. 따라서 두 경우에서 모두 합법성은 위반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합법성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합법성은 자신이 초월한다고 주장하던 세력 관계의 장 내부로 끌려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네그리가 프랑스혁명 및 미국혁명에서 유래한 헌정이론 전통에서 차용한 이론적 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성된 헌정권력은 구성하는 제헌권력, 다시 말해 민주주의 봉기적 요소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네그리는 󰡔구성 권력󰡕(Le potere constuente)에서 레닌에 관해 길게 논의하지만, 간디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분명 두 개의 혁명은 서로 상반된 것으로 나타날 만큼 심오하게 상이한 차원에서, 그리고 상이한 양상 및 목표에 따라 전개됩니다. 사회운동 및 그것이 지닌 시민사회의 전복 능력에 관한 현재의 토론 중 상당 부분은 정확히 이러한 차이점으로 귀착되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원칙의 유사성(analogie de principe)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 차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유사성이야말로 국가적인 것을 넘어서는, 또는 갈등적인 방식으로 국가와 혁명(심지어, 국가, 혁명 그리고 반혁명까지)을 동시에 포함하는 모종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Begriff des politischen)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유사성은 우리를 곧바로 역사적 조건들에 관한 질문으로 이끌어 갑니다. 사실 합법성을 초과하는 이러한 봉기적인 또는 반법률적인 정치 개념 자체가 국가 제도의 일정한 역사적 형식들에 긴밀하게 의존해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심지어 개연성이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국가 제도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조건 및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지만 그럼에도 정치 관계들이 집중된 것으로서 또는 권력관계들이 구체화되고 통합되는 지점으로서 나타났던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역사들은 정당하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주의적 관점이 극히 개략적인 마르크스의 언급들을 체계화하면서 노동자 운동 및 민주주의 운동 전체와, 권위주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억압적인 국가 유형 사이의 대결에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왔습니다.[동구와 서구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발전 정도의 반비례 관계에 입각하여 두 지역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상이한 조건을 대립시키는 그람시의 테제도 레닌의 관점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 테제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관점을 헤겔-마르크스주의적 언어로 재정식화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Quaderni del carcere, op. cit., vol. II, p. 865 sq 참조.그리고 다른 역사가들은 비폭력 시민불복종전략은 대중운동이 법치국가(rule of law), 곧 단순히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특히 영미 헌정의 전통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그래온 것처럼개인적 자유를 확고하게 보장하는 전통을 지닌 국가와 대면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가능했다고 지적해왔습니다(간디 자신이 이러한 전략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있었습니다).[조지 오웰은 적절한 뉘앙스와 더불어 이 테제를 옹호한 바 있다.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가 없다면, 외부의 견해에 호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운동을 자극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의사를 적에게 알리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러시아에는 간디 같은 인물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가 지금 이루어내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러시아의 인민대중은 같은 생각이 모두에게 동시에 떠오를 경우에만 시민불복종을 실행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더라도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판단하건대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Reflections on Gandhi" [1949], in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 vol. 4, Hammondsworth, Penguin Books, 1945~50; 간디에 관한 소견, 󰡔나는 왜 쓰는가󰡕,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458. 하지만 데이비드 하디먼은 해방운동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폭력적인’(또는 무장한) 운동만이 아니라 비폭력적인운동에 대해서도, 1960년대~1980년대에 제3세계에서 직면했던 딜레마와 연결시킨다면, ‘게바라의 모델만이 아니라 마르틴 루터 킹의 모델에 대해서도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에 대해 올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s and Ours, op. cit., p. 255 sq. 파르타 차테르지 역시 실질적으로는 같은 입장이다. Partha Chatterjee, The Politics of the Governed: Reflections on Popular Politics in Most of the World,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6.]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끌었던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도 같은 관찰이 제시되어 왔지만, 이것이 몇몇 지방의 권력에 맞선 미국연방정부의 단순한 조작이라는 생각만은 적어도 거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법성에 대한 근본적으로 상이한 위반 양상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공산주의 선언󰡕의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정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인지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이 양상들은 각각의 경우마다 그것들이 힘을 겨루는 국가의 역사적 형태에 또는 지배권력의 형식화에 긴밀하게 의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지배라는 막스 베버의 개념을 사용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또한 (여기에서 제 생각을 길게 개진하지는 않지만) 막스 베버가 복종을 얻을 수 있는 개연성이라는, 따라서 또한 복종 생산의 양상들이라는 견지에서 정식화한 것과 같은 지배 형식에 대한 관점이 우리의 토론을 좀 더 진전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경제와 사회󰡕 11사회학의 기본 개념들5~7절에서 베버는 사회 질서정당성’(Geltung)을 이 질서의 구성적인 성향을 사람들이 따르게 될 (특히 법이나 규칙에 복종하게 될) 개연성(probabilité, chance)으로 정의한다. 완전히 실용적인 이러한 정의(이것은 규범적인 법이론이 아니라 사회학적 행위이론에 속한다)는 갈등 양상 및 그 조절에 대한 연구로 귀결된다. 이는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한편에서는 스피노자를, 다른 한편에서는 푸코를 생각하게 만든다. [옮긴이] 발리바르가 준거하는 막스 베버의 유고작 󰡔경제와 사회󰡕(Gesellschaft und Wirtschaft)는 마리아네 베버와 요하네스 빙켈만 등이 편집해서 출판된 저작이며(1922년 초판이 나왔고 19766판이 출판), 이 편집본(및 다른 막스 베버 저술 편집본)이 지닌 숱한 문제점들이 제기됨에 따라 1984년부터 새로운 막스 베버 전집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경제와 사회󰡕1999년 이후 새로운 편집본이 출간되었다. 새로운 󰡔경제와 사회󰡕 판본의 우리말 (부분)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공동체들󰡕, 박성환 옮김, 나남, 2009.]

 

3

 

제가 환기하고 싶은 두 가지 마지막 논점에 대해서는 더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가설적으로 두 가지 혁명적 모델 각자의 중심 문제또는 관건이 되는 문제(오늘날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언급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혁명에 관한 레닌주의적 이론화(이것 자체가 시간에 따라 진화했습니다)와 그의 지도 아래(집단적인 지도이기는 했지만, 레닌이 거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방향을 규정했습니다) 볼셰비키 당이 실행했던 정치 전략, 마지막으로 역사적 상황(이는 진정한 시대의 전환을 낳게 됩니다) 간의 관계를 판단하려고 시도해본다면, 우리는 아주 고전적으로, 점점 더 서로 다른 것들을 포함하게 되었던 세 가지 계기로 난점들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사회에 대하여 자율적인계급독재로서의 국가권력(국가장치를 변혁하기 전에 우선 국가 권력을 획득해야 합니다)이라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혁명의 탁월한주체로서의 또는 사회 투쟁에서 정치 투쟁으로 이행하기 위한 특권적인 도구로서 계급 정당이라는 관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레닌이 절망적인 상황을 지배 체계와 단절하기 위한 기회로 역전시킴으로써 역사 속에 빌을 디디게 된 정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1914년 전쟁의 계기로, 그는 이때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하라는 구호를 정식화했는데, 반역한 병사평의회의 봉기와 이것의 노동자농민의 사회운동과의 융합으로 인해 약화된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가 레닌으로 하여금 이러한 구호를 실행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계기는 [러시아혁명 이후 벌어진] 내전과 외국의 개입, 그리고 신경제정책에 입각한 소비에트 체계 개혁 실패에 이르는 조건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부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계기들 각각은 조직된 혁명적 폭력이라는 문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게발트(Gewalt)라는 독일어 한 단어에 내포된 두 측면, 우리가 권력폭력으로 분할하는 폭력의 제도적 측면과 반제도적 측면의 변증법에 대해 중심적인 위상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조건 속에서 볼 때 두 번째 계기(권력/혁명 관계)야말로 우선적으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쟁점인 것 같습니다. 이 두 번째 계기에서 레닌과, 또한 동시에 사회주의 운동 전체가 직면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파괴적인 지배의 행사,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국가의 극단적 폭력 형식들이었습니다(많은 역사서들이 과소평가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불가능한 것에서 가능한 것을 다시 만들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하라는 구호가 전체주의 비판가들이 특히 겨냥하는 대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이 구호를 러시아 혁명에 특유한 테러리즘의 모체로, 따라서 적어도 혁명과 반혁명(곧 유럽의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정치적 반대파들의 대량 학살과 이에 따른 민주주의의 파괴가 순환하게 된 가능성의 모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것이 독일 역사가 논쟁의 당사자들, 특히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의 기본 테제였으며, 프랑스에서는 몇 가지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지만 프랑수아 퓌레가 받아들인 테제다(에른스트 놀테, 󰡔유럽의 시민전쟁, 1917~1945󰡕, 유은상 옮김, 대학촌, 1996; François Furet, Le Passé d’une illusion. Essai sur l’idée communiste au xxe siècle, Paris: Robert Laffont/Calmann-Lévy, 1995). 이 테제에 대해 클로드 르포르가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Claude Lefort, La Complication, Paris: Fayard, 1999.하지만 한 단어(“내전”)가 지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힘에 근거한 이러한 독해는, 레닌주의 안에 함축되어 있는 가장 거대한 해방의 힘, 가장 거대한 역량과 가장 거대한 퇴락의 위험, 심지어 가장 거대한 착각이 서로 겹쳐지는 급소 지점을 제대로 식별해내지 못합니다. 레닌의 구호의 뒷부분만이 아니라 앞부분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실로 레닌이야말로 극단적 폭력이 전개되고 시민사회 민주주의 형식들이 파괴되는 상황을 조직된 대중의 집단적 행동과 창의를 수단으로 하여 내적으로 전화하는 문제를 제안한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그리고 이점과 관련하여 레닌과는 반대로 간디의 혁명 전략은 간디 스스로 고백하듯이 근본적으로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둡시다). 달리 말하면 레닌은 폭력을 숙명의 영역에 기입하지 않고 경험 그 자체에 입각하여 극단적 폭력에 대한 결정의 원인들 및 중심들에 작용을 미칠 수 있는 길을 탐색한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민주주의 혁명에 관한 어떠한 이념도 이 문제를 생략할 수 없으며, 레닌의 경우처럼 이 문제를 가장 불리한 상황 속에서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레닌은 권력 관계의 전화에 관한 가망 없는 관점에 갇혀 있었으며, 그것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다른 교전국들에서의 혁명 운동의 실패로 말미암아 내전의 국제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레닌은 포위된 요새인 국민적 공간 내에 갇혀 있었습니다. 둘째, 레닌은 또한 어떤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공간 내에 갇혀 있었는데, 이는 국가 아닌 국가의 역설을 무한히 변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곧 국가를 강화하는 형식을 통해 국가를 소멸시키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이 정식은 알다시피 레닌이 두 차례의 러시아혁명(1917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에 집필했고 나중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지침이 되는 저작의 중심에 존재한다. L'État et la Révolution, in OEuvres complètes, Paris and Moscow, 1962, Vol. 25, pp. 429ff, 453ff.]


이제 간디의 경우로 돌아가, [레닌의 경우와] 대칭적인 모순 내지 이중구속의 대강을 살펴보겠습니다. 알다시피 서양어로 비폭력이라고 번역되는 것은 사실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통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간디가 고안해낸 사티아그라하이며, 두 번째는 힌두교 금욕주의 전통(‘자이나교’)에서 취하여 각색한 아힘사(ahimsa)입니다. 간디 사상에서 윤리적 또는 윤리종교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많은 논의에서 인도 내부의 해석자들을 포함한 상이한 해석자들은 양자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곧 종교적 의식으로 치장한정치적인 것의 우위로 해석하거나 정치적인 것의 정상적인 진행방식을 뒤흔들고 그것을 근대의 제도적 형태 이전으로 이끌어가는 영성 운동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토론은 두 용어의 의미를 둘러싸고 전개되며, 심지어 한 문화적 맥락에서 다른 맥락으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하기 위해 두 용어를 분리시키고 다르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둘러싸고 전개됩니다.[로버트 영, 󰡔트리컨티넨탈리즘󰡕, 인도 II : 간디의 대항근대성참조.그렇지만 이 용어들이 준거하는 문제들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서, 또한 그것들을 결합하는 일의 난점을 지적하지 않고서는 간디 정치관의 중심을 이루는 [두 용어 사이의] ‘변증법에 대한 완전한 표상을 만들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변증법이 도덕적요소(양심에 속하지만 그 틀을 훨씬 넘어서는)를 간디의 정치관 속에 도입하게 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두 용어에 대한 간디 당대의, 그리고 원천에 근접한 정의를 보려면, Krishnala Shridharani, War without Violence: A Study of Gandhi’'s Method and its Accomplishments (1939), Garland Publishing, London, 1972((Gene Sharp의 새로운 서문Charles Walker후기포함)을 보라. 이 책은 고통을 감당하는 능력 및 이러한 능력이 고통의 원인에 맞서도록 촉발하는 힘의 동원을 강조한다(p. 283). 또한 Suzanne Lassier, Gandhi et la non-violence, Éditions du Seuil, Paris, 1970; Bhiku Parekh, Gandhi: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7 참조.]


다소간 문자 그대로 진실의 힘으로 번역되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는 용어는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도인들의 시민권 투쟁을 조직한 최초의 경험에 입각하여 수동적 저항이라는 통념을 대신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이후 간디는 이 용어를 각각의 시민불복종 캠페인의 명칭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동시에 폭동이나 테러 활동을 식민 지배에 맞선 인민대중의 지속적인 동원으로 대체하기 위한 합법적비합법적 장기 투쟁 형식의 일반 개념으로 만들었습니다.


