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성탄절 전날.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53일째 되는 날이다. 송 위원장은 지난 11월 2일부터 국회 앞에서 작은 컨테이너를 감옥처럼 개조해 그 안에서 지금까지 국보법 폐지 단식 농성을 벌여왔다. 22일에는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쓰러져서 결국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송 위원장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병원에서 그는 수액주사 한 방울조차 맞기를 거부하고 나왔다. 1평 남짓한 ‘감옥’에서 단식중에 있는 송 위원장을 찾아갔을 땐 밖에선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연대회의 사제들이 단식 농성단원들과 함께 성탄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바짝 말라있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나직한 어투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 살이 많이 빠졌다.
"이 얼굴이 내 대학교 때 얼굴이다.(웃음) 그때 얼굴로 돌아왔다."
- 쓰러졌다고 들었다.
"22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광화문으로 가던 도중 종묘에서 촛불점화하고 다시 걸으려 할 때 쓰러졌다. 정상인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날씨도 춥고, 아직 수액주사도 맞지 않았으니 체력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악으로 걷고 있던 거였다."
- 힘들지 않나. 50일 넘게 수액도 안맞고 단식을 하는 건 생명에도 위험한 거 아닌가.
"그렇게 물어보면 ‘힘들어 죽겠어요, 한 번 굶어보실래요?’ 할 수도 없고...그냥 겉으론 괜찮다고 해야지. 단식이 40일이 넘어가니 물을 마시기도 힘들다. 임계점에 다다른 거 같다. 단식한 뒤 40일이 지날 때 처음 누워봤다. 50일 전 까지 등을 땅에 댄 게 3번이다. 지금도 대부분 눕지 않고 앉아서 책을 본다. 버터야 한다는 생각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미음을 먹으면서 끝낼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의사한테 '기본치료를 거부하겠으니 수액주사 놓지 말라'고 얘기했다. 의사가 피검사와 오줌검사를 하고 입원하라고 했지만 ‘생사를 초월한 문제니까 그냥 놔둬라’고 했다."
- 국보법 폐지 단식을 하는 취지를 말해달라.
“국보법 폐지가 갖는 의미는 우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미국은 2006년이면 동북아에서 미사일방어망과 군사재배치를 두 축으로 전쟁시스템을 완비한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는 근본요인이 분단체제다. 미국의 전쟁체제 구축을 막고 분단체제극복-한반도 평화구축-동북아평화체제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북 당국간 정치경제 교류, 민간 사회문화 교류, 그리고 한반도와 한반도 밖 사람들 사이 교류와 결합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결합을 위한 한 방법이 국가보안법 폐지다. 남북협력기금같은 건 상황에 따라 끊길 수도 있다. 남북 민간교류를 활발하게 만들려면 분단체제 자체를 뚫는 움직임을 북한에게 보여줄 필요도 있다. 그게 바로 국보법 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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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4일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 53일째인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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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는 분단체제를 뚫는 움직임"
죽음을 무릅쓰고 국보법 폐지 단식을 잇는 까닭에 대해 그는 힘겹지만 길게 설명했다.
“민가협 자료를 보니 노무현 정부 들어 9개월 동안 300여명 정도가 국보법 때문에 구속됐다. 이 법은 민주화, 인권, 통일을 가로막고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1천만 이산가족이 교류를 못하게 가로막아 그들의 원한이 쌓여있는 법이다. 이 법은 지난 50여년 동안 통일, 민주, 사회균형을 얘기했던 사람들을 억압했다. 사람이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나타내는 것도 억압했던 법이다. 이 법은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 연내 처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연내처리를 위해 정치적인 전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1000여명이 노상단숙을 하고 있다. 단식자 가운데 젖먹이 엄마도 있다. 이 사태를 두고 내년으로 넘어간다는 건 정치적 판단에 앞서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고 본다. 열린우리당이 이 사안을 내년으로 넘긴다면 정체성을 의심받을 것이다. 여야 모두 자기 함정에 빠지고 있다"
"이철우 의원, 비루했다"
- 이철우 의원 파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철우 의원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심하게 말해 ‘비루했다’고 본다. 자기 입으로 민주화 운동 경력을 자랑스럽다고 했는데, 그럼 당시 군부독재 최고부역자 정형근이나 공안검사 출신 주성영한테 ‘군부독재에 붙어 민주주의를 유린한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서 입을 놀리느냐’고 단호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국민이 뽑은 입법기관이 그만한 배포와 사리판단이 없나. 기껏 조찬기도회에서 울면서 참회기도나 할 일인가.
그 사람이 과거에 맑시즘이건 주체사상이건 지금은 자유주의건 어떤 사상을 갖든 그걸 뭐라 할 수 없다. 차라리 유시민 의원처럼 ‘과거엔 그랬어도 지금은 나 자유주의자인데, 왜 안돼냐’하고 당당하게 굴면 된다. ‘그때 잘못했다해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게 축적돼서 지금 내가 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면 될 일이다. ‘그 시간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당당하게 지켜야 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사람은 힘이 생긴다"
1평 남짓 좁은 공간엔 사회과학 책들이 많이 쌓여있었다.
"어제 응급실에 누워서 논문을 하나 읽었다. 그러다 <칼의 노래>를 보고 하룻 만에 1권을 다 읽었다. IMF가 내년도 경제계획과 관련해 자료를 쭉 내놓고 있는데 그것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의 리상호가 번역한 <열하일기>도 봤는데 번역이 예술이더라"
- 그 몸으로 책을 읽을 수 있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평소 원래하던 공부량이다.(웃음) 내가 원래 정책 쪽 일을 맡기 전까지는 ‘쇠파이프’를 잡던 ‘무관’ 출신이었다. 이 정도 기개는 보여 줘야...”
50여일을 넘게 단식을 한 사람치고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는 좋아보였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계속 힘이 없어서 빌빌거리고 있었는데 조금 전 대학교 후배들이 찾아왔다. 99-00학번이라 잘 알지도 못하는데, 힘이 나더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은 힘이 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