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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발간 경영경제 관련 서적 중에서 그렇게 땡기는 책은 없다.

예의상(?) 피터 드러커 교수 책이나 하이에크 교수 책 정도를 읽어줘야겠지만 솔직히 시대에 조금 벗어난 느낌... 안끌린다. 오히려 처세 쪽의 책에서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담긴다...

올 6월은 무지 더울려나... 마음이 그러네...

 

1.아이디어 메이커 - 현재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에서 생각하기 

그래... 생각이나 새로운 틀에서 해보자. 그러면 뭔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2. 자본주의와 노예제도 

 자본주의 = 노예제도라는 등식이 생각나게하는 현실이다. 가진 자와 없는 자들의 관계가 그러하니... 슬프다.

 

3. 주식투자 최적의 타이밍을 잡는 작은 책

금융의 꽃 주식시장을 외면하고 어떻게 경제경영관련 신간평가단이랄수가 있을까? 물론 20명의 마음이 하나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주식시장과 관련된 책이 뽑혔으면 한다. 이번에도 이 책은 당연히 안뽑히겠지.

4. 공자처럼 출근하고 장자처럼 퇴근하라   

공맹을 들먹거려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일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세상이 한때 활개치더니 결국 공맹과 노장으로 귀일하는걸까? 어떻게 동양사상을 접목시키는지 은근 궁금타.

 

5. 마키아벨리 한비자 - 쾌도난마의 교과서  

 

마키아벨리와 한비자... 이거 뻔히 무슨 말 할지 보이는 책이다. 이런 류의 책은 참 많이 읽었는데 그래도 시절이 하수상하니 조금 끌린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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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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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참사를 보면서 참 더러운 세상, 있는 놈들 끼리끼리의 배부른 행태에 치미는 분노를 어떻게 갈무리할 수가 없다.

 

어쩌면 저렇게들 살 수 있을까?
후흑(厚黑)해야 구원을 받는 세상은 분명 아닐꺼고...

 

에라이... 이번 달은 그놈의 돈! 돈되는 책이나 읽어보자.

 

1. 월가의 지혜 투자의 격언 365 - 매일 한 문장씩 배워나가는 시장의 가르침 

자본주의의 심장 월가... 그들의 지혜는 뭔가 우리보다 났겠지?

 

2. 부자로 가는 경제학 - 똑똑한 부자들만 알고 있는 돈의 법칙

이런 책 읽는다고 부자가 될까만... 그래도 읽고 싶네.

 

3.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경제학은 불가능한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가능한 걸 괜히 들쑤시는거 아닐까?

 

4.  부자들의 선택 - 미국 최고의 부자 전문가가 20년간 밝혀낸 그들만이...

 부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알 수 있겠지... 무엇이 그들을 부자로 만들었을까? 

 

5. 워렌 버핏처럼 사업보고서 읽는 법  

 이 아저씨 감각은 이 시대의 줄기! 배워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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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지기 2014-05-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5월 추천 도서(5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파트장 드림
 
