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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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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3년초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했던 대통령선거일,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아빠와 난 평소 대화없던 부녀사이라 믿기 어려울만큼 격한 논쟁을 할 뻔 했다. 서로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달랐고 전형적인 보수와 진보사이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의 기쁨은 정말 잠깐이었고 노대통령의 집권기간 내내 주변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많은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 때 보수적인 언론과 방송사때문에 당신의 의중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고 이제와 고백하지만, 마음 속에선 언제나 그 분이 꿈꾸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분의 마지막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내게도 그 분만큼이나 희망적이던 진보의 미래가 휘청이던 순간이었다.
 

노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지난 시점에서 격정적인 분노를 잠시 접어두고 이제야 진지하게 그 분을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이 책이 내게 왔다. 참여정부에서 노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분들이 당신이 몇 번을 읽고 되짚으셨다는 책 10권을 추렴해 집권기간에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정책이나 정치적 견해를 책의 내용에 대입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10권의 책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100여명의 청중이 11주동안 함께한 강독회의 뜨거운 열기는 노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열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권력과 자본에 잠식당한 언론에 회의를 느껴 신문이나 방송을 보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는데 나의 지나친 무관심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야기하셨던 것이 깨어 있는 시민, 그것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민이 아닌 조직화된 힘입니다. 시민들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조직하지 않은 깨어 있는 시민은 허구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조직하지 않은 시민은 자칫 잘못하면 악의 편이 될 수 있습니다.    -p.98



10권의 책 중 사실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작가가 쓴 책임에도 우리 사회의 현상과 비교해 설명해주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해설은 참 쉽게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공부하는 대통령이라는 호칭대로 그 분이 책을 통해 배우고 실천으로 국민들에게 몸소 보여주려 했다는 교수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끝내 그 분의 진심을 제대로 봐주지 못한 채 떠나보냈구나하는 아쉬움이 들게 했다. 


특히 10권의 책 중 인상깊게 다가왔던 책은 국가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산업정책보다 사회정책에 힘을 실어야 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되야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과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보여줘야 진보가 제대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 말하는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세계인구의 1/6에 해당하는 절대빈곤층을 위해 원조해줌으로서 2025년 세계에서 절대빈곤을 몰아내야한다는 평화주의적 접근과 양극화로 나타난 한국의 상대빈곤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는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 진정한 리더는 얼마만큼의 공적인 가치를 추구했느냐로 역사가 평가하게 된다는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회의적 사고로 모든 현상을 의심함으로서 언론의 왜곡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한다는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는 깊은 생각의 여지를 남겼다.


노대통령도 당신 책을 쓰면서 이 책을 무척 중요하게 보셨고,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바로 국가의 문제라고 보셨습니다.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가란 바로 증세를 해서라도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해주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며 어디 가서 비겁하게 살지 않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p.87


그리고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로 자리잡은 양극화 현상이나 지역주의, 오랫동안 천착하셨던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복지문제,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에 대한 고뇌는 언론에서 비꼬고 왜곡했던 것과 달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해결하려 노력하셨다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고백은 그 분에게 가졌던 그동안의 불신을 허물어버렸다. 국민들의 빈곤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생행보보다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쇼를 통해 국민을 속이지 않겠다는 철학을 가진 그 분의 생각을 몰라주었던 것이다. 토론에 참여한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강의자에게 반론을 제기했고, 노대통령이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들에 의심을 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노대통령을 위시한 편향된 판단과 설득만 존재할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고 잘한 부분은 칭찬하며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진보와 민주주의의 올바른 가치, 그리고 진보의 미래를 이야기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안전한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품격이 있는 사회가 바로 진보가 추구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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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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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도 어김없이 납량특집드라마가 나오고 공포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우선 납량특집하면 나는 가장 먼저 유명한 TV시리즈인 '전설의 고향'이 떠오른다. 아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 같다. 전설의 고향 각 에피소드에 등장해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역시 귀신이다. 하얀 소복과 길게 풀어헤친 머리에 푸른 조명을 받으면 더 기괴한 모습으로 비춰져 주변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여자귀신. 한을 품은 귀신의 모습은 외국의 어떤 유령이나 괴물보다 심리적인 위협과 공포를 품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귀신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패배자로 낙인찍힌 여자귀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 말해주듯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한의 정서와 역사가 있다. 그 중에서도 뿌리깊은 유교사상과 가부장제에 억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인들의 삶은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어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웠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많은 많은 성비의 여자귀신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사대부의 능력이나 관리의 유능함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유희나 도구로 이용됐을수 있다는 해석은 나의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 일단 귀신이야기가 많이 등장한 야담의 주요 독자층이 사대부 남성이었고, 그들의 관심사에 맞게 변형되고 꾸며낸 이야기속에는 어김없이 억울한 사연을 간직한 채 죽은 귀신들이 등장한다. 귀신의 호소에 귀기울이는 담력과 배짱을 가진 관리가 등장하고 그는 귀신의 억울함을 정의롭게 해결해주는 능력과 지혜를 가졌다. 귀신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기에 조용히 물러나고 관리는 유능한 존재로 급부상한다. 


