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 김훈 문장 엽서(부록)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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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선생의 글은 여전히 멋지십니다~~!!

복도에 대기자가 많으면 김 아버님 박 아버님이라고 불러댄다. 이런 호칭을 들으면 모욕을 느끼지만, 아프니까 별 수없이 병원에 간다. 내가 젊은 간호사를 "딸아" 하고 부르면 나를 미친 늙은이로 볼 것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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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박찬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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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4.4.27


한때 쉐프의 에세이가 쏟아지던 시기가 있었다. 요리가 여전히 여성적인 무엇인가 인 가운데 그래도 진짜 요리사는 남자라는 인식이 공고해 지던, 그 진짜 요리사는 '요리사'가 아니라 '쉐프'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호칭과 지칭을 사용해야 한다던. "예, 쉡!" 이라는 말과 "봉골레 하나." 라는 말이 유행하는 우스개로 떠돌던 그때. 2010년 경의 이야기다. 쉐프라는 직업이 각광받기 시작해 드라마로까지 쓰여졌는지, 드라마 <파스타>가 주목을 받자 쉐프들이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는지 전후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내 기억상. 어쨌든 그 시기를 전후로 하여 글 쓰는 쉐프들이 나왔다. 자신의 레시피를 한두 개 곁들이고, 요리 철학과 가게를 열기까지의 이야기며 요리를 배우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을 담은 책은, 솔직히 말해 대부분은 시류에 편승한 뻔한 책이었고 대부분은 단권으로 끝이났다. 


박찬일은 그 과정에서 나에게 걸려든(?) 작가 쉐프(또는 쉐프 작가) 였다. 여타 쉐프의 에세이와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라, 뜻밖에 글을 아주 잘 쓰는 에세이스트였다. 이후 박찬일의 책은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사서 읽었다. 


이분의 이력은 그 빼어난 글 솜씨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중앙대 문창과를 나왔다. 졸업은 못했고, 중간에 그만두고 잡지사 기자로 또 몇 년간 글밥을 먹다, 결혼도 한 주제에 혼잣몸으로 훌쩍,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에 이태리 요리 유학을 갔다. 아내가 벌어 부쳐주는 돈으로 이태리 요리를 배웠고, 귀국해 쉐프가 되었다. 신기한 사람이다. 요리도 재능이듯 글쓰기도 재능의 영역이라 그 이후로 10여권 넘는 음식에세이를 써 내고 또 곧잘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려놓는다. 요즘은 TV에 음식 이야기를 하느라 가끔 나오기도 하더라. 이분의 음식은 먹어본 바 없어 모르겠고, 글쓰기 재능은 보통을 넘는다. 


박찬일의 글을 읽을 때 가끔은 한창훈과 겹쳐 보일 때가 있다. 한창훈 역시 진짜 끝장나게 잘 쓴 음식 에세이를 한 권(사실은 두 권이지만 두 번째 나온 글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으므로.) 내놨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라는 부제를 단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라는 제목의 책. 그런 공통점 때문에 박찬일과 한창훈이 겹치는 건 아니고, 박찬일과 한창훈의 글 둘 다의 바닥에 깔려 있는 페이소스 때문이다. 페이소스라고 하니까 잘 안 와 닿는다. 그냥 청승이다. 


한창훈의 청승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박찬일의 청승은 묘하게 덤덤하다. 청승이 어떻게 덤덤할 수 있는지는 박찬일의 글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청승스럽다고 해서 슬픈 이야기라는 건 아니다. 기쁜 이야기라고 해서 청승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박찬일의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세상을 산다는 게 결국 슬픈 일이구나, 슬픈 가운데서도 기쁨이 없지는 않은, 그러나 세상 사는 것은 다 어렵고 힘이 들어서 내가 사는 것도 힘들고 네가 사는 것을 보는 것도 힘들고 그러니 청승스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왕이면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기억도 막 쌓아서 나중에 죽어도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게"(p.32)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승스럽다. 


