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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김영하의 산문집 삼부작 시리즈 <보다> <말하다>에 이어 나온 <읽다>는 읽는 행위에 대한 내 궁금증에 많은 답을 해주었다. 세 작품 중 이 책이 가장 재밌었는데 아마도 그건 내가 보고 말하고 읽는 행위 중에 읽는 행위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인 듯 하다.
독서는 위험한 것이다.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그랬다듯,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나도 독서를 통해 이런 경험들을 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안다`고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그리고 주변의 `확신`에 찬 친구들을 보며 의아해졌다. 대체 무슨 근거로 저렇게 확신하는가. 리어왕은 말했다.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냐?˝
독자는 소설의 첫 장을 펼치면서 `길`을 찾는다. 이 소설은 어떤 소설이고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는것인가. 오르한 파묵은 이런 과정을 `중심부 찾기`로 표현했다고 한다. 소설에 감춰진 중심부가 있고, 바로 그것 때문에 독자는 소설 속의 모든 요소들을 마치 주의깊은 사냥꾼처럼 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독서를 시작하면서 ˝나는 왜 중심부를 찾는 능력이 없는가˝를 심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평론가들은 제외하더라도 알라딘 리뷰만 읽어보아도 멋지게 해석한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나는 그저 읽을 따름이지 그 속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그런 척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메모하면서 구조를 파악하려고도 해봤고, 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김영하는 플로베르를 인용한다. 플로베르는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우뚝 선 한권의 책. 사람들이 스타일에 집중하도록 이야기는 단순하게. 그렇게 마담 보바리를 썼다는 것이다. 오히려 독자들이 `감춰진 중심부`에 도달할 수 없도록 엉뚱한 방향으로 유인한다. 시점을 자주 이동시키고, 과감한 생략을 하고, 로맨스에 꼭 필요하지 않을 여러 인물을 등장시킨다. 중심부를 찾던 독자는 헤매다가 ˝뭐야, 이게 끝이야?˝ 하고 허탈하게 끝나게 된다. 플로베르는 중심부가 아니라 독자가 중심부에 다다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좋은 독서란 한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게 아니란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을 하라! ˝아 왠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어. 인물들은 생생하고, 사건들은 흥미롭고, 읽는 내내 정말 흥분되더군. 주인공은 지난밤 꿈에도 나왔어.˝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정말 위안을 얻었다!
헤매는게 정답이란다. 아니 정답일 것까지는 없지만 그렇게 그냥 헤매도 된단다. 중심부따위 못찾으면 어떤가? 애초에 똑똑한 체 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책을 읽고 새로운 느낌을 경험하고 그런 경험이 내 속에 한겹 한겹 쌓인 것으로 이미 충분한데. 괜히 이런 저런 의미를 찾지말자. 아~ 왠지 모르겠지만 너무 좋아^^ 이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