금욕을 뜻하는 전통적인 용어로서 간디가 개인의 영역에서 상호개인적인 영역으로 확장한 아힘사(ahimsa)는 비록 간디 자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친화성이 있다고 믿긴 했지만, 서양의 영성적인 어휘로는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용어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적에 대한 증오를 극복하거나 대항폭력을 억제하게 해주는 에너지의 집중을 가리킵니다. 만약 이러한 종교적요소를 정치적인 것의 중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변증법을 형성하는 상반된 운동들을 그것의 아주 구체적으로 규정된 사회정치적 측면들과 진정으로 결부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특히 비합법적인 실천을 통해 대중운동이 지배와 정면으로 대립했던 공격적인 비폭력국면들과, 본질적으로 운동의 내적인 민주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는 건설적 비폭력국면들이 번갈아 전개된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후자의 국면에서 간디는 특히 자크 랑시에르가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고 부른 것, 곧 불가촉 천민들, 소수 민족들, 여성들의 원칙적인 평등(여기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이점은 넘어가겠습니다)이 인정되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클로드 마르코비츠는 불가촉 천민’(dalits) 운동의 지도자인 암베드카르와의 갈등의 첨예함을 서술하면서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대의를 인정받지 못하고 달리트들 자신에게는 그의 전략을 인정받지 못한 간디의 실패를 강조하고 있다. Claude Markovits, Gandhi, op. cit., p. 199 이하.] 하지만 우리는 또한 간디 자신이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관념이 형성하는 혁명 속의 혁명도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이는 헤게모니, 민주적 동맹, ‘인민 내부의 모순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따라서 레닌주의 전통에게는 심원하게 낯선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사회세력들 간의 대결에서 사용된 수단들의 본성은 이 세력들의 정체성 자체에 반작용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운동의 목적 또는 그 의도 내지 이데올로기적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실제로 산출되는 결과에 반작용을 미치게 됩니다.[간디에 대한 해석에서 한나 아렌트의 영향을 받은 조앤 본두런트는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그가 갈등 해결의 변증법으로 제시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Joan V. Bondurant, Conquests of Violence. The Gandhian Philosophy of Conflic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71.] 이는 직접적으로는 간디의 유명한 대화주의’[이는 본질적으로 하디먼의 생각이다.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s and Ours, op. cit.(모든 정치 투쟁은 적수에 대한 개방의 계기를 포함해야 하며, 이것이 그의 관점의 전화를 조건 짓습니다) 및 대중 행동에서 자기 한정의 실천(이는 알다시피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것인데, 왜냐하면 최종 투쟁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이는 이해 불가능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로 귀착되며, 이 후자의 경우는 특히, 사티아그라하가 갑자기 비폭력에서 공동체적이거나 테러리즘적인 폭력으로 전도될 때 사티아그라하가 중단되는 것을 통해 예시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감히 간디 모델에 내적인 아포리아에 관해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해볼까 합니다(아포리아가 부조리함이나 효력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레닌주의의 아포리아와 대칭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조직과 관련된 것이며, 더 심층적으로 본다면 정치적 주체, 특히 무엇보다 혁명적 주체의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관개체적인 집합적 유대의 본성 및 구성 양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유대라고 불리는 이러한 유대는 더 정확히 말하면 카리스마적인유대로서, 이는 공동의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투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따라서 투쟁이 함축하는 희생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마치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지닌 것으로 가정되는 주체로서의 지도자의 인격에 의존합니다. 이는 대략 성자 같음 또는 선지자 같음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차이가 벌어져서 적대로 전환되는(암베드카드와의 관계에서 불가촉 천민들에 대한 정치적 대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경우처럼) 결정적인 계기들, 가령 국가가 양보를 거부하거나 공동체들 간의 갈등이 학살로 번져가는 경우에 간디는 자신의 소멸의 위협(심원하게 양가적인 영성적 힘의 궁극적 표현으로서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서만 겨우 폭력의 자기 한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이는 (힌두교에서는 전통적인) “출가자”(renonçant)의 모습에서 파생된 동일시 메커니즘의 문제다. Markovits, Gandhi, pp. 54-5 참조. 하지만 파르타 차테르지의 해석은 더 정치적이다. Partha Chatterjee, The Politics of the Governed, op. cit., pp. 11-12. 그는 주어진 정세에서 서로 구별되는 대중운동들 사이에 등가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간디의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매개자의 모습을 더 부각시킨다. 이는 라클라우가 포퓰리즘이라고 부른 것과 결국 아주 가까운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다. Ernesto Laclau, On Populist Reason, Verso, London, 2005 참조.이는 이러한 수단이 실패로 돌아간 또는 일종의 수동적 폭력에 의한 정치적 살해를 역으로 촉발한 마지막 투쟁에 이르기까지 그랬습니다. 대중의 힘과 그 저항력을 이루었던 도덕적, 주체적 유대는 또 다른 무대’, 곧 지배 및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대하여 전화의 방식으로, 곧 역사적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들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더욱이 모든 조건이 동등할 경우규정하는 투쟁에서는 심원하게 양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러한 유대가 사랑과 죽음이 서로에게 몰입하는 강렬하게 성적인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적어도 20세기의 위대한 혁명운동이 그 모순적인 결과와 더불어 동원하고 무대화했던 의미에서 대중 및 대중운동의 시대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지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그런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저는 소망이나 기획 또는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정치적 행위라는 관념은 여전히, 비록 명백히 계급적 조건 및 문화적 모델에 의해 심층적으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연역이나 기획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집합적 행위자의 구성이라는 관념과 긴밀하게 연결된 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어떤 정세, 특히 사회 전체의 차원에 걸쳐, 심지어 세계 전체의 차원에 걸쳐 참을 수 없는 것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적 변혁에 대한 요구를 다시 제기하는 극단적 정세의 긴급함과 결부된다고 해도 그것은 겨우 한 가지 가능성만을 제시해줄 뿐입니다. 철학에서 행위 개념이 지닌 전통적 의미, 곧 단지 어떤 대상(matiére)만 전화시킬 뿐 아니라 행위자 자신들까지 형성하는행위라는 의미에서의 행위하는 집합체 또는 집합적 실천은 조직 내지 제도 형태를 요구하며, 정서적 투여 또는 주체적인 동일시 과정을 요구합니다. 외관상으로는 아주 단순한 이 두 항[조직과 동일시 과정] 각자가 포함하고 있는 깊은 모순을 드러내줌으로써(하지만 사후에야), 레닌과 간디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역사들은 우리가 정치적인 것의 이러한 복잡성, 역사가 우리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우리를 그 속으로 투사하는 그 복잡성을 간과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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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황해문화] 겨울호 "권두언"을 올립니다. [황해문화] 편집위원이 되고서 처음 쓰는 권두언이네요. 


이번 [황해문화] "특집"이 <젠더 전쟁>이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황해문화] 겨울호에 많이 관심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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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전쟁과 을의 민주주의

 

1

 

지난 해 가을과 겨울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의 열기에 힘입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18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5.18 광주 정신과 촛불혁명의 기반 위에서 탄생했다고 선언하면서 국민주권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이후 촉발된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로 인해 한반도가 살얼음판 같은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온 국민의 관심은 북한의 통치자와 미국의 통치자가 주고받는 살벌한 말의 전쟁에 쏠려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수동성의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우리 자신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상황,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자체가 타자에 의해 압도적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를 규정하는 이러한 외재적 조건은 내재적 조건과도 연결되어 있다. 지난 촛불혁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더욱 예측할 수 없고 불안한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수구세력과 언론이 촛불혁명 이후 급격하게 위축된 보수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이번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군사적 대결의 양상으로 몰고 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현재 당면한 위기 상황을 우리가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내부의 민주적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길임을 말해준다. 내 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우리가 을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구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6개월 간 문재인 정부는 참신하고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인사 실패와 정책의 혼란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는 이러한 다소 불안한 행보는 국민주권이라는 말이 지닌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국민이라는 말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편으로는 독재 정권에 순응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수동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이라는 말과 더불어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의 주체로 호명되어 왔다. 독재자들이나 야당의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국민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나 작년의 촛불집회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가사로 한 헌법 제1라는 노래가 널리 사랑을 받은 것도 국민이라는 말이 갖는 저항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하지만 우리가 국민이라는 말이 지닌 이러한 저항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성격을 감안한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담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이라는 말에 담긴 동질성은 실제 국민을 구성하는 계급적, 성적, 지역적 차이와 대립을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및 사회화가 산출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10 : 90’, ‘1 : 99’ 같은 숫자로 표현되어 왔다. 이 숫자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극소수의 부자들이 점점 더 많은 부를 차지함에 따라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줄어드는 몫을 둘러싸고 더욱 치열하고 가혹한 경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에서 늘 피해자 내지 패배자의 위치를 강요당하는 것은 성적경제적사회적 약소자들이다. 또한 국민이라는 말의 전체성에는 다양한 개인들 및 소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차별이 식별되고 정정될 여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말이 정상성의 기준이 될 때 그것에 미달하는 사람들은 배제와 차별, 무시의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이라는 말에서, 그리고 국민주권이라는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을들을 정치적으로 재현하고 대표할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이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을의 민주주의를 이제 사고하고 실험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촛불혁명이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신기원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2

 

이처럼 을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젠더 문제는 전략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우리 사회의 가장 많은 을들이 공유하는 문제, 또는 우리 사회의 가장 많은 사람들을 을로 또는 을의 을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특집의 제목인 한국 사회 젠더 war’의 장면들의 문구를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젠더 war’, 젠더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그렇게 격렬한 젠더들 사이의 갈등, 특히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전개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고, 또 그것이 과연 󰡔황해문화󰡕에서 특집 주제로 다룰 만큼 중요한 의제인가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할지 모르겠다.


첫 번째 의문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전에 비하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별이나 불평등이 상당히 줄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나오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번 특집에 수록된 글들에서 여성필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준다. 가령 2016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성별격차지수는 144개 국 중 116위였으며, 이는 경제 부문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 벌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특집의 필자들과 더불어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러한 시각의 차이(또는 명백한 현실에 대한 남성들의 맹목과 외면)가 왜 생겨나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우리 사회 젠더 문제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 의문은 나와 같이 SNS를 별로 활용하지 않고 온라인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은 구세대 사람들이 갖기 쉬운 의문이다. 온라인에서는 이른바 여성들에 대한 각종 여성혐오 발언과 무차별 신상털이’, ‘조리돌림이 횡행하고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영상들이 남성 초과 사이트의 게시판들과 웹페이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SNS 계정들을 통해 공유되고 확산되고 있지만, 많은 남성들은 이를 일부 젊은 아이들의 일시적인 치기와 일탈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집에 실린 글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고 또한 훨씬 더 구조적이며 뿌리 깊은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집중적인 피해의 대상이 되고 있는 20~30대 젊은 여성들, 더욱이 그들 중 일부의 문제로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남성 중심주의를 드러내는 증상이자, 젠더 차원의 갑질과 폭력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번 호 특집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여성혐오에 대한 많은 여성들의 분노와 조직적 대응, 그리고 이에 맞선 이른바 일베를 비롯한 여성 혐오자들의 역공격과 강화된 혐오 표현들로 촉발된 젠더 사이의 격렬한 갈등을 배경으로 마련되었다. 따라서 특집의 문제의식은 최근 몇 년 간 심각하게 증폭된 여성혐오와 젠더 갈등의 문제에서 기원하지만, 이 특집에 실린 글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듯이 여성혐오의 문제가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또한 일정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요인들이 누적된 역사적 성격을 띤 것임을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리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정치적 주체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신경아는 총론에 해당하는 젠더 갈등의 사회학에서 현재 전개되는 젠더 전쟁의 상황 및 그 사회적 요인들을 요령 있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은 길게는 지난 20, 그리고 짧게는 지난 10년 동안 전개된 사회적 실천의 결과이며, 특히 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 핵심 이유는 “‘차별을 인정하는 것보다 우대를 강조하는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여성 정책은 불평등과 차별의 시정을 위한 정책보다는 특정한 집단으로서 여성에 대한 시혜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띠어 왔으며, 그 결과 생활 전반에 걸쳐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기보다는 예컨대 내각 30% 여성 할당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만 주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 우대 정책이 오히려 사회 구조와 일상적인 삶에서 여성 차별을 방치하고 누적시키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


필자에 따르면 이는 비단 노동시장만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폭력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건축학 개론󰡕을 많은 남성들이 실패한 첫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하는 이유,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치안 당국과 일부 언론이 여성혐오 사건이 아닌 정신질환자에 의한 우발적 강력 범죄로 해석하려 드는 이유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과 폭력,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움직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섣부르게 봉합하기보다는 터져 나온 갈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필자의 견해는 경청할 만하다.