박찬일은 이 청승을 굳이 자랑스럽게 휘두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딱히 숨기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덤덤하게, 덤덤하게 글을 쓴다. 제목대로 '밥 먹다가, 울컥' 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어서 청승스러운 게 아니라 박찬일의 글 바닥에는 모두 그런 덤덤한 청승이 있는데 이 책이 유독 좀 더 그 청승스러운 감정 쪽이 강조되었다. 다른 에세이들은 쉐프의 음식 에세이 답게 음식과 식재료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책은 감정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산뜻하게 읽히는 건 박찬일의 글쟁이로서의 재능이고. 


밥 먹다가, 울컥 이 아니라, 글읽다가 울컥 했다. 그것도 글의 제일 초입에. "나는 결국 평생을 살아도, 옛날만 사는 것 같다."(p.8) 라는 구절에. 어쩌면 박찬일의 글이 청승스러웠던 게 아니라 글을 읽는 내 감정이 내내 청승스러웠던 것인지도. 


이러나 저러나, 박찬일의 음식 에세이는 정말로 좋다.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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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김현진.김나리 지음 / 박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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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는 86개다. 

그 중 4개는 이미 사망해 연락할 길이 없는 죽은 번호다. 차마 지우지 못하여 그의 생전에 쓰던 번호는 여전히 내 폰에 남아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인 것을 알면서도, 셀룰러 폰을 사용하던 그 순간부터 늘 나는 전화번호 목록의 전화번호들이 무거웠다. 안다. 말도 안되는 거. 희한하게도 이쪽으로 결벽성향이 있다. 남의 전화번호를 잘 저장하지 않는다. 저장했다가도 그 관계의 시절인연이 끝나면 얼른 지운다. 당연히 업체의 전화번호는 저장하는 일이 없다. 네이버 만세. 


이러면서도 희한하게 과거의 대화 기록은 잘 지우지 않는다. 그래서 내 폰에는 과거 카톡이나 문자 대화방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들이 꽤 있다. 영혼까지 복구해준다는 아이폰의 위엄이다. 아이폰 만세.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 침대에 누워 과거의 대화창들을 열어 읽을 때가 있다. 이 시기에 내가 이런 물건을 팔았고, 이런 물건을 샀구나, 이 사람과 이런 대화들을 나누었구나. 하는 생각. 

카톡창의 대화는 매우 즉각적이고 즉흥적이라 그 당시의 날 것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묘한 기분을 준다.

 

편지와 이메일의 거리만큼이나 이메일과 대화창의 거리도 멀다. (실은 편지와 이메일간의 거리가 더 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터넷 초창기시절부터 꽤 오래 드림위즈 메일을 썼는데 이제는 그 서버가 없어져버려 그 당시의 메일들을 복구할 길이 없다. 슬프다.)


이 소설은 그 새벽의 카톡창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김현진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 선명한 정치적 스탠스도 좋아하고,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위악적인 태도도 좋아한다. 이 책을 처음 선택한 이유는 김현진이라는 작가 때문이었고, 초반 몇장의 덜그럭거리는 느낌의 서술 역시 김현진을 이유로 참았다. 읽다보면 괜찮을 거야. 하고. 그리고 소설이 카톡 대화창으로 넘어갔을 땐 어라, 이럴거면 서간체 소설을 쓰시지 왜. 라고 생각했다가 곧 납득이 됐다. 이건 서간체 소설로는 안되는 이야기다. 더이상은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기다리는 세대가 아니고 이메일 확인을 재촉하는 세대도 아니다, 하는 세태 반영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날 것의,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면 실시간의 (완전한 실시간은 아닙니다만) 대화창이라는 설정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정확히는 국민학교) 때 편지 쓰는 법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편지를 쓸 때는 다른 노트에 대충 써 본 뒤에 편지지에 형식을 잘 갖춰서 배껴 쓰라고 배웠다. (진짜다! 지금 생각하니 그 무슨 미친소린가 싶지만 말이다.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그렇게) 편지 쓸 내용을 머릿속에 정하고 초고를 쓴 다음 다시 정제하여 편지지에 옮기는 과정에 날 것의 감정은 모두 휘발된다. 그리고 잘 정돈된 마음과 그 내용만이 남게된다. 편지를 써서는 절대로 이런 내용을 말할 수 없다. 자기 검열에 걸릴테니까. 그 이후 등장한 이메일이라는 형태도 그리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메일은 발신취소기능까지 존재하니까, "밤에 쓰는 편지" 라는 감정 과잉조차 자진 삭제가 가능하다. (물론 카카오톡에도 보낸 톡 삭제하기 기능이 존재합니다만, 이 소설이 출간된 2016년에는 그 기능이 없었습니다!!!) 카톡의 실시간 대화창에는 즉각적인 감정의 출렁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가능하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한밤중이 아니라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다면 하지 않았을 말들이 이 소설에서는 흥건하게 흘러넘친다. 카톡 대화창이라는 즉물적인 소통방법,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특성 탓에 (특성 덕에?) 내밀한 고백이 가능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것이다. 익명의 상대라는 것, 내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상대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물론 이름과 나이, 하는 일 정도는 알고 있지만 어느 회사에 다니는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모른다. 굳이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그리고 결국 찾았지만- 굳이?) 내가 이 사람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내 주변에 가 닿지 않는다. 소설의 중간에 등장하는 말처럼 "소중하게 쓴 편지를 깨끗한 소주병에 담아 해운대 앞바다에 띄워보낸 병을 발견한"(p.165) 것에 불과하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발견한 것과 다르지 않은, 소문의 가능성이 없는 수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대화는 한층 대담하고 솔직해진다. 혈육에 대한 혐오, 부모에게 받은 학대에 대한 고백. 


