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책의 판형

책(문서)의 판형을 결정하려면 종이규격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ISO/JIS 규격

ISO 규격은 A, B, C 세 종류가 있다.
cf.
[WWW]International Standard Paper Sizes
JIS 규격은 A 규격은 ISO와 같고 B 규격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B사이즈를 지칭하면 일반적으로 JIS 규격이다.

A B C JIS B
0 841x1189 1000x1414 917x1297 1030x1456
1 594x841 707x1000 648x917 728x1030
2 420x594 500x707 458x648 515x728
3 297x420 353x500 324x458 364x515
4 210x297 250x353 229x324 257x364
5 148x210 176x250 162x229 182x257
6 105x148 125x176 114x162 128x182
7 74x105 88x125 81x114 91x128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종이 규격

우리나라에서는 46전지(788x1090)와 국전지(939x636)를 가장 많이 쓴다고 한다. 46전지의 크기는 JIS B1 사이즈와 유사하고 국전지는 ISO A1 사이즈보다 조금 크기 때문에, A 사이즈로 작업한 것은 대부분 국전지를, B 사이즈로 작업한 것은 46전지를 얹게 된다.
1연의 종이에서 전지 500장, 2절 1000장을 얻을 수 있다.

4x6판/국판

4x6판 국판
전지 788x1090 636x939
2절 545x788 468x636
4절 394x545 318x468
8절 272x394 234x318
16절 197x272 159x234
32절 136x197 117x158

책의 판형

종이를 이와 같이 사용하더라도 책의 판형은 관행상 다음과 같이 불린다. 종이를 자르는 방법이 다양하므로 변형판도 최근 많아지고 있다.

판형명칭 크기 대응판형 사용종이 전지1매당페이지수
국판 148x210 A5 국전지 32 교과서, 단행본
국배판 210x297 A4 국전지 16 잡지
국반판 105x148 A6 국전지 64 문고
타블로이드 257x364 B4 4x6전지 16 정보신문
사륙판 128x182 B6 4x6전지 64 문고
사륙배판 182x257 B5 4x6전지 32 참고서
신국판 152x225 * 국전지 32 단행본
크라운판 176x248 * 4x6전지 36 사진집
30절판 125x205 * 4x6전지 60 단행본
3x6판 103x182 * 4x6전지 80 문고

일반적인 전지에는 국전지(A전지)와 4X6전지(B전지)가 있다.
현재 시중에서 통용되고 있는 국전지는 (636X939mm)이며, 4X6전지는 (788X1,090mm)이다.
전지 500매를 1연(ream)이라고 하는데, 이를 흔히 영문의 첫글자를 따서 : R"로 표기하기도 한다.
즉 1연을"1(R)"로도 쓴다.
판형이란 책의 크기를 말하는데 크게 표준판형과 변형판형으로 나눈다.
여기서 표준판형은 국전지, 혹은 4X6전지를 종이의 낭비없이 출판하고자 규격화 시킨것이다.


국배판형
국전지를 8절 크기로 잘라 만든 판형으로 크기는 210X297mm이다.
크기가 커서 소지하기에는 불편함이 따르나 지면이 커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여성지나 종합잡지들이 이 판형을 선호한다.


국판형[A5판형]
국전지의 16절 크기로 잘라 만든것을 국판형, 혹은5x7판형이라하며, 그 크기는 148x210mm이다.
이판형으로 만들어진 책은 갖고 다니기에 적절하다. 문예물잡지들이 주로 사용한다.


국반판형[A6판형]
국판형을 2등분(32절)하여 만든 책의 판형을 말하며, 크기는 105X148mm이다.
소지가 간편하여 가볍게 읽을 책의 판형으로 알맞다.


타블로이드판형[B4판형]
4X6전지를 8절로 잘라 만든 책을 타블로이드판이라고 하며 크기는 257x364mm 이다.
신문이나 혹은 화보위주의 잡지를 제작하는데 많이 사용된다.


4X6배판형
타블로이드판의 반(4X6전지의 16절 크기)만한 규격의 책인데 크기는 188X257mm이다.
대부분 이 판형으로 제작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판형이다.