김영희는 시선의 주체와 포획된 신체: ‘몰래카메라보는 눈보이는 몸에서 최근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폭력을 주제로 삼으면서 시선의 폭력이라는 문제를 살피고 있다. 한동안 소라넷이라는 이름의 국내 최대의 불법 음란물 유통 사이트가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100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각종 불법 음란물을 게시하고 유통하면서 20년 가까이 성황을 이룬’(?) 이 사이트는 2016년에 폐쇄되었지만,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변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소라넷이 폐쇄된 이후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불법 음란물과 영상들은 훨씬 더 은밀하고 산재된 형태로 계속 유통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들 및 음란물들을 게시하고 서로 돌려보면서 남성들은 남성 연대의 끈을 형성하며, 이를 통해 여성 및 여성의 신체는 더욱 상품화되고 물신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물들은 제대로 단속하거나 제재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적발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된 현직 판사가 약식기소 처분을 받은 것은 특권 여부를 떠나서 이 문제에 관한 법적 인식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필자에 따르면 더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성폭력의 근저에 놓여 있는 남성 중심적인 젠더 구조가 법원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성적 욕망을 자극할 만한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그렇거니와, 여성은 영상물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촬영자에 대해 격렬한 저항의 표시를 제시해야 비로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관점의 소산이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언제 어떻게 은밀한 촬영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을까 늘 불안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훔쳐보는 시선의 일부만을 범죄화하고 다른 시선은 정상적인 것으로 묵인하는 젠더 위계 질서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필자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영미는 노동시장 구조변동의 부수적 피해와 피해자 경쟁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사회적 뿌리를 밝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구사회나 우리사회 모두 여성혐오의 뿌리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재편이 존재한다. 서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이 지속되던 황금의 30이 지나고 신자유주의의 시기가 도래하면서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들이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여성혐오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사회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하위 비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경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으며, 2000년대에는 저학력 청년 남성들이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저학력 중년층-장년층 집단에서 남녀 임금 격차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고학력층의 전 연령 집단에서도 젠더 격차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데 비해, 유독 저학력 남성과 여성만 공히 프레카리아트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재편 이후 전개된 계급 편향적인 노동 개혁에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 원인의 비가시성으로 인해 그 직접적 피해 대상인 청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젠더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본 소득 비율은 크게 증가한 데 반해 노동 소득 비율은 줄어들었으며, 이처럼 줄어든 몫을 둘러싼 노동자들 내부에서의 경쟁, 배제, 차별과 반목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던 것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현재 전개되는 젠더 전쟁의 사회적 뿌리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두 가지 측면에서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첫째, 지난 20여 년 간 줄어든 노동소득의 몫을 키우고 특히 지금 악화되어 있는 중하위 소득집단의 소득분배율을 높이는 것은 남녀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이다. 또한 고학력 여성의 경력 단절과 유리 천장을 깨는 것 역시 남성의 이익과 부합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생계부양자로서의 지위를 위협받으면서 이로 인해 남성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남성들이 젠더 과수행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좀 더 평등한 젠더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선희의 퓨리오숙 현상의 이율배반성과 젠더전쟁의 주체들은 많은 인기를 모았던 종합편성채널의 한 예능프로그램의 여성 연예인의 별명 퓨리오숙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끌어낸다. 미국 영화 󰡔매드맥스󰡕에서 절대 권력의 독재자에 맞서 여성들을 해방의 땅으로 이끄는 여성 전사 퓨리오사의 이름을 본따 퓨리오숙이라고 불리는 이 연예인은 마치 가부장 구조의 남성 가장을 여성 가모장으로 바꿔놓은 듯한 캐릭터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아내의 호통에 남편이 쩔쩔 매고 순응하는 것을 보고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대리 만족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퓨리오숙은 가부장의 희화화된 전도물에 불과할 뿐이며, 가모장 퓨리오숙은 현실의 젠더 전쟁에서 여성 전사의 모습을 형상화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IMF 외환 위기 이후 치열해진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남성들이 인터넷에 진지를 구축한 것이 일베를 비롯한 여성혐오 사이트의 기원이었다고 진단한다. 이들은 딸기녀’, ‘된장녀’, ‘김치녀등을 비롯한 각종 ○○를 생산하고 또한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불법 영상물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경쟁자로 등장한 여성들을 제압하거나 통제하려고 시도해온 것이다.


필자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맞선 퓨리오사, 페미전사들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불법 영상물과 음란물은 근절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사람들에 맞서 그것을 디지털/사이버 성폭력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근절하고 방지하기 위한 각종 대책 및 피해자 지원에 나선 많은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더 많은 퓨리오사들이 나타날 수 있도록 관심과 연대를 아끼지 않는 것이 많은 남성들의 과제일 것이다.


나영은 얼굴을 가린 목소리들과 혐오의 디파워링(depowering) 시대를 넘어서기 위하여에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전개되어온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과 그로부터 1년 뒤에 일어난 여성 왁싱사에 대한 살해사건은 우리 사회 여성혐오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영이 주목하는 것은 이 두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 한결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또 운동권이나 단체와의 연대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여름 86일 간의 본관 점거 투쟁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에서도 학생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것은 나중에 이른바 일베를 비롯한 남성 중심 온라인 사이트에서 신상이 털려각종 성희롱과 폭력에 시달리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지난 20여 년 간 한국 사회에서 누적되어온 여성혐오와 이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간주한다. 2015년 일어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선언, 사회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 ‘메르스 갤러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유명한 미러링작업은 많은 여성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지만, 역으로 새로운 형태의 격렬한 반발과 강화된 혐오를 초래했다. 특히 운동을 주도하거나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신상털이와 인신공격은 많은 여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글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할 점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이 처해 있는 갈등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분석이다.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바탕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운동과 온라인을 기반으로 조직된 메갈리아나 워마드 같은 그룹들은 지향이나 연대의 방식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낳고 있다. 특히 워마드 등이 대표하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페미니즘의 주체로 생각하는 입장과 성적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입장 사이의 차이는 꽤 의미 있는 쟁점으로 보인다. 특히 동성애가 보수 집단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데 반해, 문재인 정권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 시점에서 보면 더 그렇다. 따라서 “‘진짜 여성이 누구인지를 대신하여 지금 누가 여성의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필자의 말은 많은 울림을 낳는다.

 

3

 

비평에도 을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여러 글이 실렸다. 이진오는 종교인 과세! 낼 건 내고 받을 건 받자는 글에서 종교인 과세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015년 종교인 과세를 명문화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종교인 과세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지만, 일부 개신교 교인들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2년을 더 유예하자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종교인 과세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하여 왜 종교인 과세가 필요하며 또 정당한 일인지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특히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 논리의 허점을 간명하게 밝혀주고 있어 이 주제에 관해 익숙지 않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적폐 청산과 관련하여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가 MBC, KBS 등과 같은 공영방송의 정상화 문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공영방송이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함으로써 공정성과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을 뿐 아니라,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방송국 내부의 기자프로듀서아나운서 등을 무차별적으로 징계하고 해고함으로써 방송국 내부에도 큰 균열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MBC 해직기자인 박성제는 내부인의 시각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던 MBC가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지게 되었는지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점 중 하나는 이명박 정권 시절 MBC는 청와대와 국정원 같은 외부의 강한 압력과 통제를 통해 장악할 수 있었던 데 비해,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외부의 압력 없이도 MBC 스스로 정권의 충실한 홍보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MBC KBS의 현재 경영진이 물러난다고 해서 공영방송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필자가 강조하듯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다시는 공영방송이 정권의 꼭두각시가 되는 길을 막아야 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송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이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찾을 수 있도록 내부 개혁과 쇄신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적폐청산 과제는 사학비리 청산의 문제다. 상지대는 시사 문제에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학비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각종 비리와 불법의 책임을 지고 퇴출되었던 김문기 중심의 구()재단이 2010년 다시 복귀하여 상지대 정상화에 앞장섰던 교수, 학생, 직원들에게 각종 징계를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고 다시 상지대가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상지대 구성원들은 지역사회 및 각종 단체와 힘을 합쳐 치열한 싸움을 전개한 끝에 두 번째의 상지대 민주화를 이룩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상지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이제 상지대 총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정대화는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교훈과 과제에서 그동안 지난했던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요인들을 열거하면서, 상지대 사태에서 가장 큰 책임이 교육부에 있음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교육부는 김문기의 상지대 인수와 장악, 각종 비리의 자행 등을 묵인하고 방조했을 뿐만 아니라 부실한 감사로 이 사태를 장기화한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학의 발전을 위해서 교육부와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공영형 사립대학모델에서 사학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계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80% 이상 사학대학인 만큼 사학비리 척결과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는 상지대가 선도적으로 모범을 보인 공영형 사립대학의 모델을 더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김애령은 인문한국’(HK)이라는 실험에서 지난 2007년에 시작되어 올해 8월로 1기 사업이 마무리된 인문한국 사업의 의미와 한계를 다루고 있다. 필자가 말하듯 인문한국 사업은 인문학 지원 사업으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이것은 무엇보다 학과 중심의 인문학 연구 이외에 학제 연구 및 융합 연구에 기반을 둔 연구소 중심의 인문학 연구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업이었다. 10년 동안의 국가 지원을 바탕으로 이전까지는 유명무실한 껍데기 연구소에 불과했던 대학의 인문학 연구소들은 활력과 창의력을 갖추었고, 인문학 연구의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인문학의 오랜 학문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적 도전을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다움의 규범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인문한국 사업은 수행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1기 사업 종료 시점을 두 달 앞두고 기존 인문한국 사업단이 새로운 인문한국플러스 사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지난 10년 동안 구축해놓은 인문학의 새로운 인프라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100여 명에 달하는 인문한국 연구교수들을 실업자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교육부는 이러한 방침에 대한 기존 인문한국 사업단의 항의를 플러스 사업에 새로 진입하는 연구소들과의, 혹은 인문한국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인문학 연구자들과의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함으로써 인문학자들에게 큰 모욕감마저 주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인문학이 당장의 실용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적 의미와 시대적 가치를 성찰하고 구성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작업이라면, 그리고 1기 인문한국 사업이 그 작업을 위한 중요한 인프라를 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을 계속 살리고 육성하는 방향의 정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필자의 견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호에서는 포토에세이 및 문학, 문화비평, 서평 등에서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러 글을 실었다. 하나하나 거론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젠더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익하고 값진 통찰들을 담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4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대면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이 바로 그런 역사적 사건의 시기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군사 독재의 강고한 틀이 시민들의 작고도 거대한 힘에 밀려 깨어지는 것을 감동적으로 체험했고, 또 얼마 뒤에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래 70여 년을 지속해왔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내 생애 또 다시 그런 거대한 역사성의 시기를 경험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지난 겨울 다시 한 번 내가 역사의 거대한 현장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 역사성의 시간은 지금도 진행 중일 것이다. 이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되고 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진부하지만, 우리의 실천에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많은 을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를 정치화하는 것이 바로 그 실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을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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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철학회에서 발간하는 [가톨릭철학] 29집에 수록될 논문 한 편 올립니다.


이 글은 최종 교정이 끝나지 않은 글이니, 토론이나 인용을 원하는 분들은 [가톨릭철학]에 수록된 


글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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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권력, 통치, 주체화: 미셸 푸코와 에로스의 문제

 

 

I. 푸코 사상의 수수께끼와 을의 민주주의

 

미셸 푸코(1926~1984)가 사망하고 난 뒤 2000년대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푸코 연구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1976)󰡔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1984) 󰡔성의 역사 3: 자기에의 배려󰡕(1984) 사이의 공백내지 단절이라는 문제였다. 단일한 제목을 달고 있는 연작의 1권과 2-3권 사이에 8년의 시간적 공백이 있다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더욱이 푸코는 8년 동안 아무 책도 출간하지 않았다), 양자 사이에는 또한 커다란 주제 상의 차이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감시와 처벌󰡕(1975) 󰡔앎의 의지󰡕에서 전개된 권력의 계보학에서는 규율권력에 의한 예속적 주체의 생산이라는 문제가 중심 주제였던 반면에, 󰡔성의 역사󰡕 2-3권에서는 오히려 윤리적 주체의 구성이라는 주제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성의 역사기획의 변화에 관한 푸코 자신의 해명으로는, Michel Foucault, “Le retour de la morale: entretien avec G. Barbedette et A. Scala”, “Le souci de la vérité: entretien avec F. Ewald”,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aris: Gallimard, 2001 참조.]


이 때문에 푸코의 계보학 기획은 실패했으며, 󰡔성의 역사󰡕 2-3권은 푸코가 고전적인 주체 개념으로 회귀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는 비판들이 숱하게 제기되었다.[이런 비판은 각자 상이한 철학적 입장에 근거를 둔 다음 저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낸시 프레이저, 푸코의 권력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경험적 통찰과 규범적 혼란(1982), 정일준 엮음,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서울: 새물결, 1994; Charles Taylor, “Foucault on Freedom and Truth”, Political Theory, vol. 12, no. 2, 1984; 위르겐 하버마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이진우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1994; Peter Dews, Logics of Disintegration: Post-tructuralist Thought and the Claims of Critical Theory, LondonNew York: Verso, 1987; 사토 요시유키, 󰡔권력과 저항󰡕, 김상운 옮김, 서울: 난장, 2012; Lois McNay, “‘The Foucauldian Body and the Exclusion of Experience”, in Hypatia, vol. 6, no. 3, 1991; Foucault: A Critical Introduction, Cambridge: Polity Press, 1994. 프레이저는 비판이론적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푸코에게서 규범적 이론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으며, 테일러는 자율성의 원천으로서 주체 개념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하버마스는 새로운 보수주의라는 시각에서 푸코를 비판하고 있으며, 듀스는 포스트구조주의 일반의 관점을 탈통합의 논리로 제시하면서, 푸코의 권력론과 후기 푸코의 윤리적 주체이론 사이의 비일관성을 비판하고 있다. 사토 역시 이러한 비일관성을 지적한다. 또한 맥니는 권력과 신체의 관계를 드러낸 점이 푸코 이론의 장점이지만, 여기에서는 해방 이론을 위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하면서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비판에 맞서 통치성 내지 통치의 관점에서 푸코 사상의 연속성을 보여주려는 주목할 만한 시도들도 많이 제시된 바 있다. 특히 Thomas Lemke, “Foucault, Governmentality, Critique”, in Rethinking Marxism, vol. 14, no. 3, 2002; “Foucault’s Hypothesis: From the Critique of the Juridico-Discursive Concept of Power to the Analytics of Government”, in Parrhesia, no. 9, 2010 Mark Bevir, “Foucault and Critique: Deploying Agency against Autonomy”, in Political Theory, vol. 27, no. 1, 1999 참조.] 하지만 1997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8년의 공백기 동안 푸코가 통치(gouvernement) 내지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실험하고 있었으며, 이는 권력의 계보학과 단절하거나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이 생산하는 예속적 주체화 양식과 구별되는 주체화 양식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였음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지난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제기되었던 류의 비판들은 이론적 적실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29, 2012 Thomas Lemke, “Foucault’s Hypothesis: From the Critique of the Juridico-Discursive Concept of Power to the Analytics of Government”, op. cit. 참조.]


