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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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외딴방 이 후 드문 드문 그녀의 여러 책을 잃으며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천착하는 모습에 신작읽기를 주저했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으로 같은 세대가 아닌 나로서는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려는 그녀의 모습만 눈여겨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려는 모습은 결코 어두운 과거와 깊게 패인 골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윤교수가 강력히 피력하는 살아있음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과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가는 청춘의 아픔과 성장통을 생생히 체득하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누구보다 그녀는 살아있음으로 죽은 이들에 대해 죄책감을 덜고자 끊임없이 과거와 싸워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과 명서의 갈색노트로 번갈아 회자되는 이야기의 시대는 암울하다. 구체적인 시대가 언급되지 않았어도 명동성당에서 연일 이어지는 시위와 실종, 혹은 의문사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늘진 한 시대의 특정 시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분명 작가가 겪은 아픈 과거의 흔적을 따라갔다는 것이 암시된다. 함께 해주지 못한 안타까움의 절규이다. 그러나 도대체 그들이 무엇때문에 그토록 죽음을 향해갔는지, 그리고 사라졌는지 그에 대한 실체는 자욱한 안개에 휩싸이듯 모호하기만 하다. 방황하거나 상실되고 혹은 투쟁하며 윤과 명서, 단이와 미루 네 명의 청춘은 빛을 잃고 스러져간다. 


그러나 이 소설을 통해 저자의 바램대로 지금 청춘을 맞이한 이들이 희망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상대방은 간절히 나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지만, 자신이 껴안고 있는 묵직한 슬픔때문에 남을 돌아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이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들 위태롭게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상처때문에 혹은 자신이 강을 건너는 크리스토프라고 생각했기에 등에 업힌 아이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고 말이다. 스무살의 슬픔과 눈물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은 불완전하고 소멸될 것처럼 허무하고, 두려우면서도 다가가고 싶은 청춘의 망각에 깨달음이란 없다. 그저 작가가 오랫동안 껴안고 있듯 젊음이란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일인 것이다.
 

윤과 미루, 그리고 명서와 단이는 이 순간을 잊지 말자고 수없이 서로에게 다짐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강을 건너고 그로 인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슬픔을 안겨준다. 젊음이란 죽음의 다른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들의 20대는 매우 고독하고 우울하다. 죽음과 상실을 통해 보편적인 청춘의 감성을 이끌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은 이 소설 역시 과거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다른 시각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오랫동안 표류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눈물겨운 노력은 보이지만 치열함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고집스럽게 과거에 연연해 쉬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 힘들어 보였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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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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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이었다. 그런데 책의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도대체 콩가루란 어떤 의미를 뜻하는가 싶은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막장드라마라 일컫는 스토리에는 출생의 비밀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 집안에도 예상치 못한 출생의 비밀이 연이어 드러나고, 조카의 이름도 모르는 삼촌과 피자 한조각조차 삼촌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조카, 두 번의 이혼경력을 가진 주인공의 여동생과 평생 주먹을 쓰며 감옥을 수시로 드나드는 쉰 두살의 형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마흔여덟에 영화 한 편 말아먹고 이혼에 빈털터리가 된 작중 화자인 내가 있다.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막돼먹었다 평할 수 없다. 그들에게도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파도에 떠밀려 마지못해 해안가로 쓰레기처럼 떠밀려온 삼남매가 칠순을 넘긴 엄마의 집에 엊혀살게 되며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게 흘러간다. 천명관은 이 책에서도 특유의 입심으로 욕망에 솔직하고 천진한 사람들의 모습, 그것도 가족이란 울타리아래 모인 남매와 어머니를 통해 우리가 진정 행복한 가족이라 일컫는 전형을 비웃으며,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이 위선이라 꼬집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어머니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엄마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는다. 희생을 미덕으로 살아온 엄마가 아닌, 과거 한 여자로서의 욕망을 간직했던 엄마와 평범한 인생살이에 실패한 자식들을 아무말없이 품으며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는엄마가 등장한다.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p.58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처럼 책 속 주인공의 어머니는 실패한 자식들의 인생에 그저 묵묵한 버팀목이 되어 누구보다 강한 엄마의 내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영화의 실패로 인생마저 패배자로 전락해버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지만,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조금씩 인간성을 회복해간다. 그리고 한 때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나는 뒤늦게서야 형제들과의 과거를 떠올리고 자신에게 새겨진 가족의 그림자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누구보다 어머니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남매가 모두 모였을 때 질리도록 고기를 굽고 고기반찬으로 삼일밤낮을 배불리 먹이며 흐뭇해하는 그녀를 보며 세상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 살짝 엿보였다. 나 역시 객지생활때문에 전화통화 끝에는 항상 밥 잘 챙겨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고기를 해먹인 것은 우리를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p.198