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책 읽은 후기를 적는데 이렇게 난감하고 불편한 적이 일이 있었던가? 자기 생각대로 소감을 적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이거 조금만 잘못 삐딱하다가는 본의 아니게 어느 일방을 편들게 되는 모양새라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편에게 욕 처먹게 생겼으니 무슨 이런 일이 있남!
책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안 읽은 사람 있으려나.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의 대입 논술공부 필수서적  <이방인>. 그런데 이 <이방인>에 논쟁의 불이 붙었다. 새롭게 번역되었다며 나온 새움출판사판 <이방인>을 놓고 벌이는 독서계 초고수들의 현란하고 박진감 넘치는 공박(攻駁)! 불어 불자도 모르는, 그저 독서가 취미인 비전문가인 나에겐 평소와 같이 마음 내키는 대로 씨불이다간 졸지에 무식한 촌놈, 또는 '악의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기존 <이방인> 수구 세력'이 될 판이니 이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아니고 뭐람. 에고~ 참 소심하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  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조금 정리해 보자.
○ 작년 가을쯤인가 새움출판사의 블로그에서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글을 봤을 때, 나는 그냥 순수한 비평가의 글인가 싶었다. 몇몇 기존 번역서의 번역 문제를 꼼꼼하게 짚어나가는 것이 설득력 있어보였고, 당대 최고 불문학 권위자라는 김화영 선생의 번역을 특히 대놓고 까기에 대단한 불문학 전공자가 마음먹고 사람 잡자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 땐 이 사람 대단하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구나~ 이 정도로 넘어갔다. 내가 불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닌지라 그러려니~ 하는 정도...
○ 그러다가 이정서의 <이방인>이란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었는데, 그 표지의 카피가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였다. 아하~ 그 분이 책을 내었구나~ 하면서도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미 과거에 읽은 <이방인>을 다시 한 번 더 읽을 만큼 시간적으로 여유롭지도 못하고 읽을 책도 많으므로...
○ 정말 이정서의 <이방인>에 관심을 준건 알라딘의 고수 '로쟈'의 글(http://blog.aladin.co.kr/mramor/6966576)을 보면서였다. 로쟈님이 지적한 사이렌 부분에 대해 초기에 이정서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겨레에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엉터리가 아니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2347.html)는 기사를 읽었고, 이어서 알라딘에 올라오는 번역자의 반박 글과 여러 댓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 논쟁에 몰입하게 되었다.
○ 급기야 이정서의 <이방인>을 손에 잡아 읽어보는 바보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나고 말았다. 원하지 않았던 일. 그런데 읽으면 습관적으로 몇 자 적어야 하는데, 워낙 뛰어난 사람들이 입을 대는 이 판국에 어설픈 감상을 남긴다는 게 괜히 지레 움츠려들게 만드네. 살짝 자존심 꾸겨지는 일이다. 이럴 땐 구경만 해야 하는 건데...

 

■  일반적인 느낀 소감 몇 가지...
○ 다시 읽은 <이방인>이 어떤 의미로 와 닿았는지를 적어본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미 충분히 분석되어져 그런 건 논술 준비용으로나 써먹는 고전이 된 지 오래된 책이니... 감상을 적느니 차라리 까뮈의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를 읽어보라는 말로 느낌을 대신하고 싶다. 이 책에 답이 있으므로...
잘 읽힌다. 사실 이정서의 <이방인>이 김화영 선생의 번역본에 비하여 술술 잘 읽히는 건 맞다. 이 부분만 평가한다면 괜찮은 번역서로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게 김화영의 시대적 언어(한문과 예법의 시대)와 이정서의 시대적 언어(한글 세대와 예법이 무너진 시대)가 다르기에 이정서본이 술술 읽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것마저 안되어 있다면 그게 정말 이상한 일이지... 내 같은 사람에겐 김화영의 가끔씩 나오는 한자투나 문어체가 전혀 이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하여간 소설적으로 매끄럽다고 하여 프랑스어도 모르는 내가 번역이 옳니 그르니 하는 논쟁에 발 담굴 처지는 아니구마...
노이즈 마케팅...  논쟁의 하나인 이건 분명해 보인다. 정도를 지나쳤다. 무슨 학문적 웬수를 만나 칼을 빼든 형국이었다고 나는 느꼈다. 특히 특정인을 지칭해 '문학 권력' 등 모든 악역을 떠넘긴 건 알면 알수록 이해가 안 되는 일이고, 공격의 짜임새와 루트를 잘못 잡은 거라 생각한다. 카피만 보면 마케팅을 위해 있을 수 있다고 좋게 넘어갈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자신이 되려 공격 받기 전까지 끝없이 물고 늘어진 것은 외곬에 빠진 자충수가 아니련지... 아니면 이마저 감안한 정말 치밀한 노이즈 마케팅이든지...
필명!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아니 어떻게 남의 실명을 언급하여 공격하면서 자신은 필명에 숨을 수 있는가? 특히 실체가 새움출판사 이대식 대표라는 것이 더욱 놀랍다. 번역자의 해명 글을 읽어봤지만 이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바른 번역에의 욕심이었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꼼수'란 욕 들어도 쌀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소설적 개연성? 번역자가 불어에 능통하지 않다는 반박 글에 나는 놀랐다. 영문판 중역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도 놀랍고... 그러고도 불문 최고학자를 그렇게 공격할 수 있다니... 하긴 불문학 전공 안 해도 불어 잘하는 사람 많다. 그런 건 사실 문제가 안 될 것이다. 번역자도 그 정도는 되니까 그런 거겠지. 그런데 사전적으로 잘 해석하여 소설적 개연성을 높였다하여 자신만 옳고 남은 그러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씨앗이다. 자만심. 오만... 당대 최고의 고수를 오만한 오역쟁이로 치부해 버리면서 정작 자신의 오만을 간과해 버린 거다. 자신의 번역도 기존 번역의 토대 위에서 자생한 것인데 이를 깡그리 썩은 권력 비슷하게 취급했으니 이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번역 문학에 큰 공을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도 지나치게 과함으로써 수세에 몰리게 되어버린 거다.
성공한 마케팅. 이런저런 점을 고려해 보면 출판사의 입장에서 매우 즐거운(?) 성공 마케팅이 아닐까 한다. 최고수 김화영 선생을 물고 늘어짐으로써 논란의 주인공으로 시끄러워질수록 저절로 광고가 될 것이고, 책은 더욱 많이 팔리게 되어있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아마도...  

