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너를 응원해! - 내 맘 알아주는 선생님과 떠나는 갈팡질팡 고민 타파 여행
정병오 지음 / 홍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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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선생님은 너를 응원해!-내 맘 알아주는 선생님과 떠나는 갈팡질팡 고민 타파 여행, 2012

지음 : 정병오

펴냄 : 홍성사

작성 : 2013.05.01. 

 

 

“그래도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었으니.”

-즉흥 감상- 

 

 

  선생님은 너를 응원해. 이 제목을 처음 본 순간 ‘그럼 선생은 누가 응원해?’라는 물음표를 떠올렸었습니다. 아무튼 흥미로운 기분으로 만나본 책이라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책은 ‘지수’라는 이름의 학생에게 선생님이 보내는 편지글로 시작의 장을 엽니다. 그리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에 지수가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말 못할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것으로 계속되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감상문을 작성하면서도 고민의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바로 지수 본인이 ‘기독교인 학생’임을 말하고 있었으며, 학생과 대화하는 선생님도 기독교사들의 연합모임인 ‘좋은교사운동’ 소속이었기 때문인데요. 왜 그렇지 않습니까. 종교가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좋은 것보다 일단 나쁜 면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보니 가급적이면 ‘종교’와 관련된 책들은 일단 피하고 있었는데요. 이왕 이렇게 만난 좋은 책. 조심스레 추천장을 내밀어봅니다. 

 

 

  방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기독교 코드’만 잠시 접어두면 꼭 한번은 읽어도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나름의 고뇌로 가득한 학생과 그것에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종교가 자유롭다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못한 우리네의 일상에, 이번 책은 ‘사실 우리는 모두 닮아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도 잠시나마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입장에서, 저렇게 학생의 고민에 진지하게 임한 적이 있었는가에 대한 반성의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지수가 어떤 고민을 가졌었는지 궁금하시다구요? 작은 제목을 옮겨보면 ‘1. 공부를 잘해야 과연 잘 살까요?’, ‘2. 공부와 하나님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라고요?’, ‘4. 저는 공부를 못하는 찌질이에요’, ‘5. 저는 내세울 게 없어요’, ‘6. 예수님이 수능을 본 적이 있나요?’, ‘7. 시험과 성적 앞에서 쪼그라드는 이 마음’, ‘8. 비전이란 무엇인가요?’, ‘9. 딴 생각할 틈도 없다고요!’, ‘10.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어요’, ‘11.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12. 부모님의 기대에 숨이 막혀요!’, ‘13. 선생님과는 소통불능, 이해불가?!’, ‘14. 부당한 권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15. 왕따 당하기 싫어 왕따 시켜요!’, ‘16. 이성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17. 나는 누구인가요?’, ‘18. 제가 은혜의 존재라고요?’, ‘19. 지난 시절, 되돌릴 수 있을까요?’, ‘20. 하나님은 왜 고통이란 걸 주신 거죠?’, ‘21.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나요?’가 되겠는데요. 으흠. 그냥 술술 읽히기에 주고받은 편지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는데, 적어보니 편지의 양 만큼이나 다양한 고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작은 제목만 봐도 학창 시절에 한번쯤은 해보았을 고민거리였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해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선생님의 친절한 답장을 통해, 제가 맡게 될 학생들이 비슷한 고민을 가져온다면 참고할 수 있을 내용도 얻어 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일단은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다시금 공부의 시간을 가져 봐야겠습니다. 

 

 