결국 가족이란 그릇에 엄마를 담기 위해 소설은 실패한 자식들을 앞세웠지만, 엄마의 역활은 어느 가족에서나 똑같다. 단지 이 책에서는 생선머리만 좋다며 몸통은 전부 자식들에게 양보하는 무조건적인 희생대신, 자식들이 어떤 방향을 향해가든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의 엄마가 있다. 물론 주인공의 엄마 역시 여자로서의 희생을 감내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존재감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집이고 밥같은 존재가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인은 한 인간을 길러봐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희노애락을 겪으며 성인이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역시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고 했던 부분은 엄마의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평생 보살핌만 받았을 뿐 누군가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캐서린을 지켜보며 나는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완성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 거기에 비추어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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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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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알았다. 그 거짓말이 어떤 사람을 아프게하고 상처입혔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아하다는 형용사의 그림자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허울좋은 진실을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편을 잃고 씩씩하게 두 딸을 키우던 엄마는 사랑하는 딸 천지마저 잃었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했던 말이 어린 딸에게 상처가 됐을거라 짐작할 뿐이다. 천지를 괴롭혔던 화연 역시 천지의 자살로 상실감과 죄책감에 빠진다. 천지의 죽음으로 화연은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지만, 반성이 아닌 변명과 자신의 정당함만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천지의 죽음 뒤에야 주변사람들은 하나씩 사실과 모호한 진실을 뱉어낸다.     
 

지금은 그저 우스개소리가 아닌 사회적 이슈와 문제가 되었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만 하더라도 왕따라는 말이 유행에 지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 비슷한 말 중 '은따'라는 속어도 아이들이 만들어 놀리곤 했는데 은근히 따돌린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화연이 천지를 대했던 과거의 행동이 '은따'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오랫동안 교묘히 자신을 괴롭혀온 화연의 행동이 화근이 되어 천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착한 아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한 채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미운 마음만은 버리고 가겠다고 말하며 죽음을 택하는 천지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 죽음은 이제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 되어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이상 착한 아이가 아닙니다. 때문에 모두 용서하고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이제 나쁜 아이가 되어서 갑니다.용서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보다 편하고 싶어 떠나는 게 아닙니다. 내 몸이 더 이상 이곳을 원하지 않아서 떠납니다. 분명히 말하고 가겠습니다. 용서하지 않고 떠난다고......    -p.101 