 

■  번역 논쟁 부분에 대한 단상(斷想) 두어 개
○ sirènes...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김화영 역, 민음사, 135쪽)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이정서 역, 새움, 161쪽)


 사실 두 번역의 의미가 나에겐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문장의 핵심은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뭘~ 이런 걸 두고 거품을 무나...' 하는 정도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소도시는 바다를 끼고 있었다. 자정 무렵 즈음에 들어오는 정기여객선의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고, 자정이면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는 시대를 살았기에 나에겐 그 의미가 비슷하게 전해졌다. 사람마다의 체험적 환경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가지각색인 것이 소설 아니겠는가. 이정서님의 주장처럼 독자들이 "불과 몇 시간 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할 상황에서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절박한 비애와 처연함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고 연민도 느끼지 못한"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엔 대부분의 독자가 나름의 인지적 방법으로 그 의미를 알아챘을 듯하다. 이 부분은 단순히 sirènes의 사전적 분석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까뮈가 <이방인>을 저술한 장소적, 태생적 입장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알다시피 작품의 무대가 알제리의 바닷가임을 고려할 때 사전적 의미와 관계없이 나는 뱃고동에 한 표를 던진다. 훨씬 처연함이 살아난다. 정말 이건 독자의 몫이다.

 

태양
<이방인>의 하이라이트가 태양이란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이정서님의 설명 중 가장 강조하는 내용인데도 '어~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가진 부분이다. 그저 눈 앞의 자구적 해석에 치우쳐 인과관계만 따지는데 이게 오히려 나에겐 어필하지 못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뫼르소는 강렬한 태양 때문이 아니라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햇빛이 위협적이어서 정당방위로 첫 발을 쏜 것"이라는데, 이것이 백번 맞다하더라도 여기서는 '태양'에 함축된 중의(重義)가 핵심이기에 '그게 뭐 중요 해?'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정서님도 같은 말씀(http://v.daum.net/link/49587410)을 하셨지만, 나에겐 "법정에서 재판장이, ‘왜 그랬냐’고 묻자, 무덤덤하게 '태양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한거나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도 터무니없는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한"거나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자의 번역에서 독자는 권태와 허무에 빠진 뫼르소의 심리상태를 더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까뮈는 이 소설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아랍인을 죽인 그 당위성에 의해 노벨상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뫼로소란 인물의 존재 의미를 인과관계에 의한 심리 흐름 분석으로 떠 먹여주는 이정서님의 해석보다는, 전자의 해석이 그 행간에 숨은 중의적 의미를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다 더 까뮈의 소설 철학적 역량을 잘 살렸다고 느낀다. 엉뚱하게도 나는 여기서 영화 친구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렸다. "니 와 그랬노?"라는 물음에 "쪽팔리잖아"라고 대답... 나는 이렇게 그냥 '태양' 때문이라고 한 뫼르소의 마음을 영화 친구에서 실마리를 얻고 있다. 해석이 읽는 이의 자유로운 영혼에 의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게 문학이지 않겠는가. 그냥 자신의 번역 의도는 이렇다~ 라고 할 부분이었지 다른 선험자의 번역이 틀렸니마니 할 영역이 아닌 것이다. 이정서님이 크게 오버하여 자신만 옳고 다른 번역자는 틀렸다고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정리
이정서님의 번역본은 중고등 학생이 읽어도 술술 읽히는 좋은 번역서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하지만 술술 읽힌다고 하여 좋은 번역서라고 하기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 문학적으로 이름을 얻는 책들은 독자 스스로 함의(含意)를 찾아내게하여 느낌을 강하게 이끌어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번역자가 북치고 장구치고 이렇게 이해해야 옳으니 다른 번역들은 다 엉터리야~ 하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독자들이 초등학생도 아닌데 이정서님의 생각대로 이방인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듯한 행보에는 실소와 반감이 인다. 노이즈 마케팅이란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특히 김화영 선생의 번역본은 문맥이 소설적 유연성은 다소 떨어질지라도 이정서 번역본에 비해 더 사유의 여지가 느껴지기에 더욱 그러하다.(참고로, 난 김화영 선생과 일면식도 없다). 한 출판사의 대표이며 아주 똑똑해 보이는 분이 왜 좀 더 유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을까?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걸까? 지식인 특유의 폐쇄적 아집이라고 하기엔 개방적인 문화인이고, 개방적 문화인이라고 하기엔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는 자기오류(自己誤謬)에 빠져있는 것만 같다. 또 하나의 좋은 <이방인>이 될 수 있었건만 증폭되는 논란으로 아쉬움만 많아져 안타깝다. 결국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 마디로 과유불급이다.