야담이라는 장르가 사대부들이 여가에 읽는 독서물이라는 것과 관련된다. 후대로 가면서 독자층이 확대되기는 했지만, 야담의 주요 독자층은 여전히 사대부 남성이었다. 야담에 관리의 일화가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것, 왕과의 일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은 주된 독자층인 사대부와 관리들의 관심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p.79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귀신이야기속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완전한 죽음으로 끝맺지 못한 생의 그들을 패배자, 금기를 깬 아웃사이더, 불온의 상징으로 여겨 바로잡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여자귀신들이 품은 원한조차 결국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떳떳해지려는 노력이었다. 많은 야담속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자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귀신들이 이승을 떠도는 이유는 여자귀신과 달리 한이나 원한이 아닌 일상적 대화였다고 한다. 죽어서도 가장이나 남편, 주인으로서 역활을 행사하고 현실을 간섭하고 지배하려 했다는 대목에서는 남성우월주의의 전형을 보는 듯해 씁쓸했다. 결국 귀신이야기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문화조차 남성위주였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게 씌어진 것이었다. 여자귀신의 죽음과 등장 이면에 보수적인 사회시각과 냉대,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한 자살 역시 사회의 폐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여자 귀신 이야기는 원한 맺힌 여인의 자살담 형태로 구성되어 귀신의 한을 공포로 전이시키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그 과정에서 귀신이 등장한 배경으로서의 문화 논리는 은폐되었다. 이야기가 그들이 왜 여귀가 되었는가에 주목하기보다는 귀신의 등장이 가져오는 공포와 파괴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귀신의 '한'에 귀기울이기보다는 귀신을 물리친 '똑똑한 남성'의 문제 해결력에 주목하는 서사 논리가 관여되었기 때문이다.   -p.28


조신시대 여성에게 '열'은 죽음을 불사하고 지켜야 할 윤리적 가치였다. 따라서 과부들이 자결을 택해 '열녀'가 되었던 현상의 이면에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작동하고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의 목숨은 개인의 몫이기 이전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리의 대상이었다. 남편이 죽은 여성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성을 남편에게 바침으로써 성적 귀속의 단일성을 사회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p.101


이런 해석덕분에 올 여름 TV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귀신들은 내게 전혀 공포스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측은하고 슬플 것이다. 진정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죽음은 시대가 변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왜 그들이 억울해 원귀가 되어 사람들앞에 나타났는지가 아니라, 왜 그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는가를 되짚어보면 시대적 억압과 사회적 차별은 비단 옛날 옛적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을 통해 공포를 해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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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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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하면 서양의 고전이나 소설에만 치중해 읽다보니 막상 내가 읽은 우리나라 고전들은 중,고등학교 국어책에서나 짧은 지문으로 만났던 것이 전부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제목만 들어봤지 간단한 줄거리조차 처음 접하는 것이 많았기에 이렇듯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선조들의 필력과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못하고 읽어내려갔다. 무엇보다 책의 깔끔한 구성과 단계별 해석은 옛소설의 읽는 맛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시대를 아울러 가장 인기있는 테마의 소설을 엄선한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장에서 소개되는 세계 공통의 관심사인 사랑에는 시대의 금기를 깨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애틋한 이들의 연애사를 담았다. 두번째장과 세번째장의 테마인 전쟁과 남성들의 판타지에는 전쟁으로 상처받고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남성들의 성장과 성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서는 신선과 동물의 시선을 빌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많은 고전 중에 기억에 남는 몇편이 있는데 사랑테마에 있는 세 소설 [이생규장전], [소설], [윤지경전]과 [박씨전], [옥루몽], [금방울전], [남궁선생전]이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시대와 상상을 초월한 판타지와 사랑, 신선과 선녀의 이야기는 현대의 어떤 소설보다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며 서사적이다. 실제 원문을 접한다면 운치있는 문장과 재치있는 말솜씨, 다양한 캐릭터가 어우러져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연암 박지원 선생의 [호질]에 대한 부연설명은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부추긴다. 시대를 거슬러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비결은 역시 글 속에서 찾을 수 있겠으니 책에서 소개된 고전들을 꼭 찾아 읽어보기로 하였다.


