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2년 우리 가족은 몽골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월드비전을 통해서 한 아이를 후원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도 그 아이는 우리 막내딸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우리가족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간 몽골에 한번 가보자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배수아 작가의 알타이 체류기를 읽다보니 그녀의 알타이 경험이 굉장히 부러움에도 불구하고 내 몽골여행에 대한 의지는 점점 옅어져갔다. 아마도 내가 몽골에 간다면 그녀가 책에서 언급했던 `관광객`의 모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프 차를 타고 알록달록 텐트와 플라스틱 야외 테이블을 놓고 요리사가 요리한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다. 아니 몽골 서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알타이는 가보지도 못할 것이고 기껏해야 울란바토르 근처의 관광지나 돌아보고 말타기 체험이나 한 후 돌아오게 되겠지.

아 ㅠㅠ 그런 여행이라면 안가는게 좋겠어. 그보다 이 여행기를 읽는 게 훨씬 그곳을 잘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정기 후원금외에는 달리 마음 써주지 못한 아이에게 연말 선물금을 보냈다. 후원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동이체로 경비가 빠져나가니 거의 잊고 지내다가 아이가 사진이나 그림을 보내 올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오히려 죄의식에 빠지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갑자기 그 아이가 떠올랐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행경비에 비해서는 터무니 없이 작은 금액이지만 아이에게는 큰 선물이 될 테니까. Oyunerdene가 몽골의 자존심과 자연을 지키는 수호자로 자라길 바라며!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접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상 속에서 자꾸만 허허벌판인 알타이-투바를 델(몽골 방한복)을 입고 거닐고, 말의 해골이 나뒹굴고 맹금류가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돌투성이 초원을 하염없이 걷는다. 아침에 자던 모습 그대로 부시시 일어나 씻지도 않고 밀크티를 마시고 하루종일 야크똥을 주우러 다닌다. 유목민의 양고기요리를 실컷 먹고 (작가는 채식주의자라 고기만 먹는 식단에 체하기도 하던데...) 내장과 정체불명의 부속물을 익혀 나눠 먹는다.(......고백하자면 이부분을 읽다가 저녁으로 양곱창을 먹으러 갔다. 먹으러 가면서도 나의 식성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긴 했지만 양곱창은.... 맛있었다 .... ㅠㅠ)
마테차를 한 그릇에 담아 하나의 스트롱으로 돌려 마시고, 말머리장식호궁을 연주하는 친구의 음악을 듣는다. 알타이의 냄새에 적응을 하고 유르테의 문지방은 절대로 밟지 않으며 초원의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볼일을 봐도 부끄럽지 않고 밤마다 하이트 맥주를 홀짝일 것이다. (놀랍게도 그곳에 파는 단 하나의 맥주가 하이트 맥주란다. 여행자들이 매일 매일 마시지만 어느 누구도 맛있다고는 하지 않는 맥주! 하이트 맥주의 영업력에 새삼 놀랐다. 하지만 그래도 맥주가 있으니 알타이-투바 여행을 누가 모집한다면 얼른 손들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ㅋ)
검은 호수 아일과 독수리 협곡을 내눈으로 직접 보고 싶고 마치 원령공주를 보는 것 같았던 `야크의 정령`을 몸소 느껴보고 싶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에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같았던 작가처럼...... 마치 거기 오래 살았던 유목민여인처럼, 스텝 초원의 혹독한 삶에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누르하치의 아내처럼 나도 그곳에 동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나를 지배했다.



#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 이외에는 거의 가지지 않은 유목민의 특징은 비교하지 않는 가난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 유목민의 삶은 내가 이제까지 잘 알고 있던, 내가 내 이웃보다 돈이 없으므로, 그래서 내가 가난하다는 도시의 공식을 새처럼 훨훨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자연의 혹독함과 기후 변동이 유목민들의 삶을 너무나 피폐하게 만들어서 그들이 모두 어쩔수 없이 이러한 도시 변두리로 몰려와 구멍난 옷을 의식하며 살게 되는 날이 결코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 소망이 헛된 것임을 잘 알고는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태란 없을 것이며, 또한 그 변화의 속도가 무섭게 빨라지는 시대를 우리는 직접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알타이에서 갈잔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투바 유목민은 오늘 존재할 뿐이다. 다음 세대에 우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평선 아래로 저물어가는 민족이다. 보아라, 저기 태양이 진다.˝ (211쪽)


헬조선이라 불리는, 약자에게 너무나 불리한 저성장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유목민적인 마인드가 필요할 것이다. 소유하지 않고 정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에 의지해 사는 삶.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들이 오래 오래 그들의 삶을 영위하길 바라지만 이미 문명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갈잔의 말은 가슴아프다.


˝그리움만으로 나는 거의 알타이에 있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걀부인 2015-12-27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몽골요! 별에 압사당하는 느낌 받고 싶어요.

