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땅 속에서 보낸 매미가 지상에 나와 사는 시간은 단 7일. 그래서 매미는 그토록 서럽게,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귀가 따갑도록 울어댔나 보다. 그런데 8일째가 되어도 죽지 못해 혼자 살아있다면 얼마나 슬플까...소설 말미에서 에리나가 속마음을 비유하는 부분이다. 유괴범(기와코)이 기른 딸(가오루 혹은 에리나)이 유괴범과 헤어진 뒤 18년이 지나서도 그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괴범인 기와코는 가오루를 키울 수 있었던 시간동안 불안했지만 눈물나도록 행복했다 말한다.


기와코는 직장상사이자 유부남인 다케히로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아이를 가졌지만 낳지 못하고 다케히로의 아내인 에쓰코에게 온갖 협박과 모욕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부에 대한 원망이나 복수심때문은 아니었던 던 것 같다. 단지 그 둘의 아이를 가까이서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꼬물거리는 아이를 보는 순간,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다. 친한 친구인 야스에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다 도망치고, 거리를 헤매던 중 철거가 코앞인 낯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하루 불안과 초조속에 자신의 처지를 위장한 채 숨어들 수 있는 엔젤홈이란 곳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그 곳을 나와 쇼도시마란 섬으로 마지막 도피를 감행한다. 섬에서 정착한 것도 잠시, 신문에 난 한 장의 사진으로 경찰에게 붙잡히게 되며 가오루와 헤어지게 된다. 
 

기와코와 헤어진 가오루는 원래 이름은 에리나로 18년을 보냈다. 하지만 냉랭한 가족들과 적응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유괴했던 기와코를 증오하며 그녀와 보냈던 시간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게다가 기와코처럼 자신 역시 유부남을 좋아하게 되며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자신은 남자의 도움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하며 오래전 엔젤홈에서 함께 살았던 지구사의 도움으로 과거의 장소들을 되짚으며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했던 기와코와의 시간을 좀 더 누그러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기와코와 같은 처지가 되고보니 그녀의 마음을, 그녀의 모성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헤어진 도노쇼항에 발을 디딘다. 그녀가 내뱉은 마지막 말을 생생히 떠올리며...


노련한 여성작가답게 디테일한 상황과 심리묘사가 공감을 이끌어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이 뜻하지 않은 실수로 유괴범이 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았고, 가오루와의 행복이 흔들리는 한 가닥의 밧줄에 의지해야할만큼 절박했다는게 모성애를 지닌 같은 여성으로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을만큼 기와코의 내면이 마치 내것인양 마음을 휘젓기도 했다. 자신을 매미의 허물처럼 빈껍데기나 유령이라고 표현할 때는 참 가엾게 여겨졌다. 하지만 뒤이은 장에서 나오는 에리나의 미래모습에서 그 기억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오랫동안 따라다니게 되고 원래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과거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자 그제야 죄는 죄일 뿐이라고 냉정히 생각하기도 했다. 

  
기와코처럼 아빠없이 키워야할 아이를 임신하게 된 에리나는 기와코도 엄마이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혼자 살아남은 8일째매미가 결코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지구사의 말에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에리나는 기와코를 용서해던 것 같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아이는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기와코의 심정이, 가오루를 향한 애정이 진심이었을거라고 굳게 믿게 되었으며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가 가오루와 함께 조금만 더 일상의 평범한 행복을 맛보았으면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러나 에리나가 가족들에게 느꼈을 소외감과 타인들의 섣부른 관심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겉돌 수 밖에 없었던 괴로움을 알게 된 후에는 기와코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걸 몇번씩 되새겨야 했다. 언뜻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인 듯했지만 소설을 읽으며 그녀들의 속사정을 알게될수록 그 의식은 옅어졌다. 둘의 시선이 겹치는 부분에서 나 역시 죄의 본질을 떠나 관대한 모성본능의 힘을 조금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변의 카프카 이 후 얼마나 고대하던 그의 장편소설이던가. 사놓은지 2주가 지나도록 아까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끼던 책을 부모님께 가는 기차안에서 설레하며 첫장을 넘긴 후, 잠깐씩 몸을 뒤척일 때를 빼놓곤 5시간을 내리 읽으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시 하루키라는 감탄을 속으로 연발하며 뒤이은 전개를 혼자 상상해보는 것으로 짧은 추석을 보냈다. 무게때문에 1권만 가져왔다는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그의 책을 펼치기 전에는 어떤 것도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도 그가 곳곳에 장치해놓은 수많은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리속을 비워야 했다.