어쨌거나 비전문가로서 새움본 <이방인>을 관전(?)한 요약 한 줄 평은 내 자신이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가진 <이방인> 읽기였다는 거다. 그저 다시 한 번 <이방인>을 잡아보았다는데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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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4/30 오후)
알라딘에 블로그를 만들고 포스팅한 이후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지라 조금 당혹(?)스럽다. 하루 방문자수도 별로 없는, 말 그대로 별 볼일 없는 블로그인데...
하여튼 읽어보시고 공감 주신 분이 넘 고맙다. (복 받을 거야~ ^^ )

 

사실 이정서님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습관처럼 출판사 블로그에 갔더니 자신의 변(辯)이 며칠 전 포스팅에 덧붙여 있더라.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 다를 것이므로 자기 신념으로 봐 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읽고 소개해 주는 게 당근 예의(?)라 생각되어 연결해 둔다.(링크 페이퍼 하단의 노란 부분)

 

<뫼르소의 살해 행위는 정말 태양 때문이었나? -카뮈 <이방인> 역자 이정서의 답변>

 http://saeumbook.tistory.com/440

 

앞으로 이방인에 대한 나의 관심을 끊기 위해 마지막으로 몇 마디 정리하고 땡~ 하려한다.

 

이정서님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번역했다."라고만 주장하고 광고했더라면 모양새가 참 좋았을 거다.
그런데 "내 번역이 옳고 너희들 번역은 다 엉터리 오역이야."라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문제가 되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분분한 논란에 번역자는 "아니 틀린 것을 틀렸다는데 뭐 어쩌라고~. 진실을 외면하지 마."하는 느낌이고,
"그 틀렸다는 게 당신만의 착각이야."라는 게 반박 논리의 핵심이다.

 

카뮈가 살아계시면 직접 물어본다지만 가고 없으니...

 

자기주장이 과하면 자기독선이나 자기고집으로 보인다.
자기주장이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거지 자신의 것이 맞다라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럴 때 보통 뭐라고 조언을 할까? 아마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할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사회는 진보하고 문화는 번성한다고 나는 배웠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알겠지... 진실불허(眞實不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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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30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모두 공감하고 동의하며 아주 잘 읽었습니다, 표맥님. 제가 생각했으되 정리하지 못한것을 표맥님은 아주 잘 하신 것 같습니다.

표맥(漂麥) 2014-04-30 11:45   좋아요 0 | URL
윽! 좋게 봐주시어 고맙습니다. 사실 쭈삣쭈삣~ 이거 괜히 적는거 아닌감~~~ 이런 생각이 절 불편하게 하였거든요. 다락방님의 말씀이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남도의 하늘은 오전내내 찌푸뚱~ 합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마립간 2014-04-30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댓글을 남깁니다.