내가 이 글에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규율권력에서 통치성 내지 통치의 문제설정으로의 이행이 어떤 이론적 쟁점을 지니고 있는지 검토한 뒤, 통치의 문제설정에 따라 새롭게 제기되는 주체화 양식의 관점에서 에로스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이래 여러 비판가들이나 주석가들이 주장해왔던 것과 달리 통치성의 문제설정에 따라 고찰해보면, 성 또는 에로스의 문제[내가 사용하는 에로스(eros)라는 개념은 넓은 의미의 성적 관계를 뜻한다. 곧 이성애만이 아니라 동성애 관계를 포함하며, 성욕이나 성적 쾌락의 관계만이 아니라 부부, 동반자, 연인 사이의 관계 및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윤리적정치적 실천들을 지칭한다.]는 예속적 주체화와 다른 자유로운 주체화 양식을 모색하려는 푸코의 일관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푸코가 성 또는 에로스의 문제에서 탐구하려고 했던 실존의 미학은 권력의 계보학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연속적이라는 것이 내 주장의 논점이다.


푸코와 에로스의 문제는 이미 여러 연구자들의 관심을 끈 주제였다. 푸코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만큼 푸코 저작은 특히 동성애 활동가 및 퀴어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었고,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나 이브 코소프스키 시즈윅(Eve Kosofsky Sedgwick) 또는 데이비드 핼퍼린(David Halperin) 등과 같은 저명한 퀴어 이론가들의 작업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이로든) 큰 영향을 미쳤다.[퀴어이론에 대한 표준적인 개론서로는, 애너매리 야고스, 󰡔퀴어이론 입문󰡕, 박이은실 옮김, 서울: 여이연, 2012를 참조하고 푸코와 퀴어 이론에 관한 전반적인 논의는 푸코와 퀴어 이론”(Foucault and Queer Theory)을 특집으로 엮은, Foucault Studies, vol. 14, 2012 참조.] 또한 존 라이크만(John Rajchman)1991년 저작인 󰡔진리와 에로스󰡕에서 푸코 후기 윤리학의 핵심을 에로스의 문제로 파악하면서, 이를 자유의 기술 내지 실천에 입각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John Rajchman, Truth and Eros: Foucault, Lacan, and the Question of Ethics, New YorkLondon, Routledge, 1991, p. 112.] 또한 최근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린 허퍼(Lynne Huffer)는 푸코의 초기 대표작인 󰡔광기의 역사󰡕의 문제설정에 따라 푸코 사상에서 에로스의 문제를 재구성하려는 야심적인 작업을 수행한 바 있다.[Lynne Huffer, “Foucault’s Ethical Ars Erotica”, in Sub-Stance, vol. 38, no. 3, 2009; Mad for Foucault: Rethinking the Foundations of Queer Theor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참조. 그는 에로스의 윤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합리주의적 도덕성에 대한 윤리적 대안곧 그 도덕적 프레임에서 풀려난 성적 경험이라고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는 어떤 것이 내가 푸코의 에로스의 윤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Ibid., p. xvi)] 이 글에서 나는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를 참조하면서, 주체화의 문제설정에 입각하여 에로스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내가 에로스라는 주제를 통치성 및 주체화 양식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단지 푸코 사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2~3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는 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와도 관련되어 있다.[진태원, 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철학적 단상, 󰡔황해문화󰡕 96, 2017 참조.]


주지하다시피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헬조선’, ‘망한민국’, ‘흙수저금수저등과 같은 자조적 담론과 더불어 갑과 을이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청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주 및 알바생에 대한 갑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의 갑질, 다문화 가정과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을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등이 이러한 사회적 담론이 유행하게 된 배경을 이루고 있다. 더 넓게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세계화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소수자/약소자(minority), 을의 다수화라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사회화는 노동자 계급 조직을 비롯한 사회적 연대 조직을 약화시키거나 해체하고 더 나아가 개인들이 속해 있는 소속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듦으로써(비정규직화, 조기 정년, 프리랜서, 자영업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대다수 개인들을 단자화(單子化)하고 불안정한 존재자들로 만든다. ‘은 수적으로는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 자신들의 독자적인 조직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지 못한 단자적이고 불안정한 소수자들/약소자들이다.”[진태원, 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철학적 단상, 같은 글, 61.] 따라서 대다수의 국민이 을의 지위로 전락하고 있지만 그들 사이의 연대나 조직화는 매우 문제적이고 불분명한 상황이야말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쇠퇴 경향의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으로 이는 약소자들의 삶과 사회적 지위를 더욱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및 알바생, 영세 자영업자, 대학원생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약소자들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동정 여론이 존재하고 정책적 대안이 모색되고 있지만,[물론 여기에도 집요한 저항이 존재하며, 더욱이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일관성 있고 철저하게 전개될 수 있는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유독 성적 소수자들 문제에 관해서는 첨예한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으며 더욱이 반대 여론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혐오 담론이 여성을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해준다.[혐오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되면서 이 문제에 관한 여러 논의가 나오고 있다. 특히 여성 혐오 및 성적 소수자 혐오에 관해서는, 윤보라 외,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서울: 현실문화, 2015; 이현재, 󰡔여성혐오, 그 후󰡕, 파주: 들녘, 2016; 홍재희 외, 󰡔그건 혐오예요󰡕, 서울: 행성B(행성비), 2017 등을 참조.]된장녀에서 김치녀로 이어지는 여성 혐오 담론은 오늘날 페미니즘 일반에 대한 공격과 혐오로 나타나고 있으며,[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폐지운동본부라는 명칭을 가진 보수 학부모단체가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교사를 고발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페미니즘' 가르친 교사를 검찰에 고발한 학부모단체”, 󰡔경향신문󰡕 2017920. 또한 인권의 최종적인 보호자가 되어야 할 대법원장 국회 인준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동성애 문제가 부각되고 있고, 대법원장 후보자는 자신이 동성애를 지지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김명수 동성애 지지한 적 없어 ... 허위사실 유포에 심각한 우려””, 󰡔뉴스1󰡕 2017.9.20.]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이들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고 경제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들 중 상당수도 이러한 공격을 지지하거나 방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젠더 폭력 개념을 둘러싸고 또 다른 인식론적정치적 경계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은 대통령 직속기구로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가칭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 󰡔KBS뉴스󰡕 2017.7.10.(http://news.kbs.co.kr/news/view.do?ncd=3513071)]이때 젠더 폭력의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성적 소수자 일반을 지칭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며, 이러한 불분명함은 문재인 정권의 지지자들 사이에 성적 소수자에 대한 입장에 상당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반면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젠더 폭력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무지할 뿐더러 그 사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음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홍준표, “젠더폭력이 뭔데? ... 여성정책토론회서 혼쭐”, 󰡔뷰스앤뉴스󰡕 2017.9.19.(http://www.viewsnnews.com/article?q=149523)]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들은 단순히 을이 아니라 을의 을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자들이며, 우리가 을의 민주주의을을 위한, 을에 의한, 을의 민주주의라고 간략히 규정할 수 있다면,[진태원, 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철학적 단상, 앞의 글 참조.] 성적 소수자들의 문제야말로 을의 민주주의를 사고하기 위한 시금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을 또는 을의 을로서의 성적 소수자의 문제는 착취 관계나 정치적 지배 관계로 환원되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를 예속적인 지위에 놓이게 만드는 (불평등과 부자유로서의) 지배의 관계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반면 국내의 혐오 논의는 푸코의 규율권력이나 통치성 개념보다는 크리스테바의 개념인 비체’(abject)에 입각하거나(특히 이현재 등이 그렇다) 아니면 넓은 의미의 인권의 문제설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우리가 푸코의 통치성 개념에서, 그리고 에로스의 문제를 주체화 양식의 문제로 이해하는 그의 시각에서 이러한 쟁점을 사고하는 데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이 글을 인도하는 또 다른 주요 관심사다.

 


II. 규율권력에서 통치성으로: 어떤 이행?

 

1. 규율권력과 예속적 주체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푸코는 1975년 출간된 󰡔감시와 처벌󰡕에서, 평등과 자유에 입각한 근대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기원에는 예속적 주체화(assujettissement) 메커니즘으로서 규율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다음 두 개의 인용문은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의 이론적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잘 드러내준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 그리고 사람들이 해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이미 그 자체에서 그 인간보다도 훨씬 깊은 곳에서 행해지는 예속화의 성과인 것이다. 한 영혼이 인간 속에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생존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권력이 신체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력 안의 한 부품인 것이다. 영혼은 정치적 해부술의 성과이자 도구이며, 또한 신체의 감옥이다.[M. Foucault, Surveiller et punir, Paris: Gallimard, 1975, p. 38;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 서울: 나남, 1994, 60-번역은 수정.]

 

부르주아지가 18세기를 통해 정치적 지배 계급이 된 과정은 명시적이고 명문화되고 형식적으로 평등한 법적 틀의 설정과 의회제 및 대의제의 형식을 띤 체제의 조직화에 의지한 것이다. 하지만 규율 장치의 발전과 일반화는 이러한 과정의 어두운 이면을 만들어 놓았다. 원칙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권리 체계를 보증했던 일반적인 법률 형태는 이러한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물리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규율로 형성된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고 불균형적인 권력의 모든 체계에 의해 그 바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 현실적이고 신체적인 규율은 형식적이고 법률적인 자유의 기반을 마련했다.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 계몽주의 시대는 또한 규율을 발명한 시대였다.” [Ibid., p. 258; 같은 책, 322~23-번역은 수정했으며 강조 표시는 인용자가 추가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푸코는 관계론적 권력론이라 부를 수 있는 관점에 입각하여 주체에 관한 서양 근대 철학 및 정치학의 관점을 뒤집고 있다. 곧 전자의 인용문이 인간 또는 주체에 관한 근대적인 관점을 뒤집고 있다면, 후자는 근대 정치의 질서에 관한 자유주의적계몽주의적 관점을 전복하고 있다.[푸코의 관계론적 권력론에 관해서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앞의 글 참조.]


데카르트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칸트 이래로[󰡔니체󰡕 2권에서 서양 철학사를 형이상학의 역사(또는 역운’(歷運, Geschick))으로 이론화하면서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개념을 cogito me cogitare의 의미로 풀이하고 이를 주관성의 형이상학의 기원으로 제시한 사람은 하이데거였다. 하지만 18세기 프랑스혁명 및 미국혁명이라는 고전적인 부르주아 혁명과 이에 관한 철학적 성찰 속에서 근대적 주체 개념이 성립했다고 본다면, 근대적인 주체의 기원은 데카르트가 아니라(사실 그에게는 근대적인 의미의 주체개념이 나타나지 않는다), 칸트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한 더 상세한 논의는 Etienne Balibar, “Citoyen sujet”, in Citoyen sujet et autres essais d'anthropologie philosophique, Paris: PUF, 2011 참조.주체라는 범주는 서양 근대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존재해왔다. 근대 철학의 기본 범주로서 이해된 주체는 무엇보다 인식과 실천의 원리, 곧 인간의 모든 인식 및 도덕적 실천의 토대로 기능하며, 따라서 그보다 상위의 원리에 예속되지 않는 자율적인 존재자로 간주된다. 또한 서양 근대 정치학의 지배적인 모델을 이루는 사회계약론은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사회계약을 통해 정치사회를 구성하려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근대 국가의 규범적 토대를 발견한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의 자명한 전제는 자유롭게 토론하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개인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푸코는 권력에 대한 분석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들의 권력을 자유롭게 양도하는 이상적 주체들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상적 주체들 또는 자유로운 개인들은 권력 관계 이전에, 그리고 그 바깥에서 항상 이미 성립해 있는 존재자들이 아니라, 권력 관계를 통해서만 성립하고 존재하고 재생산될 수 있는 존재자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권력 관계는 사람들을 근대의 지배 질서가 성립하고 유지되는 데 필요한 순종적인 주체들로 생산하는 예속적 주체화를 핵심 기능으로 삼는 권력 관계이며(푸코가 규율권력이라고 부른), 이러한 예속적 주체화를 통해 비로소 근대적 주체들은 주체들로서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근대적 주체들은 권력 관계의 기원에 놓인 정치적 질서의 창시자들이 아니라, 지배 질서에 예속되어 그러한 질서를 유지하고 재생산할 임무를 부과 받은 예속적 주체들이다.


