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애무하기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질식할 듯 꽉 조여진 허리부분과 과장스럽게 강조된 엉덩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부채처럼 층층이 퍼지는 드레스. 1837년부터 1901년 사이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빅토리아 시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의상스타일이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를 비롯 근현대를 아우르는 시기와 맞물리며, 급변하는 영국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빅토리아 시대를 1966년생 작가 세라 워터스는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레즈비언이라는 불편한 소재를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큰그림을 그려보자면 당시 영국의 양지와 음지를 살아간 한 여성의 변화무쌍한 인생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스토리의 전개를 더욱 극적이며 풍부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 먼저 번역된 <핑거스미스>가 입소문이 꽤 좋았던 모양이다. 그녀의 진가를 재확인하고자 이제서야 번역되었던지, 아니면 레즈비언들의 적나라한 성적묘사때문에 번역을 미뤄왔던지 분명 둘 중 한가지 이유때문에 데뷔작의 번역이 늦어졌을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핑거스미스>를 먼저 봤기에 데뷔작이라는 책의 수위가 이 정도로 노골적일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핑거스미스에서는 미스테리에 열을 올린 탓인지 레즈비언 이야기는 소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소위 이반문학이라고 터부시될 뻔 했던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제 발로 당당히 벽장속에서 걸어나온(커밍아웃) 사람들 덕분에 조금은 누그러진 사람들의 인식변화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 학창시절 동성에게 한 번쯤 풋풋한 감정을 품어본 기억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은 덜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바닷가 근처 영국 윗스터블 지방의 굴식당에서 일하는 낸시 애슬리는 어느날 언니 앨리스와 간 연애장(코미디언이나 배우들이 노래와 춤, 연기를 공연하는 곳)에서 남장여자로 분한 키티 커틀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어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점점 그녀의 연기와 눈빛, 몸짓에 애달아 하며 공연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특별석에서 그녀의 모습에 황홀해한다. 그러던 중 키티는 자신의 열렬한 팬인 낸시를 직접 만나길 청하고, 고아나 다름없는 키티에게 낸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키티를 알아갈수록 낸시는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고 런던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된 키티를 따라 의상담당자격으로 둘은 런던행기차를 탄다. 둘은 우연찮게 남장을 한 채 한 무대에 서게 되고 런던에서 크게 히트해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어느새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지만 키티의 배신으로 낸시는 좌절과 상실감에 키티를 떠난다.


여기까지가 1부의 줄거리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2부에서 키티를 잃고 방황하는 낸시가 여자임에도 남장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남창이 되었다가 막대한 부를 가진 다이애나라는 여인을 만나며 쾌락과 허영에 허우적된다. 3부에서는 다이애나에게 버림받은 후 낸시가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플로랜스(물론 여자다)를 만나며 키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혼란스러워하던 성정체성에 해답을 찾고 당당해진다. 빅토리아라는 특수한 시대상을 빼면 사실 스토리만으로는 진부해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성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한 여인의 굴곡많은 삶이라는 식상한 껍데기밖에 남는 게 없을텐데 작가는 자신이 공부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세심하게 녹여냈다. 또한 당시에만 통용되던 레즈비언 사이에 쓰이던 은어나 속어를 끄집어내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했다.(벨벳 애무하기도 그런 표현 중 하나다.) 분명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당시에 했을 거라고 믿기지 않는 파격적인 표현에 당황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 시대의 변화를 표출하는 레즈비언들의 은밀한 욕망, 화려함과 허영속에 가려졌지만 다이애나를 통해 드러나는 상류사회의 퇴폐적 문화, 적은 비중으로 비춰지지만 거세게 일어나던 노동운동과 여성인권보호의 움직임들이 이야기를 쉽고 가벼운, 혹은 자극적인 비주류소설로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류의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던지 호기심만으로 접근하려 했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꽤 적나라한 성적표현이 19금정도의 수준이고(내 생각으로 많지는 않다), 낸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면 사방 1.5cm정도 좁은 여백과 빽빽한 글자수에 압도당해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의 이 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스토리의 전개에 집중하며 읽었다. 작가가 고스란히 독자에게 남겨준 '상상하며 읽기의 즐거움'을 100%누리면서 봤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읽는 내내 무진시를 휘감은 안개처럼 마음이 눅눅해졌으며 숨이 막힐 듯 갑갑해졌다. 지독한 어른들에게 상처입고 짓밟혀지는 아이들을 위해 그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진실을 말할 때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손이 떨려 페이지를 넘기고 싶지가 않을 때도 많았다. 그 모든 분노와 떨림은 내가 그 치욕스런 어른들의 행태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고 모른 체 눈감아주었던 사람 중 하나가 되었던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인호는 사업실패로 아내에게 등떠밀려 서울에서 무진시까지 청각장애아들이 다니는 자애학원의 기간제교사로 내려오게 된다. 비록 기간제교사긴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수화까지 배워온 인호에게 첫출근한 학교의 인상은 기괴하고, 자신을 경계하는 주변사람들은 서먹하다. 아니나다를까 첫수업부터 민호라는 아이의 동생이 기차길에서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문이 잠긴 여자화장실에서는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낮은 절규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연두가 윤자애라는 생활지도교사에게 린치를 당하는 장면도 목격한다.