1권을 읽는 내내 충격적인 진실과 전개에 2권에서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 중심을 어떻게 일으켜세울지 궁금했는데 그가 의도한 것은 사랑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그도 그럴것이 1권을 읽으며 너무 많은 색깔을 입혀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교묘하게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든다. 책의 첫머리에도 등장하며, 선구의 리더가 아오마메에게 말했던 재즈곡 [it's a only paper moon]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네가 나를 믿어준다며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라는 가사는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어긋나 들어가버린 1Q84년의 세계로 독자가 빠져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주술적인 힘까지 발휘한다. 이 책의 전체평을 작가자신이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를 평하던 덴고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려주고 있어 더 흥미롭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적어도 사람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데가 있어요.
전체적인 줄거리는 판타지적인데 세부 묘사는 유난히 리얼합니다. 그 균형이 아주 좋아요. 독창성이나 필연성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어떨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평가를 할 수준도 못 된다고 한다면 뭐, 그것도 맞는 얘기일 거에요. 하지만 여기저기 걸리면서도 어떻든 다 읽고 나면 그 뒤에 찡한 여운이 남아요. 그게 어쩐지 불편하고,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라고 해도 말이죠.    -p.38


그래,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요소를 갖고 있어. 자네가 그 세계르 믿지 않는다면, 또한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짜에 지나지 않아. 어느 세계에 있건, 어떠한 세계에 있건, 가설과 사실을 가르는 선은 대개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 선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어."  -p.323


7년만에 발표된 그의 신작 제목이 뒤늦게 1Q84라는 걸 알고(처음엔 iQ84라고 짐작해버렸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연관짓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오마주로 그 세계를 일부 옮겨오면서 자신의 주특기인 기묘한 판타지를 엮는 그의 솜씨는 탁월했다. 공기번데기에 매료된 책 속의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나 역시 그가 만들어낸 1Q84년의 시간속에 하염없이 끌려가는 걸 바라봐야 했다. 또한 오래전부터 '상실'이라는 주제로 설득력을 다져온 작가이고 보니 글을 읽는 내내 느끼는 공허함 대신 삶에 대한 강한 성찰과 그것을 사랑으로 메우려는 헌신적인 노력은 비장하게 다가온다. 2권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둘의 존재감이 어릴적 안고 있는 트라우마로 외로워했던 자신들을 지탱해준 힘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운명적 사랑임을 역설하는 부분은 참으로 절묘하다. 누구에게나 이런 첫사랑의 생생한 기억이 가슴속 밑바닥에 침잠해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無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는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   -p.133 


아오마메에게 손을 잡혔던 수십 초 동안 덴고는 무척 많은 것을 목격했고, 마치 카메라처럼 정확하게 그 영상을 망막에 새겨두었다. 그것은 그가 고통에 찬 십대를 살아가는 데 밑받침이 되어준 정경의 하나였다. 그 정경은 항상 소녀의 강한 손가락 감촉과 함께였다. 그녀의 오른손은 고통에 허덕이며 어른이 되어가는 덴고에게 항상 변함없이 용기를 불어넣었다. 괜찮아, 너한테는 내가 있어. 그 손은 그렇게 말했다.
너는 고독하지 않아.   -p.457


그리고 주제를 '사랑'이라는 한가지로 귀결시켜버리기엔 긴 스토리안에 작가가 찔러본 뜨거운 감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확대해석이라도 나는 이 문제를 현시점의 사회적 이슈들과 연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의 폭력앞에 무력하게 죽어간 딸과 친구를 잃은 상처로 살인자가 되는 아오마메와 노부인의 완벽한 광기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었고, 자연농법 단체에서 종교법인으로 거듭난 '선구'의 리더가 행한 다의적 교접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딸을 비롯해 미소녀들과 관계를 맺은 부분은 그릇된 종교관으로 여러 여자를 취한 어느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요즘 아동성폭력으로 뒤숭숭한 사회분위기탓인지 후카에리와 쓰바사의 일이 결코 책 속의 가상현실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작가가 들이댄 종교적, 도덕적 이중잣대가 혼란스럽게 여겨졌다. 어찌되었든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보다 더 원대한 두 남녀의 사랑이라도 과정에 담긴 주인공들의 상처와 상실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머리속이 좀 복잡해진다.