4X6판형
4X6배판형 크기의 반, 즉 4X6전지를 32절 크기로 잘라 만든크기로(128X188mm)이다.
가볍게 읽을 책이나 잡지, 혹은 각종도서 목록집에서도 이 판형을 선호하고 있다.
예로서 월간지인 "샘터"나 "리더스다이제스트"가 이에 속한다.


4X6반판형
4X6판형에 비해 반만한 크기의 책을 4X6반판형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는 91X128mm이다.
단어 암기장이나 간단한 물품안내 책자 등에 사용된다.


신국판형
표준판형 이 외에 자주사용하고 있는 변형판형을 보면, 국판과 같은 절수(국전지16절)로
만들어 내는 "신국판형"이 있는데 크기는 국판형에 비해 가로의 길이는 똑같으나
세로의 길이가 큰것으로 148X225mm이다. 일반소설류 출판물은 물론 사회과학 도서,
각종 전문 도서에서 흔히 볼수 있는 판형으로 4X6배판형과 함께 대단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 판형이다.


그밖에도 크라운판/신서판형(3X6판형)/다이아몬드판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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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0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판형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balmas 2005-01-0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궁금한 거죠. 여러 가지 판형 이름이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왜 이런 판형들이 나왔는지, 우리나라책과 외국책의 판형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 등등, 뭐 그런 거죠.^^

릴케 현상 2005-01-0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판할 때 국이 일본 천황의 국화문양을 뜻한다더군요 일본 천황가의 공식 종이 판형이 우리한테 아직 남아 있다나... 그래서 국제기준과 달리 우리 책 판형은 일본판형을 따르는 거라고...한겨레 문화센터 강연에서 들었는데 그 선생님이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면 곤란한데|^^

balmas 2005-01-0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국판"이라는 명칭에 그런 비밀이 숨어 있었군요 ...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 에서 경고


△ 독일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 참석한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 나치는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매년 뉘른베르크에서 전당대회를 열었다. 1939년에 이르러 독일의 10~18살 인구의 87%가 히틀러 유겐트에 소속됐다. 〈교양인〉 제공

  관련기사

  • 한국의 파시즘연구는 ‘걸음마’



  •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파시스트 등의 말은 사회과학적 개념어가 아니다. 일종의 ‘정치적 욕설’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향한 증오의 언어였고, 최근에는 저항운동 내부를 향한 비난의 언어다. 넒게는 정치적 반대자를 향한 낙인의 언어다.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교양인)은 파시즘을 둘러싼 이런 한국적 맥락에 경종을 울린다.

    “파시즘 나타날 가능성 1930년대 보다 높다”

    팩스턴은 600여 쪽에 걸친 이 저서를 통해 “파시즘이란 개념을 의미의 남용으로부터 구출하고”,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을 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설파한다. 그래야 “(파시즘 등장의) 불길한 경고표지를 더 많이 읽어낼 수 있”고, “진짜 파시즘이 출현했을 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팩스턴은 “파시즘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파시스트당과 시민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훨씬 더 정교한 파시즘 모형”을 구축한다. 그것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치밀한 천착이다. 독일·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각국에서 태동한 파시즘의 초기형태와 발전단계를 일일이 짚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역사서다. 이를 통해 그는 ‘귀납적 연구’의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이론서와 대중서의 특장을 한꺼번에 품었다. 출판사 쪽이 “파시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저작”이라고 상찬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 봐야”

    그의 파시즘 연구는 크게 세가지의 ‘통념’, 즉 △파시즘을 자본주의 위기의 필연적 결과물로 보는 스탈린주의적 시각 △파시즘을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등과 등치시키는 안이함 △파시즘의 지도자나 정당의 내부로 분석의 시선을 좁히는 편협함 등에 대한 비판이다.

    “제3세계 등 비유럽권에서 민주주의 실험 실패 늘어…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직간접으로 연관된 급진적 우익운동 퍼져…”

    그가 보기에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허약하거나 실패한 자유주의의 위기”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파시즘 성공의 결정적 요소는 “파시스트들과 권력을 나눌 준비가 된 보수 진영의 지도자들이 다른 가능성을 거부하고 파시즘이라는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파시스트) 당과 기업, 군, 고위 공직자들의 (파시즘) 연합은 경제적 이익·권력·특권, 특히 (좌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한데 뭉친”다.