 
미완의 죽음, 죽음을 부추긴 친구 화연, 화연의 따돌림을 방관한 미라, 가족이지만 보듬어주지 못한 엄마, 그리고 뒤늦게 천지의 죽음을 실감한 언니 만지. 이 모두는 살았기 때문에 천지의 죽음을 절절히 몸으로 끌어안아야하는 사람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되짚으며 그들의 우아한 폭력은 하나 하나 들춰진다. 처음엔 오래전 전학온 날부터 천지를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아온 화연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지의 주변에서 분명 화연의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직접 나서서 도와주지 못한 미라나, 3년 전부터 사실을 알았던 엄마 역시 죽음을 방조했던 것이다. 쉽게 했던 거짓말과 배려하지 않은 위로, 잔인한 무관심은 사춘기 소녀가 겪어내기엔 너무 거대한 먹구름이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어른들은 시시하다. 어른들이 생각한 아이들의 세계 역시 어설프다. 비록 지금 철들지 않는 어른일지라도 나의 10대를 되돌아보면 사춘기를 이르러 질풍노도의 시기라 하는 말이 이해될 정도로 변덕스럽고 예민했으며 거칠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세계를 들어가려는 노력 대신 우리 때는 저렇지 않았다는 탄식만 할 뿐이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도 분명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자아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해도 마찬가지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저자는 손을 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때의 감정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을 등지지 말라고. 뒤돌아보면 웃으며 털어버릴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위로조차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모두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게 말이다.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 수는 있겠지. 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거야.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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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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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허구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한 현실이 있다. 불편한 진실과 무력한 개인의 처절한 사투가 이성적인 공간이라 여기는 법정에서 그려진다. 분명 사람아래 있어야 할 법은 사람위에서 그들을 조롱하며 관망하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권력을 가졌다는 국민은 다수가 아닌 소수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무시되는 곳,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 곳의 법정이다.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다수결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결로 인해 묻히는 소수가 더 많다는 사실또한 민주주의의 평등원칙에 반하는 모순이다. 이 책도 그런 아이러니와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사회약자들의 목소리에 동정하면서도 낙담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시대의 변화는 소수의견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국선전담변호사인 주인공 윤변호사에게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박재호의 변호의뢰가 들어온다. 박재호는 아현동재개발지구에서 일어난 16세소년과 20대전경의 살인사건 피의자로 기소되었다. 그는 전경의 폭행에 의해 죽은 16세소년의 아버지이자 전경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진압경찰의 무혐의에 강하게 반발하며 항고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은 경찰이 누명을 씌운 폭력배 김수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투입된 진압경찰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을 비호한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건 검찰뒤에 있는 거대권력인 나라를 상대로 한 크나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윤변호사와 그의 선배 대석이 피고 대한민국에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100원, 그들이 원하는 건 청구금액이 아니라 여론을 환기시킬 목적이었기에 사건은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일파만파 커져간다. 게다가 법의 형평성과 공권력남용을 우려해 그들이 요구한 것은 국민참여재판. 결코 법에 호소할 수 없는 부분을 배심원 평결로 일방적 판결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주인공 윤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자부심이나 신념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다. 박재호 사건을 맡기 전까지 말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느끼는 거지만 그는 교도소에서 만난 박재호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 것 같다.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누구보다 큰 존재였지만, 평등한 법앞에 소수자가 되어 한순간 범죄자로 전락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박재호를 보며 자신의 도덕과 이성사이에서 갈등할 순간도 없이 박재호의 변호를 선택한다. 그리고 항고를 준비하고 재판을 진행하는동안 법앞에 놓인 소수자의 진실에 그동안 자신이 고민해왔던 변호사로서의 신념을 되새긴다. 만인에게 공평한 법이라 배우고 연수원시절 소수의견에 집착해온 염만수 교수의 강의도 결국 현실과 달랐다는 걸 일깨웠지만, 박재호를 변호하며 그는 진정한 법은 소수에게 더 관대해야한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정지된 시간 속에 박재호의 삶이 펼쳐졌다. 그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역사였다.
그는 때로는 동정 받았고, 때로는 착취되었다. 나는 그 주먹 쥔 손을 바라보았다.
마디가 굵은 억세고 더러운 손. 흙은 꽉 쥘 수 있지만 법은 수이 그 손을 새어 나간다.      
-p.244 


그러나 그런 소수의 진실도 아름답지만은 않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진실이란 전혀 아름답지 않지.
그런 추한 것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진실을 보게 된다오.
그리하여 이 세계가 너무 잔혹한 곳이라는 것을. 그 잔혹함마저도 기실은 진실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나 역시 잔혹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받아들이게 됐소.
그리고 나면 두 눈으로는 한 인간을 성장하게 만드는 모순과 투쟁만이 가득한 세계가 보이게 된다오.  
밤은 노래한다 中 -p.236


