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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나라 2 (양장)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6년 3월
평점 :
1권을 다 읽고 나니 당연히 2권이 궁금해졌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목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으니, 이제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글 창제의 순간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리고 또 하나.
1권에서 헤어진 한석리와 숙현 아씨는 어떻게 될까.
역시 2권도 잘 읽힌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답게 사건은 빠르게 진행되고, 세종의 문자 창제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자리를 찾아간다.
명을 섬기는 것이 조선을 위한 길인가
2권의 시작부터 세종은 명의 무리한 요구와 맞닥뜨린다.
이미 수많은 말을 바쳤는데 다시 소 육천 마리와 말 오천 마리를 요구한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곧 명에 대한 불충이라며 세종을 압박한다.
읽으면서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시대적 환경도 생각하게 된다.
명을 사대하는 것이 조선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사고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약소국인 조선을 지키고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던 대신들도 있었을 것이다.
파격적인 변화 앞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질서를 바꾸자고 하면,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생긴다. 더구나 당시 조선과 명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저항에는 나름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반대를 단순히 사대주의라고만 몰아붙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 속 세종이 바라보는 조정은 그렇지만 훨씬 답답하다.
한석리의 처벌을 두고 신하들이 ‘성현의 가르침’을 들고나오자 순식간에 한목소리가 되고, 세종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조선의 조정인지 공자의 조정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조선의 왕이 있는데 조선의 생각은 어디에 있는가.
1권에서 세종이 장영실에게 ‘목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면, 2권에서는 그 생각이 훨씬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글이 물과 같이 흐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누구에게나 도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세종에게 새로운 글자는 단순히 중국과 다른 조선만의 문자를 갖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자를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일부 사람만이 아니라, 글을 모르는 백성도 자신의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집현전에서 세종이 던지는 말은 더 직접적이다.
“조선의 백성은…… 하늘의 자식이 아니란 말인가?”
글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양반과 백성의 차이를 넘어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길로 나아간다.
그 과정이 얼마나 순탄치 않았을지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 세종의 외로움과 답답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왜 우리만 글자가 없는 것이오?”
몸이 쇠약해진 세종이 마지막처럼 던지는 이 질문에는 단순한 분노보다 답답함과 절박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반대하는 사람과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은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 부분이 하나 있다.
변화에 반대한다고 해서 모두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명을 거스르는 것이 조선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이 기존 질서를 흔드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판단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하거나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1권에서 숙현 아씨를 공녀로 보내는 데 관여했던 윤교찬이나 하영번 같은 인물들은 2권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보다 자신의 자리가 먼저이고, 백성이 어떻게 사느냐보다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다. 시대가 달라져도 이런 사람들은 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세종에게 반대했던 인물들보다 오히려 이런 인물들이 더 싫었다.
신념 때문에 반대하는 것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
한석리와 숙현 아씨, 그리고 각자의 자리
1권에서 헤어졌던 한석리와 숙현 아씨의 이야기도 2권에서 어느 정도 매듭을 찾아간다. 공녀가 되어 명으로 향해야 했던 숙현과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한석리.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2권에서는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누군가는 나라를 바꾸려고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결국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결국 우리 글자를 갖는다는 것
『세종의 나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크게 보탠 소설이다.
그래서 1권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작가의 상상인지 구분하면서 읽을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두 권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꽤 분명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말이 있는데 왜 우리의 글자는 없는가.
남의 글자를 빌려 우리의 말을 적어야 했던 시대에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편리한 글자 하나를 발명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일이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중국으로부터 정신적으로 한 걸음 떨어져 나오는 일이었으며, 무엇보다 글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글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까지 넓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결과를 이미 알고 읽는데도 그곳까지 가는 길이 궁금해진다. 김진명 작가는 역시 이런 이야기를 잘 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부분도 있고, 때로는 ‘조금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싶은 장면도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