저도 논란때문에 새움 출판 책을 구입하게 되었고, 새움 출판 '이방인'에 대한 생각, 대체적인 느낌이 저와 비슷해서 글을 남기고 갑니다. (제가 올리려 했던 글의 상당 부분을 삭제해야겠네요.^^)

표맥(漂麥) 2014-04-30 11:48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의 최근 독서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독서내공을 엿보았지요. 이렇게 방문해 주시고 비슷한 느낌을 공유해 주시어 제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14-04-3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맥 님께서 올리신 글을 읽으니 정말 공감이 많이 느껴집니다.

이 글 가운데 특히 제가 '아주 쎄게' 공감을 느끼는 부분은 <번역 논쟁 부분에 대한 단상(斷想) 두어 개> 부분이네요. 번역하신 분이나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이나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처럼 '자구 하나 하나에 집착하는 모습'도 (저같은 독자들이 보기엔) 좀 웃긴다 싶어요...

가장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분들이 가장 쎄게 치고 받고 싸우는 '논쟁'조차도 일반 독자들이 보기엔 그저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은 대목도 정말 많더라구요.

이번 논쟁을 보면서 제게 떠올랐던 또다른 책 한 권은 데이비드 베레비가 쓴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이었습니다. 그 책에 담긴 내용들을 읽어 보면 "그게 우리의 가장 큰 차이로군요" 라면서 서로 잡아먹을 듯이 격렬하게 싸우는 이유가 사실은 '엉뚱한 데' 원인이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주장이 담겨 있는데, 정말 설득력 넘치는 '흥미로운 책'이랍니다. 언제 기회가 되시면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제가 그 책을 정말 인상깊게 읽고 나서 저자의 페이스북까지 찾아가 '페친'을 맺었는데, 정작 그 책에 대해 제가 따로 쓴 글은 거의 없네요. 아래 주소로 가시면 '책 내용'을 좀 더 살펴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http://blog.aladin.co.kr/oren/4308121

oren 2014-04-30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오역 논쟁이 '자칫 끼어들기가 겁날 만큼' 무섭게 느껴졌다는 표맥 님의 말씀에도 크게 공감합니다.

[인간은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해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싸운다는 홉스의 말은 17세기에나 지금에나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던 스티븐 핑커의 책 속 구절도 '오랜만에 다시' 떠올라서 길게 덧붙여 봅니다. ㅎㅎ

* * *

폭력적 본능

홉스는 흔히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를 증오하고 파괴하는 비합리적 충동에 사로잡힌 존재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보다 섬세하고 어쩌면 훨씬 더 비극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자들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는가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홉스의 분석은 진화 생물학, 게임 이론, 사회 심리학 분야에서 재발견되고 있으며, 나 역시 그의 분석을 토대로 해서 폭력의 논리를 논한 다음 인간이 어떻게 폭력적 본능을 중화하기 위해 평화적 본능을 구사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다음은 그 유명한 "인간의 삶"에 관한 구절 앞에 제시된 분석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우리는 싸움의 세 가지 주된 요인을 발견한다. 첫째는 경쟁이고, 둘째는 자신감 결여이고, 셋째는 영광이다. 첫 번째는 인간이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안전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세 번째는 가령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하여, 본인이 직접 겪는 것이든 혈연, 친구, 국가, 직업, 이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것이든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게 만든다.

첫째는 경쟁이다. 자연 선택의 힘은 경쟁에 있는데, 그것은 자연 선택의 산물들-리처드 도킨스의 비유에 따르면 생존 기계들-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어떤 것이든 미리 정해진 디폴트 값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둘째, "불신"의 원래 의미는 자신감 결여(diffidence)이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번역한 홉스는 "전쟁이 불가피해진 것은 성장하는 아테네의 힘과 그에 대해 스파르타가 느낀 두려움 때문이었다."라는 설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이웃이 내가 가진 것을 몹시 탐낸다면 나는 그들의 욕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나는 자신을 방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방어란 성벽, 마지노선, 대탄도 미사일 등의 첨단 기술을 망라해도 불확실한 방법이고, 그런 것이 없으면 더욱 미심쩍고 불확실하다. 자기 보호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이웃에게 선제 공격을 퍼부어 쓸어 버리는 것일 수 있다. 요기 베라의 충고대로 "최상의 수비는 최상의 공격이고, 또 최상의 공격은 최상의 수비이다."