    그래서 팩스턴은 “파시즘 정권은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 등을 매개삼아 결합한 합성물”이라고 지적한다.

    〈파시즘…〉의 탁월한 성취는 팩스턴이 과거가 아닌 ‘오늘’과 ‘미래’에 대해 발언한다는 점에 있다. 그는 새로운 파시즘이 등장할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가 보기에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파시즘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급진적 우익 운동이 광범위하게 퍼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파시즘의 1단계’가 정치제도에 뿌리를 내리는 2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이다. 팩스턴은 “제3세계 등 비유럽권에서 파시즘이 나타날 가능성은 1930년대의 유럽보다 더 높다”고 경고한다.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대의정치라는 실험이 실패한 사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최근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을 ‘오버랩’시키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말하는 경고표지는 이런 것이다. “위협을 느낀 보수세력이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세력을 찾아 헤매며, 보수파들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과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그 추종세력을 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깝게 접근한 것이다.”

    “좌파에 대한 두려움으로 뭉쳐”

    번역판의 머리말을 쓴 조효제 교수(성공회대)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적 파시즘’이나 ‘대중독재’ 등의 논의가 왜 파시즘의 이해를 명료하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흐리게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우리 안의 파시즘’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려면 팩스턴에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로버트 팩스턴은


    “로버트 팩스턴(72)은 평범한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평가다. 특히 한국에서 그는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즐겨 인용되는 학자다. 1972년 〈비시 프랑스〉라는 저서를 통해 프랑스 비시 정권이 나치즘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저서로 팩스턴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자리잡았다. 서구 유럽을 풍미하고 있는 ‘파시즘의 미시구조 분석’의 지평도 그와 함께 열렸다.

    프랑스 비시정권 해부
    관념아닌 현실 파시즘 탐구

    이런 노력이 한국에서는 ‘과거사 청산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따로 있다. 40여년에 걸친 파시즘 연구를 집대성한 〈파시즘〉에서 직접 말하고 있듯이, “살아 움직이는 파시즘을 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관념이 아닌 구체적 현실에서 극우적 운동의 싹부터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그것이다.

    옥스퍼드·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비시 정권의 열병식과 정치〉 〈20세기 유럽〉 등이 있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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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lmas 2005-01-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2004년 초에 나온 책인데 벌써 번역이 되었군요 ...

    박정희도 파시스트, 전두환도 파시스트, "운동권"도 파시스트, 들뢰즈도 파시스트 ... 웬만하면 다 파시스트라는 명칭을 붙여서 헷갈리기 그지 없었는데, 눈을 밝게 해줄 만한 책인 듯하군요.

    가을산 2005-01-0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서점에서 보고 찜한 책인데, 먼저 읽고 리뷰 올려주실거죠? ^^

    balmas 2005-01-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가을산님 때문에라도 부지런히 읽어야겠군요.^^;;;

    바람구두 2005-01-0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흐흐.

    balmas 2005-01-07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이제 정말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군요 ...^^

    릴케 현상 2005-01-07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기대한다고 하면 '나 안 읽어'하시는 거 아니죠?^^

    balmas 2005-01-0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 한 거,

    점점 더 후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 ^^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힘이 생깁니다”
    국보법 폐지 단식 53일, 송현석 위원장

     

    이태준 기자 ltj@digitalmal.com

     

    12월 24일 성탄절 전날.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53일째 되는 날이다. 송 위원장은 지난 11월 2일부터 국회 앞에서 작은 컨테이너를 감옥처럼 개조해 그 안에서 지금까지 국보법 폐지 단식 농성을 벌여왔다. 22일에는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쓰러져서 결국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송 위원장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병원에서 그는 수액주사 한 방울조차 맞기를 거부하고 나왔다. 1평 남짓한 ‘감옥’에서 단식중에 있는 송 위원장을 찾아갔을 땐 밖에선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연대회의 사제들이 단식 농성단원들과 함께 성탄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바짝 말라있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나직한 어투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 살이 많이 빠졌다.
    "이 얼굴이 내 대학교 때 얼굴이다.(웃음) 그때 얼굴로 돌아왔다."