  네? 아아. 저 또한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고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파울로 코엘료님의 작품들과 양자물리학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 관점이 달라졌는데요. 무엇보다도 대학교에 다니면서 호기심에 들었던 교리공부를 통해 ‘강요의 종교’가 아닌 ‘위대한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서의 종교’에 살짝 눈을 뜨면서, 옛날만큼은 짜증나거나 답답하진 않았는데요. 분명 좋은 책임에도, 종교에 대한 나름의 선입견을 가진 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실 것을 속삭여 봅니다. 간혹 '무오의 원리'를 가지고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에 한 가지 의미만 두고 심하게 흥분하는 분들을 만나봤기 때문인데요. 부디 ‘종교’ 이전에 ‘상담’적 측면으로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자가 낯설지 않다는 기분이 들어 지난 감상문을 훑어보았습니다. 그 결과 처음 만나본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왜 그렇게 익숙한 것일까 궁금해 생각해보니, 교리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책들과 수녀님, 그리고 신부님과의 만남을 통해 느꼈던 기분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려 볼 수 있었습니다. 네? 물어보면 자꾸 ‘무교’라고 말하면서도 왜 자꾸 교리공부를 말하냐구요? 위에도 살짝 말했지만, 호기심이 있어 대학교에 내에 있었던 성당에 다니며 세례명을 받았을 만큼 열심히 공부를 했었는데요. 졸업 후에는 재미와 흥미가 없어져 결국 냉담자가 되었지만, 교리공부 당시만큼은 종교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얻어 볼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책에 집중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위에서도 편지글 형식으로 이뤄진 책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글씨만 잔뜩 있는 것은 지루할 수도 있는 법! 추상화가 아닐까 싶은, 갈팡질팡 정신 하나도 없는 10대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 삽화가 중간 중간 지면 가득히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래라 저래라 식의 명령조가 아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식의 가능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는데요. 거기에 편지글의 시작마다 ‘지수야!’라며 이름을 부르고 있었으니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와 같은 김춘수의 ‘꽃’에 나오는 시구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워 보고 싶어집니다. 

 

 

  그럼, 응원받기를 갈망하기 전에, 우선은 제가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데요. 이어지는 감상문은 도서 ‘교사 역할 훈련 Teacher Effectiveness Training, 1974’이 되겠습니다.

 

 

TEXT No.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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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육 이야기 - 꼴찌도 행복한 교실
박성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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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독일 교육 이야기-꼴찌도 행복한 교실, 2010

지음 : 박성숙

펴냄 : 21세기북스

작성 : 2013.04.29.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하라.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기에,”

-즉흥 감상-

 

 

  ‘꼴찌도 행복하여라. 허나 그것은 우리가 아니구나.’ 이것은 표지를 넘기기 전에 제목만 보고 떠올린 생각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말할 때마다 ‘외국에는 이렇게 한다!’식의 언급을 자주 들어왔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마음을 비우려고 해도, 저의 선입견은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책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지금 열다섯 살인 큰 아이가 두 살 때’라는 언급을 보니, 적어도 13년 전에 독일에서 살기 시작한 아주머니가 화자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의 기자로도 일했고, 남편과 함께 독일에 유학을 왔던 차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우선은 [1. 독일학교의 특별한 수업]으로 ‘아프리카 돕기 위한 초등학교 프로젝트’라는 것을 통해,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던 그들만의 문화를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2. 자연과학과 예체능 수업], [3. 어문학 수업은 비평과 분석], [4. 학교에서 배우는 독일인의 성], [5. 세상을 바꾸는 사회탐구 수업], [6. 일반 독일교육 리포트]와 같은 제목과 함께, 지금까지 두 아이와 함께한 교육 현장을 진솔하게 펼쳐 보이고 있었는데…….

 

 