수화를 배워오긴 했지만 선생님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졌다거나 장애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품었던 건 아니었기에, 인호는 자신이 자애학원의 비밀을 알게 될수록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어둠에 맞서야 한다는 걸 직감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무진에서 만난 대학선배이자 무진인권운동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유진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자애학원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이야기는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치닫는다.


청각장애아들 중 대부분은 말까지 하지 못하는 중복장애를 가졌는데  이런 아이들의 집안환경은 가난하고 불우하기까지 하다. 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숙식까지 해결해주는 자애학원은 겉으로는 그럴듯한 자선교육기관인 양 위선을 떨고 있지만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듣는 진실은 너무도 추잡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장애아라는 약점을 이용해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는 교장과 행정실장은 자애학원의 권력을 남용해 그동안 저질러온 부정을 은폐했다. 학연, 지연, 혈연을 이용해 권력을 세습하고 비리를 숨겨왔다. 이 일이 매스컴을 타며 세상에 알려지고 재판에서는 유죄가 확실한 그들에게 무거운 형량이 내려질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또 다시 강자편이었음에 나는 폭발하려는 이성을 진정시켜야했다. 게다가 변한 줄 알았던 인호의 마지막 결정은 너무도 실망스러웠고 약간의 적의와 배신감까지 느꼈다. 악한들은 모두 반성하지 않더라도 인호만은 끝까지 아이들의 편이 되주길 바랬던 개인적인 바램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진실이 이토록 잔인할 수 없었다. 마주보기 불편했고 눈감아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달아날수록 발을 휘감는 무진의 흐린 안개처럼 불편한 진실은 마음 속을 휘저었다. 연두와 유리, 민호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선명하게 들려왔다. 똑바로 바라봐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앞에 당당하게 맞서싸울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광란의 도가니속에서는 같이 미치지 않고서는 밖으로 튕겨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읽는 동안 그 도가니속에서 허우적댔다.  그러나 싸늘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하고 싶었다. 속물스런 장경사도 아니고 마지막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인호도 되기 싫었다. 그들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싸운다는 서유진처럼 그녀의 생각을 오래 오래 품고 싶었다. 진실을 개에게 던져줄 수 없다는 호쾌한 문장이 마지막까지 위로가 되었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에요.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답게 이 책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액티브했다. 작중 인물들간의 대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내면은 그리 섬세하게 표현되지 않지만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은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깊이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수백컷을 편집해 이어붙인 영화처럼 흐름이 거침없었다. 최근까지 본 영화 중 3600컷이라는 엄청난 양으로 편집된 '세븐데이즈'가 생각났다. 호불호를 떠나 막힘없는 글의 속도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금방 읽을 수 있었기에 재미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팀으로 움직이는 두 형사가 있다. 10년이상의 현직생활에 머리숱이 점점 줄어드는 배테랑 형사 유병철과 불같은 성격에 지는 걸 싫어하는 바람둥이 형사 정태석. 이 두 형사가 어느날 굵직한 마약사건의 냄새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세대가 다른 두 형사가 등장하는 내용은 그동안 발에 채이도록 많이 본 형사영화의 전형이었다. 신선함은 떨어졌다는 말이다.  원작을 먼저 읽은 후 영화로 본 이야기들은 많았는데 영화를 책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책분위기에 적응하는 중반이후 캐릭터를 특정배우로 연상하며 읽으니 훨씬 실감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서 내용의 식상함을 살짝 벗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전개에 집중하게 되었다.


