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우리 가족은 몽골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월드비전을 통해서 한 아이를 후원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도 그 아이는 우리 막내딸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우리가족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간 몽골에 한번 가보자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배수아 작가의 알타이 체류기를 읽다보니 그녀의 알타이 경험이 굉장히 부러움에도 불구하고 내 몽골여행에 대한 의지는 점점 옅어져갔다. 아마도 내가 몽골에 간다면 그녀가 책에서 언급했던 `관광객`의 모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프 차를 타고 알록달록 텐트와 플라스틱 야외 테이블을 놓고 요리사가 요리한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다. 아니 몽골 서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알타이는 가보지도 못할 것이고 기껏해야 울란바토르 근처의 관광지나 돌아보고 말타기 체험이나 한 후 돌아오게 되겠지. 아 ㅠㅠ 그런 여행이라면 안가는게 좋겠어. 그보다 이 여행기를 읽는 게 훨씬 그곳을 잘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정기 후원금외에는 달리 마음 써주지 못한 아이에게 연말 선물금을 보냈다. 후원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동이체로 경비가 빠져나가니 거의 잊고 지내다가 아이가 사진이나 그림을 보내 올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오히려 죄의식에 빠지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갑자기 그 아이가 떠올랐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행경비에 비해서는 터무니 없이 작은 금액이지만 아이에게는 큰 선물이 될 테니까. Oyunerdene가 몽골의 자존심과 자연을 지키는 수호자로 자라길 바라며!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접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상 속에서 자꾸만 허허벌판인 알타이-투바를 델(몽골 방한복)을 입고 거닐고, 말의 해골이 나뒹굴고 맹금류가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돌투성이 초원을 하염없이 걷는다. 아침에 자던 모습 그대로 부시시 일어나 씻지도 않고 밀크티를 마시고 하루종일 야크똥을 주우러 다닌다. 유목민의 양고기요리를 실컷 먹고 (작가는 채식주의자라 고기만 먹는 식단에 체하기도 하던데...) 내장과 정체불명의 부속물을 익혀 나눠 먹는다.(......고백하자면 이부분을 읽다가 저녁으로 양곱창을 먹으러 갔다. 먹으러 가면서도 나의 식성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긴 했지만 양곱창은.... 맛있었다 .... ㅠㅠ) 마테차를 한 그릇에 담아 하나의 스트롱으로 돌려 마시고, 말머리장식호궁을 연주하는 친구의 음악을 듣는다. 알타이의 냄새에 적응을 하고 유르테의 문지방은 절대로 밟지 않으며 초원의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볼일을 봐도 부끄럽지 않고 밤마다 하이트 맥주를 홀짝일 것이다. (놀랍게도 그곳에 파는 단 하나의 맥주가 하이트 맥주란다. 여행자들이 매일 매일 마시지만 어느 누구도 맛있다고는 하지 않는 맥주! 하이트 맥주의 영업력에 새삼 놀랐다. 하지만 그래도 맥주가 있으니 알타이-투바 여행을 누가 모집한다면 얼른 손들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ㅋ) 검은 호수 아일과 독수리 협곡을 내눈으로 직접 보고 싶고 마치 원령공주를 보는 것 같았던 `야크의 정령`을 몸소 느껴보고 싶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에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같았던 작가처럼...... 마치 거기 오래 살았던 유목민여인처럼, 스텝 초원의 혹독한 삶에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누르하치의 아내처럼 나도 그곳에 동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나를 지배했다. #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 이외에는 거의 가지지 않은 유목민의 특징은 비교하지 않는 가난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 유목민의 삶은 내가 이제까지 잘 알고 있던, 내가 내 이웃보다 돈이 없으므로, 그래서 내가 가난하다는 도시의 공식을 새처럼 훨훨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자연의 혹독함과 기후 변동이 유목민들의 삶을 너무나 피폐하게 만들어서 그들이 모두 어쩔수 없이 이러한 도시 변두리로 몰려와 구멍난 옷을 의식하며 살게 되는 날이 결코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 소망이 헛된 것임을 잘 알고는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태란 없을 것이며, 또한 그 변화의 속도가 무섭게 빨라지는 시대를 우리는 직접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알타이에서 갈잔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투바 유목민은 오늘 존재할 뿐이다. 다음 세대에 우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평선 아래로 저물어가는 민족이다. 보아라, 저기 태양이 진다.˝ (211쪽) 헬조선이라 불리는, 약자에게 너무나 불리한 저성장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유목민적인 마인드가 필요할 것이다. 소유하지 않고 정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에 의지해 사는 삶.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들이 오래 오래 그들의 삶을 영위하길 바라지만 이미 문명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갈잔의 말은 가슴아프다. ˝그리움만으로 나는 거의 알타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