  교직수업을 들으며 덴마크와 핀란드의 교육환경에 대해서도 살짝 알게 되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는 독일의 교육환경에 대해 그 맛을 음미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으로는 저의 ‘앎의 우물’에 깊이를 더해주지는 못했는데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고 너희는 너희다!’와 같은 불필요한 선입견을 버리고, 교육에 있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 해야겠다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두 아이의 엄마로 처음에는 ‘독일의 교육방식이 이해하기 힘들었다’지만 차츰 시야의 변화를 일으키는 저자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며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는데요. 이거 ‘무터킨더’님의 팬이 되는 것은 아닐까 행복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아. 방금 언급한 ‘무터킨더’는 저자의 필명입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무한오타’로 활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글이 반응이 좋아 책으로도 나왔을 정도라고 하니, 으흠. 존경을 아까지 않겠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써온 감상문을 책으로 한번 묶어보는 것이 소원인데요. 역시 그렇게 되려면 꾸준함의 성실성과 남다른 독창성, 그리고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필요성이 충족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책에 집중 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자전거와 인명구조 자격증에 대한 것인데요. 아마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왜 그런 필요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자격을 따야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말하실 것입니다. 법으로 그것을 의무화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의무적으로 가르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데요. 극단적인 예를 들기 좋아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우리는 지금 ‘휴전’이라고 하는 ‘전시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와 같이 괴물이나 외계인이 침공할 경우보다, 북쪽에서 미사일이 날아올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이라는 것인데요. 아무리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들 하지만, 생존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눈뜬장님과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 합니다. 물론 이 두 자격증이 생존과 무슨 상관이냐 할 수 있겠지만, 요즘 생각보다 자전거 못타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거기에 수영은 물론, 위기 상황에서 자기 몸 하나 간수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이 없다고 감히 생각하는데요. 방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지식의 창으로 일상화 되어있는 ‘스마트폰’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 똑똑함을 부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측면에서라도 이런 독일식 교육방법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나라 방식이 더 좋다고 하기보다는, 일단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구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것’이 무엇입니까? 중국의 공자로부터 전해진 ‘유교사상’인가요? 아니면 광복 전후로 일본식과 미국식이 섞인 교육체계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단군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고유의 정신문화사상을 말하는 것인가요? 어릴 때부터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예로부터 좁은 땅덩어리에 4개국이 아웅다웅하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인데요. 그런 ‘헷갈리는 역사’는 저의 앎이 얕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 옆으로 잠시 밀어두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것’이라 생각되는 전통이나 풍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데요. 거짓 된 미소와 함께 하는 악수 이후로 서로 싸우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는 윗분들만 욕할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조금씩 그 기초를 탄탄히 쌓아 밝은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감상문을 쓰다가 친구가 준 링크를 열어보니 ‘무터킨더’님의 블로그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는 같은 걸 앞에 두고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친구의 입장에서는 ‘기본이 없는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저의 입장에서는 ‘문화의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 속에서 과연 무엇이 더 좋은 예인가?’라는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개념 없어 보일 때가 있듯, 우리 또한 외국에 나가면 외국인일 뿐인데요. 흰색의 바둑알 속에 하나의 검은 돌을 예로 들 수 있듯.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네? 자꾸 생각 생각하는데 매순간 하는 ‘생각’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구요? 글쎄요. 한번 자신을 되돌아봅시다. 우리는 주입된 정보를 반복해서 말하는 앵무새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위해 끊임없이 생각는 자인가요? ‘하던 지랄도 멍석 깔아 주면 안 한다’는 말이 있듯. 당연한 것일지라도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하지 않을까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생각 타령’을 한 것인데요. 어떻습니까?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오늘 생각하십니까?

 

  럼, 기회가 되는대로 지은이의 다른 책도 만나보고 싶어졌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이어지는 감상문은 도서 ‘선생님은 너를 응원해!, 2012’가 되겠습니다.

 

 

TEXT No.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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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카르페디엠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윤정주 그림 / 양철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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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兎の眼, 1974

지음 : 하이타니 겐지로

그림 : 윤정주

옮김 : 햇살과나무꾼

펴냄 : 양철북

작성 : 2013.04.21.

 

 

“적극적인 사랑과 관심은 개천에서도 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즉흥 감상-

 

 

  저는 선생님이 싫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 불리며 학교에 몸을 담았다는 아이러니를 경험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제목에 무의식적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말았는데요. 으흠. 원제목이 사실은 ‘토끼의 눈’이라고 하기에 일단 마음을 비우고 만남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결혼한 지 겨우 열흘밖에 지나지 않은, 22살의 젊은 여선생님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시작부터 피와 살점이 튀기는 현장을 보이며 시작의 장을 여는데요. 훗날 ‘파리 박사’로 신문지상에 이름을 날리게 될 ‘데쓰조’가 함께 주인공임을 알립니다. 그렇게 ‘쓰레기 처리장’을 중심으로, 환경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하나 둘씩 펼쳐지기 시작했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연식과 지리적 배경인데요. 1974년이면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보다는 일본의 경제성장이 절정을 달렸던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깝지만 먼 이웃인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요. 이런 특징을 알고 만난다면, 좀 더 받아들이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화’에 대한 의문점은 저로서도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선생님, 내 부하 해-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과 함께 어린이 시 쓰기 せんせいけらいになれ, 1999’일 경우에는 아이들의 글을 엮은 것이라 되어있지만, 이번 책에 대해서는 ‘형의 죽음과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오키나와로 떠난’ 지은이가 여행에서 돌아와 쓴 책이라는 언급만이 보일 뿐인데요. 별도의 인사글도 없기에 ‘리얼리티’에 대한 부분은 다른 전문가 분께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이야기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도 이런 이야기가 실화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작은 학교. 열악한 환경. 여기에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여보면, 전교생이 1000명 정도 되는 큰 학교와 반대로 전체학생수가 100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인원수만 보면 전교생이 적은 학교에서 일하는 게 편해 보입니다. 하지만 선생의 입장으로 보면 해야 할 일의 중첩도가 달라지는데요. 공공도서관에 있다가 학생 수가 많은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며, 여러 명 분의 일을 갑자기 혼자 하게 되자 ‘신세계’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해에는 인원이 작은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요. 도서관 업무는 기본으로 다른 일도 하게 되자 매일 같이 방전되는 기분으로 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언급되는 학교는 그보다도 적은 학생을 대상으로, 심지어는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가슴에 품은 로망과 현실은 다를 수 있음을 속삭이며, 멋진 교사로의 꿈을 품은 학생 분들께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어집니다.