여기서 영어로는 subject, 또는 불어로는 sujet라는 말이 지닌 이중적 의미를 유념해야 한다.[subject 내지 sujet 개념에 함축된 이중적 의미에 관해서는 Etienne Balibar, “Subjection and Subjectivation”, in Joan Copjec ed., Supposing the Subject, LondonNew York: Verso, 1994; “Citoyen sujet”, in Citoyen sujet et autres essais d'anthropologie philosophique, 앞의 책 참조.] 근대 철학이나 정치학에 의해 subject가 자유롭고 자율적인 주체로 부각되기 이전에, 또는 그 이면에서 subject는 예속적인 존재자, ‘신민’(臣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푸코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중적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다. “권력을 관계의 원초적 항들로부터 출발해서 연구할 게 아니라, 관계야말로 자신이 향하고 있는 요소들을 규정하는 것인 한에서, 관계 자체로부터 출발해서 연구해야 한다. 이상적 주체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예속될(assujettir) 수 있도록 그들 자신으로부터 또는 그들의 권력으로부터 양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를 묻기보다는, 어떻게 예속 관계들(relations d'assujettissement)이 주체들을 제작할(fabriquer)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M. Foucault,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5-1976), Paris: Gallimard/Seuil, 1997;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김상운 옮김, 서울: 난장, 2015, 315번역은 수정했으며, 강조는 인용자가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 철학과 정치학, 그리고 그것이 정당화하는 근대 사회(곧 자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회)는 권력 관계 이전에, 그리고 그 바깥에서 이미 존재하는 자유로운 개인 주체들을 가정하고 있지만,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가정은 그 이면, 그 하부구조에서 작동하는 규율 권력, 곧 예속적인 주체들을 생산하는 예속적 주체화의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이에 따라 자유롭고 자율적인 주체들이란 사실은 이미 예속적 권력 관계들에 의해 생산된 예속적 신민-주체들이라는 점을 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2. 규율권력에서 통치성으로

 

푸코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연히 여러 가지 비판이 제기되었고, 특히 푸코의 규율권력론은 일종의 기능주의적 권력론이라는 고발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규율권력론에 따를 경우, 규율권력을 통해 제작된 개인들은 자본주의 체계의 재생산 속으로 완전히 포섭되기 때문에 더 이상 변혁이나 심지어 저항의 가능성을 사고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 이후 푸코의 작업은 규율권력론에 내재한 난점들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록이 유고집으로 출판되면서 우리가 더 잘 알게 된 것이 이 작업에서 통치 내지 통치성이라는 개념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통치성은 품행인도(conduire des conduites 영어로는 conduct of conducts)라고 규정할 수 있다.

 

2.1. 관계론적 권력론으로서 통치 개념

 

이것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푸코가 말하는 통치성 내지 통치는 그가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에서 이론화한 관계론적 권력론 또는 권력의 계보학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통치라고 말하는 것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별에 의거하여 주권자인 국민(또는 인민)의 동의에 따라 선출된 합법적인 정부의 활동을 지칭하지만, 푸코는 이러한 통치 개념이 법적 관점에 기반을 둔 권력론의 산물이라고 간주한다. 실제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에서 푸코는 주권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법적 권력론을 생산적이고 다원적이며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관계론적 권력론으로 대체하고자 시도했으며, 이러한 권력론에 따라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발전시킨 것이 통치 개념이다. 1981~82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인 󰡔주체의 해석학󰡕의 한 대목은 이를 아주 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더 일반적인 통치성, 곧 단순히 정치적인 의미로 이해된 통치성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에서 권력 관계의 전략적 장으로 이해된 통치성의 문제에 권력, 정치권력의 문제를 위치시키면서 다룬다면, 우리가 통치성을 권력 관계가 갖는 유동성전환 가능성역전 가능성을 지닌 권력 관계의 전략적 장으로 이해한다면, 통치성 관념에 대한 성찰은 반드시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주체의 요소를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도로서의 정치권력에 관한 이론은 보통 권리 주체에 관한 법적 관점에 준거하는 반면, 통치성에 대한 분석다시 말해 역전 가능한 관계의 총체로서의 권력에 대한 분석은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에 의해 규정된 주체의 윤리에 준거해야 합니다. [Michel Foucault, L’herméneutique du sujet: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1-1982), Paris: Gallimard/Seuil, 2001, pp. 241~42;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심세광 옮김, 서울: 동문선, 2007, 283~84(번역은 약간 수정).]

 

2.2. 규율 개념의 진정한 함의


둘째, 새로운 통치 개념의 근저에는 권력과 주체의 관계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규율권력 이론의 핵심 중 하나가 예속적 주체화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만약 주체가 권력 이전에 성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관계를 통해 비로소 주체로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것이라면,[이점에서 푸코의 규율권력론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 이론 사이의 연관성과 차이 및 갈등이라는 문제는 독립적으로 다뤄볼 만한 주제다. 기존의 논의로는 특히 Warren Montag, “Althusser and Foucault: Apparatuses of Subjection”, in Althusser and His Contemporaries: Philosophy's Perpetual War,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3 참조.] 주체가 권력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푸코를 기능주의자나 허무주의자라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푸코의 새로운 권력이론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여전히 자유와 대립하는 것으로, 곧 억압하거나 금지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권력 바깥에서만 자유가 가능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푸코의 규율권력 개념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겨나는 비판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체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케 하고 체력의 지속적인 복종을 확보하며 체력에 순종-효용(docilité-utilité)의 관계를 강제하는 이러한 방법을 규율’(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다.”[Michel Foucault, Surveiller et punir, p. 139;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16.그리고 조금 뒤에서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규율의 역사적 시기는 신체의 능력 확장이나 신체에 대한 구속의 강화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가 유용하면 할수록 더욱 신체를 복종적인 것으로 만드는, 또는 그 반대로 복종하면 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만드는 관계의 성립을 지향하는, 신체에 대한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는 시기다.”[Michel Foucault, Surveiller et punir, p. 139; 미셸 푸코, 같은 책, 217. 번역은 약간 수정했고, 강조는 인용자가 한 것이다.따라서 규율은 신체를 단순히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기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주체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이런 점에서 한 연구자의 다음과 같은 논평은 인용할 만하다. “그렇다면 규율, 감시 또는 파놉티즘 개념들은 가치론적인 측면에서 중립적이라는 점(또는 항상 그래야 마땅하다는 점)을 상기시켜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규율 또는 자기감시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며, 주체화 내지 자기 실천은 필연적으로 긍정적이고 탈소외화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개념들은 서술적인 것이며, 이 개념들이 지칭하는 실재들은 일정하게 정치적으로 규정된 저항들 내지 투쟁들의 관점에서만 비판될 수 있다.” Stéphane Legrand, “Le marxisme oubliée de Foucault”, in Actuel Marx, no. 36, 2004, p. 27. 강조는 원문.] 그것의 핵심은 신체를 더욱 더 유용한 신체로, 더 생산적이고 유능한 신체로 만들되, 동시에 그 신체가 권력의 지배적인 질서에 잘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역으로 지배적 질서에 잘 복종하는 것이 신체의 유용성을 증가시키는 조건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스피노자는 바로 이것을 수동 개념이라고 불렀다. 이에 관한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스피노자와 푸코: 관계론의 철학(), 서동욱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 서울: 민음사, 2017 참조.이것은 신체로 하여금 일정한 매뉴얼 또는 표준적 규범(예컨대, 군대의 총검술이나 사격술, 학교의 글쓰기 자세, 공장의 생산 과정의 표준화, 감옥의 세세한 일과표 등)에 따르도록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렇게 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신체의 능력을 증가시키면서 동시에 신체가 권력의 지배에 잘 복종하게 되는 메커니즘이 확립되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어쨌든 이것이, ()근대적인 주권 권력과 구별되는 규율권력의 특징이었다.

 

2.3. 규율 권력론을 넘어서

 

따라서 푸코를 기능주의자로 고발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당전제에 입각한 비판이지만, 낸시 프레이저나 찰스 테일러 등이 제기한 규범적 쟁점은 여전히 남게 된다. 곧 푸코 식의 규율권력론에 입각할 때 부당한 권력과 정의로운 권력의 차이,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권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고 고무하는 권력 내지 역량의 차이는 어떻게 식별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더욱이 근대 정치 및 윤리가 인식과 실천의 근거로서 주체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푸코의 규율권력은 이러한 주체를 권력의 산물로 간주하고, 따라서 주체는 본래적으로 예속적 주체일 수밖에 없다면, 이 문제는 더욱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푸코의 통치 개념은 관계론적 권력론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에 입각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푸코의 논점을 이해하려면 그가 권력과 지배 개념을 구별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자유들 사이의 전략적 게임으로서의 권력 관계이러한 전략적 게임은 어떤 사람들이 타인들의 행위를 규정하려고 시도하게 만들며, 여기에 대해 타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규정되지 않게 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처음의] 타인들의 행위를 역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보통 권력이라고 부르는 지배 상태를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자 사이에서, 권력 게임과 지배 상태에서 우리는 통치 기술을 갖게 됩니다. 통치 기술이라는 이 용어는 아주 넓은 의미, 곧 제도를 통치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통치하는 방식도 포함하는 의미를 지닙니다.[Michel Foucault, “L'éthique du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 in Dits et écrits, vol. II, p. 1547; 자유의 실천으로서 자기 배려,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123-24. 번역은 다소 수정.]

 

푸코에게 권력은 지배 계급이 다소간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계급 지배의 도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주체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전략적 게임이며, 또한 자유로운 주체들의 존재와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Michel Foucault, “The Subject and Power”(1982) in Paul Rabinow & Nikolas Rose eds., The Essential Foucault: Selections From the Essential Works of Foucault 1954-1984, New York: New Press, 2003, p. 342.따라서 권력 관계는 가변성과 역전 가능성(곧 통치와 피통치자의 지위)을 핵심으로 한다. 반면 푸코는 대개 권력으로 통칭되는 것을 지배라는 개념으로 규정한다. 권력과 달리 지배는 관계의 두 항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역적이고 불평등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말한다면, 갑이 항상 갑의 지위에서 행위하고 을은 항상 을의 지위에서 행위하게 될 때가 바로 지배가 작동하는 경우이며, 역으로 갑과 을 사이에 가변성과 역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경우가 푸코가 말하는 권력 관계다. 따라서 권력은 자유나 해방의 대립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와 해방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되며(그 역도 성립한다), 해방은 어떤 권력의 지배적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권력 관계를 열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푸코가 규율 권력 개념을 통해 제시했던 주체와 권력의 관계가 상이한 방식으로 재규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치 개념에 입각해 보면 규율 권력론의 특징과 한계는 다음과 같이 집약될 수 있다.


1) 권력 관계 이전에 항상 이미 존재하고 있는 주체들, 특히 인식과 실천의 중심으로서의 주권적 주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근대 철학 및 정치학의 인간주의적-계몽주의적 관점은 기각된다. 이러한 관점은 푸코가 후기에도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관점이다.[푸코는 자신의 관점을 간명하게 밝히고 있다. “첫째, 저는 실로 도처에서 발견되는 주권적이고 정초하는 주체, 보편적 형식의 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체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며, 그에 적대적입니다. 반대로 저는 주체는 예속화의 실천들을 통해 구성된다고, 또는 좀 더 자율적인 방식으로는, 고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화, 자유의 실천들을 통해 구성된다고 믿습니다. 이는 물론 문화적 맥락에서 재발견되는 일정한 수의 규칙, 스타일, 관례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Michel Foucault, “Une esthétique de l‘existence”, in Dits et écrits, vol. II, p. 1552.]


2) 주체는 권력 관계의 산물이지만, 이는 주체가 완전히 타율적이라는 것, 또는 전적으로 피동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규율의 핵심은 신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주체의 능력 내지 역량을 신장시키는 것이다.


3) 그런데 이러한 주체의 능력의 신장은 지배적인 권력에 대한 주체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규율 권력을 비롯한 권력의 핵심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되 권력의 인도에 순종하는 주체들을 생산하는 것, 곧 예속적 주체화의 작용이다.


4) 통치 개념을 제안하면서 푸코가 자신의 이전 작업에 대해 비판적으로 묻는 것은, 이것이 주체 생산의 유일한 방식인가, 주체화의 방식, 절차에는 이러한 방식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는 권력의 본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함축되어 있다. 주체가 권력의 산물이라는 것, 권력 관계의 핵심은 주체의 생산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푸코는 이미 규율권력론에서 권력 관계에 의해 생산된 주체는 전적으로 타율적이거나 피동적인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는데, 규율권력이 생산하는 주체는 유능한 주체, 효율적이고 우수한 수행성을 발휘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지배 권력 또는 권력의 지배적 관계에 대한 복종의 결과라는 점이다. 따라서 주체가 자신의 능력을 신장하는 길은 지배 권력이 부과하는 주체화 절차에 따르는 길밖에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푸코가 계몽이란 무엇인가?(1984)라는 말년의 글에서 제기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질문이다. “어떻게 능력의 신장이 권력 관계의 강화와 분리될 수 있는가?”[M. Foucault, Dits et écrits, vol. II, p. 1595.]

