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피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더 커피 북 - 커피 한 잔에 담긴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니나 루팅거.그레고리 디컴 지음, 이재경 옮김 / 사랑플러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예나 지금이나 '커피'라는 단어는 낭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리고 요즘 2,30대 사이에서는 까페문화, 특히 대형체인화된 커피전문점의 천편일률적인 맛과 획일화된 분위기를 벗어던진 작고 아담한 개인까페를 찾아다니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 역시 그 무리 중 하나일 것이다. 분위기나 맛은 제각각이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 '커피'가 자리한다. 커피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까페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커피는 이제 단순한 음료나 먹거리가 아닌 생활전반 깊숙히 자리한 문화를 주도하는 아이콘이다. 언제 어느때고 커피에겐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고 갖은 권모술수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커피는 아랍의 칼디라는 염소목동이 발견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관심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커피북이라기에 커피의 종류나 전문적인 커피지식이 담겨있는 책일거라 생각하며 호기심어리게 보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그보다 더 중요한 커피의 역사와 커피가 우리손으로 들어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생생하게 다뤘다. 어떤 커피책에서도 볼 수 없던 매우 유익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소비지의 겉모습이 아닌, 생산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12시간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커피 한모금도 쉽게 마실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커피의 가치사슬이라 부르는 험난한 과정에서 커피를 사먹는 가장 윗단계의 소비자인 나같은 사람은 좀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보니 커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커피색만큼이나 진하고 암울했다. 낭만과는 좀체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었다.


커피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커피생산국과 소비지는 식민지와 피식민지라는 관계를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식민지들의 해방이 이루어진 지금에도 종속관계는 면면히 유지되오고 있다니 슬픈 현실이다. 다행히 독립국가로서 커피 주요생산지로 떠오른 브라질의 부상은 반가운 일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라간 과도한 경쟁과 상업성의 탐욕스러운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커피값때문에 빚을 떠안은 채 농사를 짓고 그조차 감당할 수 없어 도시로 떠나 빈민이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는 커피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커피 한 잔 속에 쓴 맛으로 여운을 남기는 듯 했다. 하루 12시간이상 허리숙여 커피를 따는 고된 노동에도 겨우 1,2달러를 벌어 끼니해결조차 쉽지 않은 그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여유롭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인데,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그들의 현실때문인지 커피 한 잔이 참 값싸게 느껴졌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1파운드들이 커피 한 통을 살 때 당신이 지불하는 가격은 단지 커피 원두 값만은 아니다. 당신이 커피와 만나기까지 발생한 모든 일, 즉 포장과 운송, 로스팅, 분류와 등급화, 정제, 그리고 수확에 들어간 비용 모두를 지불하는 것이다.    -P.209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장에서 언급된 '지속가능한 커피'와 '공정무역'에 관한 부분은 더욱 의미심장하고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생산지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 커피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정무역'과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커피'에 대해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EBS에서 본 [히말라야 커피로드]라는 다큐멘터리는 '공정무역커피'에 관한 실제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정성스레 커피열매를 키우고 그 커피를 판 돈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커피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문득 너무 싼 커피만 쫓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여행길에 오른 커피생두가 우리나라의 '공정무역커피'를 취급하는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한 잔으로 판매되기까지의 과정이 나오는데 소비자인 나의 구매심리를 직접적으로 자극하고 움직이게 했으며 '공정무역'에 대한 의식을 일깨웠다. 