영화같다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평소 단순한 오락거리로 본 형사물에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다양한 수사정보와 흐름으로밖에 짐작할 수 없었던 세심한 부분까지 책에서는 읽을 수 있었다. 마약에 관련된 지식이나 국과수에서 하는 일등은 우리나라 경찰들도 조금은(?) 체계적인 조직과 정보망를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현재도 여전히 영화 '살인의 추억'의 수사방식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경찰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때문이다.) 그렇지만 CSI과학수사대처럼 과학적인 분석과 전문화된 데이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오랜 형사생활로 쌓인 노하우나 직감으로 수사를 하는 건 내용을 범죄물보다는 드라마쪽에 가깝게 만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작가나 감독들이 형사물에 더 매력을 느끼는 건가 싶었다. 


두 형사가 엄친아이자 인텔리한 마약쟁이 변성수를 쫓는 과정과 무심한 듯 시크한 훈남으로 가장한 정태석 형사의 진정한 사랑찾기가 뒤로갈수록 짙어지는데 억지로 엮는다는 이질감때문인지 끝이 뻔히 보이는 결말로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의 미약한 반전과 형사생활에 회의를 느낀 유병철 형사의 개인적 고민도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봤던 것 같은 기시감까지 느껴졌으니 식상하다는 평은 면키 어려워보였다. 또한 뭔가 거대한 음모와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잔뜩 기대했는데 끝으로 갈수록 지지부진해지는 것도 약점이었다. 오히려 제목처럼 무심한 듯 시크하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읽어나간다면 더없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은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르게 된다. 최근 읽은 책 중 3시간이란 최단기간을 기록한 책이 되었다. 새벽 4시, 단숨에 다 읽어버릴까 했지만 마지막 남은 몇페이지의 반전을 아껴두고 싶다는 생각에 힘겹게 눈을 감았다. 아침햇살에 묵직한 눈꺼풀을 올리며 책의 남은 페이지를 마저 읽었다. 그리고 한참을 반전의 뜻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그의 책은 그런 묘한 힘이 있다. 마치 블랙홀처럼 대책없이 빨려간다고 할까. 
 

책을 읽는 행위는 내게 책의 표지와 제목에서 받은 첫인상과 짐작, 선입견을 무참히 깨는 것이다. 줄거리는 대충 알고 읽었지만 역시 붉은 손가락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멋대로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건 분명하다. 아무튼 그런 일련의 생각들을 밀쳐두고 마지막장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 유난히 현대사회 가족의 문제를 사건의 중심에 놓고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조금 뒤틀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 시대 가족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한순간 전복되버릴 위기에도 유기적으로 얽히고 서로의 진심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일말의 희망을 남겨둔다는 면에서 단순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드라마적 감동까지 더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요즘 현대사회, 옛날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한없이 가벼운 가족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집안일은 나몰라라 부인에게 떠맡긴 채 겉도는 아빠 아키오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오냐오냐하며 키워온 엄마 야에코, 오래된 학교내 집단따돌림으로 삐딱하게 커버린 중3아들 나오미. 큰 일이 생겼다는 야에코의 전화에 회사에서 급히 달려온 아키오는 집정원에서 7살짜리 여자아이의 시체를 보게 된다. 아들 나오미의 짓이라는 사실에 분노하며 경찰에 알리려는 아키오를 부인 야에코가 막아서고, 절대 아들에게 자수시킬 수 없다는 그녀의 간곡함에 아키오는 사체를 근처 공원에 유기한다. 그 뒤 분명히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갈 수 없는 경찰의 압박이 다가올 것임을 아는 아키오는 사람이라면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나는 아키오의 계획에 간담이 서늘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비도덕적인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하고 말이다. 아무리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라지만 인륜을 저버린 그의 계획에 절대악이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무도 평범하고 흔한 중상층 가정의 전형인 아키오의 가족이 그런 험악한 상황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에 섬뜩하게 다가온다. 가족이란 끈끈한 집단의 이기심이 빚어낸 참극 앞에 내 가족과 주변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신문의 사회면을 하루도 빠짐없이 장식하는 우리 시대 가족의 추악한 진실은 가족을 벗어나 사회전체의 문제까지 환기시킨다.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그들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미세한 균열에 누구보다 가족구성원 서로가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같은 불행은 닥쳐오지 않을 것이다. 