 

3. 규율권력론의 세 가지 정정

 

3.1. 존재론적 정정


이러한 질문에서 통치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의 정정이 필요하다. 우선 관계론적 권력 개념을 존재론적 측면에서 더 심화할 필요가 있다. 통치의 문제설정에 입각해 보면 규율권력론에 함축된 권력 개념은 관계론적인 개념이기는 하되,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다. 이를 이해하려면 푸코가 통치의 문제설정에 따라 어떻게 권력을 새롭게 개념화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푸코는 주체와 권력에서 통치성 내지 통치의 관점에서 권력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에게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고유한 행위에 대해 작용하는 행위 양식이다. 행위에 대한 행위(une action sur action), 잠재적이든 현행적이든, 미래의 행위든 현재의 행위든 간에 행위들에 대한 행위”[M. Foucault, Dits et écrits, II, p. 1055. 강조는 인용자.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푸코는 이러한 행위에 대한 행위가 정확히 말하면 가능성의 장()” 위에서 작동한다고 말한다. 권력 관계는 가능한 행위들에 대한 행위들의 집합이다. 권력 관계는, 행위하는 주체들의 행동이 기입되는 가능성의 장 위에서 작동한다. 그것은 고무하고 유발하고 우회하고 촉진하거나 아니면 더 어렵게 만들고 확장하거나 한정하고 개연성을 높이거나 저하시킨다.”[Ibid., p. 1056. 강조는 인용자.그리고 푸코는 이를 콩뒤트”(conduite, 영어로는 conduct) 개념, 품행개념과 연결시킨다. “‘품행이라는 용어는, 그것이 지닌 다의성과 함께 아마도 권력 관계에 존재하는 종별성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용어 중 하나일 것이다. ‘품행은 타인들을 (다소간 엄격한 강제 메커니즘에 따라) ‘인도하는행위이면서 동시에 다소간 개방된 가능성들의 장 속에서 처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권력의 행사는 품행들을 인도하는’(conduire des conduites, conduct of conducts) 것에, 그리고 개연성을 관리하는(aménager) 것에 있다.”[Ibid.]


이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이전의 규율권력론에 대한 중요한 존재론적 정정을 제시하는 정의다. 규율권력론에서 권력의 규율 기술은 신체에 대해 작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신체를 직접, 무매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겨냥하는 대상인 신체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신체 자신이 권력이 원하는 방식, 인도하는 방식대로 행위하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규율권력 개념은 이미 권력의 핵심은 행위에 대한 행위라는 것을 함축한다. 하지만 푸코가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인 작용작용에 대한 작용내지 행위에 대한 행위를 구별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권력이 겨냥하는 신체는 피동적인 대상, 곧 외부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작용이 있어야 비로소 작용하게 되는 관성적인 물체가 아니라 스스로 행위하는 행위자, 따라서 일정한 능동성 또는 행위 능력(pouvoir)을 지니고 있는 행위자라는 점이다. 행위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대상에 대해 작용하는 것을 푸코는 권력이라고 부르지 않고, 사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구적 기술 관계 또는 객체적 능력”(capacités objectives)의 관계라고 부른다. 그런데 행위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은, 현실태가 아닌 가능태의 영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다수의 가능성들 사이에서의 선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가 권력의 행사를 타인들의 행위에 대한 행위 양식으로 정의할 때, 이를 어떤 인간들의 다른 인간들에 대한 통치”(이 단어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로 특징지을 때”,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 요소, 자유라는 요소[Ibid.]가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하지만 이때 푸코가 말하는 자유는, 관계론적 권력론이 폐기한 법적인 권력론에 가정되어 있는 자유로운 주체, 다시 말해 권력 관계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주체의 자유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에 대해서만, 그들이 자유로운한에서만 행사된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주체라는 말을, 자신들 앞에 가능성의 장, 곧 다수의 품행, 다수의 반작용 및 다양한 처신 양식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을 갖고 있는 개인적이거나 집합적인 주체들로 이해하도록 하자.”[Ibid. 강조는 인용자.]

 

3.2. 윤리적 정정


이처럼 권력 관계가 가능한 행위들에 대한 행위를 의미하고, 여기에는 가능성의 장을 갖고 있는자유로운 주체가 전제되어 있다면, 규율권력은 권력 관계의 특수한 한 가지 방식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규율에 대한 푸코의 관점에는 그 관계론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권력 관계를 맺는 파트너들사이의 대칭성이라는 논점이 결여되어 있다.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규율 권력은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비대칭적인 관계로 특징지을 수 있는 권력이다. 곧 규율의 관계에서 피통치자는 자신의 행위 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통치자가 설정한 행위 내지 품행의 표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 이외에 다른 가능성을 갖지 못한 (또는 매우 적은 가능성들만을 갖고 있는) 행위자인 셈이다. 그리고 이때 피통치자에게서 윤리는 행위의 규칙 내지 법칙(곧 규율권력이 설정한 규범)에 맞춰 행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반면 통치의 관점에서 재정의된 권력 관계에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대칭성이 존재한다면, 이는 통치자만이 아니라 피통치자 역시 자기의 기술로서 윤리적 실천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치 개념의 중심에는 주체화 양식의 관점에 근거를 둔 윤리적 실천의 문제가 존재한다. 푸코는 1980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주체성과 진리라는 제목 아래 이루어진 강연에서 통치의 문제를 두 가지 기술의 접합의 문제로 해명한다.[Michel Foucault, “About the Beginning of the Hermeneutics of the Self: Two Lectures at Dartmouth”, Political Theory, vol. 21, no. 2, 1993.] 그에 따르면 기술(technique)에는 세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사물들을 생산하고 변형하고 조작하는 생산 기술과, 기호 체계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작용 기술,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들의 행위를 규정하고 그들에게 어떤 의지들을 부과하고 그들을 어떤 목적 내지 목표에 종속시키는”[Ibid., p. 203.] 지배의 기술이 그것이다(다소간 용어상의 혼동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 푸코가 지배의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다른 맥락에서 푸코가 통치술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그는 성(sexuality)에 관한 탐구를 통해 이 세 가지 기술 이외에 또 다른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자기의 기술(techniques or technology of the self)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개인들이 그들 자신의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신체와 영혼, 자신들의 사고와 행위에 대해 일정한 숫자의 작용을 실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전환시키고 변형하고 완전성과 행복, 순수성, 초자연적 능력 등과 같은 일정한 상태를 획득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Ibid.]을 의미한다. 통치는 바로 지배의 기술과 자기의 기술이 접촉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통치는 한편으로 개인들이 지닌 지배의 기술이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행하는 자기의 기술에 의거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의 기술이 강압이나 지배의 구조로 통합되는 지점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개인들 각자가 지닌 자기의 기술과 개인들 각자가 타인들의 행위를 인도하기 위해 행사하는 지배의 기술의 상호 전제와 상호 연관성, 상호 접촉 관계를 푸코는 통치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통치의 범위가 보통 말하는 좁은 의미의 통치를 넘어서 인간들 사이의 훨씬 더 다양한 사적공적 관계로 확장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통치는 갑과 을 사이에 존재하는 대칭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가 단순히 외적인 강압 관계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며, 갑의 자기의 기술과 을의 자기의 기술 또는 갑과 을 각자가 실행하는 지배의 기술의 복합적 작용의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을과 병, 또는 병과 정 등과 같은 또 다른 관계에 대해서도 타당할 것이다.

 

3.3. 정치적 정정: 탈주체화와 대항품행


이렇게 규율권력에 기반을 둔 권력론에서 통치의 문제설정으로 나아가면서 권력 개념이 존재론적이고 윤리적 측면에서 정정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도 정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은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새롭게 사고하는 방식이다. 푸코는 󰡔성의 역사 1󰡕에서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으며 ... 권력과 관련하여 하나의 위대한 거부의 장소(반역의 정신, 모든 반란의 온상, 혁명가의 순수한 법칙)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제각기 특별한 경우인 여러저항들 이 있다”[Michel Foucault, Histoire de la sexualité I, La Volonté de savoir, Paris: Gallimard, 1976, pp. 125-27;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 이규현 옮김, 서울: 나남, 2010(수정 3), 109-11.]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1978년 프랑스철학회에서 했던 비판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는 더 나아가 비판을 “‘통치 받지 않기 위한 기예(art)’, 다시 말해 이런 식으로, 또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 통치 받지 않으려는 기예’”[Michel Foucault, Qu’est-ce que la critique suivi de La culture de soi, Paris: Vrin, 2015, p. 37;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오트르망 옮김, 파주: 동녘, 2016, 45. 번역은 약간 수정.]로 정의하면서 탈예속화또는 탈예속적 주체화(désassujettissement)[Michel Foucault, Ibid., p. 39; 같은 책, 47.]를 비판의 본질적 기능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안전, 영토, 인구󰡕 강의록에서는 탈예속화 내지 탈예속적 주체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또 다른 개념, 대항 품행(contre-conduit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이 개념의 함의에 관해서는 특히 Arnold I. Davidson, “In Praise of Counter-Conduct”, in History of the Human Science, vol. 24, no. 4, 2011 참조.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이 개념을 발전시키려는 최근의 시도들로는 특히 Daniele Lorenzini, “From Counter-Conduct to Critical Attitude: Michel Foucault and the Art of Not Being Governed Quite So Much”, in Foucault Studies, no. 21, 2016 Lauri Siisiäinen (2016) “Foucault and Gay Counter-Conduct”, in Global Society, vol. 30, no. 2, 2016 참조. 앞의 글은 대항 품행의 문제가 푸코 사상에서 비판 내지 비판적 태도의 문제와 깊이 결부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뒤의 글은 대항 품행에 입각하여 게이 운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논평하겠다.]


푸코가 말하는 대항 품행은 어떤 통치성의 인도에 따라 행위하는 대신, 그러한 통치성이 원하는 것과 다른 식으로 행위하는 것을 가리킨다. 푸코는 초기 기독교의 사목 권력의 특성을 인간의 품행을 대상으로 삼는 매우 특이한 유형의 권력”[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서울: 난장, 2011, 269.]이라고 규정하면서, 사목 권력은 동시에 품행과 관련된 특이한 반란”, “품행상의 반란”[미셸 푸코, 같은 책, 269-270.] 또는 품행상의 봉기”[미셸 푸코, 같은 책, 313.]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수반했음을 지적한다. “주권을 행사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과도 다르고, 착취를 확보하고 보장하는 [권력에 맞서는 경제적 반란]과도 구별되는 품행상의 반란의 사례로 푸코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12세기 여성수도원에서 일어난 여성의 지위와 관련된 반란, 18세기에 나타난 비밀결사, 곧 프리메이슨이나 혁명가들의 비밀결사, 18세기 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의학에 대한 강한 거부 등의 사례를 든다. 그러면서 이러한 품행상의 반란을 지칭하는 새로운 개념으로서 대항 품행”[미셸 푸코, 같은 책, 285.]이라는 단어를 제안한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대항품행 개념은 시론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적 위상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품행상의 반란 내지 품행상의 봉기가 단지 초기 기독교나 15~16세기 기독교의 전환기에서만 의미를 갖는 현상이 아니라, 모든 봉기와 혁명의 조건이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다른 목표와 쟁점을 지닌 봉기와 혁명의 절차에서도 품행상의 봉기, 품행상의 반란이라는 차원이 늘 존재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 17세기 영국의 혁명에서 ... 프랑스 혁명에서도 ...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도 품행상의 봉기라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소비에트, 노동자 평의회 등은 [그것의] 현시, 유일한 현시였습니다.”[미셸 푸코, 같은 책, 314. 강조 표시는 인용자.] 다른 한편 대항 품행은 국가 이성 및 내치(內治, police)의 도입을 통해 개시된 근대적 통치성과 대립하면서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대항 통치성으로의 위상을 지니게 된다. 푸코는 맨 마지막 강의(197845)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이러한 대항 품행의 세 가지 형식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국가권력이 시민사회 속으로 흡수되는 것을 꿈꾸었던 19~20세기의 혁명적 종말론”[미셸 푸코, 같은 책, 481.]이며, 두 번째는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인구가 지닌 절대적 권리 ... 혁명 자체의 권리라는 형식이며, 세 번째는 사회의 진리, 국가의 진리, 국가이성 등은 이미 국가 자체가 보유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그 보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형식이다. 요컨대 시민사회를 국가에 대립시키는 것, 인구를 국가에 대립시키는 것, 국민을 국가에 대립시키는 것”[미셸 푸코, 같은 책, 483.]이 근대적 통치성과 대립하면서 그것과 분리될 수 없게 결합되어 온 대항품행의 형식들이라는 것이다. 대항 품행이라는 개념이 이처럼 󰡔안전, 영토, 인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지만, 다음 해의 강의에서는 더 이상 출현하지 않는다.


아무튼 예속적인 주체화 양식이 함축하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 이를 위해 탈예속화 및 대항품행의 양식을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푸코가 규율권력론에 대해 제시하는 세 번째 정치적 정정이라고 할 수 있다.