법정공방에서 드러나는 위법성과 논란, 사건의 이해관계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협박과 회유, 날조된 진실과 소수의견의 진실을 위해 윤변호사가 행하는 비양심적 논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그렇기에 잔혹한 진실을 목도하고 받아들인 순간 모순과 투쟁만이 가득한 세계라는 김연수의 말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변호사와 검사가 겨루는 팽팽한 접전은 다수에 의해 묵살된 소수의견의 진실성에 접근하기도 하지만, 실체없는 국가의 거대권력과 무력에도 맞닥드리게 된다.
생소한 법정용어와 긴 재판과정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읽히고, 많은 사회적 이슈와 논쟁이 되어 입에 오르내리지만 맥없이 스러진 사건사고를 되짚게 하며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이 책의 진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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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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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린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만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만큼 소설 화차는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친 수작이었다 말하고 싶다. 또한 여작가이기 때문에 더 밀도있게 그려지는 여자들의 심리묘사는 순간 순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정도 더 거슬러 올라갔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다중채무자나 개인파산, 대출, 사채로 인한 폐해는 현재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요목조목 집어주는 듯해 매우 놀라웠고, 일본의 신용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때문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무중 총상으로 휴직하게 된 형사 혼마에게 죽은 아내의 사촌인 가즈야의 느닷없는 방문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부모의 반대에도 강행한 약혼이었기에 가즈야는 말이 새나갈 염려가 없는 혼마를 찾아와 자신의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가즈야의 부탁을 받을 때만해도 일이 커질 줄 몰랐던 혼마는 단순한 가출이나 실종으로 판단하며 약혼녀인 세네키 쇼코의 행방을 쫓게 된다. 개인파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가즈야가 쇼코에게 사실을 물은 뒤, 그녀가 사라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찾던 중 세네키 쇼코가 전혀 다른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 이후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빠른 속도로 그녀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난 책을 읽은 후 조금 장황하고 디테일하게 설명된 신문의 사회부 한귀퉁이를 본 듯 했다. 만일 내가 이 책을 출간한 당시였던 2000년도에 보았다면 이 놀라움은 나에게 신용카드 한 장 만들지 못하게 할만큼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돈이 없어도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사고, 현금을 주며, 대출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무절제한 신용카드의 남발은 우리나라에서도 IMF위기를 초래하며 수많은 노동자들과 실직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나 역시 신용카드인 줄 모르고 만든 월급카드가 신용카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현금서비스나 할부구매로 많은 카드값을 지불하며 비싼 교훈을 얻었다. 카드사용을 줄여가고 있지만 이미 습관이 된 카드사용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보니, 책 속의 쇼코이야기는 비단 남의 일이 아니라는 변호사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제가 드린 말씀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세키네 쇼코 양은 특별히 형편없는 여성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바람의 방향만 조금 바뀌었어도 혼마씨나 저한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 두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p.148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만난 동료에게 이런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급하게 취직하게 된 친구였는데 취직하게된 계기를 설명하다 카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카드를 사용하고 다닐 때는 당장 내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아 좋았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다음달 청구서에 찍혀 빚이 되어 날아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참 철없는 친구라며 혀를 찼는데 나 역시 카드사용이 늘면서 결제일이 다가올 때마다 수십번을 돌이켜봐도 쉽게 쓴 돈은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일이 늘어나자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보일 수가 없었다. 변호사의 말마따나 이 사회에서 신용카드는 사회의 필요악인 존재다. 


쇼코 양이 돌오와서 왜 개인파산을 해야만 했는지 해명을 해야한다면 제가 얼마든지 협력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반드시 그녀만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현대사회에서 카드빚으로 인한 파산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해와 다름없는 것이죠.    -p.67
 

제목인 화차는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라고 한다. 그녀는 신용카드를 -혹은 신용사회를- 여러사람을 지옥으로 빠뜨린 화차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이런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차를 타버린 두 여자의 삶을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조차 사정을 헤아리자 감히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건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녀는 강한 반기를 들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 같다. 특히 변호사가 교통사고를 예로 들어 개인의 파산을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충고하는 부분은 설득력있게 전해진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려는 기업의 일방적 태도와 국가의 방관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1인당 개인부채가 총소득의 80%를 넘었다는 최근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지경이 되도록 개인을 부추겨온 사람들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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