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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신은 뇌 - 뇌를 젊어지게 하는 놀라운 운동의 비밀!
에릭 헤이거먼. 존 레이티 지음, 이상헌 옮김, 김영보 감수 / 녹색지팡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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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대에 그토록 자신했기에 방관했던 몸매와 피부가 급격히 변화를 겪은건 30대 초입의 나이탓만은 아니었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몸매와 피부보다 더 심각한 기억력의 감퇴였다. 예민하게 기억하던 전화번호나 사람의 이름, 방금 전까지 기억하던 사소한 일상들이 지우개로 지운 듯 어느 날부터인지 알듯 말듯 선명해지지 않게 된 뒤부터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일때문에 소홀히했던, 그리고 팔팔한 나이만 믿고 수수방관했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나 역시 운동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걸 알아차린 게 지금이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저녁을 먹은 뒤로 집주변을 걷기 시작했고 맨손체조나마 소홀히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운동의 시급함에 걷기운동을 감행할 때 이 책을 만났다.


책에서는 제목그대로 운동으로 인한 뇌의 변화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센트럴 고등학교의 0교시 수업으로 인해 학업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된 학생들의 놀라운 변화에 자극받은 저자는 약물만으로 치료에 한계를 느꼈지만, 적절한 운동으로 한결 나아진 실제 환자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며 운동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로 현대인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정신적 질환인 불안과 공황장애, 우울증, 주의력결핍장애, 중독을 비롯해 여성들만의 문제등 운동으로 인해 개선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저자 자신의 환자들 사례나 실제적인 경험은 지나칠 정도로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쯤되니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디라도 걸어야 할 것 같았고 길이 있는 곳이라면 달려야 할 것 같았다. 뇌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 운동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겪는 변화의 측도를 과학적이고 계산된 방법만으로 측정하기에 뇌는 무한하고 감정은 너무나 주관적이다. 이같이 주관적인 운동의 효과를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채널이나 돌리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 의사였던 작가는 전문적인 용어와 학술적 견해, 실제 연구사례들을 얘기하며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러나 첫 장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의학용어에 난감해 한 장만 읽어도 대책없이 감기는 눈꺼풀때문에 책을 읽는 것자체도 스트레스를 야기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친해진 의학용어들이었지만 끝끝내 뜬구름잡는 듯 모호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마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건 실제 환자들의 사례를 토대로 역설되는 운동의 획기적 효과와 그들의 변화였다. 운동으로 자신감을 찾으며 학습능력이 향상되고, 치매를 예방하며, 정서적 불안을 가라앉혀주고, 우울증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긍정적인 운동의 자연치유법에 명약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 가운데 하나는 학습의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연구가 종종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중요한 정보인데도 말이지요. 몸이 건강하면 공부나 그 밖의 다른 일을 더욱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실제 생활에도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까? "  -p.68


참, 재미있는 사실은 인류에게 각인된 '장거리 포식동물'로서의 예민한 본능과 뇌의 구조가 운동을 하지 않음으로서 균형이 흐트러졌지만 언제든지 운동을 통해 신체와 뇌가 최적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현대인들은 원시인들처럼 먹이를 사냥하거나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더이상 두 다리를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현대인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질병을 신체를 활성화시킴으로서 뇌에 불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에는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평균연령이 높아지며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알츠하이머는 뇌세포의 손실로 기억을 잃어가는 무서운 병이다. 예전과 달리 노화때문에 생기는 병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며 3,40대의 사람들에게도 발병하게 되다보니 뇌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소중한 뇌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적절한 스트레스로 유연성을 기르며, 새로운 뉴런의 성장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성장인자와 기분전반을 지휘하는 세로토닌의 수치를 올라가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비싼 약보다 운동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지금이라도 운동화끈을 고쳐매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예찬하는 운동의 구체적인 효과를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1.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분산한다.
2.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
3. 뇌의 자원을 늘려준다.
3. 불안 증세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준다.
4. 회로를 변경한다.
5. 회복력을 길러준다.
6.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p. 148