 


III. 주체화의 문제로서 에로스

 

1. 주체화의 의미

 

이처럼 통치, 품행 인도, 대항 품행 같이,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 등장하는 푸코의 새로운 개념들을 통해 우리는 1976년 무렵부터 푸코가 예속적 주체화에서 탈예속화로의 이행의 가능성을 사고하고자 했음을 인식할 수 있다. 푸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 새로운 개념, 곧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 용어는 1983년 무렵 푸코가 이런저런 학술지에 발표한 글에서 처음 발견된다.[가령 순결의 투쟁(Le combat de la chasteté), Communications, no. 35, 1983; 자기에 대한 글쓰기(L'écriture de soi), Corps écrit, no. 5, 1983; 쾌락의 활용과 자기의 기술(Usage des plaisirs et techniques de soi), Le Débat no. 27, 1983. 이 글들은 모두 Dits et écrits II권에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푸코 자신에 의해 온전하게 이론적으로 가공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 제안될 당시에는 얼마간 애매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 애매성은 주체화라는 개념이 한편으로는 지배 권력에 의한 예속적 주체 생산 양식을 가리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예속적 주체 생산 양식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주체 형성 양식을 뜻하기도 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한 편으로 주체화라는 개념은 푸코가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에서 도입한 예속화 개념의 연장선상에 사용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주체화라는 개념은 객체화”(objectivation)를 뜻한다. 이 경우 주체화는 개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그들을 주체들로 변형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푸코는 주체와 권력에서 바로 이러한 객체화의 관점에서 자신의 작업 전체를 분류한 바 있다. “나는 우선 지난 20여 년 동안 나의 작업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말하고자 한다. (...) 나의 목표는 우리 문화에서 인간이 주체로 되는 방식인, 상이한 양식들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내 저작은 인간을 주체로 변형시키는 객체화의 세 가지 양식을 다루어왔다.”[M. Foucault, Dits et écrits, II, pp. 1041-42.]


첫 번째는 이른바 고고학 시기의 작업에 해당하는 것으로(1960~1969), 푸코는 이러한 작업을 자기 자신에게 과학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질문양식들에 관한 탐구로 규정한다. 여기서 인간은 이러저러한 앎의 대상으로서 객체화된다. 두 번째는 1970년대에 푸코가 전념했던 이른바 계보학적 작업으로서, 여기에서는 내가 분할하는 실천들이라 부르게 된 주체의 객체화를 연구했다. 주체는 자기 내부에서 분할되거나 또는 다른 이들로부터 분할된다. 이 과정은 그를 객체화한다. 미친 자와 정상인 자, 병자와 건강한 자, 범죄자와 착한 소년들이 그 예들이다.”[Ibid.]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을 그 또는 그녀라는 주체로 전환시키는 방식(이것이 나의 최근 작업이다)”에 관한 작업이다. 푸코는 1970년대 말~80년대 초부터 1984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바로 이러한 세 번째 작업, 곧 윤리적 주체화에 관한 작업에 전념한다.


푸코가 이러한 작업을 객체화의 한 양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푸코의 작업은 1970년대 수행되었던 권력의 계보학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푸코의 관심은 1960년대 이래 서구 사회 및 비서구 사회(곧 탈식민주의 사회)에서 막 등장하고 있던 새로운 투쟁의 형식과 목표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푸코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세 가지 투쟁 유형이 존재한다. 하나는 지배의 형식들(민족적, 사회적, 종교적)에 대한 투쟁이며, 두 번째는 개인들을 그들이 생산하는 것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착취 형식들에 대한 투쟁이고, 세 번째가 개인을 그 자신에게 묶어 놓고, 이런 식으로 그를 타인들에게 복종시키는 것에 대한 투쟁(예속적 주체화에 대한 투쟁, 주체성과 복종(soumission) 형식들에 대한 투쟁)”[Ibid., p. 1046.]이다. 이러한 투쟁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과학적 또는 행정적인 심문에 대한 거부이며, 권력의 테크닉과 형식을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때 공격의 대상이 되는 권력은 개인을 범주화하고 개인을 그의 개별성에 따라 표시하고 개인을 그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에 결부시키고, 그가 인정해야 하고 타인들이 그에게서 식별해내야 하는 진리의 법칙을 부과하는 권력, 개인을 주체들/신민들(sujets)로 만드는[Ibid.] 권력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주체화라는 개념은 이처럼 종속화 내지 객체화라는 뜻과 구별되는 좀더 적극적인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주체와 권력에서 이미 이러한 새로운 의미의 단초가 엿보인다. 푸코는 4절로 이루어진 이 글의 첫 번째 단락을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짓고 있다. “아마도 오늘날의 목표는 우리란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ce que nous sommes, what we are)를 거부하는 것일 것 같다. (...) 우리 시대의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문제는 국가나 국가제도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국가로부터 그리고 국가와 결부되어 있는 개체화의 유형 둘 다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이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수 세기 동안 우리에게 부과되어 온 이런 종류의 개체성을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형식의 주체성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Ibid., p. 1051. 강조는 푸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의 존재를 거부할 수 있는가? 수 세기 동안 우리에게 부과되어온 개체성,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의 주체성을 추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사실 말년의 푸코 작업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의 강의록, 특히 1980년대 초의 강의록들[󰡔주체의 해석학󰡕, 앞의 책;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2-1983), Gallimard/Seuil, 2008; Le Courage de la vérité: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II: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4), Gallimard/Seuil, 2009.]이 밝혀주고 있는 것은 푸코가 1970년대 말에 이르러 규율권력에 대한 분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윤리적 차원, 곧 자기로서의 주체가 자기 자신 및 타인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차원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푸코는 이를 통치 내지 통치성의 관점에서, 그리고 자기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탐구하며, 이러한 탐구를 통해 근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개인들의 객체화 양식과 구별되는(따라서 그것의 역사적 한계 및 대안에 대해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고대적인 자기의 기술, 주체화 양식을 발견한다. 사실 푸코는 이미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성의 역사 3: 자기 배려󰡕에서 이러한 상이한 주체화 양식들의 특징과 차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지만, 그러한 논의가 갖는 함의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1980년대 초의 강의록들을 통해서다. 이 강의록들은 󰡔성의 역사󰡕 2권과 3권에 대한 초기 독해들이 제시했던 것처럼, 푸코의 실존의 미학이 관계론적 권력론과 단절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고대 그리스로마, 그리고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윤리적 주체화 양식에 대한 푸코의 분석이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쟁점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곧 푸코가 고대의 윤리적 주체화 양식을 찬양했다거나 이를 근대적인 예속적 주체화 양식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생각, 아울러 그 핵심은 법적인 형식을 띤 주체화 양식에 저항하는 자기 제어또는 자기 주인화의 기술에 있다는 관점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주체화 양식의 단선적인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긍정적이거나 그 자체로 부정적인 주체화 양식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오히려 이제 한계에 직면한 기존의 주체화 양식과 다른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모색하는 것이고, 과거의 주체화 양식들의 역사에 대한 검토를 통해 그 가능성의 지평을 좀더 넓히는 일이다.[이하에서는 원래 고대 그리스로마, 초기 기독교의 윤리적 주체화 양식들에 관한 푸코 분석들을 검토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전체 논문의 구도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있어서 이 부분은 별도의 논문에서 다뤄볼 계획이다.]


2. 주체화, 대항 품행, 에로스

 

이러한 주체화 및 대항 품행 개념에 입각하여 푸코에게서 에로스의 문제를 다시 살펴볼 수 있다. 곧 푸코가 󰡔성의 역사󰡕 1권 및 2~3권에서 추구했던 작업은 사실은 대항 품행으로서 주체화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푸코는 동성애자였으며, 동성애의 경험은 그의 지적 작업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은 그가 생전에 출간한 저작들 속에서 명시적인 주제로 다루어지기보다는 그의 저작의 암묵적인 실천적이론적 동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동성애자로서의 푸코의 경험이 그의 이론적 작업, 특히 그의 후기 주체화에 관한 문제설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역으로 그가 주체화 개념에 입각하여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이론화하려고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재구성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것은 푸코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했던 여러 대담들이다. 푸코는 이 시기에 게이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과 여러 차례 대담을 했으며, 이 대담을 통해 명시적으로 주체화 및 대항 품행에 입각하여 동성애 운동의 함의를 규명하려고 했다.


푸코는 삶의 양식으로서의 우정이라는 제목의 대담에서 동성애에 대한 단순화된 이미지, 동성애란, 거리에서 만난 두 명의 젊은 남자애들이 서로를 눈짓으로 유혹하고 서로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서로 쾌감을 느끼면서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Foucault, “Amitié comme mode de vie”, in Dits et écrits, vol. II, p. 983.]은 외관과 달리 기성사회가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그렇게 비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반면 동성애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동성애적] 성행위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적인 삶의 양식”[Ibid.]이다. 곧 이성애적인 사회 질서 및 관습, 규범과 맞지 않는 동성애적인 삶의 양식(또는 주체화 양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관습적인] 규범이나 확립된 행위 양식이 부재한 가운데새로운 관계 설정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관계들은 기존의 성적 관계들이나 삶의 관습 내에 단락(court-circuit)을 창출해내며, , 규칙, 관습이 존재해야 할 곳에 사랑을 도입한다.”[Ibid.]는 것이다. 푸코가 개인적인 동성애의 경험을 넘어, 동성애 운동에서 주목한 것은 바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해내는 능력, 또는 대항품행의 가능성을 도입하는 힘이다.

 

[동성애] 문화는 개인들 사이에 진정으로 새롭고, 일반적인 문화적 형식과 동질적이지 않은, 또한 그러한 형식에 강요되지도 않는 관계 양상, 실존 양식, 가치 유형, 교환 형태를 발명해냅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게이 문화는 단순히 동성애자들을 위한 동성애자들의 선택으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성애자들에게도 전달 가능한 관계들을 창출해낼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다소 전도시켜, 사람들이 이전 시기에 말했던 것처럼, “사회적 관계의 일반적 정상성 속에 동성애를 재도입하도록 하자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와 정반대의 것을 말해야 합니다.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에게 제안된 관계 유형들로부터 그것[동성애]이 가능한 한 멀리 탈주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가 직면해 있는 빈 공간 속에서 새로운 관계적 가능성들을 창출해내도록 하자.”[Foucault, “Le triomphe social du plaisir sexuel: Une conversation avec Michel Foucault”, in Dits et écrits, vol. II, p. 1130.] 

 

이 대목에서 드러나듯이, 푸코가 동성애자 운동에서 주목한 것은 좁은 의미의 인권 운동이나 인정 투쟁이 아니다. 곧 푸코는 기존 사회의 법이나 사회적 규범, 삶의 양식의 근저에 있는 일반적인 원칙, 곧 인권 등에 의거하여 소수자로서 동성애자들의 성적 권리 및 개인적 권리를 옹호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푸코가 보기에 새로운 법을 만들고 이것에 의거하여 동성애자들의 성적 권리와 개인적 권리를 보장하려고 하는 것은 (특히 동성애의 권리가 심하게 억압받고 사회적인 불관용의 대상이 되는 곳에서는)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혁신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성애자들의 결혼의 권리와 동일한 동성애자들의 결혼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관계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받으려는 욕망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곧 기존의 삶의 양식이나 규범적 관계를 되풀이하는 것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개인적 권리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성애적인 것과 동일한-인용자] 결혼 관계를 재생산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성취된 진보는 사소한 것이 될 것입니다.”[같은 글, p. 1128.]


오히려 푸코는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서 동성애자 운동에 고유한 창조의 능력, 기존의 사회 질서나 규범, 법체계가 구속하고 협소하게 만든 주체화의 능력 및 삶의 양식의 가능성을 발굴하고 확장할 수 있는 능력에 주목한다. 동성애자 운동이 이러한 대항 품행의 가능성, 탈예속화 내지 주체화의 전망을 발굴할 수 있을 때, 동성애자 운동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의 규범과 관계, 삶의 양식을 똑같이 영위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성애자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성적 관계, 삶의 양식, 행위 방식의 변화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운동의 윤리적 의의는 정상성으로서의 보편성을 균열시키고 그 안에 차이를 도입할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자기의 윤리를 확립하는 것은 오늘날 긴급하고 근본적인 과제, 정치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만약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와 다른,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저항의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294.이러한 자기의 윤리, 주체화를 확립하는 데서 성의 문제가 특별히 중요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이 우리 영혼보다 더 중요하고, 거의 우리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해”[Michel Foucault, Histoire de la sexualité, t. 1, p. 206; 󰡔성의 역사 1󰡕, 181.]졌기 때문이다. 곧 현대 사회에서 성은 우리의 가장 내밀한 쾌락과 고통, 비밀을 함축하고 있는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내면적인 어떤 것, 우리의 자아 내지 자기와 거의 등가를 이루는 어떤 것이 된 것이다.


반면, 성이 이렇게 내밀해지면 내밀해질수록, 성은 더욱 더 공적 담론, 비판적 토론의 대상에서는 제외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학이 성의 문제를 주제로 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마도 허버트 마르쿠제나 빌힐렘 라이히, 또는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같은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전통, 또는 정신분석학적인 전통 또는 조르주 바타이유 같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철학에서 성이라는 문제는 금기의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푸코가 󰡔성의 역사󰡕 연작을 비롯한 후기 작업에서 성의 문제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개인들 그 자체와 거의 동일시될 만큼 내면화되고 개인화되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인 침묵의 대상이 된 성의 문제야말로 예속화와 주체화, 품행 인도와 대항 품행의 쟁점이 집약된 주제였기 때문이다.

