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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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해리스의 책 《문화의 수수께끼》는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읽었던 책이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읽다 말았을 책임에 틀림없다. 나의 책 취향을 보면 그 범주에 들어가는 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다.

옮긴이의 말을 보자면 "독자는 지은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읽다가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내용을 겨우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p.15)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경제적 불평등의 단계에서 나타난 인간의 불공평한 지위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문화적 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장치는 식민지 상황에서 변모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서구문명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독교 문명은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였다. 문화사나 인류사가 아니더라도 기독교 세계관이나 관련 내용을 모르고서는 서양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마치 인문학 도서를 읽을 때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역사를 알아야 하듯이 서양사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내용인 것 같다. 기독교 문명 역시 초기에 만들어진 문화적 장치 중 하나였을텐데, 지배자의 착취와 폭군을 합리화해주는 문화적 장치로 바뀌어갔음을 이야기한다. 즉, 기독교가 거짓과 불평등 의식을 민중이 받아들이도록 왜곡하고 신화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생활양식과 관습들, 신만이 아는 것이라는 그 수수께끼에 실제로는 분명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나간다. 이 책은 11개의 장으로 나누어 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개인적으로는 1장 거룩한 어머니 암소, 2장 돼지숭배자와 돼지혐오자, 5장 포틀래치, 6장 유령화물, 9장 빗자루와 악마연회, 10장 마녀광란, 11장 마녀의 복귀 등이 흥미롭게 읽혔다. 여기서 제외된 원시전쟁, 미개족의 남성, 구세주, 평화의 완자의 비밀 등은 읽어도 사실 내가 명확하게 이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힌두교도들의 암소 숭배에 관한 이야기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재미도 있었고, 지금의 몇몇 상황에 대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보였다. 인도에서 암소문제는 다수의 힌두교도와 소수의 이슬람 교도 사회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의회 내 다수당과 극단주의 힌두교 소수당 사이에서도 폭동과 질서문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처럼 대규모 기업형 농업 방식이 아니라 저에너지, 소규모, 가축 위주의 농업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실업과 주택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고에너지시스템에서 필요한 것들을 가축들의 분뇨를 이용해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인도의 몬순 기후는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기후가 아니기 때문에 가뭄과 굶주림을 정기적으로 겪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암소를 죽이는 것은 순간적인 욕구와 장기적인 생존조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과 같다. 농부들이 눈 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도록 신성한 상징적 의미와 거룩한 교리를 갖추고 암소숭배를 하고 있다.

물론 마빈 해리스가 이 책을 썼을 당시와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 1975년에 쓴 이 책의 내용이 현재까지도 전부 유효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암소숭배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돼지숭배와 관련한 장에서는 농업과 목축이 혼합된 경제형태 내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신의 금지명령은 생태학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반정착 취락농경인들에게 돼지는 재산이라기보다 위협적인 존재였고 숲과 그늘진 강둑에서 살며, 곡식을 주로 먹는 돼지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돼지는 식용으로서는 가치가 있으나 그 외에는 아무 가치가 없으므로, 고기만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은 일종의 사치품일 수 밖에 없다. 소고기를 먹지 말라는 금기와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유혹이 크면 클수록 종교적 금기조치도 커진다고 보았다.

세계민족지학박물관에 전시된 생활양식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위신을 얻으려는 충동'이라고 알려진 행동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간들의 열망이 너무 지나쳐서 서로 피나는 경쟁을 하다가 나중에는 경쟁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과시적 소비', '사치성 남비'등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예로 아메리칸인디언들이 행한ㄴ '포틀래치'를 소개한다. 포틀래치의 목적은 경쟁자인 상대방보다 더 많은 재산을 포기하거나 파괴하는 데 있다. 저자는 포틀래치가 단순한 과대망상적인 변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생태학적 조건들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고 주장한다. 포틀래치에는 분명히 경쟁적인 특면이 있지만, 원래는 생산력이 높은 부락에서 남은 부락으로 식량과 귀중품들을 분배하는 측면도 있었다. 어획량, 야생과일, 채소의 수확량이 예측이 어려울만큼 변동이 컸으므로 부락 간에 교대로 열림 포틀래치는 유익한 것이기도 했다.

이 책의 마지막으로 넘어가면 '마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 16세기와 17세기에 마녀사냥이 그토록 일반화되었던 까닭을 알아본다.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유럽에서 50만 명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의 죄목은 아주 다양했지만, 그 중에서도 악마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공중을 날아다닌 죄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마녀가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빗자룰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녀 자신이 자인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고백서'는 마녀와 피의자들을 고문해서 받아쓴 글이다. 마녀피의자들은 고통을 덜 받고 화형주에서 조용히 죽어갈지 아니면 몇 번이고 고문을 당할지 양자 택일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에는 그 대가로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전에 교살당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이런 고문 행위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방 관리들이 열성적으로 마녀사냥에 몰두한 이유는 마법사나 마녀의 혐의를 받은 자들의 전 재산을 몰수할 권리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p.282) 13세기까지만 해도 교회는 마녀의 고문을 허용하지 않았고, 로마의 십일조와 성례독점권을 위협하기 시작한 불법적인 교회조직 구성원에 대해서만 허용된 일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마녀광란을 조작하고 지속시킨 것이 지배계층이었다고 말한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항거하는 격렬한 메시아니즘적 저항과 더불어 마법신앙이 점점 널리 퍼져나갔던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 교향은 마녀들에 대한 고문을 허용했고, 이 마녀광란은 통일된 기독교가 종지부를 찍고 전쟁과 혁명이 계속되는 16세기와 17세기에 절정해 달했다."(p.293) 마녀수사관들은 마법 파괴에 골몰하기 보다 마법을 고안해내는 일에 몰두하였다. 즉 마녀사냥꾼은 마녀들의 공급을 원활하기 하는데 노력했고, 실제 마녀들이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위험하다는 신앙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마녀사냥제도는 교묘하게 만들어졌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마녀광의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화와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에게 전가시켯다는 데 있다. 이 괴물의 환상적인 행위 때문에 고통받고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교회나 국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대중과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p.308)

최근에도 우리 주위에서 '마녀사냥'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전국민을 경악케하는 희대의 스캔들은 무언가 정치적 과오를 덮으려 할 때 등장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일, 그로 인해 한 개인의 희생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군가가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의도되고 조작된 것인지 의심을 해 보는 일이다. 그리고,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배우고 또 학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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