이런 고백을 할 때 익명성이 사라진 주변 지인의 반응은 정확히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아무리 미워도, 낳아주신 분인데."(p.263) 이라는 것과 둘째는 "안쓰러워 웃으면서, 그런데 참 잘 컸네."(p.275)라는 것. 그 둘 어느것도 학대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사람에게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얼굴을 마주 댄 사람에게는 이 두 가지 이외의 반응을 보일 수가 없다. 마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건. 바로 이 지점에서 우연히 가 닿은  익명의 커넥트가 빛을 발한다. 기명을 벗어던진 두 사람은 익명에 기대어 사회적 동물로서의 예의 대신 공감과 위로를 서로에게 보일 수 있다. 


소설은 9년 간의 외사랑(짝사랑이라고 하기는 어렵다)을 하던 29살 여자가 결혼식을 하였으나 혼인신고 없이 헤어져 이혼녀라고 하기에도 미혼녀라고 하기에도 애매해 스스로를 이-미혼녀라고 칭하는 30초의 여자에게 의지하고 위로받으며 그 외사랑을 끝장내 버리는 이야기.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수미라고 해야겠다. 둘 다 아버지라는 남성에게 상처를 받았고, 사랑했던 남자에게 상처를 받아 상처 투성이가 된 여자다. 수미의 결심은 그들의 대화를 읽어가던 사람에게 그래, 라고 박수를 쳐 주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블랙 코미디 같던 결말. 스릴러 물이 아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고 수미야, 민정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라고 말하게 되는. 그딴 인간을 응징하자고 니들 인생이 망가지면 안되잖니,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니. 라고 말하게 되는 나는 결국 "아무리 미워도 낳아주신 분인데, 훗날 후회하면 어쩌려고. 니들이 얼마나 잘컸는데 그 노력을 망가트리지 마." 라고 말하는 하찮고 하찮은 지인에 불과한 인간이고. 


카톡 대화창을 열어 읽는 형식의 소설은 독특한 형식이고, 그 독특한 형식을 차용한 효과가 여실히 드러나 좋았지만, 응. 그래 그랬어. 별 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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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리커버 에디션)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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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4. 1. 28

 

