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 - 1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2편 추적과 음모


강청댁이 발끈해서 말했다. 두만네는 내가 또 실술 했구나 싶었던지 애매하게 웃으며 강청댁을 힐끔 쳐다본다.

"하기사 자식이란 애물이지."

얼버무려놓고 맷돌중쇠 가에 남은 메밀가루를 쓸어낸다.

"속이 상해서....…. 성님."

"와."

"아무래도 임이네 그 제집은 화기가 있소."

“무신 말을 그리 하나."

“제 서방 두고 남우 사나한테 꼬리를 치니 하는 말 아니오. 그년, 제집아 적부터 성하지는 안 했일 기요, 행실이∙∙∙∙∙∙ 생각 좀 해보소. 오양(외양)이 그만이믄 머 때문에 늙은 칠성이한테 왔겄소? 손가락도 없는 병신한테 왔겠느냐 말이오."

“강청댁,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노."

“다 짐작이 있으니께."

두만네는 메밀가루를 쓸어내다 말고 정색을 한다.

"큰일 나겄네. 그런 말 함부로 하다가 똥 묵을라."

“내가 똥을 묵을 긴가 그년 가랭이가 찢어질 긴가 그거사 두고봐야 알겠지요. 그년 눈웃음에는 행토가 있소."

까무잡잡한 얼굴이 바싹 모여들고 얄팍한 눈꺼풀 밑의 작은 눈이 이글이글 탄다. 임이네하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무정한 용이 태도는 모두 임이네 탓이기나 하듯 강청댁은 미움의 마음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허어 이 사람이, 그런 소리 안 하네라 이웃 간에서 웃기 예사지, 구중 속에서 내외하고 사는 양반댁 아씬가? 조석으로 대하는데 불구대천지 원수도 아니겠고 웃으믄서 지내는 기이 머가 나쁘노, 칠거지악 중에 여자 투기가 든다 카던데 그만한 일 가지고 이렇고 저렇고 해봐야 니 얼굴 치다보지 임이네 얼굴 치다보겄나. 아예 남보고 그런 말 입 밖에 내지도 마라. 가리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지는 법이니께."

두만네는 윗돌을 들어 중쇠에 끼운다. 자루바가지 속에서 엿기름을 한 줌 집어넣고 손을 잡는다. 좋잖은 표정으로 맷돌을 덜덜 돌리기 시작했다.

두만네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막딸네같이 동네방네 말을 퍼뜨렸다면 쥐어뜯고 한판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p.66~67


요즘 같으면 이런 걸 뭐라고 할까? 

내가 두만네였다면 강청댁도 임이네도 다 상관 안하고 살았을 것이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따라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가.

또, 남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해봤자 돌아오는게 뭐가 있던가.

결국은 말이 씨가 된다.

강청댁의 악바리는 이해가 되다가도 그깟 남자 없어도 사는 것인데

애끓이며 매달려본들 무엇하랴...


치수는 천천히 눈을 들어 윤씨부인을 바라본다. 시선을 느낀 윤씨부인도 아들의 눈을 마주 대한다. 검은 점이 무수히 드러난 얼굴이었다. 잠 못 이룬 탓인지 눈 가장자리에 달무리 같은 푸른 빛깔이 드리워져 있었다. 처연한 모습이다.

'많이 늙으셨다.'

긴 눈매, 눈매의 눈동자만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의지와 힘이 사무친 듯 남아있다. 머리 모양 옷매무새는 방금 자리에서 일어난 것 같지 않게 단정하여 변함이 없다. 치수는 어머니의 흩어진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여전하시다! 언제나 저 모습, 저 눈빛, 대장간에서 수천 번을 뚜드려 만든 쇠붙이 같으다.'

치수는 자신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낀다. 많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신을 맴돌았던 뜨거움은 싸이 소리내며 가는 것 같았다. 단련된 쇠붙이와 쇠붙이였다. 싸움터에서 적과 적의 칼이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쌍방이 혼신의 힘으로 겨루는, 숨결조차 내기 어려운 침묵, 긴장은 두 모자 사이의 공간을 팽팽하게 메운다. 치수는 어머니의 뻗치는 힘이 전보다 가늘어진 것을 느낀다. 대신, 보다 날카로워진 것을 피부로 심장으로 감득한다. p.68


나는 윤씨부인의 행동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치수와 구천이

윤씨부인은 두 아들의 아비들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 것 아닌가?

둘 다 밉던가, 둘다 사랑하던가....해야...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고.

그래서 그런걸까?

치수가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없던 거부감

자애스럽던 어머니가 남보다 더 먼 사람이 되어 버린 치수의 어린 시절

결국 치수를 허약하고 신경질적이고 잔인하고 방약무인한 젊은이로 만든 건

윤씨부인이었다.


윤씨부인은 지나간 늦가을 최치수가 장암 선생의 병문안을 위해 떠나던 날 자신이 일을 그르쳤음을 깨닫는다. 치수 없는 틈을 타서 서둘렀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으려니와 윤씨부인은 그들 불륜의 남녀를 위해 피신처까지는 마련해주질 못했다. 못했다기보다 안 했었는지도 모른다. 치수도 자식이며 환이도 자식이다. 서로가 다 불운한 형제는 윤씨부인에게는 무서운 고문의 도구요 끊지 못할 혈육이요 가슴에 사무치게 사랑하는 아들이다. 십 년 이십 년 세월 동안 윤씨부인은 저울의 추였으며 어느 편에도 기울 수 없는 양켠 먼 거리에 두 아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치수를 가까이하지 못한 것은 물론 죄의식 때문이나 그보다 젖꼭지 한 번 물리지 않고 버린 자식에 대한 연민 탓이기도 했었다. 환이를 돌보지 못한 일 역시 치수에 대한 의무와 애정 탓이 아니었던가. 결국 십 년 이십 년 세월 동안 윤씨부인은 어느 편에도 기울 수 없는 저울의 추가 되어 살아왔었다. 치수의 눈을 피하여 환이를 도망가게 하면서도 피신처까지는 마련치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뻗쳐줄 어미의 손길을 결박당한 채 감내해온 긴 세월이 윤씨는 아직도 많이 남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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