 

IV. 비판적 고찰

 

푸코의 사상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첫째, 그것은 푸코의 이론적 작업의 대상과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인 철학 및 동시대 철학자들과 관련하여 철학자로서 푸코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가 보통 철학의 대상이라고 간주되는 것과 다른 대상들에 관심을 쏟고 그것의 이론적현실적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해 애썼다는 점이다. 가령 그의 초기 저작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인 󰡔광기의 역사󰡕광기또는 광인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1970년대의 계보학 연구에서도 다른 권력에 대한 분석자들이나 정치철학자들과 달리 저명한 정치철학자들의 작업을 탐구하거나 국가 권력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감옥, 병원, 학교, 군대 같은 사회의 말단 조직들에서 작용하는 권력을 탐구했으며, 헤르큘린 바르뱅(Herculine Barbin), 피에르 리비에르 같은 비정상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을 또는 을의 을들의 삶과 그들을 분류하고 규율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 권력이 곧 그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둘째, 이는 방법론과도 연결된다. 푸코는 1975~76년 강의록인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자신이 수행한 계보학적 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에서 “‘예속된 지식의 반항”[Michel Foucault,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p. 9;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28. 강조는 인용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예속된 지식(savoir)이라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학문과 인식의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되, 그 속에서 안정된 지위를 누리지 못하거나 그 과학성 내지 학문성을 의심받고 있는 지식을 가리킨다. 정신의학이나 정신병리학, 범죄심리학 등과 같이 푸코가 󰡔광기의 역사󰡕󰡔감시와 처벌󰡕 또는 󰡔성의 역사󰡕 등에서 분석했던 지식들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한편 예속된 지식이라는 것은 권력과 지식의 전문가들의 대상이 갖고 있는 지식을 뜻한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지식, 정신병리학의 대상이 되는 비정상인들의 지식 등이 그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예속된 지식을 분석하고 드러냄으로써 국지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들의 구체적인 기능 방식을 밝혀내려고 했고,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이런 지식들과 권력들이 우리 사회와 역사,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드러내려고 했다. 이 때문에 푸코는 자신이 일반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문제를 극단적으로 파편화거나 국지화’”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탐구 방식의 정당성을 굳게 주장한다.

 

권력의 문제란, 광기, 의학, 감옥 등등의 문제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들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문제로서, 어떠한 이론 체계도역사철학도, 일반적인 사회이론 혹은 정치이론에서도다루지 못했던 문제입니다. (...) 정신병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신 병동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간호사의 일은 무엇인가? 병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 내가 제기하는 문제들, 즉 일상생활과 관련된 성, 광기, 범죄 등의 복잡함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 문제들을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풀뿌리 수준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발언과 정치적 상상의 권리를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이승철 옮김, 서울: 갈무리, 2004, 142~152. 이것은 철학자 또는 이론가들이 역사를 소비하는 데, 곧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역사를 사용하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직접 역사적 분석을 수행하고자 노력”(같은 책, 121~22)해야 한다는 그의 일관된 방법론적 원칙과 연결되어 있다.]

 

셋째, 권력론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푸코의 권력 개념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법적인 권력론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푸코에 따르면 법적인 권력론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권력의 핵심을 금지하고 허가하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권력의 실제 작동방식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뿐더러, 권력 또는 지배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사고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이는 공적인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는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들, 을들 및 을의 을들이 예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반면 푸코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가 196868혁명 이후에 권력에 관한 탐구에서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예속된 사람들이 스스로 예속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나는 권력의 현실적인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려고 고심해 왔습니다. 내가 이 작업을 한 이유는, 그 권력 관계 속에 위치한 사람들이, 실천과 저항, 반란을 통해 그것들로부터 탈출하고, 그것들을 변환시켜 더 이상 예속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이 속한 권력관계를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여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고자 결심한 사람들 자신에 의해 고안되고, 계획될 수 있는 수많은 할 일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미셸 푸코, 같은 책, 164~65. 강조는 인용자.]

 

따라서 푸코의 권력론에 의거하여 우리는 을과 을의 을이 누구인지 조금 더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을은 피통치자, 따라서 권력 관계에서 통치자에 의해 행위들의 가능성을 일정한 방식으로 제한당하는 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을의 을은 이러한 가능성이 극도로 축소된 행위자, 따라서 통치자들이 부과한 매우 한정된 방식 이외의 다른 행위 양식을 시도하거나 사고하기 어려운 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있다. 푸코의 개념을 따른다면, 이들은 예속적 주체화 양식에 따르도록 강제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푸코가 지배 상태라고 부른 상태에 가까이 놓여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성적 소수자들을 을의 을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면,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갑(또는 여러 유형의 갑들)으로서의 통치자들이 부과하는 품행의 방식과 다른 식으로 행위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극도로 축소된 행위자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부르는 명칭이 바로 갑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갑질은 단지 법적(계약적)제도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푸코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품행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성적 소수자들이 법적제도적인 틀 내에서 이성애 연인들과 동등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성적 지향을 표현하고 결혼을 비롯한 결합 양식을 추구할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스스로 제한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감추도록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자기 제한 및 은폐에 실패하거나 그것을 거부한다면, 여기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따라서 어떻게 이러한 을의 을로서의 성적 소수자들이 강압적인 형식의 예속적 주체화에 저항할 수 있는지, 이러한 강요된 예속적 주체화에 맞서 대항 품행을 수행하고 탈예속화 및 다른 형식의 주체화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는 물론 성적 소수자들에게만 고유한 질문은 아니다. 그것은 을들 일반 및 특히 을의 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자들(가령 장애인들이나 무국적자들, 또는 중첩된 방식의 예속과 종속, 착취를 경험하는 이들) 일반에게 모두 해당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성적 소수자들의 대항 품행 양식과 관련하여 푸코 자신의 몇몇 인터뷰들만이 아니라, 푸코에서 영감을 얻은 퀴어 이론가들 및 운동가들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경향이 존재한다. 그것은 성적 소수자들의 대항 품행의 핵심을 기존의 성적 질서 및 문화적 질서에 대한 위반에서 찾으려는 경향이다. 이는 1990년대 게이 및 레즈비언 이론가들의 저작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으며, 최근에도 다수의 이론가들이 이러한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퀴어 이론가들의 입장에서는 남성 가부장제의 억압적 질서를 강조하고 여성의 평등 및 해방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조차 이성애 질서를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해방적이지 못하며,[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조현준 옮김, 파주: 문학동네, 2008 참조.] 진정한 의미의 대항 품행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이고 유기체적인 질서에 기반을 둔 성적 질서도 거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신신체의 이분법 및 이성애동성애라는 관례적 이분법까지도 중단”[Lauri Siisiäinen (2016) “Foucault and Gay Counter-Conduct”, in Global Society, op. cit., p. 303.]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퀴어 개인들 및 집단들에 고유한 정서적 관계 및 문화적 태도(가령 공유(sharing)와 끊임없는 실험과 생성적인 삶의 양식) 등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요구한다.[가령 Mark Kingston, “Subversive Friendships: Foucault on Homosexuality and Social Experimentation”, in Foucault Studies, Vol. 7, 2009, pp. 717; Steve Garlick, “The Beauty of Friendship: Foucault, Masculinity and the Work of Art”, in Philosophy and Social Criticism, Vol. 28, No. 5, 2002를 각각 참조.]


하지만 한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이것이 과연 푸코적인 의미의 대항품행인지 질문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식은 “‘사회적인 것을 고질적으로 규범적인 것으로 구성함으로써 ... 격렬하고 독특한 성적 향락이 주는 쾌락이 ...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에 고유한 이성애 규범적이고 재생산중심적인 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위반적이고 (따라서) 저항적인 경험의 지평에 접근하는 독특한 지점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퀴어의 성적 경험을 이성애적 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하고 몰아적(沒我的)인 것으로 제시하고 또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그만큼 그것을 시공간 바깥에, 의미의 역사적이고 사회적 영역 바깥에[Shannon Winnubst, “The Queer Thing about Neoliberal Pleasure: A Foucauldian Warning”, Foucault Studies, Vol. 14 (2012), p. 95.] 위치시키고, 따라서 탈역사화하는 위험을 겪게 될 것이다.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주디스 버틀러는 푸코의 비판 개념에 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자기(self)는 자기 자신을 형성하지만, 주체화 양식으로 특징지어지는 일련의 형성적인 실천들 내에서 자기 자신을 형성한다. 이러한 주체화 양식들에 의해 그것의 가능한 형식들의 범위가 미리 한정된다는 사실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형성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자기가 온전하게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 하지만 만약 이러한 자기 형성이, 어떤 이가 그에 따라 형성된 바로 그 원칙들에 대한 불복종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이 경우 미덕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탈종속 내에서 형성하는 실천이 되며, 이는 이 자기가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탈형식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는 것을 의미한다.[Judith Butler, “What is Critique? An Essay on Foucault’s Virtue’, in David Ingram ed., The Political, Oxford: Blackwell, 2001, p. 226.]

 

곧 주체로서의 자기 또는 자기로서의 주체는 항상 이미 권력 관계 내에 실존하며, 따라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형성하고 자기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방식은 항상 이미 기존의 권력 관계 및 (예속적) 주체화 양식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권력 관계 및 주체화 양식 바깥에, 그 이전에 존재하는 주체 내지 자기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자기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 기존의 권력 관계와 주체화 양식이 부과하는 정체성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인 것은 아니다. 주체의 자기 형성은 자신이 그 속에 존재하고 또한 자기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 그 권력 관계 및 주체화 양식에 불복종하여, 자신에게 부과된 (특정한)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탈-주체화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권력은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인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행위이며, 따라서 자신이 작용하는 대상의 행위 능력 및 자유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의 주체화 양식에서 벗어나려는 주체가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권력 관계가 행위자들의 자유를 전제한다면, 그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를 실행하는 방식(또는 그 가능성의 범위)권력 관계에 의해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버틀러가 말하듯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탈형식화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곧 탈-주체화, -예속화라는 것은 주체의 자기 무화(無化)의 위험을 항상 내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본다면,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상당히 제한적인 함의를 갖는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기존의 주체화 양식에 저항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론적 가능성이 항상 이미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푸코는 권력 관계와 지배의 상태를 구별함으로써 기능주의 내지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났지만, 우리가 규율권력과 같은 또는 더 심한 경우는 노예제와 같은 지배 상태에 처해 있을 때 여기에서 어떻게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대칭적 관계로서의 권력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곧 푸코 식으로 말하면 해방/자유화(liberation)와 자유의 관계에 대한 질문,[“L'éthique du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 in Dits et écrits, vol. II, op. cit; 자유의 실천으로서 자기 배려, 앞의 책 참조.] 또는 에티엔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면, 해방(emancipation)과 변혁(transformation), 시민다움(civility)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변하지 않았다. 이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론적 가능성 및 윤리적 자기 관계의 가능성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째, 다양한 형태의 권력 관계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강화하는지 또 때로는 서로 갈등 및 길항 관계에 놓이게 되는지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푸코는 때로는 마치 주권적 권력과 규율 권력, 그리고 생명 권력과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사이에 역사적인 계승 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이점에 관해서는 Thomas Lemke, “Foucault, Politics and Failure: A Critical Review of Studies of Governmentality”, in Jakob Nilsson & Sven-Olov Wallenstein eds., Foucault, Biopolitics and Governmentality, Huddinge: Sodertorn University the Library, 2013 참조. 곧 주권적 권력이 전근대적인 또는 절대주의적인 군주정 시기의 권력 유형이라면, 규율 권력은 17세기 후반에, 그리고 생명 권력은 18세기 이후,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20세기에 등장한 권력이라는 식(따라서 마치 상호 대체의 연속적인 관계에 있는)의 역사적 서사를 제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권력들은 계승 관계나 대체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전제하거나 강화하고 또는 갈등을 빚는 복잡한 연관망 속에서 작동한다. 가령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단순히 기업가 주체를 생산함으로써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규율 권력과 결합하기도 하고(예컨대 대학이 점점 기업화되고 기업에 필요한 인적 자원 양성소로 변화하는 것이나 사회 곳곳에서 점점 확산되는 인턴제도 같은 것 또한 분단 체계 속에 놓인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는 군사 문화 등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때로는 주권적 권력을 불러오기도 하며(중국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시진핑이나 러시아의 푸친, 미국의 트럼프 등), 새로운 생명 권력과 결합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들이 동시에 그 권력에 고유한 주체화 양식들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대항 품행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이 권력들이 작동하고 결합되는, 또는 서로 갈등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과 분리될 수 없다. 을의 을로서 성적 소수자들의 대항 품행, -예속화의 실천에 관한 질문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푸코의 이론은 필수적인 준거점이 되겠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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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0-3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고 클릭했다가....출력해서 한 문장 한 문장 읽어야하는 글이었네요. 공유 감사합니다.

balmas 2017-11-01 01:26   좋아요 0 | URL
ㅎㅎ 예 감사합니다.

dldiddn8429 2017-11-0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배워 갑니다!!

2017-11-04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17-11-04 23:1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데리다 철학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말씀하신 그 논문은 지금 다듬고 있고, 내년 봄쯤에 학술지에 발표할 계획이니, 그때쯤이면 완성된 글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dldiddn8429 2017-11-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벌써 아시겠지만, 서교인문사회과학연구실에서 운영하는 "웹진 인무브"에 제가 번역한 


에티엔 발리바르의 [공산주의와 시민성: 니코스 풀란차스에 대하여]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이 글은 제가 번역하고 있는 발리바르의 {평등자유명제}(그린비 출판사 간행 예정)에 수록된 글입니다. 



그밖에도 "웹진 인무브"에는 여러 흥미롭고 유익한 글들이 많이 있으니 한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en-movement.net/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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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고양이 2017-09-2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goo.gl/UV4Exq

혹시나 (저처럼) 진태원샘의 글을 두리번거리며 찾으시는 분들을 위해 찾아보았습니다. ^^;; (댓글에 하이퍼링크가 안 걸리면 복사&붙여넣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