    - 쓰러졌다고 들었다.
    "22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광화문으로 가던 도중 종묘에서 촛불점화하고 다시 걸으려 할 때 쓰러졌다. 정상인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날씨도 춥고, 아직 수액주사도 맞지 않았으니 체력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악으로 걷고 있던 거였다."

    - 힘들지 않나. 50일 넘게 수액도 안맞고 단식을 하는 건 생명에도 위험한 거 아닌가.

    "그렇게 물어보면 ‘힘들어 죽겠어요, 한 번 굶어보실래요?’ 할 수도 없고...그냥 겉으론 괜찮다고 해야지. 단식이 40일이 넘어가니 물을 마시기도 힘들다. 임계점에 다다른 거 같다. 단식한 뒤 40일이 지날 때 처음 누워봤다. 50일 전 까지 등을 땅에 댄 게 3번이다. 지금도 대부분 눕지 않고 앉아서 책을 본다. 버터야 한다는 생각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미음을 먹으면서 끝낼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의사한테 '기본치료를 거부하겠으니 수액주사 놓지 말라'고 얘기했다. 의사가 피검사와 오줌검사를 하고 입원하라고 했지만 ‘생사를 초월한 문제니까 그냥 놔둬라’고 했다."

    - 국보법 폐지 단식을 하는 취지를 말해달라.
    “국보법 폐지가 갖는 의미는 우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미국은 2006년이면 동북아에서 미사일방어망과 군사재배치를 두 축으로 전쟁시스템을 완비한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는 근본요인이 분단체제다. 미국의 전쟁체제 구축을 막고 분단체제극복-한반도 평화구축-동북아평화체제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북 당국간 정치경제 교류, 민간 사회문화 교류, 그리고 한반도와 한반도 밖 사람들 사이 교류와 결합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결합을 위한 한 방법이 국가보안법 폐지다. 남북협력기금같은 건 상황에 따라 끊길 수도 있다. 남북 민간교류를 활발하게 만들려면 분단체제 자체를 뚫는 움직임을 북한에게 보여줄 필요도 있다. 그게 바로 국보법 폐지다"

       
    ▲ 12월 24일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 53일째인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
    "국가보안법 폐지는 분단체제를 뚫는 움직임"

    죽음을 무릅쓰고 국보법 폐지 단식을 잇는 까닭에 대해 그는 힘겹지만 길게 설명했다.

    “민가협 자료를 보니 노무현 정부 들어 9개월 동안 300여명 정도가 국보법 때문에 구속됐다. 이 법은 민주화, 인권, 통일을 가로막고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1천만 이산가족이 교류를 못하게 가로막아 그들의 원한이 쌓여있는 법이다. 이 법은 지난 50여년 동안 통일, 민주, 사회균형을 얘기했던 사람들을 억압했다. 사람이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나타내는 것도 억압했던 법이다. 이 법은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 연내 처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연내처리를 위해 정치적인 전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1000여명이 노상단숙을 하고 있다. 단식자 가운데 젖먹이 엄마도 있다. 이 사태를 두고 내년으로 넘어간다는 건 정치적 판단에 앞서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고 본다. 열린우리당이 이 사안을 내년으로 넘긴다면 정체성을 의심받을 것이다. 여야 모두 자기 함정에 빠지고 있다"

    "이철우 의원, 비루했다"

    - 이철우 의원 파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철우 의원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심하게 말해 ‘비루했다’고 본다. 자기 입으로 민주화 운동 경력을 자랑스럽다고 했는데, 그럼 당시 군부독재 최고부역자 정형근이나 공안검사 출신 주성영한테 ‘군부독재에 붙어 민주주의를 유린한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서 입을 놀리느냐’고 단호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국민이 뽑은 입법기관이 그만한 배포와 사리판단이 없나. 기껏 조찬기도회에서 울면서 참회기도나 할 일인가.
    그 사람이 과거에 맑시즘이건 주체사상이건 지금은 자유주의건 어떤 사상을 갖든 그걸 뭐라 할 수 없다. 차라리 유시민 의원처럼 ‘과거엔 그랬어도 지금은 나 자유주의자인데, 왜 안돼냐’하고 당당하게 굴면 된다. ‘그때 잘못했다해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게 축적돼서 지금 내가 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면 될 일이다. ‘그 시간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당당하게 지켜야 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사람은 힘이 생긴다"

    1평 남짓 좁은 공간엔 사회과학 책들이 많이 쌓여있었다.