 

 

  아무튼 다른 출연진들도 많기에 접근점이 다양할 수도 있지만, 사회초년생의 고다니 선생님과 세상과의 소통이 힘든 데쓰조 학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고다니 선생님은 평범한 의사집안에서 외동딸로 곱게 자랐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별다른 기복 없이, 있는 그대로의 안정된 삶이 일상인 상태를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삶처럼 보이지만, 인생에 있어 다양한 경험이 없기에 오해로 인해 쉽게 상처 받고 또한 줄 수 입장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사회초년생이자 여성으로서의 가정사 또한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데쓰조는 부모님을 여의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로 외부와의 의사소통이 막혀있음을 말할 수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태를 ‘손상된 백지’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적자면 ‘나름의 색을 띄게 된 백지’인데요. 같은 흰색이라도 미묘한 질감의 차이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둘의 입장을 보면, 고다니 선생님과 데쓰조는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아있습니다. ‘나름의 이유라는 껍데기’로 둘러싼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스스로가 정한 안락한 껍데기의 경계를 까고 세상에 나와야합니다. 그렇기에 둘의 이야기는 당장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모를 종이를 펼쳐든 것과 비슷한데요. 그 둘을 중심으로 어떻게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림을 그려 나가가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해피엔딩이었음에 감동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성취감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런, 어떤 만족감을 맛볼 수 있었다고만 적어보는군요.

 

 

  다른 건 일단 그렇다 치고, “나는 이 책이 싫습니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밉습니다.”라고 리포트를 제출한 한 여학생의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구요? 음~ 동감입니다. 요즘에야 어떨지 몰라도, 대학생일 당시만 해도 ‘철밥통’의 이미지와 함께 공무원의 마음가짐으로 교사의 꿈을 꾸는 이들이 주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으로 2년간의 학교생활을 통해,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요.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2000’의 명대사로 생각하는 “아이들한테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한테 아이들이 필요해.”를 함께 말하고 싶을 정도로, 교사와 학생은 계층적 관계가 아닌 함께 서로 도와야만 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책날개에도 언급되어있지만, 국내에도 지은이의 책이 다수 번역출판 되어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육과 치료’ 부분으로는 토리 헤이든의 책만을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이어달리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행복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아무튼, 이 기회에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들을 대기목록에 올려본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이어지는 감상문은 도서 ‘독일 교육이야기-꼴찌도 행복한 교실, 2010’이 되겠습니다.

 

 

TEXT No.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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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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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어린이표 - 웅진 푸른교실 1 웅진 푸른교실 1
황선미 글, 권사우 그림 / 웅진주니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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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쁜 어린이표, 1999

지음 : 황선미

그림 : 권사우

펴냄 : 웅진주니어

작성 : 2013.04.18.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쁜 다른 면은 항상 있기 마련이었으니.”

-즉흥 감상-

 

 

  ‘나쁜 어린이표? ‘표’라는 이름의 어린이가 있는데 행실이 나쁘다는 건가?’ 이것은 여느 날과 같이, 책을 있어야할 지라에 열심히 꽂고 있던 중 문득 떠올린 생각입니다. 하지만 일은 일이고 취미는 취미이니, 피어나는 호기심을 고이접어 망각의 창고에 집어넣어두었는데요.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그 의문을 해결해 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한 어린 시절을 통해 인사를 건네는 글쓴이의 속삭임은 살짝, 방금 ‘반장 선거’를 마친 교실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아쉽게 탈락한 ‘건우’라는 친구가 주인공임을 알리는데요. 알고 보니 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의 현장에 꼭 있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아무튼 건우가 속해있는 반에는 ‘착한 어린이 표’와 함께 ‘나쁜 어린이 표’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요. 사고뭉치 건우는 그중에서도 최고로 많은 나쁜 어린이 표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그렇군요. ‘표’라는 이름의 나쁜 어린이가 주인공이 아닌, 착하고 나쁘고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소문으로만 들어봤던 ‘칭찬 스티커’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최근에 들어서야 그 존재를 알게 된 ‘칭찬의 역효과, 2010’ 보다 10년이나 앞서 그것을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감탄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학교란 무엇인가 6부작’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이슈를, 비록 부분적이나마 훨씬 앞서 이야기했기 때문인데요. 목적을 위한 발판으로 목표를 세우는 것만이 아닌, 가치 척도를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멋지게 표현된 것 같습니다.