공정무역은 수백 년 동안 커피 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커피 재배의 다른 측면, 즉 착취당하는 커피노동자의 처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외적인 환경문제와 달리 노동문제는 커피 산업 내부에 깊숙이 녹아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공정무역의 목적은 커피 가치사슬에서 커피 재배 농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도록 무역구조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P.353


오랫동안 고착되어 온 커피노동자들의 생활이 파괴될수록 최종소비자인 우리에게 돌아오는건 형편없는 커피맛이라는 걸 일깨우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덕분에 공정무역커피의 미래는 밝아보인다. 비단 커피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생산하는 생산자와 노동자의 손길이 있다. 우리는 눈 앞에 놓인 이익과 손해만을 저울질하느라 그 사람들에게 돌아가야할 공평한 분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커피'하면 낭만보다 착취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 이 책은 커피 한 잔에 담긴 향이나 맛보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어있는 소비자들의 관심과 의식변화로 커피농부들의 '지속가능한' 삶과 '지속가능한'커피가 별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으니 올바른 커피소비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커피 시장은 날이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암울하기만 했던 국제 무역 환경에 작지만 밝은 등불 하나가 켜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불빛은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우리 손에 들린 검은색 커피 속에서 스며 나온다. 이런 매력이라면 얼마든지 중독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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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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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 어느날부터 뉴스는 나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날이 자극적이고 편파적으로 변해가는 뉴스는 세상살기가 점점 팍팍해졌다는 말로 나를, 혹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듯 했다. 여기 늘 공영방송이라 자부하는 KBS의 현직기자가 매스를 잡았다. 그리고 대중들을 호도하는 언론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현직기자가 뉴스와 언론사, 동료들인 기자까지 싸잡아 비난하니 전혀 언론과 관계가 없는 나조차 얼굴이 달아올랐다. 한편으로 예전에는 뉴스를 보며 느낀 불쾌함의 원인을 명쾌하게 찾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상에 감춰진 진실, 우매한 대중을 발아래 두고 자신들의 이익챙기기에 급급한 언론에게 진실을 기대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자유민주주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주식투자의 노하우를 전하는 워렌 버핏의 잣대가 등장한다. 그의 생각과 신념에 대비시켜 한국언론의 잘못된 점을 요목조목 지목한다. 워렌 버핏이 성공하기까지의 길은 한국언론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그가 실천한 방법을 반대로 실행하고 있는 한국언론의 무지함과 잘못된 판단은 지금의 뉴스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국민의 신임을 점점 잃어가고 점점 개인화, 다원화되는 사회에 구시대적 발상으로 억지논점을 피력하는 뉴스에 우리는 지칠대로 지친 것이다. 설혹 저자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 해명해도 의심밖에 남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 공중파의 뉴스란 그저 허상으로 비칠 뿐이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예측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잘못된 전제와 왜곡된 통념입니다. 잘못된 전제에 근거한 예측을 언론이 지속적으로 증폭시키고 대중이 이를 믿게 되면 이른바 '자기실현적' 메커니즘이 작동됩니다. 결국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 왜곡된 통념을 낳고 이 왜곡된 믿음이 잘못된 결정을 이끄는 것입니다.       -p.163


저자가 말하는대로 이제 소수의 기득권층 이익을 위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조차 저버린 언론인에게 쏟아져나오는 방대한 기사는 그저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을 보며 배운 것은 바로 '의심'이었다. 이제 전문가의 의견을 마치 전체의 이야기인 것마냥, 혹은 진실인 것마냥 책임감없이 써내려간 기사를 그대로 믿기란 어려워졌다. 이 기사의 배후에는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인가 매번 의심하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워렌 버핏은 '언론인이 똑똑해지면 사회가 윤택해진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살기 힘든 이유를 모두 언론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으나, 대중을 기만하고 불분명한 근거와 데이터로 진실을 왜곡한 댓가가 언젠가는 그들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의심과 뉴스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불편함이 그 반증이다. 


멍청하거나 사악한 언론인이 많을수록 대중은 점점 더 가난하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하는 짓을 스스로 멈출 거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그들은 대중이 계속 그렇게 우매한 상태로 남아있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게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이익입니다.    -p.193


 

그러나 저자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하에 상업성으로 점철된 뉴스에도 분명 한계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뉴스와 언론도 하나의 사업이 되버린 마당에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만으로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목적에 위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론과 뉴스만은 100%객관은 어려울지언정 90%이상의 진실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뉴스의 이면과 허황된 진실은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여겨졌기에 저자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KBS의 프로를 볼 때마다 자막으로 나오는 '이 프로는 국민들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다'는 멘트가 어찌나 가식적이고 가증스러운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되었다. 그렇게 소중한 수신료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기에 과장된 거짓에 가볍고 자극적인 소재만 쫓게 되었는지 고민해보라 말하고 싶다.
 