이렇듯 재미있고 파격적인 우리이야기들이 현재까지 널리 읽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데 그건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혔듯 한문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대중화된 번역본도 구하기 어렵고. 고전의 매력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시험문제에서 먼저 만난 탓에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열 세 편의 이야기를 본문에 다 옮기지 못해 요약만 해놓았기 때문에 천천히 읽기, 깊이 보기, 넓게 읽기의 단계로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며, 더 많은 고전들과 연계해 읽을 수 있게 한 구성은 옛소설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시대배경을 알고 보면 그 재미가 더할 것이니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공부도 함께 하게 되어 1석 2조의 효과를 누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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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 -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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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식물의 시선'이라는 말이 있다. 땅에 뿌리박혀 있어 사람이나 벌의 손길을 기다리는 매우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식물이 역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라... 꽤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한 책이었다. 사과와 튤립, 대마초와 감자의 네가지 식물로 대변되는 인간의 네가지 욕망, 즉 달콤함, 아름다움, 황홀함, 지배력의 관점으로 바라본 식물의 진화론적 선택은 그들을 길들였다고 생각한 인간의 주체적 오만함을 비웃는 듯 했다. 실은 네가지 식물이 종의 번식을 위해 인간의 욕망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작가의 지적은 자연 속에 인간은 아주 미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도 일깨웠다.


이 책에서 다루는 네 가지 식물들은 소위 인간에게 '길들여진 식물 종'들이다. 길을 들였다는 표현은 우리 인간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길들인다고 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일방적인 주도권을 떠올리지만, 이 과정이 실은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교묘하게 선택한 진화의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p.21 
 

네가지 식물이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된 역사적 사건과 장소를 추적하고 저자 자신의 정원에 식물들을 키우기도 하면서 그 식물에 직접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야생의 식물들을 우리가 먹기 좋게, 보기 좋게 길들이고 지배했다고 생각한 발상을 뒤엎고 실제 식물들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우리 인간세상을 지배해온 것일 수 있다는 작가의 논리와 근거는 정말 집요할만큼 세세하다. 미개척지에 사과씨를 뿌리고 사과나무를 심어 이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든 조니 애플시드의 일화, 사람들의 심미안을 자극해 천정부지로 자신의 몸값을 높인 네덜란드의 튤립열풍, 금지와 금기를 넘나드는 대마초 재배, 유전자 조작으로 병충해의 접근도 못하게 했던 몬산토사의 지적재산인 감자 '뉴 리프'에 얽힌 이야기들은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주체적인 입장의 식물을 보여준다. 
 

식물의 진화는 이제 서로 다른 종 사이의 매력과 유혹이라는 새로운 동기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제 자연선택은 가루받이 매개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꽃이나 먹이 사냥꾼이 좋아하는 열매를 가진 식물의 편을 편들었다. 자기 종이 아닌 다른 종의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식물의 진화에서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다른 종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잘 충족시키는 식물이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생사를 결정하는, 나아가 한 종의 번성과 멸종을 결정하는 핵심 전략의 문제로 떠올랐다.   -p.188


