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44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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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언제 읽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어릴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중이다. 다시 읽을 때면, 내가 읽었다고 기억하는 책들이 읽은 것이 아니라 줄거리를 알고 있거나 자주 들어서 마치 읽은 것처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만큼 새롭게 다가온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그 중 하나이다. 내가 이 책을 정말 읽기는 읽었던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새로운 느낌에 어쩔 줄 몰랐다. 멕시코만류에서 작은 배로 홀로 고기를 잡는 노인, 그리고 그의 곁을 변함없이 지켜주는 소년 마놀린.

 

노인은, 자신이 큰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던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제 신문'에 나온 이야기들처럼 노인의 과거는 그의 기억 속에서 꿈틀댄다. 노인이 물고기를 잡지 못한 건 벌써 87일째이다. 그러나 '어제 신문'의 이야기들처럼 그가 물고기를 잡았던 과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은 현대사회가 이미 고령화사회로 넘어왔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혹은 일자리를 갖고 있다한들 젊은 시절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노인들이 우리 주변에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과거의 자신을 모습을 기억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던 그 흔적들을. 그렇지만 현실은 낡고 더러운 집과 찾아올 이 없고, 말상대조차 없이 외로운 삶이다. 그래서 노인은 자신의 과거를 붙잡고 큰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을 것을 열망한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보이는 것만이 살아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노인이 마침내 큰 바다로 나가 커다란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광경은, 노인이 자신이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삶과 대항하여 싸우는 장면처럼 여겨진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그 큰 물고기와 싸운다. 무슨 물고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큰, 그리고 그것을 잡음으로써 어부로서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물고기이다. 이것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와의 싸움처럼 보인다.

 

노인은 바다에서 쿨고기와 싸우며 계속해서 혼잣말을 한다. 그 말을 받아 줄 이 없건만, 계속해서 말을 하고, 제3자가 되어 자기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배 밑에서 꿈쩍도 않고 있는 이 물고기와 싸워서 이기는 일, 그 물고기를 잡아서 가져가는 일은 노인에게는 삶의 희망이다. 철저하게 고립된 바다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며, 자신이 갈고 닦은 기술이다.

 

노인이 그 물고기를 잡았을 때, 바다는 그 기쁨을 오롯이 느끼도록 가만두지 않았다. 잡은 물고기를 빼앗기 위해 상어들이 계속 쫓아왔던 것이다. 그가 잡은 삶의 희망을 상어들이 다 빼앗아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노인은 자신이 그 큰 물고기를 포기하지 않고 잡았던 것을 후회한다. 자신이 잡지 않았다면, 물고기도 그렇게 허망하게 상어들의 먹이가 되지 않앗을 것이고, 자신 또한 삶의 기로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인생 아닌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사는 것은 그렇게 늘 치열하다. 노인이 사투에서 살아돌아왓을 때 그의 배에는 그가 잡았던 물고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뼈들만 남아있었다. 그 큰 물고기와 싸워 이긴 노인을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마치 '어제신문'의 기사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딛치더라도 삶에 대한 의지와 목표가 있다면, 쓰러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다. 손에 난 생채기들이 채 아물기도 전에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일들이 생기겠지만, 그것을 이기고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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