노골적인 회유책이지만 운동으로 인해 뇌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나이들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지 않게 하려면, 그리고 나부터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려면 운동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운동으로 인해 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얼마만큼의 운동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라는 작가의 마지막 말은 운동으로 인한 긍정의 효과를 100% 입증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인더풀>이란 소설에 보면 수영에 중독된 샐러리맨이 나온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수영으로 풀고 자신의 일에 한층 자신감을 되찾지만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며서 더 불안에 휩싸인다. 현대사회가 이런 불안과 억압을 조장하며 사람들을 구석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적절히 뇌의 활력을 조절할 줄 아는 건전한 신체를 가져야만 우리는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꼭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도 좋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걷기나 유산소운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뇌를 젊어지게 하는 첫걸음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얼마만큼 운동을 해야 뇌에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신체가 건강해지도록 노력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대답한다. 운동을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신체가 건강할수록 뇌는 유연해지고 인지적.심리적으로 기능을 보다 잘 수행한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 결과 밝혀졌다. 신체가 건강해지면 뇌는 저절로 건강해진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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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유전자
뤽 뷔르긴 지음, 류동수 옮김 / 도솔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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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된 '기적의 사과'를 읽고 크게 감동했다는 나의 평때문에 한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소개받았다. 역시 기적의 사과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부제목으로 확인됐다. '농약없이 풍작을 이루는 기술' .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를 둘러싼 음모'라... 뭔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대와 달리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전공학의 기술을 담은 이론서도 아니었다. 읽고 난 후 윤곽이 보이지 않는 희미한 정체의 거대한 구름이 머리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무농약 재배는 두 과학자가 발견한 연구의 부차적인 이득이었고, 그보다 더 큰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실험을 지지하려는 목소리가 하나로 통일된다. 


스위스의 두 과학자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가 자신들이 발견한 엄청난 실험의 결과를 <슈퍼트레페>라는 주말 오락 프로에 공개했다. 2억년전의 소금결정에서 곰팡이 유기체를 분리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과 전기장처리를 거쳐 성장한 골고사리가 현존하는 종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선사시대 고사리 화석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또한 골고사리처럼 전기장처리를 거쳐 자란 옥수수의 줄기에서 다섯개까지 옥수수가 자란 모습도 보여주었다. 보통은 많아야 두세개정도가 고작인 옥수수가 전기장처리만으로 지금은 유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멸종된 옥수수의 형태를 띄었다는 놀라운 실험이었다. 하지만 실험을 두 과학자가 속한 제약회사인 치바그룹은 자신들의 이해득실때문에 중단시켜버린다.

 
"식물들은 진화 과정에서 재배나 퇴화를 통해 일부 유전자 특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기장을 이용하면 그 특질을 되살려내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진화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가는 것입니다. " -p.18


방송에서 보여진 골고사리나 옥수수말고도 그들은 밀이나 송어로 같은 실험을 계속했다. 역시 그들의 예상대로 유전자는 퇴화했을것이라 추측하는 야생의 모습과  유전성를 드러냈다. 하지만 치바그룹은 이 실험으로 인해 당시 살충제와 종자로 큰 수익을 내고 있던 회사에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때문에 연구를 멈췄는데, 그 이유는 전기장실험을 거친 식물들은 잡초나 벌레들이 다 자라기도 전에 실험을 거치지 않은 식물에 비해 3~4배이상 성장이 빨랐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죽은 두 과학자를 대신해 사장될 위기의 실험을 에프너의 두 아들이 이기적인 기업윤리에 희생당해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제3세계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한다.마지막 호소문이 아버지의 연구를 헛되지 않게 만들려는 아들의 뜻을 전하고 있다.


전기장 실험을 통해 많은 과학자들의 통념을 뒤엎고 자연의 신비에 접근한 두 과학자의 노력이 현실적으로 빛을 볼 수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책에서도 그 값진 노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전기장 실험의 불확실성과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여러 과학자와 교수들의 추론이 뒤따르고 반론에 따른 이론적 설명도 뒷받침된다. 사실 이 부분은 쉽게 설명되있음에도 어려워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나 전인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프로젝트임에는 분명해보였다. 종자를 재생산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종자회사의 횡포에 단순히 소작농으로 전락해버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제초제와 살충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실험은 계속되야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입맛때문에 원초적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퇴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원시그대로 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진화에 진화만 거듭하는 유전자에 제동을 걸 수는 없을 것이다. 전기장실험도 2세대에서는 그 힘이 약해진다고 하니 말이다. 