    "어제 응급실에 누워서 논문을 하나 읽었다. 그러다 <칼의 노래>를 보고 하룻 만에 1권을 다 읽었다. IMF가 내년도 경제계획과 관련해 자료를 쭉 내놓고 있는데 그것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의 리상호가 번역한 <열하일기>도 봤는데 번역이 예술이더라"

    - 그 몸으로 책을 읽을 수 있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평소 원래하던 공부량이다.(웃음) 내가 원래 정책 쪽 일을 맡기 전까지는 ‘쇠파이프’를 잡던 ‘무관’ 출신이었다. 이 정도 기개는 보여 줘야...”

    50여일을 넘게 단식을 한 사람치고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는 좋아보였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계속 힘이 없어서 빌빌거리고 있었는데 조금 전 대학교 후배들이 찾아왔다. 99-00학번이라 잘 알지도 못하는데,  힘이 나더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은 힘이 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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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아이 2004-12-2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목소리가 맑으시더라구요. 더 쇠약해지시기 전에 끝나야 할 텐데...

    balmas 2004-12-2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강이 많이 걱정이 됩니다. 평소에 건강한 몸이었다 해도 말이 54일이지 ...

    날도 추워지고 ...
     

    첫날이 제일 힘든데 추운날 와서 어떻하냐
    kws21_202468_1[266437].jpg [58 KB]     




    2004년 겨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는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국민 단식농성당이 두 달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가자만 벌써 1천명이 넘었다. 오랜 배고픔과 함께 겨울의 찬바람을 비닐천막 하나로 이겨내고 있는 농성단. <오마이뉴스> 기자가 그들을 찾았다. 다음은 지난 20일~21일 1박 2일간 농성단과 함께 생활한 <오마이뉴스> 사회부 박상규 기자의 일일단식 동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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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5일(수) 오전 10:00]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국민 단식농성당(단식농성단) 600여 명이 또 하루의 농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집회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때 차가운 겨울비가 내렸다. 농성자들은 하얗고 파란 비옷을 꺼내입었다.

    그 대열에서 감잎차를 마시는 20대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이름은 황임봉. 올해 스물여섯살. 부산여성회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지난 12월 6일 서울로 올라와 단식 농성단에 합류했다고 한다. 단식 열흘째를 맞는 황씨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배고픈 단계는 이미 지났고, 어지러워서 계단을 잘 오를 수가 없네요." 황씨는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당시 나는 단식농성단을 오전동안 취재해 기사 하나를 출고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황씨의 말 한마디는 당초 계획을 깨끗이 접게 만들었다.

    열흘 동안 굶어 "어지러워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600여명의 사람들을 단 2시간 취재해서 기사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단식농성단 일원으로 황임봉씨와 같이 굶으며 생활한 내용을 쓰기로 결심했다. '일일단식' 체험기라고 할까. 그리고 닷새가 지났다.

    [12월 20일(월) 밤 11:00] 천막없는 '비닐농성장'

    '일일단식'에 들어갈 맘으로 단식농성단 천막이 있는 여의도에 도착한 건 20일 밤 11시. 이날따라 겨울 바람이 더 매섭게 귓전을 때렸다. 우선 상황실부터 찾아갔다. "아까 연락드린 박상규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사를 쓰다가..."라며 첫 인사를 건넸다.

    담당자는 "첫날이 가장 힘든데 이렇게 추운 날 와서 어떡하느냐, 오는 날이 장날이네요"라면서 침낭 하나를 건넸다. 침낭을 들고 노동자 단체 소속 농성자들이 있는 천막으로 갔다. 그러나 천막 농성장에 '천막'은 없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막기 위해 농성장 사방을 둘러친 건 얇은 '비닐'이었다. 모두 18개 동의 '비닐농성장'에서 1천여 명으로 늘어난 단식농성단은 숙식이 아닌 '숙'만을 하고 있었다.