한국 언론은 결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국 언론은 항상 '국민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한국 언론이 실제 '국민들'을 취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들의 주요 취재원은 거의 언제나 소수의 기득권 집단이었습니다.   -p.184


워렌 버핏의 상식과 한국언론의 몰상식이라는 개별된 장으로 구분되는 이야기구조가 한국언론의 취약점을 잘 드러낸다. 몰상식이라 비하될 정도로 언론은 이미 개념을 상실했다고 저자는 구구절절 말한다. 특히 뉴스를 이용한 한국의 주식시장은 절대 개인투자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주식에 투자해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행여나 오를까 내릴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진실이 저만치서 손을 흔드는데 끝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 무력함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실은 사장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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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승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의 승자 -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오동명 지음 / 생각비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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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대중 전대통령, 그 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선 잘 모른다. 네 번의 낙선 이후 늦은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후 한국인으로서는 첫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정도밖에는. 그러나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그 분의 인생이 끝없는 시련과 굴곡으로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권기간에는 남북통일을 위한 햇볕정책으로 야당의원과 국민들에게 비난받아왔다는 것도, 시간을 거슬러보니 그 분의 정치적 행보도 하나씩 떠오른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 이후 민주주의와 진보, 그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김대중 전대통령이 자주 거론되면서 그 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 8월 18일 서거하셨다는 소식에 망연자실 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그 분을 처음 뵜던 건 초등학교 가는 길목, 어느 담장아래 있는 대통령 후보자들의 포스터에서였다. 그 후 성인이 되어서도 그 분은 여전히 포스터속의 인물이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나 무관심을 떠나 재선, 삼선, 사선까지 도전하는 그 분의 정치적 야망과 명예욕에 그저 혀를 내두르며 포스트를 질리는 표정으로 흘려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서야 그런 나의 생각이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에 진심으로 부끄러워했다. 도대체 나는 그 분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일부를 전체인 양 비난하고 매도하면서 낮게 평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정치인으로서의 김대중 전대통령을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부 신문기자였던 저자의 신분에서 당시 시대에 감히 보여줄 수 없었던 한 사람으로서의 김대중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신문의 정치면에서 비춰지는 정치인의 모습은 어색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근엄하다. 혹은 가식적인 웃음과 음험한 표정으로 상대편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그들의 사진이라도 보게 되는 날이면, 한참어린 나조차도 그들이 자기밥그릇싸움하는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책 속에서 만난 김대중 전대통령의 모습에 무척이나 놀랐다. 정치인에게도 저런 인간적인 면모가 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 하품을 참는 모습, 책을 읽는 모습, 정원에 물을 주는 모습은 신문이나 티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분의 얼굴이었다. 웃는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전혀 다른 사람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굳은 의지를 믿고 당당하게 평생을 살아온 그 분의 얼굴에서는 강한 자신감이라는 아우라가 뿜어나오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당당한 아우라에도 친근하고 탈권위적인 인상은 왜 국민이 결국 그 분을 선택했는지 짐작케했다.
 