후일담 소설’ 이라는 게 하나의 장르가 되던 시기가 있었다학생운동의 전통(?)이 1996년 여름 연대항쟁(연대사태?)로 장렬하게 막을 내리고이 표현에 대해서는 여러 재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그 이후로도 학생 운동은 꽤 격렬하게 이어졌으니까-내가 체감하는 것은 그때가 꺾이는 시점이다. 1998년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가 이어지면서 세상이 변하고 대학생도 변했다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고 내가 철들어 간다는 것이 제 한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드는 거라면 내 결코 철들지 않겠다(새시대 청춘송가 )’던 대학생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공장이 아닌 노량진 고시원으로 스며들고 더 이상은 다쓰현(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이니 뭐니 하는 책이 대학가 신입생의 필독 금서(필독 금서라니이 웃긴 표현이라니.)가 아니게 된 시절과 맞물려 그 후일담 소설들은 주로 여성 필자에 의해 쏟아지기 시작했다소설가 공지영도 그 시절에는 후일담 소설의 선봉장이었다그래서 이 후일담 소설들은 엄청난 비난 공세에 직면하기도 한다학생운동의 경험을 팔아먹는다는. ‘후일담 소설은 가장 쉽고도 명쾌하고 명료한 비난이었다그 시절에.

 

권여선의 첫 번째 소설은 그 즈음에 나온다. 19962회 상상문학상의 수상작이자 권여선의 데뷔작 푸르른 틈새는 그 뛰어난 솜씨에도 불구하고 후일담 소설의 멍에를 쓰고 권여선을 그렇고 그런 후일담 작가의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권여선으로서는 몹시 억울할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딱히 억울할 일도 아닌 게 그 이후로도 권여선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격렬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었거나(토우의 집그 사람의 자녀(레가토)였으니까이쯤되면 아마도 권여선 본인이 그 학생운동의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기도. 1965년생서울대 국문과 출신이러면 응그래 그럴만도싶다.

 

이 뜻하지 않은 한계 속에서 그 한계를 뛰어넘어 후일담 소설그게 뭔데라고 말하게 만드는 지점이 권여선의 힘이다.

 

이제는 후일담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후일담 소설에 대한 논의도 거의 없다. ‘후일담 소설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들여다보는 권여선의 소설은 와이렇게 좋은 글을 써 내는 훌륭한 작가가 있구나 감탄하게 만든다진짜로 글 하나 끝장나게 잘 쓰는 작가다제 경배를 받으소서작가님.

 

평론가 김병익은 2007년 출간된 박완서의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해설에서 노년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말하는 노년문학은 그냥 작가가 노년이라는 것혹은 단순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노인이라는 것 이상의 것으로노인이기에 가능한 원숙한 세계인식삶에 대한 중후한 감수성이것들에 따르는 지혜와 관용과 이해의 정서가 품어져있는 작품 세계를 드러낼 경우를 말한다우리에게 이런 노년문학의 성립이 어려웠던 것은 전쟁과 가난으로 작가들이 장수하지 못하거나 조로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략

그들은 아마도 삶의 현장에서 부닥치는 치열한 행동이나 미숙한 연령들이 보이는 위험한 정열과는 다른 형태의 삶과 내면을 가지고 있으며그럼에도 그들도 분명 보편적인 인간다움을 누려야 할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아야 할 삶인 것이다.

 

김병익 해설 <험한 세상그리움으로 돌아가기박완서친절한 복희씨문학과 지성사, 2007, p.285-286

 

65년생 권여선은 2024년 현재환갑이 가까울 쉰 아홉 고개에 올랐다요즘 시세(?)로 결코 노년이라 할 수 없는 나이이니 이 소설집을 노년문학의 한 장르로 받아들이자는 말은 아니고작가와 함께 나이 먹어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일곱편의 작품이 실린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50대 중후반의한때 격렬했던 시대를 살아냈던 이 시대의 중년들이다김병익이 말한 미숙한 연령들이 보이는 위험한 정열의 시기를 거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이의 사람들.

 

죽음을 가깝게 느꼈고 미래를 생각하는 일에 죄의식을 느꼈”(<기억의 왈츠>p.209)던 이십대를 보낸 주인공은 우연히 동생부부와 함께 찾아간 교외의 국수집에서 과거의 기억과 만나게 된다그리고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기억의 왈츠>p.230)했던 기억의 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권여선에게 감탄하는 지점이 이곳이다세상에글을 어쩌면 이렇게 설득력 있게 잘 쓸까좋은 작품은 독자의 내면에 깊이 간직해 둔독자 본인도 간직해 둔줄 몰라 잊었던 기억을 건드린다그것을 언어로 형상화 해 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이게 대체 뭐지그때의 내 감정이 어땠지하는 것을 가만가만 언어로 가지런히 풀어내 소설의 이야기에 기대어 나의 이야기를 정돈할 수 있게 해 준다.