 

 

  소문으로는 ‘나쁜 선생님 표’가 나온다는데 정말이냐구요? 소문의 실체는 본인이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더 좋긴 하지만, 맞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에 저주받은 캐릭터로 묘사되는 ‘탐정’처럼, 우리의 건우도 계속해서 나쁜 어린이표가 쌓여감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데요. 뭔가를 잘 하려고 해도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데스노트’ 아니, ‘나쁜 선생님 표’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이 부분에서 ‘평가의 대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요즘이야 학생은 물론 교사와 그 밖의 다양한 것들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지만, 이 작품은 1999년에 나왔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제가 한창 고등학생이었으니, 어느 학생이 감히 교사를 평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작은 승리를 취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요. 작품은 그 당시에 나름 파격적인 장치를 선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삽화’입니다. 특히 건우의 내적 갈등이 절정에 도달하는 것도 모자라 그 한계를 넘어섰고, 나름의 해결책으로 나쁜 어린이표를 찢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린 다음의 삽화가 정말 멋졌는데요. 건우는 저렇게 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저는 뭡니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자유의 깃털 날개’가 아닌, ‘책임의 강철 날개’가 자랑하는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는 마음이 꿈틀거리는 듯 했는데요. 비록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 속 어느 어두운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있을 ‘순수한 나’에게 그저 토닥이고 싶을 뿐입니다.

 

 

  책은 표시된 것만 95쪽으로, 지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과 함께 큼직한 글씨들로 읽기 편했습니다. 삽화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음에도 따뜻한 느낌의 붓 터치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우의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과학상자’에서 뜨끔 했는데요. 이래봬도 저라는 사람, 교내 대회에서 솜씨를 인정받아 시 대회까지는 가봤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말입니다! 크핫핫핫핫핫핫!!

 

 

  학생과 교사라.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초등학교 학교도서관에서 사서로 열심히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는 ‘아직 교사 자격증이 없으니,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방식으로 아이들과 놀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어린친구들과 부대끼며 지냈었는데요. 아무리 ‘독창적인 마음으로 이것저것 열심히 했어도 결국 나의 것이 아니더라’…라는 우울한 생각은 잠시 옆으로 밀어두겠습니다. 대신, 남동생만 셋 있는 맏형으로서 익혀왔던 수많은 기술들을 총동원해, 학생들과 함께 웃고 울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요. 사정상 학교를 그만두고, 손님으로서 학교를 찾았을 때 ‘선생님 왜 이제와요!’라며 반갑게 달려들던 녀석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용건만 간단히’ 하라구요? 으흠. 그러니까 말입니다. 선생님이 무서워 벌벌 떨었던 저의 꼬꼬마시절과는 달리, ‘지킬 것만 잘 지키면 우리는 평등하다’라는 것을 실천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리워지는데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더욱 잘난 선생님이 되어, 어린 친구들과 함께 잘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다음날을 꿈꿔 보렵니다.

 

 

  네?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나쁜 어린이표’를 통해서 발생했던 이야기 중에 ‘학생간의 격차 조장’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책 안에서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와 같은 상황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는데요. ‘애들이 알긴 뭘 알아’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그들만의 미묘한 격차’라는 것이 무섭더라는 것을, 반장과 건우의 마찰 속에서 맛볼 수 있었다고만 적겠습니다.

 

 

  그럼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2000’의 감상문으로 이어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교육에 관한 이론서를 열심히 읽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서 감상과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참 좋습니다. 그리고 도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兎の眼, 1974’의 감상문도 대기중인데요. 읽어보면 좋을 다른 책 있으시면 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덤. 학창시절을 통해 학교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다면서, 오히려 점점 학교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괴롭습니다. 공부를 계속 하지만 점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사실이 정말 괴롭습니다.

 

 

TEXT No.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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