"늦더라도 국민은 결국 올바른 선택을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이 제게 준 선물은 끈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내가 사진을 통해 느낀 인상대로 저자는 그 분에게 끝까지 친서민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끝내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국민들 틈으로 다시 돌아와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민중사이에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 어디 저자 한 사람의 마음일까. 1998년 2월 취임식이 있던 날, 일산에서 살던 집을 떠나던 그 분을 보내는 동네 주민들 틈에서 아슬하게 잡힐 듯 말듯 손을 내밀던 꼬마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은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대통령과 손을 잡겠다는 꼬마의 소원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5년 뒤에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는 주민들의 기대도 어긋났다. 그렇게 김대중 전대통령은 아쉬움을 남겨 놓은 채 멀어졌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것은 자기가 원치 않는 사람,
심지어 증오한 자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분은 자신과의 약속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승자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분이다. 또한 아내의 남편이면서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옥중일기와 가족과의 편지교환은 어느 것하나 소홀히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과거의 정치인으로 남기에 아까운 한 사람을 누구보다 친근한 이웃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 분은 그만큼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기자였지만 차별없이 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저자는 그런 그분의 진심을 담은 사진들이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이고, 제대로 실어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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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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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길 바라지만, 오래전 사라져버린 땅에 한여름 햇살을 품은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지금에와서 당시를 떠올리자 마치 나는 금단의 열매를 맛본 게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생긴다. 전무후무하게 그 때의 복숭아를 나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맛 본 적이 없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그 복숭아는 한 손으로 잡기에 부담스러울만큼 크고 묵직했다. 그리고 맛은 다시 재연하기 힘들만큼 달고 맛있었으며 황홀했다. 아마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 그 때 큰아버지의 과수원에서 갓 따먹은 복숭아가 내게는 최고의 과일이 되었던 것 같다. 
 

최고의 과일은 돈을 주고 맛볼 수 없다. 과일을 정성껏 수확한 자만이 누리는 즐거움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    -p.317
 

저자는 이렇게 나처럼 단 한순간의 과일의 황홀경을 체험함으로써, 모든 열정과 호기심을 과일에 쏟아부은 과일중독자이며 애호가다. 새로운 과일에 대한 왕성한 탐욕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가진 그는 전 세계에 내노라하는 과일을 맛보고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괴짜같은 과일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보며 우리가 먹는 과일이 얼마나 제한적인가 알게 되었다. 하루에 하나씩은 꼭 챙겨먹는 사과의 경우도 나의 지식으로는 새빨간 홍옥이나 여름에 즐겨 먹는 아오리사과나 가을에 먹는 부사정도가 고작인데 개발된 품종만 하더라도 700여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종의 상업적인 손길이 뻗친거라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소비자들이 품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일년 내내 품질낮은 과일을 파는데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평균 이하의 단순한 과일만을 들여놓아 소비자의 관심자체가 제한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제철에도 슈퍼마켓들은 평균 이하의 똑같은 사과와 오렌지, 딸기만 들여놓는다. 식품업체들은 이렇게 계절성이 모호해진 상황을 일컬어 "전 세계가 사시사철 여름"이라고 부른다. 즉, 언제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으니 평범하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p.315


이 책에는 그런 수동적인 소비의 주체에서 반기를 든 사람들이 신선한 과일과 새로운 품종, 전 세계의 다양한 과일을 찾아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가 만난 과일사냥꾼들들은 상상이상의 호기심과 과일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며 인간 삶의 전반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과일의 영역을 단순한 미감에서 벗어나 오감을 자극하는 주체적 대상으로 보여준다.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놓고 종교적 의미까지 부여해 신성한 존재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일에 집착하는 과일사냥꾼이나 탐미주의자들은 과일의 자극적인 맛에 욕망과 쾌락, 지적호기심만을 담보로하지 않는다. 제한된 소비에 관심밖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지고 멸종될 위기에 처한 과일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신성한 의식상태나 신과 교감하는 몰입상태의 상징물로 과일을 활용하는 종교가 많이 있다. 그 원리는 분명치 않아도 과일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제 우리의 분자구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p.374

우리는 과일때문에 죽기도 하고, 과일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며, 과일을 통해 신과 만나기도 한다. 과일로 황홀한 상태에 빠진 이들은 자멸할 때까지 이를 갈구하기도 한다.   -p.378

과일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어떻게 해서든 과일에 대해 모조리 알고 싶고 박식해지길 원하는 욕망이다. 선악과 열매를 맛본 이후, 우리는 다른 나무의 열매에 눈을 돌려 영생을 찾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383