묵직한 주제를 떠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책 중 가장 맹활약하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의 활약이 돋보인다.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 논리적인 상황판단으로 가가형사는 사건의 전개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한다. 형사로서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심한 배려로 피해자나 가해자를 배려하는 모습은 아, 정말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구나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기존의 추리소설에서 봐왔던 권위적인 형사나 독자를 가지고 노는 탐정들에게는 볼 수 없는 인간미가 뚝뚝 떨어지는 가가형사의 진면목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만으로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정신병원의 폐쇄병동과 개방병동에서 생활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나의 무심하고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깨닫게 만든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 달리 적게는 몇 개월부터 많게는 30년의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적이며 따뜻한 시각에서 묘사되었다.  특히 30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생활하며 살아온 주 씨가 병원친구들과 의사의 도움으로 퇴원하게 되는 과정에서는 그만 눈시울이 불거졌다. 사방이 꽉막힌 것 같은 오래된 건물 위로 파란 하늘이 어색하다. 그 하늘을 가로지르며 새 한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책의 표지처럼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비상하려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이 비쳐든다.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오는 환청에 이끌려 아버지의 목을 조른 주 씨,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으로 통원치료를 받는 시마자키, 아버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난 어머니와 내연남을 살해한 히데마루, 집에 불을 지른 정신박약아 쇼하치와 조카 게이고, 약물중독으로 입원한 조직폭력원 시게무네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과연 무엇때문에 상처입었나 질문하게 만든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작가는 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동정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그들에 대한 애정과 교류가 캐릭터를 생생하게 하고, 환자가 아니라 한 인간대 인간으로 대면하고자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는 외부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냉대, 무관심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서서히 감정이입이 되어간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p.167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퇴원하려는 주씨를 막아서는 여동생 부부의 반박을 통해 대변되고 있었다. 정신병원이란 그런 곳이다. 왜곡된 진실을 마주볼 수 없어 외면해버린 사회의 음지같은 곳.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주 씨는 여동생 부부에게 공포자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30년이라고는 하지만 오래 전에 개방병동으로 와 자유롭게 외출을 하고 시장도 보는 주씨를 막아서는건 병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이 된다는 말처럼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사회적 편견과 가족들의 무관심이다.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면에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같다고 말하며 여동생 부부를 설득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대사에서 현실적으로 그들을 포용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누구보다 가족이 그들을 받아들여주었을 때 빠르게 안정감을 되찾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있는 그들 모두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터져버린 나약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극한을 경험할 수 있고 평화로운 일상에서 밀려날 수 있다. 그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았기 때문에 더 괴로운 거라고 한다.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만드는 책이었다.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라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 말하는 히데마루의 편지내용은 그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는 구원의 메시지처럼 울려퍼지며 내가 마치 환자인 양 뭉클해지고 말았다.

지난번 연극에서 주 씨는 천국 장면을 그렸지. 주 씨. 병원을 억지로 천국이라 생각하려 하는 거라면 그건 잘못일세.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병원에서 죽는 새가 되면 안 돼.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날아올라 자기 둥지로 돌아가길 바라네. 그리고 주 씨의 지혜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살아주게. 그게 내 소원이야.  -p.3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