무엇보다 신화 속 인물인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관점으로 인간의 욕망을 해석한 것이 흥미로웠고, 다윈의 진화이론과 유전자공학으로 분석한 식물들의 생태도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이 책 속에 등장한 식물들은 더이상 수동적인 객체로서 인간에게 길들여진 식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았고 왕성하게 번식했으며 다양하게 진화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파고들었다. 자연선택이 아닌 인위선택으로 인간의 밭에서 살아남았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역발상의 논리를 쉽고 재미있는 설명과 경험을 토대로 한 예시, 설득력있게 다가온 역사속 이야기와 실제인물의 자취는 지루할틈없이 빠르게 전개되어 읽는 맛을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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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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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에 걸맞게 미술작품은 아는 것만큼 보이는 진리가 통한다. 많은 그림을 보고 감각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그림의 배경지식이나 에피소드를 알고 보게 되는 미술은 마치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처럼 신선하게 다가온다. 평소 미술관하면 고상하거나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해 특별한 약속을 잡지 않는 이상은 잘 가지 않게 되는 곳인데, 그만큼 가고 싶은 장소이기도 했다. 그 어려운 첫 약속을 이 책과 했다. 작가가 소개하는 미술에 관련된 서른가지 키워드를 통해 쉽고 친근하게 미술에 다가가는 계기가 되어주는 책이었다. 지루하고 난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프린팅된 빛바랜 그림을 자세히 볼수록 집안의 어느 곳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인 듯 가까이에 있지만 그 진가를 알지 못했던 골동품을 보는 듯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타이틀대로 미술에 대한 풍성한 지식이 가득하다.


흔히 미술을 공간예술이라고 하지만, 이렇듯 미술은 단순히 공간을 시각적 감각에 의지해 파악하고 표현하는 예술이 아니라, 공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토대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사유를 다양한 조형 형식에 의존해 표현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p.87
 

렘브란트나 고흐, 클림트, 모네등 현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비롯해 18,19세기의 다양한 생활양식과 풍습을 보여주는 독특한 그림들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가능하게 했다. 주로 보아왔던 인물, 풍경, 추상화외에도 귀족들의 사치나 허영을 보여주는 사냥감, 수집품들을 모아놓고 그린 '쿤스트카머'나 '피나코데카', 사물곁에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해그린 '트롱프뢰유'그림들은 미술이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라는 편견을 깨고 우리 주변의 일상도 얼마든지 미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또한 다양한 주제로 접근한 독특한 그림들은 그 나라의 미술관이나 미술전문서적이 아니면 평소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누드하면 여자의 나체를 그린 누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서양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은 남성누드라고 한다. 남성누드 조각상을 통해 드러난 당시의 남성주의 가치관과 성차별적인 미의식은 가히 그런 깊은 뜻이 있는지 미처 몰랐는데 조각들이 새롭게 보였다. 걸작을 본 후 흥분이나 우울증, 호흡곤란, 마비등의 증상을 보이는 '스탕달 신드롬'과 히틀러의 문화적 침략전략을 가능하게 한 제3제국의 미술은 그림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림을 보는 방법, 창조와 관련된 이야기, 감각적인 그림아이콘, 시대상을 비추는 그림, 그림바깥의 욕망 총 다섯가지 대주제로 나뉜 키워드에는 대부분이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그림외적으로 드러난 작가의 사생활에 관련된 가쉽거리만 빼면 미술이론서가 아닐까 읽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단어들을 풀어놓으며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고상한 예술장르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알수록 재미있어지는 미술의 매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 역시 읽는 내내 미술이 이렇듯 매력적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막연히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만 앞섰지 그림의 배경이나 사전지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작가의 충고대로 그림에 대한 감상이나 이해의 방법 대신 많이 보고 느끼며 감각을 벼르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되야 할 것 같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한 방법을 고수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많이 찍어보고 무엇보다 많은 작품을 봐야한다고 말한다. 불편하고 낯선 곳이라 방문하기 꺼려하던 그 곳, 쉬는 날엔 꼭 가까운 미술관에 가봐야겠다. 
 

미술작품은 텍스트로 읽고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처럼 감각으로 접하고 느끼는 대상이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의 확대를 통해 감각을 예리하게 벼리는 일이다. 감각을 벼리는 일은 오로지 접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중략) 옛날부터 문자를 숭상해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물을 언어적으로 이해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예술도 그렇게 이해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감각을 고도화하는 것 말고 예술을 이해하는 다른 지름길은 없다. 감각이 고도화되어야 텍스트를 통한 이해의 노력도 제 빛을 발한다. 미술 감상과 같은 예술 감상이 교육적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 부분이 여기 있다. 감상은 감각을 벼려주고, 벼려진 감각은 재능이 된다.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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