그 이후로 아오마메는 노부인과 비밀을 서로 나누고 사명을, 그리고 광기와도 비슷한 어떤 것을 함께하게 되었다. 아니, 그것은 완전한 광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계가 어디인지 아오마메는 판별할 수 없었다.    -p.468
   


책장을 덮은 후에도 의문이 긴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결정적인 것을 남겨두고 끝나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분명한 것은 달의 존재감처럼 절대적이고 따스한 온기를 품은 책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공유했던 1Q84년의 시간에 두 개의 달이 존재했다는 묘사는 달이라는 천체자체가 사라져버린 이외수의 <장외인간>이란 책이 떠오르게 했다. 새삼 달의 상징성에 주목한 두 작가의 마음이 이렇게 통한 걸까 싶었다. 길지만 짧게 느껴진 1Q84를 읽는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일그러졌지만 또렷한 모양의 작은 달이 어딘가에서 지상을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하루키만의 마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해자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1월, 오쿠다 히데오의 새장편소설이 발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다른 어떤 책보다 <남쪽으로 튀어>란 소설을 너무도 재미있게 봐서 이 책 역시 몹시 기대했다. 그러나 <남쪽으로 튀어>만큼 유머러스하지 않았고 이전에 그에게 볼 수 없었던 진지함에 당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가볍게 여겨 스쳐지나갔을 짧고 경쾌한 문장과 디테일한 묘사가 설득력을 더하며 몰입하게 만들었다. 1권을 읽은 후 약 한 달 뒤 2,3권을 연속으로 읽었다. 1,2권까지 읽으며 3권에서는 1,2권에서 펼쳐놓지 못한 거대한 음모와 배후를 드러내며 바짝 긴장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했지만, 앞권들과 대동소이할 평이한 리듬으로 반전에 대한 나의 속내를 비웃으며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것으로 끝났다.


7년 전 임신중이던 아내를 사고로 잃은 형사 구노, 슈퍼 아르바이트로 생활에 보탬을 주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쿄코, 밤길에서 아저씨를 상대로 돈을 뜯고 다니는 유스케와 친구들, 그 밖에도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교코의 남편이 다니는 하이테스 사옥의 방화사건으로 인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건전개를 풀어나간다. 이야기가 굽이치는 언덕을 넘을 때 작가는 과연 어떻게 결말을 낼까 몹시 궁금했다. 극적인 반전과 충격적인 결말을 기대했던건 이야기가 초반부터 몹시 미스테리한 냄새를 풍겼기 때문이다. 끝까지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비장의 카드를 꺼내주길 바라고 읽었던 나의 선입견에 대한 반격에 어이없는 헛웃음만 나왔다. 그를 뻔한 작가라고 생각한 나의 오산이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작가가 의도한 것은 미스테리가 아니었다는 것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일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 평범함이 고맙다고 여기는 것은 깨지고 난 후이다. 특히 남편 시게노리의 방화사건으로 가족의 평화로움이 깨질 위기에 처한 아내 교코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섬뜩해지고 만다. 실로 팽팽한 긴장의 끈을 날렵한 가위로 일순간 잘라버린 느낌이었다. 시게노리의 범죄와 아르바이트하는 슈퍼에서의 강경한 반발로 교코의 일상이 나락끝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나는 그들의 평범함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인가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목처럼 누군가의 방해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알고보면 이기적인 자신, 상처받기 싫어하는 자신때문에 주변사람 모두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형사 구노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내와 같이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살아난 장모에게 부모이상의 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매일 밤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었다. 2권 마지막에 나오는 구노 형사의 반전때문에 더 극한 결말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지만, 앞부분을 되짚어보니 그제서야 작가가 하려던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누구나 매일 똑같은 일상에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길 바라지만, 실상 평범한 일상은 어긋나버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만큼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극 중 인물들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사소한 대화와 행동, 몸짓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상은 결코 한순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노형사와 동료 이노우에의 생각을 통해 인간은 늘 외롭고 고독한 존재지만 관계를 통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비로소 살아간다고 느끼게 되었다. 가족과 동료, 그리고 친구 가깝고 그만큼 소홀하지만,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깨닫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의를 관철하고 싶은 것인가. 악을 응징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인가. 분명 그런 것은 아니다...... 
아마 자신은 사람과 깊이 관계하고 싶었을 것이다. 쭉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p.242 