    비닐농성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석유냄새가 확 몰려왔다. 모두 10개가 설치된 열풍기에서는 온기와 함께 매연, 굉음까지 나왔다. 곳곳에는 농성단의 빨래가 널려 있었고, 동 마다 하나씩 설치된 생수통 옆에는 소금과 감잎차, 마그밀(초기 단식 농성자들의 배변을 돕는 약품)만이 덜렁 놓여 있었다. 농성장 풍경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1시간여를 돌아다닌 뒤 잠자리로 돌아왔다.
     
    ▲ 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2004 오마이뉴스 박상규


    [12월 20일(월) 새벽 0:30]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람들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소등이 된 천막은 어두웠다. 몇몇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여의도 공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거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상황실에서 받은 침낭 속으로 몸을 넣고 누웠으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가 간다. 목숨 걸고 끝장낸다. 국가보안법 끝장내는 날 웃으면서 춤을 추리라". 벽에 붙어있는 '국보법 폐지 무기한 단식농성단의 노래' 가사를 보며 눈을 감았다. 이들이 웃으며 춤을 추는 날은 언제일까.

    추위 때문에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되풀이했다. "모든 사람들이 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단식 16일차 김기호(울산 민주노동당원)씨의 말이 실감났다. 추위에 심하게 뒤척였는지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말을 건넸다. "우리 추운데 같이 붙어서 잡시다." 그래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단식동지' 옆으로 바짝 붙었다. 따뜻했다.


    [12월 21일(화) 오전 7:00] "우린 이미 배고픔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단식농성단의 기상은 오전 7시. 주변 농성자들이 일어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졸립고 추웠다. 그리고 석유냄새 때문에 머리가 무척 아팠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농성자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여의도 공원 인근 주민들이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식 농성자들은 맨손체조를 하거나 걷기 등으로 몸을 풀었다. 며칠씩 굶은 그들에게는 달릴 힘이 없다.

    20분 정도 운동을 한 뒤 물이 나오는 가까운 화장실로 갔다. 농성자들이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있었다. 모두들 찬물에 세면하는 것이 익숙한지 말끔히 씻고 있었지만, 나는 얼음장 같이 찬 물이 엄두가 나질 않아 포기했다. 이만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 혈압을 측정하고 있는 단식단원,
    ⓒ2004 오마이뉴스 박상규

     

    [12월 21일(화) 오전 7:30] 출근길 선전전

    잔뜩 움츠러든 몸으로 아침 출근길 선전전을 따라나섰다. 출근길 선전전은 릴레이단식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100여명은 매일 아침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과 영등포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국가보안법을 폐지합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홍보물을 일일이 나눠줬다.

    일일단식을 위해 보건의료노조 강원본부에서 올라온 이현경(31)씨는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안녕하세요, 이거 좀 읽어보세요"라며 출근길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건넸다.

    그러나 추운 날씨 탓인지 많은 시민들은 주머니 속에 들어간 손을 꺼내지 않았다. 출근길 선전전은 1시간 30여분 가까이 이어졌다.

    [12월 21일(화) 오전 10:00] "배고픔보다 추위가 더 힘들어"

    오전 9시 천막으로 돌아왔다. 오전 10시가 되자 농성단은 털모자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채 조별로 열을 맞춰 국회 인근 국민은행 앞 농성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자의 침낭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중무장을 한다고 해도 추위와의 힘겨운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그리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매일 하루에 두 번씩 국회를 바라보고 앉아 농성을 한다. 농성 중에는 자유발언과 각계각층의 방문이 이어진다. 이날은 천영세, 노회찬 등 민주노동당 의원 5명과 이미경, 우원식 등 열린우리당 의원 12명이 차례로 농성단을 찾았다. 이들은 일찌감치 와서 농성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하며 돌아갔다. 과연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 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2004 오마이뉴스 박상규
    침낭으로 하체를 덮고 스티로폼 위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오전 농성을 하니 "배고픔보다 추위를 견디는 게 힘들다"는 단식농성자들의 말이 실감났다.