사실 저자가 앞서 책의 초반에서도 말했지만 과일섭취량은 최저생계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치나 다름없다. 나 역시 아침마다 꾸준히 제철과일을 먹으면서 얼마 안되는 생활비의 1/3 이상을 오로지 과일사는데만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몸은 꾸준히 비타민 섭취를 원하고 신선한 과일의 식감, 미각을 자극하는 향과 달콤함에 길들여질수록 헤어나오기 힘든 것이 과일중독이다. 비록 저자처럼 새로운 과일에 탐닉하는 것은 힘들지만, 전 세계에 이토록 많은 과일이나 열매의 다양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머지 않아 지구 반대편의 처음 들어본 과일들 역시 산지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손꼽아본다. 그리고 비록 식용으로 개량되어 품종을 지켜온 많은 과일들이 유전자 조작과 농약에 노출되고, 장기간 냉장보관을 위해 온갖 억제제로 범벅이 되어 있더라도 그 과일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순수성을 지키려는 농부들과 개발자들이 있으니 미래의 과일은 좀 더 원초적 본능을 드러내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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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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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사물의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보았다. 여러 의미 가운데 이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지만 우리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개인에게 사물이란 그저 물질세계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있는 사물을 회고했다. 책제목을 들었을 때 나 역시 인생에 의미있는 사물은 어떤 것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게 됐다. 책의 각 파트에서 설명하고 있듯 추억이 깃든 물건부터 한 사람의 인생을 대입해볼 수 있는 사물까지 다양한 것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게는 수십년 전에 버려진 채 추억속에서 기억으로만 남겨진 사물들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소홀함과 달리 책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사물들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살아숨쉬고 있는 듯 했다. 아직도 화자의 마음 한구석, 실제 그 사람의 인생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형의 사물들은 더이상 기계나 물질이 아니었다. 사물을 통해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들여다보며 특별한 사물이 갖는 보통 이상의 특별함은 깊은 회상과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심장이 뛰는 따뜻한 가슴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사물에 깊은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시간이 흐릴수록 의미를 더해가는 수많은 물질과 마주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와 그 세태를 비판하는 현대의 우리는 새로운 것을 쫓고 낡은 것을 버림으로서 욕망의 그늘진 면모만을 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 이 책에는 사물이 한 사람의 인생에 갖는 매우 사소한 개인의 경험이나 추억을 통찰력있는 시선으로 꿰뚫고 있다. 
 

의미 있는 사물이 지닌 놀라운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과자를 통해 잊었던 맛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경험을 통해 그는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맛과 향의 세계로 돌아갔고, 동시에 새로운 추억까지 얻었으며 어린 시절의 상징적 정수를 되찾았다.    -p. 117


6개의 구성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공감했던 부분은 역시 애도와 추억의 사물들이다. 폴로라이드 SX-70, 다락방의 그림, 여행가방들은 사물에 관해 추억하는 따스함과 절대적 지지, 호의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개인의 경험과 추억을 통해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나 감정의 흐름을 읽으며 향수에 잠긴다. 특히 다락방의 그림을 통해 17세 소녀가 바라본 비현실적인 가족의 모습, 발달장애인 여동생과 부모님의 부재는 그림을 그릴 당시, 불안정한 사춘기소녀의 심리를 내밀하게 따라가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한다. 할머니의 밀대에 나오는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는 사물로 인해 연상되는 추억과 사람과 사람을 잇게 하는 사물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부분에서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사물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화자만이 가장 자세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화자가 말하는 의미있는 사물과 읽는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물들과의 간극은 아무래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물에 얽힌 재미난 일화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분석적으로 뎜벼들어 파고들 때는 좀 질린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물의 객관적 사실과 증명을 떠나 좀 더 포용력있고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와 쉬운 해석을 곁들였다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사물을 통해 본 인생철학이라는 거창한 책의 설명대로 이런 쉽고 가벼운 소재조차 난해하게 만드는 이야기구조때문에 뒤로 갈수록 지루하게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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