 

사귀던 남자친구로부터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0년간 써 온 일기장을 받고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물과장된 연기만 하도록 태엽 감긴 무”(p.235) 였던 주인공은 그 일기장 선물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미숙한 20대의 사랑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주인공이 남자친구 경서를 그 당시에 사랑했는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내가 지키는 줄도 모르고 결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무내용이다아무것도 없는 개미굴 같은 폐광을 절대 굴착당하지 않으려고 철통같이 지켜내려 했던 그때의 내 헛된 결사성”(p.236)이다.

 

이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결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무내용아무것도 없는 개미굴.’ 20대의 정열을 다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이 50대가 되어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는 개미굴의 무내용이라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내 속은 그렇게 텅 비어있었는데.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인문대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던 늘씬한 아가씨”(<무구>p.145)이자 4학년 1학기 때 학교를 그만두고 현장으로 가서 거기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할 정도로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현수는 딸 둘을 키우는 뚱뚱한 중년 여자가 되어 아마도 사기꾼에 가까울 시골 기획 부동산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여자가 되었다친구 남편의 정체에 관해 주인공 소미는 성격이나 버릇보다 학출일지 노출일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이 마당에도이 지경에도 말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던 길재 선생의 시조가 황당하게 떠올랐다세상이 바뀌었을까대통령이 바뀌고 고작 2년 만에인걸이 없다고 산천은 인걸이 없던 그 시대로 돌아가 버렸다그야말로 의구하게토지는 무구하다더니.

 

이렇게 글을 쓰면 이 책이 무슨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 대한 회한을 읊은 책 같은데전혀 그렇지 않다권여선은 이미후일담 소설과 무관한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가다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문장력과 구성력이 탁월하다무엇 하나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정말로 뛰어난 작가다작품이 작가를 반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권여선의 주인공들이 일정 부분 권여선을 닮을 수 밖에 없으니 20대의 치열함이 학생운동으로 드러났을 뿐권여선이 말하는 것은 세월이 흘렀고사람이 어떻게 변화해 가느냐또는 변하지 않느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권여선의 소설이 정말로 빼어나다는 사실그러니까 나는 이 리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권여선 찬양을 하려는 목적으로 쓰고 있다다시한번저의 경배를 받으세요작가님작가님 글 진짜 최고예요.


뭐 별로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1996년 연대사태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한총련 대변인이었던 박병언씨(?)는 변호사가 되었다이걸 왜 알려주냐고그냥... 진짜 말 그대로 그냥난 가끔 누군가의 후일담이 궁금하기도 하더라고그때 그 사람은 지금 뭘하나하는혹시 나처럼 궁금한 사람 있을까 봐이게 뭐 어쨌다가 아니라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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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 레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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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4. 1. 21

 

어린왕자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생떽쥐베리는 모든 것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마침내 완성된다는 말을 했다. 대표작을 꼽을 수 없을만큼 모든 소설이 다 대표작이 될 소설가 스티븐 킹은 초고에서 10%를 덜어내는 것이 자기 글의 수정 목표라고도 했다. 모든 좋은 글은 덧붙여 쓰는 것이 아니라 쓴 것을 삭제하는 데서 완성되는 모양이다.

 

김연수의 단편집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이 책. 전작이 전형적인 단편소설집(8편이 실렸다)이라면 이번 책은 무려 20편의 짧은 엽편 소설을 모았다. 책 말미에 붙어있는 작가의 말대로라면 가파도의 창작 레지던시에 머물던 중에 제주도 대정읍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열었고(창작 레지던시에 묵던 작가들의 의무였단다), 그때의 경험 이후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산문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됐다. 강연회보다는 막 지은 짧은 소설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낭독회를 더 자주 하게 됐다’(p.297) 고 한다. 짧으면 십분, 길면 한 시간이 넘도록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그렇게 가볍지 않은 내용들을 담고 있음에도 소설집은 경쾌하게 넘어간다. 주변부의 서술들을 깍아낼 수 있을만큼 쳐 낸 뒤 더 이상 뺄 것이 없을것 같은 글들이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글도 있지만 전개의 어느 한 부분만을 뚝 잘라낸 것 같은 글도 있고, 결말 없이 절정에서 느닷없이 툭 끝나버린 것 같은 글도 있다. 그 이후는 당신의 상상에 맡깁니다, 하듯. 그야말로 소설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것에 적합한 글이다.