 
어느 정도 합당한 선에서 수용이 이뤄지겠지요. 그렇다면 수용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지금까지의 인식과 경험에 모순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새로운 것은 어떤 면에서든 필연적으로 종래의 것과 모순관계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움이라는 성질을 잃게 되니까요. 어떤 내용은 인간에게 유용한 것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결과를 알기 위해 어떤 인식을 취해야 하는가하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완강히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지요. 미지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니까요.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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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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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형용사]
1 덥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다. ‘따뜻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준다.
2 감정, 태도, 분위기 따위가 정답고 포근하다. ‘따뜻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준다.

저자는 '따뜻한'이 아니라 '따듯한' 글을 품기를 바란다며 이 책의 마지막장을 마무리지었다. 제목에 나타난 그 단어의 의미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다가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곰살맞은 그 감정을 알 듯 싶어졌다. 대작가의 방부터 작가의 사적인 습관, 제3의 눈을 통해(내제자나 전기작가들) 보여지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한 언급이 많았다. 글이나 이야기의 시초부터 작가들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고뇌와 근심이 따듯하고 보드라운 눈길로 쓰여졌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혹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결코 전문적인 작법에 관한 강의는 아니었다. 소설이나 혹은 소설로 분류되는 모든 이야기의 근원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나 이야기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 글을 쓰려는 작가들의 자세와 생각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한다. 평론가로 데뷔해 한동안은 모든 글의 부정적 측면을 보고 비평적으로 대하는 자세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작가지만, 이 책을 통해 풀어가는 작가들에 대한 존경과 보편적 감성의 해석은 놀라울만치 따뜻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유명한 책과 작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이건 재능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다고 우러러봤던 대작가들의 인간적 불안과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글을 쓰며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는 발자크의 생활도 작가들에 대한 생각을 달라지게 만든다. 장편소설에 들어가기 전 마라톤으로 몸을 단련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를 들며 글쓰기는 정신적이자 육체적인 노동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소설을 적당한 놀이정도로 생각해 말랑한 기분에 젖어 쓰는 거라면 적당히 즐기다가 떠나라는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는 머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입니다.
발자크처럼 손으로 쉴 새 없이 집필하는 것, 과잉으로 소설 세계에 빠지는 것만이 뛰어난 소설가가 되는 길입니다.    -p.67

소설은 '노동'이라고 믿습니다. 소설이 유희라면, 기분 좋을 때만 즐기고 기분 나쁠 때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라면, 소설에 헌신할 까닭이 없겠지요. 적당히 즐기다가 떠나면 그만입니다.  -p.71

따듯한 글품기를 모태로 따뜻한 온기를 품은 작품들의 향기가 곳곳에 베어난다. 그 작품을 읽으며 느꼈을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글에 대한 판단을 가로막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글에 대한 애정을 품었다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동(動)하게 만드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들은 수많은 독자들보다 먼저 내면의 자아와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이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이 흘려야했을 눈물과 견뎌내야했던 고통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장, 남진우의 타오르는 책이란 시를 읊조리며 작가나 독자 모두 결국엔 독서의 뜨거운 불구덩이에 발을 담궈보지 않고서는 글쓰기의 매혹을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매혹의 순간을 경험한 사람만이 쳔년동안의 습작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도... 책읽기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차분하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다.