셋째는 영광인데 보다 정확한 단어는 "명예"일 것이다. 인간은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해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싸운다는 홉스의 말은 17세기에나 지금에나 사실이다.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에서

표맥(漂麥) 2014-05-01 00:14   좋아요 0 | URL
제 벗 중 한 분은 읽은 책의 내용을 적시에 품위있게 활용할 줄 아는 여유가 있지요. 책을 읽을 때 제대로 읽었기에 그런 능력을 가진게 아닌가 합니다. oren님의 글에서도 그런 품격을 느낍니다.
스티븐 핑거 교수님은 워낙 유명하시니 조금 압니다만, 데이비드 베레비는 알듯말듯 합니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제목만으로도 흥미롭군요.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차이나 핸드북 - 늘 곁에 두는 단 한 권의 중국
성균중국연구소 엮음 / 김영사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친구인 듯 하면서도 아닌 것 같고, 아니라고 하기엔 살갑게 나누는 것이 너무나 많고... 하여튼 간단하지가 않다. 최근 독도와 댜오위다오/센카쿠에 대한 일본의 영토적 집착이나 역사일탈 행각에 대해서는 우리와 공동대응을 모색하지만, 동북공정이나 북한 관련 문제를 보면 철저히 자신들의 잣대로 이익을 챙기는 모습이고...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보면 오키나와 해역에서의 미·일 동맹 해양패권에 대항하는 중국의 해양굴기(海洋崛起·바다에서 일어선다는 뜻. 그런데 崛起와 堀起 중 어느 것이 옳은 표기인가? 崛起가 맞는 듯한데 의외로 堀起가 많이 보인다) 정책에 우리가 이용(한·미·일 동맹네트워크의 해체)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가끔씩 든다.

어쨌든 마오쩌둥이 중국을 통일한 후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 장쩌민의 유소작위(有所作爲 : 해야 할 일은 한다),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崛起 : 평화적 대국화), 원자바오의 돌돌핍인(咄咄逼人 : 기세등등하게 상대방을 윽박지른다), 시진핑의 주동작위(主動作爲 :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로 이어지는 중국 대외정책의 변천사를 보면 춘추전국시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현대판인 듯하여 전율이 일기도 한다.

 

정치외교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경제와 인적교류 동향만 보면 우리의 맹방 미국보다 더 친한 사이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대상국이 중국이다. 수출의 26.1%, 수입의 16.1%가 중국(홍콩 제외)과의 교역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 홍콩, 일본에 이어 네 번째 수출 대상국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작년 중국 수입의 1위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일본과의 분쟁이 심화되면서 어느 정도 그 수혜를 입은 걸로 보인다(이 통계는 한국무역협회 통계자료를 참고하여 산출 http://stat.kita.net). 중국이 G2의 위상을 보이기까지 기술적 우위의 한국과 낮은 제조업 원가와 넓은 시장을 가진 중국이 상호보완적 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이제는 중국의 기술 추격이 만만찮아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코피티션(Coopetition)시대로 전환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양국의 우호관계가 깊어져 1000만 명의 인적교류 시대도 멀지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작은 변화가 곧바로 우리의 일자리와 경제구조를 바꿔놓을 만큼 그들의 영향력이 커진게 현실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들의 트렌드와 속성을 제대로 알고 다각적으로 대처하여야만 상생·공영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 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이나 핸드북>. 대단히 공을 들인 책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성균관 대학교의 ‘성균중국연구소’와 중국 전문가 74명이 지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니만큼, 지금까지 읽은 중국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면서도 내용이 알차고 맥을 잘 짚은 책이라고 하겠다. 핸드북(중국어로는 공구서工具書 : 연감 같은 기본 참고도서)이란 제목처럼 8개의 범주(개황, 현대사,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문화, 한중관계) 아래 104개의 주제(뒤표지에105개라 되어있는데 104개이다)에 대해 핵심과 쟁점을 아주 간결하게 잘 서술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좋은 공구서는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한다 했는가. 중국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이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내용에 품격을 갖춘 책이라 느꼈다.