    "굶은 지 5일이 지나면 배고프다는 감각은 없어집니다. 그 후부터는 추위 속에서 어지러운 증상을 이겨내야 합니다. 연내까지 꼭 폐지됐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웃음)." 단식 16일째의 임승관(36. 인천시민문화센터)씨가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한 말이다.

    방학 이후 농성단에 결합한 대학생들은 아직 배고픔의 고통을 호소했다. 단식 5일째를 맞은 김연(한양대 3학년)씨는 일명 '김떡순'이 가장 그립단다. "김밥, 떡볶이, 순대가 제일 생각나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포장마차 옆을 지나갈 때면 거의 쓰러질 지경입니다. 그래도 여기 있는 어르신들하고 국보법 폐지의 순간을 함께 보고 싶습니다."

    [12월 21일(화) 오전 11:30] 2시간 동안의 낮잠

    낮 동안의 휴식을 위해 천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깥의 찬 바람에 2시간을 있다가 천막에 들어오니 그나마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눈을 뜨자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깜짝 놀랐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12월 21일(화) 오후 2:00] 빠뜨린 침낭

    국민은행 앞 농성장으로 급히 뛰어갔다. 다른 농성자들은 이미 열을 맞춰 앉은 채 농성을 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며 대열 맨 뒤에 끼어 앉았다. 앗차! 급히 나오다가 침낭을 빠뜨리고 나온 것이다. 큰일이다. 침낭 없이 이 찬바람을 어찌 견딜꼬. 배고픔도 잊은 채 추위 걱정이 앞섰다. 조용한 침묵과 함께 한 시간이 흘렀다.

    [12월 21일(화) 오후 3:00] 황임봉씨 하혈로 병원에 실려가다

    정적을 깨뜨리는 사회자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여왔다. 사회자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환자가 발생했다"며 "차량운전이 가능한 단식자는 앞으로 나와달라"고 당부했다. 오들오들 떨며 연단 천막 옆에 황임봉씨가 앉아 있었다. 오전 내내 보이지 않아 단식을 포기한 줄 알았던 황씨는 16일의 단식과 추위로 하혈을 하는 '위급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24시간 차가운 노상에서의 천막생활. 26세의 젊은 여성이 견디기에는 쉽지 않았을 터다. 결국 황씨는 자신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16일간 굶으며 투쟁한 농성현장에서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됐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21일 오후 3시의 일이다.

    황씨를 병원으로 후송한 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4자 회담'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황씨 소식에 안타까워하던 농성단은 모두들 "저것들이 또 배신하는구나"라며 "너희들이 정말 우리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농성단은 바로 영등포구 당산동 열린우리당사로 향했다. 40여분을 걸은 뒤 열린우리당사에 도착했다.

    [12월 21일(화) 오후 3:40] 우리가 가장 먹고 싶은 것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열린우리당사도 아니고, 한강의 겨울바람도 아니었다. 이미 200여명의 전경이 당사 앞을 가로막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성단은 '4자회담 중단'을 열린우리당에 촉구하며 지도부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묵무부답이었다. 3시간 넘게 시위를 벌였다. 자유발언도 하고 노래도 했다. 대학생들은 춤도 췄다.

    지역별로 나와서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기도 했다. 부산 지역은 "오뎅 국물에 소주", 전라도 지역은 "삼겹살에 김치 구운 것", 경기지역은 "그냥 김치찌개", 강원지역은 "생태찌개" 대학생들은 "떡볶이, 순대와 김밥" 등을 꼽았다. 음식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미칠 것 같다"고 외쳤다. 며칠씩 굶은 사람들이 목청은 여전했다.

    ▲ 털모자와 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한 농성자들. 하지만 추위와의 힘겨운 싸움은 배고픔보다 더 어렵다.
    ⓒ2004 오마이뉴스 권우성

    [12월 21일(화) 저녁 7:00]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중단하라"

    저녁 7시부터는 1시간 동안 촛불집회를 열었다. 평소에는 광화문 교보문고 앞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밤 9시에 조별 평가를 마쳐야 단식농성단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날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4자회담'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한나라당과 야합을 중단하고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날 단식농성자들은 오후 2시부터 밤 8시까지 6시간 동안 휴식 없이 추위 속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날 농성단을 찾은 민중가수 손병휘씨의 노래를 통한 격려는 큰 힘이 되었다.