 

마치 스타카토 같다. 음표 위에 점을 뚝뚝 찍어 끊어 노래하는. 앞 뒤 음표와 상관없이 단독자로 존재하는 음. 그럼에도 소설은 전체적으로 다정하다. 그 다정함 덕분에 단독자로 존재하는 음 하나 하나가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든다.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말한 것도 다정함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유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p.113)

 

소설과 산문을 혼동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아마도 2020년 봄-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무렵에 연수씨는 여든이 넘은 어머니를 잃은 것 같다. 소설집의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았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어머니를 잃은 중년 아들의 사모곡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아픔을 의연하게 바라보고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려는 것으로 읽혔다. , 그참 저참 나 스스로도 위로를 하고 말이다. 세상에는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너무나 많은 여름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럴진대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통조림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사실 겉에 붙은 라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도 그의 본성이 아니라 드러난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과거는 밀봉된 채 선반 뒤에 올려놓은 통조림과 같아. 그래서 우리는 라벨만 보며 얘기하는 거지. 하지만 거기 통조림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p.78-79)

 

작가에 대해, 그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지만, 실은 우리가 통조림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뿐, 그 작가의 내면에 가 닿지는 못한다. 짐작만 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연수씨, 다정한 작품 고마워요.


어머니를 잃은 이후에 쓴 소설이라 그런가 실존과 인식에 관한 글들이 많았다. 삶과 죽음, 살아있음과 인지에 관한 생각을 해 볼만한 그런 글. 여전히 그의 문재는 빛을 발하고.

 

우리가 감각 하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크거나 절대적으로 작은 것이 없어. 멀고 가까운 것만 있는 거야. 그러니 어떤 대상의 크기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어. 그 위치가 우리의 의지를 뜻해.

<풍화에 대하여> p.137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별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예요.”

<거기 까만 부분에> p.238

 

아마도 세월호 희생자에 관한 이야기이지 싶었던 <거기 까만 부분에> 라는 소설은 아름다웠다. 김연수만이 써 낼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도 했고,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울지 않고, 찡그리지 않고, 회피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읽은 세월호 관련 글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진이가 죽었다. 엄마는 시진이가 남긴 흔적을 찾으려 애쓰다 어느날 시진이를 수목장 한 나무 앞에 놓인 주희가 쓴 편지를 발견한다. 거기에 시진이의 사진 이야기가 있었고, 엄마는 그 사진을 주희에게서 얻었다. 하지만 거기에 시진이는 없다. 그저 새까만 부분만 있을 뿐. 그러나 주희는 그 새까만 부분에 있는 시진이를 볼 수 있다.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있는 것,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비단 별만일까.

 

한번 깨어나게 되면 제 쪽으로는 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렇게 마른 상태에 대해 알게 되죠. 그러면 이전까지의 삶이 젖은 상태였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고요. 마른 상태일 때의 저는 생각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플롯으로만 보입니다. 기승전결, 모든 일들은 어떤 결론으로 향하는 과정이지요.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다만 안심과 침묵만 남습니다.”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 p. 105

 

아내의 의료과실로 인한 죽음으로 인해 공황장애를 겪게 된 코메디언 신기철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슬픔과 울음도 진실이고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도 진실이다. 이야기는 끝이 있는 거니까. 그 이야기에 젖지 않고 들어가는 것, 그것이 그 상실을 겪고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인 거다.

 

리뷰를 쓰면서 생각했다. 연수씨, 당신 어머니를 잃고 참 많이 힘들었구나. 이제는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으나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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