이 책의 단점은 없을까? 물론 있다. 연구소에서 사실 직시의 연감(年鑑, 연구소에서는 앞으로 2년마다 최신 정보를 보강한 개정판을 낼 계획이란다) 형태로 발간하다보니 감정이 실리지 않아 참 무미건조하다. 마치 대학교 교재를 보는 것처럼 재미가 없고 지루한 면도 없지않다. 그래서 전체적 맥락을 잡기엔 아주 유용하나 주관적이면서도 세부적인 면에서는 만족하기 쉽지 않다. 하나 더! 74분의 필진이 각각의 전문분야를 서술하다보니 한자음의 중국어 표기에 있어 인명, 지명 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의 원칙을 잘 따르고 있는 듯하지만, 명사의 경우 완전하게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조금 있었다. 다음번엔 표기원칙을 앞에 밝혀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래도 워낙 장점이 많은 책이라 이런 잡생각은 곧 사라지고 만다. 이런 노고(勞苦)의 책이 앞으로도 많이 나오길 그저 기대하면서 표지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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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우르줄라 포츠난스키 지음, 안상임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지오캐싱(Geocaching)!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보물찾기 게임을 경험한 바 있을 것이다. 내 유년의 기억에도 소풍의 즐거움 중 하나가 보물찾기 시간이었다. 이런 어릴 적의 추억을 하이테크의 시대에 맞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어른들의 놀이로 발전된 것이 지오캐싱이다. GPS수신기(요즘 스마트폰엔 기본)를 활용하여 지도좌표(Map Datum, 세계적으로 WGS84방식을 쓴다고 한다)에서 캐시(cache, 은닉물을 일컬음, 방수용 플라스틱 용기를 많이 사용)를 찾는 야외 활동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캐시 속에는 로그북(logbook, 찾은 날짜를 기록하는 종이나 수첩)과 함께 간단한 물품이 들어있는데, 그냥 가져가도 되지만 일반적으로 가치가 비슷한 물품을 넣어두는 것이 매너라 한다. 그러니 보물은 바뀌어도 보물 상자는 항상 그 위치에 존재하게 되고 게임은 계속 진행형이 되는 것이다.

 

파이브(FÜNF)! 독일어권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는 스릴러 범죄소설이다. 어떤 목장에서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 여인의 발바닥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자와 숫자... 당연히 이것은 지도좌표... 이를 수사하는 주인공 여형사 베아트리체와 플로린 형사, 좌표 지점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메시지와 소름끼치는... 그리고 이어지는 실종... 더 이상의 내용은 앞으로 읽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자.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스포일러(spoiler)가 정말 책 읽을 맛을 떨어뜨린다. 어쨌거나 다섯 단계의 플롯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참 탄탄하다는 것을 느낀다.

 

흥미진진! 지오캐싱이라는 소재가 완전히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적절한 서스펜스를 유지하게 하는 좋은 장치가 되었다. 살인자(owner)가 누구인지 얼른 유추할 수 없으면서도 말미에 여러 사건들이 깔끔하게 맞물리는 정리의 단계도 꽤 괜찮았다. 잘 엮어나가다가 말미에 허탈하게 매조지하는 몇몇 스릴러 소설보다는 확실히 나아 보인다. 이 소설이 인기를 얻고 영화화된다면 지오캐싱를 보급화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겠구나~하는 생각도 했고... 

 

A급 스릴러? 완전 A급 스릴러 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싶다. 분명히 흥미롭고 스토리가 잘 짜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전개의 전개, 즉 살인자가 특정 형사를 지적인 승부 파트너로 지목하여 어떤 특별한 교감을 나누면서 위기와 결말로 치닫는건 스릴러 영화에서 너무 흔하게 봐온 작법(作法)같다. 조금은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이 <파이브>는 스릴러(연쇄살인)소설의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 공식을 매우 잘 살려낸 우수작으로 여겨진다. 잔혹하지만 음란함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고... 또한 지오캐싱이 건전한 모험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청소년이 읽더라도 크게 문제없는 심리 스릴러 범죄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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