    [12월 21일(화) 저녁 8:00] 무거운 발걸음

    밤 8시. 촛불집회를 마치고 여의도 농성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워 보였다. 특히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차게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농성단 모두는 계단 중간에서 꼭 한 번씩 쉬었다. 단식 7일째인 황나은(23)씨는 "너무 어지러워 도저히 한번에 계단을 오를 수 없다"고 말했다.

    [12월 21일(화) 밤 9:00] "국보법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게 더 괴롭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비닐농성장으로 돌아오니 병원으로 후송됐던 황임봉씨가 돌아와 있었다. 황씨는 "의사가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 거래요. 호르몬 주사 맞으니 단식을 더 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5시간 동안 밖에서 투쟁할 때 저는 이곳에서 쉬었잖아요"라며 미안해 했다.

    황씨는 16일 단식을 하는 동안 5kg이 빠졌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미 배고픔도 사라졌다. 이젠 허리 통증과 손발 저림이 황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황씨는 "국보법이 끈질기게도 살아남는 게 더 괴롭다"고 했다.

    "기자 아저씨는 괜찮아요? 내가 겪어보니까 하루 굶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처음이라 먹고 싶은 게 많이 생각나잖아요. 빨리 돌아가서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기자 아저씨는 좋겠네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니까요. 난 언제나 갈 수 있으려나...(웃음)" 황씨는 애써 웃어 보였다.

    ▲ 오마이뉴스 사회부 박상규 기자가 20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국가보안법 연내폐지 국민단식농성단과 함께 1일 단식체험을 하고 있다.
    ⓒ2004 권우성
    [12월 21일(화) 밤 11:00]

    단식 끝나자 마자 밥 두 그릇을 해치우다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보고 기자는 단식농성단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밤 10시부터 1시간 정도 농성단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참의료실천단'에 대한 취재를 끝낸 것은 밤 11시.

    여의도 농성장을 나서는 순간,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달려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혼자서 두부찌개를 먹으며 하루동안의 허기를 달랬다. 그날 공기밥 하나를 더 추가해 두 그릇을 먹었다.

    [12월 22일(수) 오전 10:00]

    1천여명의 농성단은 언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지금은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따뜻한 사무실에서 난 이 글을 쓰고 있다. "국보법의 끝장을 보겠다"는 황씨와 1천여 단식농성단이 집으로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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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신들의 고향

    神들의 故鄕

    의 기획연재입니다.
    이 연재는 제주의 유력 일간지인 제민일보에 1994년 6월 2일부터 1996년 1월 3일까지 매주 수요일 총 75회에 걸쳐 동일 제목으로 호평리에 연재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전문지식도 없는 이 취급하기에는 벅찬감이 있었지만 이를 직접 기고한 제민일보의 高大卿기자께서 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高大卿기자께서는 이미 제민일보 연재가 끝났음에도 관련 주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수년에 걸친 조사ㆍ연구의 결정을 에 아낌없이 제공하여 주신 선처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제민일보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연재하도록 하겠으며 '미니해설'도 물론 高大卿기자가 쓰신 원문의 내용 그대로이며 매회마다 본문과 함께 게재된 김재경 서양화가의 그림도 함께 올립니다.
    다만, 주제의 성격상 한자를 완전 배제하기가 어려워 본문에서 사용한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고 괄호안에 원문의 한자를 표기하였으나 Mac o/s Hangul 7.1에 초과되는 한자는 부득히 괄호안에 한글로 남겨두었습니다.


    【제민일보 高大卿기자】


    「神들의 고향」출간!


    【제민일보 편집자주】
    제주도의 민속은 이 작은 섬이 갖고 있는 보배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민간신앙은 아직도 많은 도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있는 산 신앙이며 이에 따른 신화도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여느 다른 나라나 지역의 민속 못지않게 풍요로운 제주도신화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神들은 살아있다!'

    [제79회 전국체육대회의 성화점화차 강림한 설문대할망]
    "제주의 神들은 神話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도 제주도민과 함께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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