따듯함을 지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겠지요. 편견없이 내 앞에 놓인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할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 역시 따듯한 품기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약점을 찾아내는 읽기, 생채기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아니라, 그 책이 지닌 가치를 큰 틀에서 감싸는 이해와 배려가 따라야 합니다.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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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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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트라우마란 말을 참 많이 듣게 되었다. 그렇지만 트라우마란 의학적 용어의 남발로 정작 정확한 개념을 모른 채 우리의 일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너무 쉽게 대입해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며 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 넓게는 국가로 인해 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상처받고 치유받지 못해 괴로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트라우마의 장애를 남들보다 더 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부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게 단초가 되는 일들은 주인공들이 선택할 수 없는 권한밖의 일이었고, 운명적이라 여길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의지로는 관철할 수 없는 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도 자문했다. 나에게도 그런 트라우마의 경험이 있는가하고 말이다. 지금은 추억이라고 가볍게 웃어넘기는 일 중에 분명 그런 일이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정신적으로 장애를 일으킨 적은 없지만 책에서 정의한 스몰트라우마 정도의 사건이었다. 가끔 그 얘기를 끄집어내면 그 때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대로 재현되곤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면 피해갈 수 있었을까하고...

대개 트라우마는 자신의 선택과는 전혀 무관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밖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건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의지나 내 선택과는 상관없이 한순간에 내 삶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는 트라우마 앞에서 우리 인간은 작고 초라한 존재일 뿐이지요.    -p.173

물론, 영화적 허구와 실제가 공존하기도 하지만,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해도 우리는 불가항력으로 주인공과 같은 상처를 받고 치유받지 못해 괴로워할 것이다. 흔히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말하지만 그건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지, 실제는 상대방의 입장일 것이라는 착각에 불과하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트라우마의 상처치료와 치유의 서투른 결론을 내리지 않기 위해 영화 속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유형의 트라우마 증세와 치유책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행해졌던 의학적 연구와 노력, 영화와 유사한 사례의 경우를 덧붙이면서 내용이 자칫 너무 가벼워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어 트라우마의 의미를 속단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러나 24가지 영화 속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의 이야기만 가지고는 그들의 괴로움을 100%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최근까지 읽은 몇몇 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어릴적 부모의 성적 학대로 인해 인격이 분열되었다던지(빌리밀리건), 아들을 사고로 읽고 가치관까지 변했던 메이컨(우연한 여행자)역시 지독한 트라우마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말았다는 걸 떠올리자 트라우마란 크고 작은 걸 떠나 인간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정신적 공황상태인 것이다. 7년전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에서는 1995년 일본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린가스 사건 희생자들의 꼼꼼한 인터뷰로 그 당시를 재현하고  희생자들이 그 후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생생하게 기록했는데, 내가 기억하는 트라우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고 보지도 못했던 사건 당시의 현장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가 하면 지하철을 탈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24편의 영화 중 본 영화라고는 샤인, 여자,정혜, 굿 윌 헌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지 못한 영화들의 주인공이 하나같이 트라우마로 인해 변하고 고립되고 분열하는 모습을 의학적 견해와 논점으로 해석해놓고 보니 누구라도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특히 실베스타 스텔론이 근육질의 몸매로 연기해 무자비한 야만성을 드러낸 영화 <람보>가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해석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람보가 그런 사람이었다니...하고 말이다. 그가 던진 대사는 람보를 악랄한 인간병기쯤으로 가볍게 여겼던 내게 일침을 가했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난 전쟁에서 이겨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누구의 승리도 아닙니다. 모두 날 살인자로 보는 것 같아요. 대체 누가 날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친구가 필요해요."  

곳곳에 산재해있는 트라우마의 함정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세상 어떤 존재보다 가장 나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나 시간앞에 마냥 무력해지고 자책하며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어찌 남얘기라고 가볍게 보아넘길 수 있겠는가. 읽는 내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감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트라우마의 치료에 정답은 없겠지만 선행되야 할 예방책을 알려준다는 점이 책을 가치있게 만든다. 누구보다 트라우마의 틀에 갇혀버린 당사자가 그 울타리를 열어줘야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울타리 주위를 맴돌며 진심으로 구애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성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아마 작가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썼을거라 본다.

트라우마의 경험이 자신의 책임이나 잘못만이 아니며 그것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고 지금 현재 나는 안전하고 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 이제 내 자신을 조절하고 원하는 것을 해나갈 수 있다는 자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치유의 핵심이라 할 것입니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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