살리미 2015-12-27 01:37   좋아요 0 | URL
저도 위험할정도로 거친 자연속에 파묻혀보고 싶더라고요~ 실제로는 불편하고 무서울지도 모르겠지만요... 몽골은 어쩐지 친숙한 이미지도 많고.. 특히 책을 읽다보니까 예전에 할머니가 해주시던 말이 많이 나와서 깜짝 놀랐거든요. 예를 들어 `문지방 밟지마라` 같은 거요. 제주도는 아무래도 몽골과 인연이 더 깊고, 그래서 금기사항에도 몽골의 영향이 깃들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고기자리 2015-12-2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골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허르헉을 먹어보고 싶고, 달궈진 돌을 만져보고 싶어지더라고요ㅎ 저도 채식 위주이긴 하지만 소화를 못 시키더라도 문화의 경험은 해보고 싶어요ㅎ 수태차도 마셔보고 싶은데 인도 영화를 볼 땐 짜이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었어요ㅋ 저는 왜 이런 게 궁금한지 모르겠지만요^^

때론 유목민으로 살아보고 싶어요. 책 세계를 헤매며 정신적으로 정착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살듯이, 대지를 잠시 빌려 쓰는 사람으로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어서요.. 힘듦이나 수고로움 앞에선 사치스러운 말일지도 모르지만 지극히 겸손해짐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충만한 느낌을 받을 것 같거든요. 작가의 경험도 부럽고,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그나저나 오로라 님 좋은 일하시네요^^)

살리미 2015-12-27 11:11   좋아요 0 | URL
몽골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셨다면 물고기자리님도 분명 이 책 좋아하실거예요. 저도 유목민적인 삶을 꿈꾸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이고... 현실은 거친 자연속에 살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기도 했답니다. 근데 또 작가의 경험은 너무나 부러웠어요. 분명 알타이에 다녀온 이후의 작가는 많이 달라졌을거라고 생각해요. 첫 삼주간의 경험을 통해 이 책을 썼는데 그 후에도 두번이나 더 갔다오셨더라고요.

2015-12-27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7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별에 한번 압사당하고 싶네요... 배수아 님, 이제 월드 유목민이시네요.... 한 나라에서 1년씩 살기.. 이런 목표로 사시는 것 같습니다. 부럽네요...

저 옛날에 지리산인가 그쪽 팬션에 한번 머문 적 있느느데 별이 참.... 많더군요. 그것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던... 반딧불이도 보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봅.. 그것 보고도 감동...

저는 인도보다는 몽골 가보고 싶습니다....

살리미 2015-12-27 16:26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월드유목민 배수아님이 제대로 찾아간거죠 ㅎㅎ
가야지! 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실행력... 이게 유목민의 기본 조건인데 말이죠...저같이 이런 저런 끈들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이 땅에 묶여 살아야... 힝... ㅠㅠ

비로그인 2015-12-2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어항 밖을 동경했지만 어항 밖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커지네요.
그래도 늘 어항 밖이 궁금한 붕어랍니다.

살리미 2015-12-27 17:29   좋아요 1 | URL
누구나 자기가 있던 곳을 훌쩍 벗어나기는 쉬운 일은 아닌듯 해요. 하지만 용감하게 훌쩍 뛰어 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 의해 그곳의 이야기도 듣고 또 나도 나가볼까 하는 꿈을 꾸게 되는 거겠죠. 저도 늘 모험보다는 안정을 꿈꿔왔지만 어항밖이 항상 궁금해요^^

서니데이 2015-12-28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후원이라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해오셨군요, 잘 모르는 먼 나라의 누군가를 위한 나눔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 좋아 보였습니다,
오로라님,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살리미 2015-12-28 20:09   좋아요 1 | URL
더 좋은 일 하시는 분들 많은데 쑥스럽습니다. 딸아이가 원해서 하게 되었는데 가끔씩 후원아동에게서 편지나 사진이 오면 반갑기도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요.
그래도 몽골이라고 하면 내 인연이 거기에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서니데이님도 추위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고양이라디오 2015-12-3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에 뵈요~^^

살리미 2015-12-31 11:09   좋아요 0 | URL
벌써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날이라니... 믿기지가 않아요 ㅎ
올 한해 고양이라디오님 알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어요. 내년에도 좋은 책 얘기 많이 들려주세요. 행복한 새해 맞으시고요^^

고양이라디오 2015-12-31 19:3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로라님을 알게 되서 좋았고 여러모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글을 읽고 오로라님이 참 글을 잘 쓰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네요ㅠ
요새 글 잘쓰시는 분 보면 참 부럽기만 하네요ㅠㅎㅎ

내년에도 함께 좋은 책 많이 읽어요^^

살리미 2015-12-31 19:45   좋아요 1 | URL
아니!! 연말에 이런 사이다같은 멘트를 날려주시다니!! 너무 좋아요 ㅎㅎㅎ
저는 올해 처음 이렇게 많은 글을 써본 것 같아요. 부족하지만 좋다고 칭찬해 주시는 이웃님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오래오래 책 얘기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 같이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