 
"전 고교 중퇴라 앞날이 캄캄합니다."

"그런 건 사소한 거야. 인간은 미래가 있는 한 무조건 행복한 법이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전부 조건부야. 가족이 있다거나, 살 집이 있다거나, 일이 있다거나, 돈이 있다거나 그런 것을 토대로 삼아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    -p.2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1995년, 영국의 한 백화점에서 2살 여아가 실종되었다. 몇시간 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아이의 살해범은 당시 나이 10살의 소년이었다. 영국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왜 그렇지 않을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미숙한 10살 소년이 겨우 2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죽였다는 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만큼 잔혹한 살인이다. 이 끔찍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은 형무소에서 15년을 보낸 후 사회에 복귀한 소년의 시선으로 쓰여진 독특한 구성의 글이다.


A-Z까지 26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진짜 이름을 버리고 소년A가 잭이라는 가명으로 행복을 맛보며 사는 과정과 안젤라(소설에서는 소년과 같은 또래가 피해자로 나온다)를 살해하기 전까지 소년 B를 만나며 보낸 시기를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다. 우울과 방황으로 점철된 시기의 소년A(안젤라를 살해하기 전의 소년)와 살인으로 씌워진 오명과 죄책감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온 평범한 행복이 늘 위태한 잭의 상반된 모습에 과연 살인에 대해 어느 정도의 용서와 관용을 베풀어야하는건지 책을 읽은 후 사유해보게 되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이 있지만, 누구도 가장 흉악한 살인이란 범죄에 대해서는 결코 관대해질 수 없게 된다. 자신에게 해를 가하거나 위협이 될 경우의 살인은 정상참작이라는 법의 관용이 뒷따르지만, 이유없는 살인은 인간의 악함을 바닥까지 비추며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동의를 하고 있다. 감옥에서 15년을 보낸 뒤 사회에 나와 또래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친구를 만들어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잭은 자신의 죄가 과거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수록 좌절하고 힘들어한다. 어린 소년이 저지른 못된 과거라고 덮어두기에 죄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가 아이를 구한 선행따위는 묻혀질만큼.


나 역시 잭의 친구들처럼 차갑게 돌아설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고민해봤다. 여자친구인 미셸의 갈등속에서도 질문은 계속된다. 소년A가 악인의 본성을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보다 큰 사람들의 따가운 질시와 냉대를 친구나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견디기에 벅차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감옥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10년이 넘는 세월을 반성으로 보냈다하더라도, 잭에게 살인이란 꼬리표는 끈질긴 파파라치처럼 언제 어디서나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는 게 소설의 결말을 통해 드러난다. 사람들은 결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저지른 죄와 함께. 그렇기에 나는 돌변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오히려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잭 자신도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지, 그럴 자격이 있는건지 죄책감의 무게와 굴레를 스스로도 벗어날 수 없었듯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씌어진 소설이지만 잔인한 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가해자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 악인이기전에 평범해지고 싶어하는 그의 내면을 세심하게 드러낸다. 거기서 이 책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인생은 죄를 짓기 전과 짓고 난 후로 양분되고 살인을 저지르기 전 따돌림에서 벗어나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꼈던 소년A의 입장과 사회에 복귀해 잠시나마 행복을 맛보았던 잭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잭의 주변인이 되어 그를 바라볼 수도 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소설이었다. 2007년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